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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연의 시네마 크리티크] 진실을 향한 소녀의 여전 ‘페르세폴리스’
[이대연의 시네마 크리티크] 진실을 향한 소녀의 여전 ‘페르세폴리스’
  • 이대연(영화평론가)
  • 승인 2018.05.14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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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마르잔 사트라피/뱅상 파로노, 2007)

*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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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는 고대 도시유적이다.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이기도 햇다. <페르세폴리스>의 배경이 이란이라는 점, 그리고 동명 원작 그래픽노벨 의 작가이자 감독인 마르잔 사트라피가 이란 출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페르세폴리스’라는 제목이 이란의 지역성과 역사성을 담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서구 문화에서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의 저서 역사는 그리스 연합군과 페르시아 제국 간의 전쟁을 다룬 것이다. 그리고 11세기 십자군 전쟁을 거쳐 20세기 석유를 둘러싼 갈등에 이르기까지, 페르세폴리스는 페르시아의 후손인 이란인들에게는 긍지였을지 모르지만 서구인들에게는 오래된 이질감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지금 페르세폴리스는 허물어진 궁전과 훼손된 석상들로 남겨진 폐허일 따름이다. 
 
그곳에 한 소녀가 산다. 팔레비 왕조 말기인 197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까지 15년에 이르는 소녀의 성장기는 다름아닌 마르잔 사트라피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그 동안 팔레비 왕조는 무너지고 이슬람 근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이슬람 공화국이 성립하고 백만 명을 희생시킨 이란-이라크 전쟁이 8년여 지속된다. 소녀는 억압적인 이란 사회를 떠나 오스트리아로 가지만 문화충격과 따가운 시선, 죄책감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다가 귀국한다. 그러나 이란 사회는 여전히 그녀에게 위협적이다. 결혼생활은 파경에 이른다. 그녀는 다시 이란을 떠나 프랑스로 향한다. 이처럼 <페르세폴리스>는 고대 페르시아 제국 후손들의 현대사와 소녀의 성장사를 씨줄과 날줄로 직조한다. 
 
그림은 간결하고 단순하다. 미니멀한 흑백의 그림체가 어둡고 무거운 이란의 현대사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현실 사회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바시르와 왈츠를> 정도일 것이다. 원작이 그래픽노벨인 것을 감안하면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떠올리거나 허영만의 『오, 한강』을 떠올릴 수도 잇겠지만, 컷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그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차이가 있다. 실사영화와 같은 리얼리티를 확보할 수 없는 애니메이션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상상의 세계 속에 갖힌 듯이 보이기도 한다. <바시르와 왈츠를>은 이런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동일 분량의 실사 촬영 후 그림을 덧입혀 제작하기도 했다. 그러니 간결하기 이를데 없는 그림이 현실의 복잡성을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자연스럽다. 게다가 이란이 겪은 15년이라는 격동의 긴 시간은 100분 남짓한 시간에 담기 버거워 보인다. 
 
그런데 <페르세폴리스>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마르잔 사티로피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란의 이란이라는 사회적 시간 위에 소녀 마르잔의 주관적, 시간이 오버랩됨으로써 경험적으로 제시된다. 이란의 정치, 문화적 상황은 각각의 에피소드들 속에 고스란히 녹아든다. 국왕을 찬양하던 선생이 혁명 후에 교과서 앞장의 국왕 사진을 찢어내게 한다든가, 인체 소묘 시간에 모델이 검은 베일을 두르고 있다든가 하는 에피소드는 부조리한 상황들을 보여준다. 물론 마르잔이 경험하지 못한 사건에 대해서는 나레이션 등의 방법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또한 마르잔의 주관적 시점에서 제시된다. 예컨대 어린 마르잔에게 팔레비 왕조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아버지의 설명은 인형극처럼 표현되며, 이란-이라크 전쟁의 참혹함에 대한 설명은 그림자극처럼 표현된다. 
 
그런가하면 15년이라는 시간은 공간의 서사로 치환된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마르잔은 사춘기가 되자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한층 억압적이 된 사회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갈등을 빚는다. 불안을 느낀 그녀의 부모는 안전을 위해 마르잔을 오스트리아로 보낸다. 그곳에서 마르잔은 자유를 만끽하지만 유럽인들의 곱지 않은 시선에서 자신이 어쩔 수 없는 타자임을 자각하고 방종한 생활로 몸과 정신이 피폐해져 귀국한다. 고향에서 마르잔은 다시 활력을 얻어 학업을 이어가고 결혼도 하지만 가부장적인 남성의 권위와 억압적인 현실을 탈출해 프랑스로 향한다. 이란-오스트리아-이란-프랑스로 이어지는 공간은 각기 자유-타자성-여성성이라는 화두를 제시하면서 이란인으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프랑스로 떠나기 전 마르잔은 정치범으로 사형당한 삼촌 아누쉬의 묘를 찾아 자신에게 진실할 것을 다짐한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은 마르잔의 할머니에게서 나는 은은한 향기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한다. 마르잔이 그녀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한 할머니에게서 나는 향기의 정체에 대해 묻자 할머니는 매일 아침마다 자스민 꽃잎을 따 브레이지어 안에 넣는다고 답한다. 그리고 자스민 꽃잎이 논송이처럼 떨어지며 끝을 맺는다. 그것은 가슴에서 피어나는 향기이며, 그것은 진실에서 비롯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결국 <페르세폴리스>는 역사나 정치와 같은 커다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가슴속에 서 피어나는 어떤 진실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15년이라는 긴 시간 격동의 이란 사회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이질감이나 위화감 없이 잔잔한 감동의 파문을 선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 이대연
영화평론가. 소설가. 저서로 소설집 『이상한 나라의 뽀로로』(2017), 공저 『영화광의 탄생』(2016)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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