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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맹장!
안녕, 나의 맹장!
  • 김민주| 이화외국어고등학교 3학년
  • 승인 2018.07.31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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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 경신될지 모르지만, 오늘의 낮 기온이 무려 38도라 한다. 가장 더웠다고 하는,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인 1994년보다도 높은 온도다. 지금 친구들은 낮의 더위보다 덜 하지 않은 한여름의 열대야에 낮에 못다 한 수능대비 문제집을 푸느라 잠 못 이루고 있을 것이다. 나는 25년 만의 열대야 정도는 이유 따위가 되지 않을 정도로, 공식적으로도 비공식적으로도 잠을 자고 먹는 시간 말고는 입시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대한민국의 고3’이다. 


그러나 너무 센 에어컨 바람에 조금 열어 놓은 창문 밖으로 들리는 쓰르라미 울음소리에 잠 못 이루며, 공식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시 쉴 수 있는 특권을 얻은 고3이다. 신분이 ‘대한민국 고3’에서 ‘대한민국 고3 환자’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낮에 학교에서 시작된 복통이 저녁이 되도록 낫지 않아 나 스스로 ‘맹장염’이 아닐까 하는 의심에 부모님과 함께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병원에서 ‘맹장염’을 확인해줘 입원하게 됐다. 

집에서 병원 응급실로 나를 데려오면서도, 엄마는 나의 자가진단을 믿지 않았다. 내가 ‘대한민국의 고3’이 흔히 겪는 ‘스트레스성 장염’ 혹은 ‘과민성 대장 증상’일 것이라고 추측하셨고 심지어 오늘 저녁이 아닌 내일 아침으로 진료를 미뤄도 될 것이라고도 말씀하셨다. 만약 ‘맹장염’이라면 배가 너무 아파서 데굴데굴 구르거나 걸어서 병원에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동시에 맹장염이 아니라 해도 낮부터 배가 그렇게 아팠는데 왜 ‘미련하게 참다가’ 저녁에 집에 왔냐고 타박하셨다. 물론 무엇보다 딸의 건강이 걱정돼 하신 말씀들이었지만 믿어주지도 않고 타박만 줘서 한편으로 야속하게 생각됐다.

나는 또래 친구들보다 좀 더 빨리 청소년이 됐다. 한창 어린이로 어리광을 부릴 나이에 또래들보다 신체발달이 앞서서 혼자만 사춘기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돼 버렸다. 엄마는 빠른 신체발달을 정신발달이 따라가지 못할 것을 걱정해 어린 나에게 성숙함이 무엇인지, 친구들보다 조금 일찍 더 조심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항상 상기시켜 주셨다. 자연스럽게 나는 내가 친구들보다 좀 더 성숙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인지 그들은 나에게 종종 인생 상담을 청해왔다. 나 또한 문제들을 친구들에게 털어놓는 것이 가장 편하고 문제 해결에도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대체로 엄마보다는 언니가, 언니보다는 친구가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준다. 언니가 없는 나에게 친구는 가장 가깝고 신뢰하는 상담자였다. 그러나 그런 상호관계 속에서도 나의 신체발달 때문인지 나는 성숙한 역할을 많이 수행하게 됐다. 내가 청하는 것보다는 항상 상담요청을 더 많이 받았고, 그래서 그런지 친구들보다 내가 그들을 더 이해해 줘야 하고 그러다 보니 점차 내가 힘든 것은 덜 내색하게 됐다. 내가 직접 겪지 않은 친구들의 일들도 같이 아파하고 같이 운 날이 많았지만 정작 내가 마음 아픈 일로 눈물 흘린 적은 적었다. 

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나에게는 ‘미련할 정도로 참는’ 버릇이 생겼다. 그 미련한 정도가 남들이 보기에 어떨지 모르지만 내가 판단하기에는 꽤 심할 정도라는 것이 중요하다. 엄마와 관계에서도 어리광을 포기하고 난 자주 참는 쪽을 택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늦둥이 동생이 태어나 그간 누려온 외동의 특권을 갑자기 내려놓게 됐을 때, 중학교 1학년 학기 초 친구관계 때문에 좋아하던 점심 급식도 안 먹어가면서 힘들어하던 때,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냥 눈물이 하염없이 나기만 하던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랬다. 

그런데 내가 더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내가 그렇게 참고 있는 것을 누군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곤 했다. 특히 엄마한테는 더 그랬다. 지나고 보니 아주 많이 참게 되면 결국 나중에 곪아 터져 그간 참아온 것들의 합보다 더 큰 곤란을 겪는다는 걸 알게 됐다. 치과 가기 무서워서 말을 하지 않고 참고 견디다 마침내 무시무시한 치통을 겪었던 것이나 오늘 같은 일 말이다. 몸이 아픈 것을 참는 것은 그나마 괜찮았다. 마음이 아파 곪아 터졌을 때는 치유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상처가 더 컸다.

지금까지 내 생애에서 가장 뜨거운 여름을 고3이 아닌 환자로서 병원에서 지내면서 생각해 보니, 왜 미련할 정도로 참았는지, 왜 굳이 성숙한 역할을 맡아서 하려고 했는지, 왜 힘들 때 엄마에게 말하지 않고 엄마가 먼저 알아주기만을 바랐는지 후회가 된다. 하루 뒤면 나의 몸에서 사라질 나의 맹장에게 이별을 고하려다 보니 여러 후회가 떠오른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이 나중에는 뜨거웠던 나의 청소년기를 장식할 멋진 소품들이 되겠지만, 미련한 나의 청소년기를 지켜본 맹장은 나의 아름다운 앞날을 함께하지 못하리란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젠 미련하지 않을 게. 안녕 나의 맹장. 그리고 곧 안녕 ‘대한민국의 고3’.  


글·김민주
친구들과 함께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하루 빨리 입시에 성공해서 맘껏 맛집 탐방을 하고 싶은 고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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