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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개와 횡단보도 건너기
[안치용의 프롬나드] 개와 횡단보도 건너기
  • 안치용 가천대 저널리즘 MBA 교수
  • 승인 2016.10.12 2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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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귀가로 약간 피곤하였지만 격렬하게 반겨주는 스콜을 보니 기꺼이 수고를 감당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방을 문간에 대충 던져놓고는 곧 바로 녀석에게 목줄을 끼우고 길을 나섰다. 가는 길이라고 늘 같은 길이지만, 개 꼬리는 사람의 입 꼬리 올라가듯 올라갔고 펄럭이기까지 한다. 개가 공 다음으로 좋아하는 게 산책이다.

이른 아침에 들렀던 공원을 늦은 밤에 다시 찾는다. 여전히 옆에는 개가 동행한다.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이 다른 입구에서 뛰어들어 와 스콜을 스칠 듯이 지나친다. 인사성이 밝다. 그 와중에 “안녕”이라고 스콜에게 인사를 건넨다. 목적지는 조금 떨어진 벤치. 여자 친구가 미리 와서 앉아 있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뭐라고 서로 말을 섞는다.

다음 벤치엔 그 남자가 보인다. 오랜만의 조우. 운동화에 운동복 차림이 아니라, 하늘색 셔츠에 비슷한 계통으로 더 진한 정장 바지를 입고 구두를 신었다. 옷차림만 다른 게 아니라 옆의 풍경이 달라졌다. 소주병은 그대로이나, 일회용 컵에 따라 마신다. 참치캔을 따서 얌전하게 나무젓가락을 얹어놓았다. 스마트폰에 고개를 파묻은 그의 옆을 지나는데 소주 냄새가 향수처럼 달콤하게 풍긴다. 늘 그렇듯 깨끗하게 면도해서 말쑥해 보였다.

공원을 반복해서 돌지 않고 큰 길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횡단보도의 빨간불 앞에 서면 개가 같이 선다. 파란불이라 건너면 나란히 건넌다. 버스와 승용차ㆍ택시의 전조등이 온통 스콜에게 초점을 맞춘 듯 개털 한 올 한 올이 full HDTV보다 더 선명하다. 아까 공원에서 만난 그 젊은 남녀가 어느 틈엔가 나타나 우리를 앞질러 간다. 손을 잡은 채이다. 외양으론 내가 목줄을 잡은 듯이 보이겠지만 우리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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