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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춘천 가는 기차의 차창 밖을 함께 바라볼 수 있을까
[안치용의 프롬나드] 춘천 가는 기차의 차창 밖을 함께 바라볼 수 있을까
  • 안치용 기자
  • 승인 2017.01.14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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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치용의 프롬나드] 춘천 가는 기차의 차창 밖을 함께 바라볼 수 있을까

 

주차장에서 출입문 개폐 버튼을 누르면 갑자기 열리는 눈의 세계. 드르륵 도르래가 문을 끌어올려 천장에 붙여놓자 팝업하는 액자 같은 눈의 기억. 눈송이 하나, 또 한 송이, 하얗게 뭉쳐진 시간이 풍경이 얼굴이 문밖 세상에 나를 비끄러맨다.

 

김현철이란 가수가 ‘춘천 가는 기차’라는 노래를 쓴 그 나이에, 스무 살에 나에게 눈은 그 노랫말만큼이나 거창하고 기념할 만한 무엇이었다.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춘천 가는 기차에 몸을 부대었다가” 처음 보는 대학생 집단에 섞여들어 잘 먹지도 못 하는 술을 마시고, 토하고, 시체처럼 잠 들었다가 새벽 첫 기차로 돌아온 나름 비장한 청춘의 의식(儀式). 아무튼 구성된 기억 안에서 그 의식의 배경에선 눈이 와야 한다.

 

지금에서야 스물 살에 썼다는 그 가사에 빙그레 웃게 된다만, 그땐 대체로 그런 색깔의 가사를 가슴에 품는 법이다. 그때 내리는 눈이 춘천 가는 기차의 차창 밖으로 내리는 눈이어야 함은 디폴트 값이다. 사랑을 모르고 사랑하였다만 사랑은 모르고 하는 게 사랑이란 역설을 사랑이 지난 후에 알게 된다. 또는 나의 개 스콜이 반복하여 행하듯, 사랑은 강아지의 제 꼬리 물기 그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개에게 꼬리는 흔들려야 하지 제 입에 물려 있어선 안 되는 존재이지 않은가.

 

이제 젊지도 않고 늙지도 않은 인생을 대면하며 가끔 저 눈의 군무에 피랍되었을 때 펼쳐지는 시야는 나의 개 스콜과 걸리버가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개가 보는 세상은 흑백이다. 압도적인 하얀 색의 세상, 주차장 문 밖으로 아주 잠깐 펼쳐진 다른 세상은, 그때나 다름없이 눈송이 하나, 또 한 송이, 하얗게 뭉쳐진 시간 풍경 얼굴이 문밖 세상에 나를 비끄러매지만 “차창가득 뽀얗게 서린 입김을 닦아내” 찾아내는 느린 기차의 차창 밖 강설일 수는 없다.

 

이제야 숨 막히도록 사각의 이차원을 채우는 하얀 눈은 하얀 목련꽃이라 해도 나에겐 하등의 차이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눈이 내리거나 목련이 피거나, 그것은 액자 속 풍경처럼, 말하자면 이차원의 세상에 강림한 삼차원의 메시지 같은 모종의 마법으로만 월경이 가능한, 예외적인 공간으로 계시된다. 나의 개들과 함께 계시 없는 삶을 살아내기.

 

 

글ㆍ안치용 지속가능성과 CSR에 관심이 많다.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과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속가능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news)’을 대학생/청소년들과 함께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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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 기자
안치용 기자 carmine.draco@gmail.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