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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자본이 아닌 사람을 비추는 도시여야”
“건설자본이 아닌 사람을 비추는 도시여야”
  • 김승수 | 전주시장 인터뷰
  • 승인 2018.01.31 09: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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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자본에 맞선 김승수 전주시장
▲ 선미촌 내 폐공가 부지에서 '눈동자 넓이의 구멍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는 주제의 설치미술 작품 전시회 개막식을 연 가운데김승수 전주시장이 소보람 작가로부터 작품 설명을 듣고 있다.

오는 6월 지자체 선거에서 과연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좀 더 외연을 넓혀 말하자면, 그가 이끄는 도시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서울, 부산, 대구, 대전, 울산, 세종, 천안, 송도….  미국의 대형 창고형 할인매장인 코스트코가 한국 전역의 상권을 거세게 잠식하고 있는 가운데, 여기에 힘겹게 버티는 지방 도시가 하나 있다. 요즘 한옥관광과 전통 맛 기행으로 새삼 관심을 끄는 전주시가 그러하고, 김승수 시장이 그 운명의 당사자로 주목을 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창고형 할인매장이자, 두 번째로 큰 소매업체인 코스트코는 국내 14번째 매장을 전주시가 새로 조성한 에코시티에 내기 위해 ‘공’을 들였으나, 주민들 간에 ‘찬반갈등’을 촉발시키다가 지난해 무산됐다. 전국 곳곳에 파고든 롯데쇼핑몰도 전주 종합경기장에 입점을 노렸으나, 실패했다. 

김승수 시장이 이끄는 전주시의 반대 입장은 확고했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반대파에서는 “문화쇼핑 인프라를 깔고, 광역도시화해서 도시 성장을 서둘러야 한다”면서, “코스트코 등과 같은 창고형 대형매장이 입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 주민들은 선거에서 김 시장에 대한 ‘응징’을 다짐하고 있다. 그럼에도 김 시장은 일관되게 창고형 대형매장이나 대형마트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선거에서 아파트 유권자들만 의식해 편의시설 유치를 남발하는 여느 단체장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단아’로 불릴 법한 김 시장은 대체 누구인가? 

글로벌 자본주의에 맞선 
지역경제 프레임필요 

-왜 창고형 할인매장에 반대하는지요? 
 “창고형 할인매장의 경우, 대형 할인마트의 수익이 지역사회에 스며들어 선순환 되는 구조가 아니라 대부분 법인으로 역외유출된다는 게 문제입니다. 이로 인해 지역사회의 유통경쟁력은 더욱 악화되고 영세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은 막대한 피해를 고스란히 입게 됩니다.”

-코스트코는 어떤 경로로 압력을 가합니까?
“코스트코의 입점을 젊은 친구들 대부분이 찬성해요. 코스트코가 있으면 아파트 값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개발자들, 건설하는 사람, 기획 부동산업자들이 주도하고, 일부 주민들이 계속 입점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저는 주민들을 설득하느라 지금 온몸으로 막고 있어요. 제 블로그가 다운될 정도로….”

-선거를 앞두고 극한 반대에 부딪히면 어떡하나요?
“지금 그 동네에서 극한 반대를 실제로 하고 있고, 그쪽 지지율이 아주 낮아요. 외국계 다국적 기업이 도시에 들어오면 잠깐은 좋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대형할인마트에는 거의 모든 품목이 있잖아요.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게 지역경제를 모두 잠식해갈 것입니다.”

-코스트코에서는 정식으로 입점하겠다고 제안서를 냈습니까?
 “제안서를 낸 건 아니지만, 거의 뭐...”

-어쩌면 주민들로서는 현대식 편의시설에서 안락한 쇼핑을 즐길 권리가 있을 텐데요?
“지금의 전통시장과 현대식 마트에서도 얼마든지 편한 쇼핑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사실, 대형마트는 이미 전주에서도 적잖게 찾을 수 있습니다. 대형마트의 경우, 지역사회 기여를 목표로 한 상생발전협의회에 참여해 활발한 영업활동은 물론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다만, 대형창고형 마트가 들어서면, 과다 출혈 경쟁이 일어나고 지역 경제가 무너질게 우려됩니다. 신도시 아파트에 거주하는 일부 주민들의 불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지역공동체의 대의를 위해 이해를 구하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전주시가 대형마트들과 합의‧구성한 상생발전협의회가 많은 도시들에게 모범사례로 꼽히던데요.
“저희는 상생발전협의회를 구성해 대형마트 입점허가 시에 대형마트의 지역사회 공헌과 지역발전 기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지역 기부금·지역민 고용·지역생산품 판매 등 관련 가이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마트, 하나로클럽, 홈플러스 3개점,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2개점과 세이브존, 롯데슈퍼, GS리테일 등 11개 대형마트 및 기업형 슈퍼(SSM)로 구성돼있습니다. 
대형마트 운영자는 지역기여를 위해 일정비율 이상의 지역주민 채용, 지역농축수산물 및 지역상품 매입판매, 지역은행에 일정기간 현금매출액 예치, 공익사업 참여를 통한 지역사회 이익환원, 지역업체 용역서비스업 우선위탁 등에 노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대형마트는 공익사업 참여내역(지역환원), 용역업 현황, 도내 인력현황, 수수료매장현황, 매입·매출현황을 집계한 자료를 협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토끼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편의·지역경제·일자리까지 소위 3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방안이군요. 시장께서 그리는 전주시의 미래가 궁금합니다.  
“한마디로 말씀 드리면, 저는 우리 지역의 정체성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역민들을 위해서도 그렇고, 한 국가의 일부로서도 중요하고, 국제적으로도 도시 정체성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쉽게도 대한민국 도시의 전형이 획일화돼 있습니다. 중심에 쇼핑몰이 있고, 고개 돌려보면 스타벅스가 있고, 또 한쪽에는 맥도날드가 있고, 휴대폰 가게, 치맥집… 이런 것이 거의 모든 도시의 전형이 됐습니다. 도시들이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복제되고 있는 셈이지요. 

그렇게 복제되는 도시에서 주민들이 잠시 편리하고 즐거울 수는 있겠지만, 어떤 영감이나 감동을 받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게 복제된 도시는 점점 사람들이 찾지 않기 시작했어요. 반대로 사람들이 찾는 도시들로는 어떤 곳들이 있을까요. 남부지방 쪽에서는 전주를 비롯해 여수, 순천, 통영 등입니다. 이 곳들은 서울을 복제하려던 도시들이 아니고, 다들 ‘자기다움’을 찾으려고 했던 도시들입니다. 자기 정체성을 찾는 작업이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이해되지만, 다소 막연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도시의 가장 큰 성장동력은 도시 그 자체입니다. 산업은 흥했다가 망하기도 하지만요. 예를 들면 피렌체나 파리 같은 도시는, 그곳 자체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가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 전주시도 자기정체성을 찾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도시들이 모여서 국가를 이루는 것이니 도시들이 서로 다양한 자기 색깔을 가지고 있으면, 그 국가는 다양한 색깔을 지닌 국가가 되는 것이죠. 

아쉽게도 대한민국은 단 한 번도 유럽, 아메리카, 아랍, 아프리카 대륙 사람들의 여행의 목적지가 돼본 적이 없어요. 대부분 일본,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에 갈 때 거쳐가는 곳 정도였지요.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던 정체성이 정확히 구별되지 않았던 탓이 큽니다. 그런 의미로 보면, 도시들이 자기 색깔을 가지고 성장해야 하는데, 그런 게 저희가 부족한 겁니다. 전주는 자기 정체성을 찾는 데 지금까지 집중해왔고, 또 그런 자기정체성을 찾으면서 전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도시로 가고 있고, 또 그렇기 때문에 연간 1천만 관광객이 전주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CNN이 전주를 ‘아시아 문화 관광 3대 도시’로 전 세계에 뉴스를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도시의 색깔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군요. 그렇지만, 지방도시인 전주시의 색깔이 두드러지기는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전주는 지역적인 것이 얼마나 세계적이고 개방적인 것인지 온몸으로 웅변하는 도시입니다. 지역적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겁니다. 전주가 나름의 자기정체성을 찾게 된 방법은 반듯반듯한 직사각형의 초고층 개발보다는 꼬불꼬불한 골목길의 재생에 나서고, 생물의 다양성을 찾으며 고유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은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전주국제영화제’는 인디필름-대안이라는 주제를 갖고 십수 년 간 지속적으로 해왔기 때문에, 미국의 무비메이커가 수백 개의 전세계 영화제 중에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저희만 ‘2017년도 25대 영화제’로 선정됐습니다. 이런 것처럼 자기 정체성을 확고하게 가져가는 게, 도시를 지속가능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시장께서 너무 이상주의자라고 지적합니다만…
“시간이 지나면, 저의 진정성을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도시 한복판, 과거의 역사가 남아 있는 곳에 쇼핑몰 같은 거대한 건물이 들어와서 흔적을 다 지워버린다면, 과연 그게 우리가 알던 전주의 모습인지 묻고 싶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좋지 않은 풍광은 없애야 하지 않을까요? 
“전주에는 선미촌이라는 유명한 성매매 집결지가 있어요. 거기도 재생하려고 합니다. 물론 가장 쉬운 방법은 경찰들을 물리적으로 동원하고, 건물주들과 합의해서 성매매 집결지 건물들을 부수고 거기 아파트를 높게 지어, 개발이득을 가지고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도시의 좋은 기억이든 좋지 않은 기억이든 흔적을 남기려 재생하려고 합니다. 사실, 굉장히 어려운 방법이죠.”

-성매매 집결지를 재생하면 어떻게 이용합니까?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이용하려고 합니다.”

-해당 건물을 다 허물지 않고요?
“예. 이미 성매매 집결지 중심에 건물 두 채를 사서, 하나는 시티가든을 만들고 다른 하나는 예술가들이 작업하는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 예산이 투입돼, 나중에 부동산가격이 오르면 건물주들만 이익을 보고, 세입자들은 비싼 임대료로 오히려 쫓겨나는 경우가 허다한데요…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어요. 전주 한옥마을이 젠트리피케이션의 아주 대표적인 사례인 점은 저희가 많이 반성하고 있어요. 사실 그동안 시민들이 배제된 채 기업이 주인이고, 기업보다도 자본이 진짜 주인이었죠. 이미 젠트리피케이션이 많이 진행된 한옥마을은 그렇다 치고, 그 주변의 부도심 지역에서라도 공간과 사람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시장이 되기 전에 이미 건설자본이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와서 23층, 최고 47층까지 이미 준비가 돼있기도 했습니다. 그곳을 지금 7층 정도로 묶어서 스카이라인을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현재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법적장치가 없다는 점입니다. 사유재산 침해라고 법이 통과를 못하고 있죠. 그런데 전주 예술인마을과 전주역 앞의 도시재생지역 같은 경우는 주민들하고 일종의 윤리협약을 통해 젠트리피케이션을 한번 막아보자는 공감대가 상당히 형성되고 있습니다. 적어도 여기서는 한옥마을의 아픔을 다시 겪지 말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제 다른 얘기를 할까요. 얼마 전 중앙정부 차원에서 폐지 줍는 노인들에 대한 전국적인 전수조사를 처음으로 시행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미 전주시가 몇 년 전 최초로 실시한 정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장에 가면 정말 안타까워요. 그 분들이 손수레에다 가득 폐지를 싣고 종일 주워도, 보통 1,200~1,300원, 한 달 내내 해도 14~15만 원 정도 밖에 받지 못해요. 그런데 폐지 줍는 시간대가 새벽 2시쯤인데, 새벽 5시부터 쓰레기차가 와서 걷어가니까 더 일찍 나와서 어제 밤늦게 가게들이 버린 폐지를 줍는다든지, 또는 그보다 훨씬 일찍 나와서 폐지를 줍기 때문에 사고위험에 많이 노출돼 있어요. 그래서 저희가 그분들 약 260명을 전수조사를 했는데, 폐지 줍는 이유가 다양해요. 정말 형편이 어려워서 하는 분도 계시고, (상대적으로 조금 나은 형편이지만) 용돈벌이 하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정신적으로 집착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이분들에게 저희가 농협 각 지점에서 한 달에 15만 원씩 드릴 테니까, 이 돈을 받고 거기서 일을 조금 하시고 폐지를 줍지 마시라고 제안을 드렸는데, 그 돈을 받으시면서도 폐지를 주우시는 거예요. 장기적으로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게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저희가 보호 장비도 드리긴 했어요. 지금 계속 대화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어려운 문제여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느라 고심 중에 있습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전주의 숨은 색깔을 찾게 할 방법이 필요하겠군요. 
“저희도 몇 가지 전주만의 장점과 미덕을 살린, 작지만 의미 있는 국제적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오래된 미래>를 쓴 노르베리 호지 여사와 함께, ‘행복의 경제학’ 세계포럼을 4회째 개최해서 로컬푸드, 사회적 금융, 지역화폐 같은 공동체적인 문제를 집중 논의했고요. 두 번째로는 지난해부터 세계슬로시티포럼&어워드를 실시해 ‘느린 삶’의 의미를 짚어왔습니다. 그리고 문화의 무형유산포럼을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 포럼 등에서 다룬 여러 현안들을 정책으로 현실화하고, 또 국제사회에서 전주시만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김승수 시장(50)은 인터뷰 내내 겸손함과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구상하는 전주시의 비전을 밝힐 때는 목소리를 높여 힘주어 말했다. 여타의 지역사회가 그러하듯, 전주고를 나와야 ‘행세깨나’ 할 수 있는 보수적인 전주지역에서 그는 다른 지역 고교 출신으로 시장직에 선출돼, 놀라움과 반가움을 동시에 안겼다.  


인터뷰어·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정리·신영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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