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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교육감, ‘공교육 개혁’ 시험대에 서다
진보 교육감, ‘공교육 개혁’ 시험대에 서다
  • 최민선/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원
  • 승인 2010.07.12 15: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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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ée]

“MB 특권 교육을 아웃시킬 절호의 기회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진보적 시민사회단체가 뭉쳤다. 지역별로 전국 16개 시·도 중 12곳에서 교육감 단일화 후보가 추대됐다. 위기를 느낀 보수적 단체도 이에 질세라 보수 성향 교육감에 대한 지지선언을 앞다퉈 내놓았다. 그렇게 교육감 선거는 처음부터 ‘진보 대 보수’ 대결 양상으로 펼쳐졌다.

교육감 선거 결과 ‘진보’ 대약진

애초에 성적이 좋은 쪽은 진보 쪽이었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을 통해 이슈가 된 무상급식 의제가 지방선거를 맞아 급물살을 탔기 때문이다. 지난해 김 교육감은 취임 핵심 공약이던 무상급식에 필요한 예산이 도교육의원과 도의원에게 번번이 전액 삭감당해 화제가 된 바 있다. 한나라당은 열악한 국가재정을 앞세워 ‘전면 무상급식’ 대신 ‘서민 무상급식’을 주장했지만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무상급식 의제를 넘어서지 못했다.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 구속을 비롯해 줄줄이 터져나온 교육비리 역시 청렴한 이미지의 진보 교육감에게 유리한 상황을 제공했다. 공 전 교육감은 재직 기간에 교육공무원 승진 청탁으로 상당액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수도권 지역은 학교장 뇌물수수 사건으로 한동안 떠들썩했다. 수학여행이나 방과후 학교, 급식 등과 관련한 업체 선정에서 대가성 돈을 받은 혐의가 적발된 것이다. 부산에서는 뇌물수수 혐의로 직위 해제된 한 교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이 꾸준히 이어진 것은 아니다. 3월 말에는 천안함이 갑작스레 침몰했다. 4월에는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교원 단체 소속 교사의 명단을 공개했다. 공식 선거운동 개시 전날에는 전교조 교사를 무더기로 징계하겠다는 교과부 발표가 있었다. 천안함 사건은 ‘북풍’으로 이어졌고, 전교조 교사 징계 발표는 ‘반전교조’ 기치 아래 중도·보수 세력이 결집해야 한다는 분위기 조성에 한몫했다. 그 결과 무상급식 실현, 교육비리 척결 등의 의제는 실종된 듯했다.

지난 6월 2일, 승패는 갈렸다. 진보 쪽에서 추대한 교육감 12명 중 당선자는 6명으로 절반의 성공이다. 하지만 그 파급력은 매우 크다. 수도권인 서울과 경기 2곳과 보수 ‘텃밭’이던 강원, 그리고 호남권의 광주·전북·전남에서 각각 수도권·강원과 호남권 교육 혁신벨트를 조성한 까닭이다. 앞서 말한 ‘악재’ 외에 전국 동시 지방선거와 함께 치른 첫 선거였고, 다수의 보수 성향 교육감 후보가 ‘현직 프리미엄’을 가지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진보 교육감의 대약진이다.

그렇다면 진보 교육감 ‘대약진’의 원인은 무엇일까. 6·2 지방선거는 범야권의 압승이었다. 지난 대선 때 파랗게 물들었던 당선자 표시 지도가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초록 일색으로 바뀌었다. 기초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은 민주노동당, 무소속 당선자도 눈에 띄었다. 범야권의 ‘MB 심판론’이 우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각 언론의 분석이었다. 교육감 선거 역시 마찬가지다. ‘경쟁만능주의 특권 교육’이라고 압축 표현되는 ‘MB 교육’은 국민에게 거부당했다. 선거 전날까지 숨어 있던 표심은 갈수록 악화되는 교육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교육감이 필요하다는 태도를 명백히 드러냈다.

’생활정치’ 등장 촉진한 ‘김상곤 효과’

또 하나의 원인은 ‘생활정치’의 등장이다. 지금까지 선거에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던 성장·개발 공약보다 분배·복지공약이 실질적 쟁점으로 부각된 첫 번째 선거다. 지역주민은 구체적 삶과 생활에 밀접한 공약에 주목하고 그에 근거해 투표했다. 이런 현상을 촉발한 것이 교육감 선거다. 교육감은 내 아이의 미래를 책임지는 수장으로서 삶과 생활을 근간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실질적 쟁점이 된 경기도의 무상급식 논쟁부터 일제고사, 자율형 사립고, 사교육비 등 교육에 관한 모든 사항이 생활정치의 영역에 든다.

그런 면에서 이번 교육감 선거는 ‘김상곤 효과’가 진보 교육감 대거 탄생의 기반이 됐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임기 1년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도 처음 공약으로 내세운 무상급식, 혁신학교, 학생인권 조례 등 굵직한 교육정책을 성실히 실현시켜왔다. 그 결과 김상곤 교육감의 교육정책은 전국적으로 화제가 됐고, 국민은 진보적 교육단체의 주장이 실현 가능한 것임을 체감했다. ‘지역 교육감이 바뀌니 학교가, 교육이 변하더라’는 인식이 소리 없이 전파됐다. 올해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파급력을 가지고 의제를 선점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이제 서울에서 시작할 때다

김상곤 교육감의 새로운 교육적 시도는 유권자의 신뢰를 증폭시켰다. 이번 선거 결과, 김상곤 교육감 지지율이 지난 선거보다 두 배 높아진 것은 이를 반영한다. 지역별 지지 현황을 봐도 지난해 선거와 달리 김상곤 교육감은 가평군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1차 평가에서 우수하게 ‘합격’한 셈이다(그림 참조).


이제 공은 서울시 교육감에게 넘어왔다. 대학 서열화로 몸살을 앓는 한국 사회에서 모든 교육의 목적이 대입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이른바 ‘명문대’는 대부분 서울에 몰려 있다. ‘8학군’, ‘강남엄마’ 등으로 대변되는 사교육 열풍의 근원지도 서울에 있다. 서울 지역의 교육정책이 전국에 미치는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다. ‘리틀 MB’라 불릴 정도로 정부의 교육정책을 충실히 수행하던 공정택 전 교육감의 자리를 잇는다는 면에서 진보 교육감의 ‘반MB’ 행보는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이번 선거에서 제3의 후보에게 투표한 32%의 유권자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8년 공정택 전 교육감에게 몰린 ‘강부자’ 표는 올해 또다시 보수 후보에게 결집됐다. 하지만 올해는 마지막 개표 결과를 뒤집을 만큼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다른 보수 후보에게 지지가 분산된 결과다. 결국 2008년 제3의 후보 지지율이 22%였다면, 올해는 32%로 10%포인트 상승했다. 이러한 결과는 유권자의 교육적 요구가 다양해지는 현실을 반영한다. ‘사교육 없는 학교’, ‘엄마표 교육감’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후보가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은 것은 사교육비 절감을 위한 공교육 혁신, 맞벌이 부부를 위한 돌봄교육 등 해결해야 할 교육 문제의 우선순위가 유권자마다 다름을 의미한다.

교육계 지각변동, 어떻게 나타날까

선거가 끝나고, 논란의 중심에 놓인 공약은 다름 아닌 무상급식이다. 무상급식은 무엇보다 예산 확보가 중요하다. 예산 결정 권한은 교육의원과 시도의원에게 있다. 그런데 6·2 지방선거 결과,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은 강원도를 제외한 모든 지방의회가 ‘여소야대’가 됐다. 정치 지형은 무상급식을 실현하는 데 유리하다. 게다가 전 국민적 의제가 된 무상급식을 여당이라고 함부로 무시하지는 못할 터다.

광역단체장 역시 전향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당선 직후 오세훈 서울시장은 선거 기간과 달리 “곽노현 교육감 당선자와 서로 충분히 논의하면 좋은 절충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문수 경기지사도 지난해 무상급식 마찰이 쟁점화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유연한 태도를 보일 것이다. 교육감 당선자 역시 불협화음을 내기보다 협력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다음으로 교육계의 주요한 변동으로 경쟁과 교육 양극화를 심화하는 ‘MB 교육정책’의 재검토를 꼽을 수 있다. 일제고사와 그 성적 공개, 고교선택제, 자율형 사립고(자율고) 등이 그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MB 심판론’이 우세했던 만큼, 진보 교육감의 대거 당선은 국민이 그만큼 정부의 경쟁·서열 중심 교육을 반대하는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선, 일제고사에 대해 진보 교육감 당선자들은 “시도교육감협의회를 통해 일제고사를 표집형으로 전환하고 성적 공개를 재고하도록 교과부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시도교육감협의회 주관 진단평가는 거부할 예정이다. 따라서 7월의 일제고사는 기존 방식대로 치르더라도 그것을 계기로 일제고사에 대한 재논의가 시작될 것이다.

고교선택제 역시 수정 논의가 불가피하다. 서울은 지난해 처음 실시됐으나 학생이 선호하는 학교와 기피하는 학교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에 대해 곽노현 교육감은 “소외 지역 학생에게 강남 학군 학교로 입학할 기회를 주는 것보다 소외 지역에 좋은 학교를 만들어주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특목고나 자율고는 추가 지정이 어려울 것이다. 특목고와 자율고를 지정하는 권한이 교육감에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자율고로 지정된 학교를 일반고로 전환하거나, 입학요건·등록금을 변경하는 것은 교육감이 임의로 할 수 없다. 다만 특목고나 자율고, 자사고 등을 지역에 새로이 추가 지정하지 않겠다는 것이 진보 교육감 당선자들의 한목소리다.

구체적 진보 정책 대안 제시해야

이번 교육감 선거는 최초의 전국 단위 선거였다. ‘교육 의제’에 국민이 개입할 수 있는 통로가 제도화된 것을 의미한다. 선거 결과에서 지방선거 분위기에 휩쓸려 당락이 좌우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국민은 ‘무상급식’, ‘혁신학교’ 등 선명한 대안을 공약으로 내세운 진보 교육감을 ‘골라’ 뽑았다. 현 정부의 경쟁만능 교육정책에 반대 여론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제 진보 교육감은 시험대에 올랐다. 앞으로 4년 임기 동안 어떤 구체적 정책을 만들고 어떤 새로운 시도를 할지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 진보 교육감에게 당장 코앞에 닥친 1차적 과제는 지방 교육행정 차원에서 협력과 조율을 끌어내고 ‘MB 교육정책’과 맞서는 것이다. 동시에 이후 정책 대안을 설계하는 일에도 집중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내놓은 공약 중 ‘혁신학교 모델 확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혁신학교는 김상곤 교육감이 만든 새로운 모델인데 학급당 25명 이하, 학년당 6학급 이내로 운영하는 작은 학교다. 학교와 교사에게 수업 자율성을 주고, 다양화·특성화·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게 한다. 현재 김상곤 교육감이 지정한 혁신학교는 경기도 내 학부모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기존 공교육에 대한 불신을 뛰어넘어 지역사회와 학부모, 학교가 협력해 만들어가는 새로운 교육에 대한 열망이 분출되고 있다.

곽노현 교육감은 “교육 여건이 열악하고 기초학력 미달자가 많은 학교를 중심으로 300개 혁신학교를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모든 학교에서 동일하게 좋은 교육을 받게 하고, 각 학교·학생 사이의 학력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의지다. 다른 진보 교육감 역시 혁신학교를 공약화한 만큼 수도권에서 시작되는 혁신학교 바람은 전국에 공교육 개혁 운동으로 확산될 것이다.

국민은 1차 과제만으로 진보 교육감이 성공했다고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유권자 요구에 귀기울이고, 그것을 토대로 경쟁 위주의 ‘수월성’ 프레임을 넘어선 구체적 진보 정책 대안을 차분히 준비해나가야 할 때다. 유권자는 더욱 다양한 교육적 수요를 수렴한 진보적 교육정책의 분명한 성과를 요구하고 있다.

글•최민선
현재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에서 교육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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