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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업자’ 트럼프의 국제법 다루기
‘부동산업자’ 트럼프의 국제법 다루기
  • 이브라임 와르드 | 플레쳐국제법외교학전문학교 부교&
  • 승인 2018.06.28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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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란 핵협정 탈퇴

지난 5월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바람대로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하고 이란과 힘겨루기에 돌입했다. 뉴욕 부동산개발업자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무모한 도박을 즐기고 법은 가볍게 무시하며 비즈니스 파트너를 꼼짝 못하게(arm lock) 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역 전체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모든 것은 재협상할 수 있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경력을 쌓았다. 부동산개발업자였던 그는 건물이 완공되면 공사의 조악한 품질(또는 다른 핑계)을 이유로 들며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리고는 “합의했던 금액의 75%만 지급하겠소”라는 식으로 선포하며 건축업자들에게 새로운 조건을 수용하라고 강요했다. 그것만이라도 받든지 모두 포기하든지 선택하라는 것이다. 그의 제안을 거부하고 법정으로 가는 사람들은 엄청난 비용을 감수하면서도 어떻게 결론이 날지 알 수 없는 소송에 휘말려 고집스러우면서도 교활한 변호사들을 상대해야 했다. 2004년 출간된 저서 『도널드 트럼프, 억만장자처럼 생각하라』에서 그는 독자들에게 ‘언제나 청구서에 트집을 잡으라’고 조언했다. 불량채무자 기법은 제조업자들과 은행가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많은 이들이 그와 거래하기를 꺼린다.(1)

『도널드 트럼프, 억만장자 마인드』(2007년 출간)에서 그는 ‘상대방을 짓밟고 이익을 취하는 일’을 즐기라면서 자신에게 출자한 자금을 잃은 은행가들을 비웃었다. “그건 그들 문제지, 내 문제가 아니에요. 그 사람들에게 나한테 돈을 빌려주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어요.” 트럼프 기업과 계속 거래를 하고 있는 유일한 대규모 기관인 도이체방크도 의미 있는 경험을 했다. 2008년 금융위기가 한참 심각할 무렵 도이체방크는 트럼프가 4천만 달러를 지급하지 않았다고 고소했다. 트럼프는 도이체방크에 3십억 달러를 변상하라며 맞고소를 했다. 그는 자신의 유동성 문제가 금융위기 때문인데 도이체방크가 그 금융위기에 대한 책임이 있으니 변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도이체방크는 그에게 채무 지불을 5년간 유예해주기로 약속했다.(2) 트럼프는 고소 위협이 상대방을 단념시키는 효과가 있음을 금방 알아챘다. 그는 약 3,500건의 소송에 당사자로 연루됐다.

트럼프는 정치가 처음이지만 미국을 위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협상가’로서의 자질을 발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당선 직후 파리기후협약과 이란핵협정 등 “끔찍한 협정을 파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 결정이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라든가, 다른 조인국들의 반대를 산다든가 하는 점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신권을 가진 CEO식 방법, 역사와 외교술에 대한 무지는 전임 대통령의 유산을 엉망으로 만들려는 욕망과 결합했다. 그는 관습을 끊겠다는 생각에 직관을 신뢰하고, 부동산개발업자와 텔레비전 리얼리티쇼 스타로서 일하면서 갈고닦은 실무 경험을 국제관계 영역에 적용하고 있다.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JCPOA)은 이란과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과 독일이 수년에 걸친 첨예한 협상 끝에 2015년 7월 1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체결됐다. 뒤이어 2015년 7월 20일에 안보리 결의안 2231호가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그 결과, 이란이 군사용 핵 개발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2025년까지 예정된 국제사찰을 받는 조건으로 안보리는 1995년부터 이란에 적용한 제재를 점진적으로 철회하기로 했다. 

이란핵협정의 핵심은 예상 가능한 경제적 파급효과였다. 그러나 이란의 대외무역이 증가하긴 했지만 미국 의회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채택한 제재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3년 전에 예상한 수출 붐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의 기만은 상당수의 이란인들 눈에 거슬렸다. 미국 행정부는 잠재적 투자자들과 수출업자들의 사기를 꺾으려고 달러화 거래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견지했다. 그렇지만 대이란 수출국들 입장에서 무역량은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개선됐다. 프랑스의 대이란 수출액만 봐도 협정 체결 당시 5억 유로에서 2017년 15억 유로로 3배나 증가했다. 

때때로 ‘불량국가’라고 불리는 이란이지만 협정에서 약속한 사항을 착실하게 지켰고,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물론 미 정부의 정기적 확인서를 통해서도 그 사실은 입증됐다. 2017년 1월 20일에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5월 8일에 와서야 이란핵협정을 비난하기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허버트 레이먼드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도 이 협정의 장점을 인정하고 철회에 반대했었다. 이 두 사람을, 매파로 꼽히는 마이클 폼페이오와 존 볼턴으로 갈아치우고서야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 뜻을 펼 수 있었다. 미국과 달리 다른 조인국들이 핵협정을 철회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이번 결정으로, 이란과 계속 무역을 하는 미국 기업과 외국 기업에 대한 제재가 부활해 미국과 유럽 사이의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냉전시대부터 시작된 ‘역외적용’ 문제

미국 법의 역외적용 문제의 기원은 냉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폴란드에서 1981년 12월 13일에 계엄령이 선포되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우선 미국 기업이 시베리아에서 유럽국가로 이어지는 가스관 건설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다. 1982년 6월에는 소비에트연방이 미국 기술을 이용할지 모른다며 미국 기업의 자회사와 미국 기업의 라이센스를 받아 일하는 외국 기업으로까지 금지조치를 확대했다. 

이런 결정은 반발을 불러왔다. 피해를 본 유럽 국가들이 보복 조치를 취하자 미국은 자신의 결정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역외적용이라는 무기를 쥐고 있기는 하지만 유럽 국가들도 자국 기업들이 외국의 법을 따르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대항입법을 통해 반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이건 대통령의 든든한 협력자인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대처 총리는 영국기업이 교역약속을 지켜야 하고 이는 원칙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또 국가적 이익이 걸렸을 때 미국의 명령에 따르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1980년 채택된 대항입법(영국통상이익보호법(Protection of Trading interests Act)을 근거로 댔다. 프랑스에서는 장피에르 슈벤느망 당시 연구산업부장관이 드골 장군이 제정한 1959년 명령을 근거로 미국 기계업 그룹의 자회사인 드레서프랑스로 하여금 본사의 명령을 무시하게 만들었다. 미국 정부는 결국 양보해 1982년 11월에 제재를 철회했다.

냉전이 끝난 후에도 미국은 세계화에는 공통된 규칙이 수반돼야 한다는 명목으로 역외적용 요구를 확대해왔다. 1996년에만 해도 미국은 이 원칙을 기반으로 한 법률 두 개를 채택했다. 헬름스-버턴법은 쿠바 영토에 투자하는 외국기업을 겨냥하고 있고, 아마토-케네디법은 이란과 리비아에 적용된다. EU는 유럽 국적의 개인 또는 법인이 다른 강대국이 결정한 행정적, 입법적, 사법적 문서를 따르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대항조치로 반격했다. 그러면서 해당 법의 역외적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자 세계무역기구(WTO)의 분쟁해결기구에 분쟁 심의를 요청했다. EU집행위원회는 이런 보복성 모방 제재 조치로 타격을 입을 미국 기업의 목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EU의 결연한 태도에 미국은 유럽 국가들에 대한 제재 조치를 유예하기로 했고 EU는 WTO 제소를 철회했다. 

그 후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물론 9·11 테러 여파도 있다. 테러리즘도 세계화돼 전 세계적으로 자금 흐름을 감시하는 일이 정당화된 것으로 보인다. 9·11 테러 이후 채택된 USA 애국법(Uuniting and Strengthening America by Providing Appropriate Tools Required to intercept and obstruct Terrorism)은 행정부에 추가적인 특권을 부여했다. 한때 드골 장군이 언급했던 미국 통화의 ‘과도한 특권’에 하나가 더 추가돼 달러화로 이뤄지는 모든 거래는 미국 영토 내에서 이뤄지지 않더라도 미국 법의 적용을 받게 됐다. 이제 가위 ‘미국식 법 준수의 세계화’ 시대라 할만하다. 

일방적인 결정을 강요하거나 모방하는 미국의 법과 행동은 세계화되고 있다. 자금세탁, 테러자금 지원, 부패척결 활동 등과 관련해 전 세계적으로 미국을 모방한 법률이 채택되고 있다.(3) 그리고 미국 영토 밖에서 범죄가 벌어질 경우, 관련 기업이나 개인을 제재하는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미국 사법기관의 역할이다. 그 예로 2014년 6월 BNP파리바 은행은 쿠바, 이란, 수단에 적용한 미국의 금수조치를 어겼다는 이유로 미 재무부에 89억 달러를 지불하라는 판결을 받았다.(4) 

최근 몇 년간 유럽의 다국적기업들 상당수가 계약을 수주하기 위해 제삼국 국적의 CEO를 고용하는 행위를 금지한 1977년 법인 해외부패방지법(Foreign Corrupt Practices Act, FCPA)의 덫에 걸렸다. 프랑스 기업 알스톰(2014년 7억 7,200만 달러), 독일기업 지멘스(2008년 8억 달러) 등 여러 기업이 엄청난 벌금을 물게 됐다. 미미한 연결고리만 있어도 미국 사법기관은 관할권을 행사한다. BNP파리바 사건의 경우, 불법거래가 달러화로 이뤄졌다는 명목으로 제재를 받았다. 미국에 계좌를 보유하고 있거나, 미국에 있는 서버를 거쳐 메일이 오갔다는 것만으로도 미국 사법당국이 제소할 수 있다. 

기업에게, 미국 시장을 잃는 것보다 
두려운 게 있을까? 

대(對)이란 제재는 단절을 의미한다. 이란핵협정 폐기를 통보한 바로 그 날, 리처드 그리넬 신임 주독일 미국대사는 칙령처럼 ‘이란에서 사업을 하는 독일 기업은 당장 철수하라!’라고 트윗을 올렸다(그는 얼마 후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고 변명했다). 폼페이오 신임 국무장관은 이란 정부가 모욕적인 양보에 가까운 12가지 조건에 동의하지 않는 한, 이란을 지원하는 다른 국가들도 쓴맛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fice of Foreign Assets Control, OFAC)은 십여 쪽짜리 회람에 제재 재개에 적용돼야 하는 법규 목록을 정리했다. 이란핵협정으로 철회됐던 ‘부차적’ 제재는 자동차 분야의 경우 90일 이후(8월 6일)부터, 석유 분야의 경우 180일 이후(11월 4일)부터 다시 적용될 것이다. 이번 신설 규정에 따르지 않는 기업은 트럼프의 판단에 따라 특별 제재 대상 명단(Specially Designated Nationals List)에 올라 자산이 동결되거나 미국 기업 및 시민과 거래가 금지된다. 

5월 16일과 17일에 걸쳐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이뤄진 정상회담에서 유럽 지도자들은 모두 신성한 맹세로서 이란핵협정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되 미국을 WTO에 제소하겠다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라고는 미국이 가하는 제재의 역외적용 여파를 중화시키기 위해 (1996년 채택된) 대항입법을 행사하겠다는 것뿐이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부장관은 5월 11일, 대이란 투자에 독자적인 자금지원 조치를 마련하고 미국이 재개한 부가적 제재로 피해를 본 기업에 EU가 배상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이 모든 조치들이 미국 시장을 잃게 된다는 위협에 비해 얼마나 미미한 것인지 감안한다면 르메르 장관이 타유럽국가들을 설득하는 것은 역부족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이후 꾸준히 유럽과 거리를 두고 있다. 독재체제 국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이란 문제에 있어서 이스라엘과 골프만 연안 대부분 국가들 편에 서는 그의 입장은 향후 유럽연합국들과 심각한 마찰을 빚으리라 예측하게 한다. 하지만 역사를 통해 미국의 독단적 헤게모니가 어떤 위험한 결과를 낳는지 교훈을 얻은 바 있다. 20여 년 전인 1997년, 제임스 카터, 조지 H. W. 부시, 윌리엄 클린턴 전 대통령들의 측근으로 외교고문을 담당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리처드 머피는(5) “미국의 일방적인 대이란 제재 정책은 효과가 없고, 다른 국가들로 하여금 미국의 선례를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은 잘못이다. 역외적용을 하겠다고 위협하는 행동은 미국과 주요 연합국들 사이에 불필요한 긴장관계만 형성할 뿐만 아니라 미국이 수십 년간 내세운 자유무역을 기반으로 한 세계질서를 위협하는 것이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글·이브라임 와르드 Ibrahim Warde
플레쳐국제법외교학전문학교(메드퍼드, 매사추세츠) 부교수, 저서로는 『Propagande imperiale et guerre financiere contre le terrorisme(테러리즘에 맞서는 제국주의 프로파간다와 금융전쟁)』(2007)이 있다.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Alexandra Berzon, ‘Donald Trump’s business plan left a trail of unpaid bills’, <The Wall Street Journal>, New York, 2016년 6월 9일. / Ibrahim Warde, ‘Triomphe du style paranoiaque(편집증의 승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6년 12월호.
(2) Richard Cohen, ‘Why Trump’s handling of a Deutsche Bank loan is so foreboding’, <The Washington Post>, 2017년 7월 19일.
(3) ‘L’internationalisation de la compliance a l’americaine(미국식 준수의 세계화)’, <Audit, risques et controle(감사, 위험요소와 감독)>, no 004, Paris, 2015년 4/4분기 발간호.
(4) Ibrahim Warde, ‘Les Etats-unis mettent les banques a l’amende(은행에 벌금을 물리는 미국)’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4년 7월호 / Jean-Michel Quatrepoint, ‘Au nom de la loi, americaine(미국 법의 이름으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1월호‧한국어판 2017년 2월호.
(5) Zbigniew Brzeziński, Brent Scowcroft, Richard Murphy, ‘Differentiated containment’, <Foreign Affairs>, New York, 1997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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