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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스트들과 자유주의자들의 기만적 대립
포퓰리스트들과 자유주의자들의 기만적 대립
  • 세르주 알리미, 피에르 랑베르
  • 승인 2018.08.3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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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작은 환상>, 2014 - 보니 세버리엔

2008년의 금융위기 이후 정치적-지정학적 질서는 혼란스러워졌다. 오랫동안 정부의 궁극적 형태로 여겨진 자유민주주의는 수세에 몰렸다. 도시의 ‘엘리트들’에 맞서,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이민 문제와 전통적 가치들을 놓고 반(反) 문화혁명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그들의 라이벌인 자유민주주의자들과 동일한 경제정책을 추구한다. 미디어가 이들의 갈등을 과장하는 것은 대중들이 이 두가지 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2018년 5월 23일, 단추를 푼 보라색 셔츠 안에 티셔츠를 받쳐 입고, 짙은 색의 헐렁한 저고리를 걸친 스티브 배넌이 헝가리의 지식인들과 저명인사들 앞에 놓인 연단에 섰다. “트럼프 혁명에 불을 붙인 도화선은 2008년 9월 15일 오전 9시,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할 수밖에 없었던 바로 그때 점화됐습니다.” 백악관의 전직 전략가 배넌은 이때 특히나 위기 상황이 극심했었다는 걸 외면하지 않았다. “엘리트들은 자금 조달에 나섰습니다. 정부 지원에 힘입어, 그들은 위기를 완전히 국유화한 것이죠.”
 
헤지펀드에서 자금을 조달해 정치 활동을 하는 골드만삭스의 전직 부사장 배넌은 “그때 일개 시민이 자금지원에 나선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금융기관에 대한 미 정부의 지원 이후, 이른바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는 전 세계 몇몇 지역에서 ‘실제적인 포퓰리즘’을 불러일으켰다. “2010년에 (포퓰리즘적 선거운동에 힘입어) 빅토르 오르반은 헝가리에서 권좌로 복귀했다.” 그는 ‘트럼프 이전의 트럼프’였다. 
 
금융위기 이후 10년, 세계경제 붕괴와 유럽의 공공부채 위기는 자본주의의 활력곡선이 깜빡이는 블룸버그 단말기(금융시장의 뉴스와 데이터 및 종합 경제정보를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기기-역주)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금융위기의 충격파는 두 종류의 커다란 난맥상을 증폭시켰다. 
 
금융위기, 국제질서와 정치질서를 흔들어놓다
 
첫째, 냉전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서구의 금융 제도, 상업 자유화로 대변됐던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오쩌둥의 약속과는 달리 동풍은 아직 서풍을 점령하지 못했지만, 지정학적 재편은 이미 시작됐다.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의 국가자본주의가 세력을 떨치고 있다. 성장하는 중산층의 번영에 힘입어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중국의 미래를 지속적인 무역 세계화와 연결하면서, 대다수 서구 국가들의 제조업을 속속들이 망가뜨리고 있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첫 공식 연설 때부터 (중국에 의한) ‘대학살’로부터 미국을 구하겠다고 약속했다. 
 
둘째, 2008년의 위기와 그 여파는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역사의 완성형으로 여겼던 정치질서까지 뒤흔들었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거만한 테크노크라시는 뉴욕이나 브뤼셀로 자리를 옮긴 뒤, 전문성과 현대성이라는 이름으로 민심에 어긋나는 조치들을 강요함으로써, 보수적이고 소리만 요란한 정부에 길을 터줬다. 워싱턴에서 부다페스트를 거쳐 바르샤바까지 트럼프, 야로스와프 카친스키(폴란드 총리), 오르반은 버락 오바마, 앙겔라 메르켈, 저스틴 트뤼도, 에마뉘엘 마크롱이 내세우는 것과 똑같은 자본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 같은 도시적 가치들보다는, 반자유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이며 권위적인 ‘또 다른 문화’에 의해 작동되는 자본주의다. 카친스키, 오르반 등 신흥 지배세력들은 다른 세력들처럼 부자의 배를 불려주려 하는 한편, 흔히 다수를 차지하는 서민계층에게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불어넣는 감정, 즉 분노 섞인 혐오감을 이용한다. 
 
2008년 금융위기이후 각국의 대응책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여지를 주지 않은 채, 소련 붕괴 이후 중도우파와 중도좌파 지도자들이 장황하게 퍼뜨린 ‘좋은 정부’를 3가지 측면에서 반박하는 식으로 나타났다. 세계화나 민주화, 자유주의는 비판대에 올랐다. 
 
첫째, 세계화는 모든 국가는 물론, 심지어 서구의 대다수 임금 노동자들에게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세계화란 미국에 이익이 되기는커녕 미국의 몰락을 앞당기고 오히려 경쟁국들의 발전을 보장해줄 뿐”이라고 오랫동안 믿어온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트럼프가 말하는 ‘미국 우선주의’는 자유무역론자들의 ‘윈윈’ 전략을 무시했다. 산업중심 도시 오하이오는 선거에서 보통 접전지로 꼽히는데, 이 오하이오에서 트럼프는 지난 대선 때 힐러리 클린턴보다 8% 이상 앞선 지지율을 기록했다.
 
미국을 경제적, 전략적으로 위협하는 중국
 
8월 4일, 미국 대통령은 오하이오에서 열린 보궐선거 지원 유세에서 미국의 심각한 (그리고 증가하는) 무역적자를 들먹였다. 그는 “연간 8,170억 달러입니다!”라고 말한 후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중국인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우리의 자비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실질적으로 중국을 재건했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를 재건할 차례입니다! 중국이 (2001년에)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오하이오는 20만 개의 제조업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WTO는 총체적 재난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이렇게 우리 정치인들은 다른 나라가 우리의 일자리를 훔치고, 우리의 부를 가로채고, 우리의 경제를 약탈할 수 있게 했습니다.”
 
지난 세기 초, 보호무역주의는 다른 많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산업발전을 추진했다. 다른 국가들에서 관세는 오랫동안 정부의 주된 수입원이었는데, 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소득세라는 게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1897~1901년 미국의 대통령을 역임한 공화당 출신의 윌리엄 매킨리(그는 한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당했다)를 인용하면서, “그는 한 나라의 힘을 유지하는 데 관세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이제 백악관은 주저 없이, WTO에 신경 쓰지 않고 관세제도를 이용한다. 터키, 러시아, 이란, 유럽연합, 캐나다, 중국 등 미국과 우호적이든 아니든, 워싱턴이 목표로 삼은 국가들에 대해 매주 무역제재 항목을 제시한다. ‘국가안보’를 내세움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의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되지만, 의회와 그 선거운동을 지원하는 로비단체는 여전히 자유무역에 얽매여 있는 게 현실이다. 
   
중국은 미국에 대해 더 많은 합의를 이끌어내려 하지만, 미국은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미국은 중국을 경제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특히 전략적인 측면에서 라이벌로 여기기 때문이다. 중국은 러시아보다 8배나 월등한 경제력을 지녔으며, 아시아 팽창주의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덥지 못한 데다, 중국의 권위주의적 정치 모델이 워싱턴의 모델과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자유 자본주의의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승리를 확언한 자신의 1989년 이론(그는 공산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의 승리를 설파한 『역사의 종말』을 펴냈다-역주)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하면서도, 다음과 같이 뒤로 물러서는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중국이 ‘역사의 종말’의 비극적 예고로부터 멀리 비켜나 있는 이유는 독재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현대화됐기 때문이다.(…) 만일 향후 몇 년간 중국의 성장세가 이어지고 중국이 경제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우위를 차지한다면, 나는 내 주장에 반박의 여지가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1) 
 
사실상 트럼프와 내부의 적들은 적어도 한 가지에 있어서는 일치한다. 트럼프는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미국에 너무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한다고 생각한다. 내부의 적들은 중국의 성공이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내동댕이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정학에서 정치학까지는 한 발 차이다. 세계화는 서구국가들에서 일자리 파괴와 임금 폭락을 가져왔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 미국 임금노동자들의 1인당 국내소득(GDP)은 전체 64%에서 58%로 떨어졌는데, 이는 노동자 1인당 연간 7,500달러(약 833만 원)에 달하는 수치다!(2) 
그런데 지난 몇 년간 미국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우경화된 곳은 정확히 중국과의 경쟁으로 황폐해진 산업지역이다. 유권자의 이런 큰 변화는 당연히 ‘문화적’ 요인(성차별주의, 인종주의, 총기 사용에 대한 집착, 낙태 및 동성결혼에 대한 적대감 등)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다만,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설득력 있는 경제적 설명에 대해서 못 들은 척했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즉 미국 노동자의 25% 이상이 제조 분야에 의존하는 선거구의 수는 1992~2016년 사이에 862개에서 323개로 줄었고, 균형을 이루던 민주당과 공화당의 지지율도 변모했다. 25년 전에는 이 두 정당이 거의 비슷한 규모로 분할됐는데(각각 약 400개), 2016년에는 306개 선거구가 트럼프에게, 17개 선거구가 힐러리 클린턴에게 표를 던졌다.(3) 민주당 출신의 대통령, 바로 빌 클린턴이 추진한 중국의 WTO 가입은, 중국이 자유 자본주의 사회로 가는 이행과정을 앞당긴 게 틀림없다. 특히 중국 때문에 미국 노동자들은 세계화, 자유주의, 민주당에 넌더리를 치고 있다.
 
리먼 브라더스 몰락 직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전 의장을 역임한 앨런 그린스펀은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세계화 덕분에 미국의 공공정책들은 세계시장의 광범위한 분야에서 막대한 영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만큼 국가안보 문제를 제외하면, 차기 대통령의 정치 성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4) 그러나 10년 뒤에는 누구도 이런 예측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 <새로운 환상 #4>, 2014 - 보니 세버리엔
 
“달걀도둑은 감옥으로, 소도둑은 의회로”
 
중부유럽 국가들은 여전히 수출을 발판 삼아 해외로 진출하기 때문에, 무역에 관해서는 세계화를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권력을 쥔 ‘집권자들’은 유럽연합이 쇠락해가는 ‘서구의 가치들’을 강요한다고 손가락질한다. 이를테면, 이민자, 동성애, 무신론, 페미니즘, 생태학, 가족의 해체가 그들이 경멸하는 서구의 가치들이다. 
 
한편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정치적 권리나 시민권의 동등성과 관련해, 모두에게 같은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 새삼 제기되었다. 이미 오래전에 기자인 존 랜체스터는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지위가 높은 재력가에 대해서는 단 한 건도 소송이 제기되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에 저축은행 스캔들이 터졌을 때는 1,100명이 고발당했다.”(5) 이미 지난 세기에 프랑스 교도소의 수감자들은 이렇게 말하며 코웃음을 쳤다. “달걀을 훔치면 감옥에 가지만 소를 훔치면 부르봉 궁(프랑스 의회 건물-역주)으로 간다.” 
선택은 대중이 하지만 결정은 자본이 한다. 자유주의 지도자들은 우파든 좌파든 자신들의 입으로 한 약속을 어기며 통치를 한다. 이 때문에 선거가 끝날 때마다 이런 의심이 굳어진다. 오바마 대통령은 전임자들의 보수정책을 깨기 위해 선출됐으나, 공공 적자를 줄이고 사회 지출을 줄였으며, 사회보장을 강화하는 대신에 미국인들에게 사보험으로 의료보험에 가입할 것을 강요했다. 프랑스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퇴직 연령을 절대 바꾸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결국 60세에서 62세로 2년 연장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도 재협상을 하겠다고 약속했던 (신자유주의적인) 유럽 안정화협약에 대해 비밀투표를 실시했다. 영국에서는 제3의 정당인 자민당 당수 닉 클레그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보수당과 연정을 추진했으며, 부총리에 오른 뒤에는 과거 그가 폐지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대학등록금을 3배 인상하는 안에 동의했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지배계급은 이러한 일방통행 방식을 훨씬 교활하게 이용했다. 이로써 유권자들은 선거권을 박탈당하진 않지만, 이제 지배계급의 성향을 사전에 정확히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같은 상황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기자인 잭 디옹은 이렇게 기억한다. 
 
“1992년 덴마크인들은 마스트리흐트 조약(유럽연합조약)에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그들은 투표소로 되돌아가야 했다. 2001년 아일랜드인들은 니스조약(유럽연합 확대와 내부기구 개혁 등을 규정한 조약-역주)에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그들도 투표소로 되돌아가야 했다. 2005년에 프랑스인들과 네덜란드인들은 유럽연합 헌법 조약에 반대표를 던졌고, 이 조약은 리스본조약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에게 적용됐다. 2008년 아일랜드인들도 리스본조약에 반대표를 던졌고, 재투표를 해야만 했다. 2015년에 그리스인들은 브뤼셀의 긴축정책에 61.3%로 반대표를 던졌으나, 결국 이 정책은 그들에게 적용됐다.”(6)
 
바로 그해, 독일의 재무부 장관 볼프강 쇼이블레는 몇 달 전에 선출된 그리스 좌파정부를 향해 그들의 국민들에게 자유주의적 충격요법을 던질 것을 제안하면서, “선거가 경제정책을 바꿀 수 있게 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7) 쇼이블레의 편에 서서, 유럽연합 경제분과위원회 의장인 피에르 모스코비치는 나중에 이렇게 설명했다. “총 23명이 그들의 보좌관들과 함께 다른 수백만 명, 특히 이 경우에는 그리스인들의 삶에 절대적 영향을 끼칠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이 결정은 민주주의의 모든 통제에서 벗어난다. 유로그룹(유로존의 각국 재무장관들의 회의-역주)은 어떤 정부도, 어떤 의회도 고려하지 않으며, 특히 유럽의회마저도 고려하지 않는다.”(8) 그럼에도 모스코비치가 자리를 탐내는 곳은 의회다. 
 
모든 게 가능하지만, 모두를 위한 것은 아니다
 
권위주의적이고 ‘반자유주의적’인 방식에 따라, 이처럼 국민주권을 무시하는 처사는 대서양을 사이에 둔 보수주의 지도자들이 쓰는 가장 강력한 캠페인 논법을 키워나갔다. 뾰족한 수도 내놓지 않은 채, 죽어가는 민주주의를 살려내겠다고 약속한 중도좌파나 중도우파 정당과는 반대로, 트럼프와 오르반, 폴란드의 카친스키나 이탈리아의 마테오 살비니 등은 민주주의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단지 다수결의 원칙을 형식적으로 유지하고 있을 뿐, 필요할 때마다 상황을 뒤집어버린다. 일례로 그들은 워싱턴, 브뤼셀, 월가의 전문가들을 권위주의적이라고 무시하면서도, 국민의 이름을 내세워 새로운 국가 권위주의를 만들어낸다. 
 
세계화 및 민주주의 다음으로, 지난 몇 년간의 지배적인 담론에서 금융위기가 내놓은 세 번째 부정(否定)은 정부의 경제적 주권과 관련돼 있다. 지난 10년 동안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은 아니다’라는 이 원칙만큼 분명하게 증명된 것도 드물다. 대형 금융이 설립되고, 국유화가 이뤄지고, 국제조약들이 무시되고, 선출직 공무원들이 임의대로 행동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또한 생존의 기로에 선 금융기관을 아무런 대가 없이 구해내기 위해, 대부분 상상할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은 계획들이 결정돼, 대서양 양안에서 보란 듯이 시행됐다. 이런 대규모 개입주의를 선택한 강력한 국가들이 나타났다.(9) 미국 등 관련 국가는 자국 자본의 보호에만 급급했다. 2003~2011년 유럽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장-클로드 트리셰는 공공적자를 GDP의 3% 이하로 내리기 위해 사회 지출 문제에 완강한 자세를 보였으나, 금융 시스템을 구제하기 위해 2008년 말, 국가가 시행한 재정개입이, 2009년 중반 “유럽과 미국에서 GDP의 27%”나 차지했음을 인정했다.(10)
 
따라서 그리스에서처럼 수천만 명의 실업자들, 수감자들, 약이 없어서 병원을 나와야 했던 환자들은 이 같은 국가의 재정적인 ‘시스템 위기’에 특별한 책임이 없는 것이다. 역사학자 애덤 투즈는 “유로존의 정부들이 내린 정치적 선택 때문에, 수천만 명의 국민들은 1930년대에 비할 만한 불황 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한 번도 관찰된 적 없는, 스스로 불러온 경제 위기 중에서도 최악의 경우다”라고 평가했다.(11)
 
그러나 지도층이 신뢰를 상실했음에도 권력을 재탈환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지배질서가 마련됐다. 2010년, 전 세계적으로 권력이 지탄받는 상황에서 집권한 것이 염려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헝가리의 총리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다. 나는 혼돈을 좋아한다. 그래야 거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질서를 세울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질서 말이다.”(12) 트럼프를 본받아, 중부유럽의 보수주의 지도자들은 부자들을 위한 ‘강력한’ 국가를 정착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공권력은 부자들의 요구와 양립할 수 없는 사회적 권리를 보장하기보다는, 이민자들로부터 국경을 봉쇄하고 국가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는 보증인을 자처함으로써 존재감을 드러냈다. 따라서 국경을 둘러싼 가시철조망은 바로 국가의 정치적 복권(復權)을 상징한다. 
 
‘국가의 정체성’ 보호에 대한 대중의 요구에 부합해, 진실을 우회시키고 왜곡하는 전략은 당분간은 잘 통할 듯하다. 세계질서를 엉망으로 만든 금융위기의 원인들이 여전히 상존한다 해도, 설사 이탈리아, 헝가리, 혹은 바이에른 지역의 정치권이 난민 문제에 사로잡혀 있다 해도 말이다. 미국의 우월적 행태에 반감을 품은 서구 좌파는 중도적이든 급진적이든, 우파와 과감히 맞서기를 원한다.(13) 서구 좌파는 오늘날에도 효율적이라고 평가받는 방식으로 30년 넘게 그렇게 해오고 있다. 
 
대공황 앞에서 정부 지도자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선적인 태도, 국가권력의 남용, 경제에 대한 극단적인 정치 성향, 반사회적 성향 등을 드러냈다. 선거구 획정을 두고 매번 다툼이 벌어지는 선거 과정의 불안정성이 입증하듯,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제도가 취약해진 것이 사실이다. 2014년 이후 서구에서 치러진 대부분의 선거는 전통적인 권력의 약화나 해체를 보여줬다. 
 
한편 대서양의 신보수주의자들은 유럽이 구조적으로 사회와 이민 문제에서 너무 자유분방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스페인의 진보정당 포데모스, 프랑스의 급진좌파인 ‘라 프랑스 앵수미즈(La France insoumise)’, 혹은 영국의 노동당 당수인 제레미 코빈 등은 보수주의자들의 긴축정책을 비난한다. 
 
신보수주의 정치가 중 오르반은 2014년 7월 26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한 연설을 통해 그의 정치색을 드러냈다. “우리가 헝가리에 건설하려는 새로운 국가는 반자유주의(Illibéral) 국가입니다. 자유주의적이지 않은(Non libéral) 국가 말입니다.” 그렇다고 이후 많은 언론에서 되풀이한 것처럼, 그의 목표가 다문화주의, ‘열린사회’를 거부하는 것으로 요약되지는 않는다.  또한 그가 발표한 경제계획은 “앞으로 몇십 년을 대비해 세계라는 극심한 각축장 속에서 경쟁력 있는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반드시 자유주의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 국가가 자유주의를 포기한다고 해서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헝가리 총리는 중국, 터키, 싱가포르를 내세우며, 요컨대 마거릿 대처의 “(자본주의에)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는 신자유주의 슬로건을 이렇게 되받아친다. “자유민주주의에 기댄 사회들은 아마도 앞으로 다가올 수십 년 동안 그들의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14) 이런 발상은 폴란드와 체코의 지도자들뿐 아니라, 프랑스와 독일의 극우 정당들도 사로잡았다.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그들의 경쟁자들이 거둔 눈부신 성공 앞에서 조신한 태도를 취했다. 헝가리계 미국인인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의 기부로 설립된 부다페스트 중앙유럽대학 학장인 마이클 이그나티에프는 “반혁명은 국내 정치의 양극화와, 타협 대신 대립을 통해 세력을 키운다. 또한 반혁명은 (극단적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자유주의 혁명과, 소수에 의해 실현되는 혁명의 승리를 목표로 한다”고 말한다. 그는 “조만간 열린사회의 지배는 막을 내릴 것이 분명하다”고 덧붙였다.(15) 
 
전 세계 자유주의 엘리트들을 이어주는 회보 격인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관점은 이와 일치한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6월 16일 “2007~2008년 경제위기 이후 우려할 만한 민주주의의 파괴”에 대해 불안감을 표하면서도, 뿌리 깊은 부의 불평등, 자유무역에 의한 산업고용의 파괴, 민주당 지도자들이 유권자의 의지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서는 비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주간지는 “민주주의를 집어삼키는 강자들”에 대해 날선 비판을 가했다. “이들에 대해서는 독립적인 판사들과 적극적인 언론인들이 방어선을 구축하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이 방어선은 비좁기도 하거니와 무너지기 쉬운 것이다. 오랫동안 엘리트 지배층은 3가지로 집약되는 요인들 덕택에 선거전을 이용할 수 있었다. 서민층에서 증가하는 기권표, ‘극단주의’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투표, 부르주아와 중산층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에 대한 요구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제 반동적인 선동가들이 기권자들을 결집하고 있다. 대공황이 중산층을 약화시켰고, ‘중도파’들의 정치적 중재와 그들의 명석한 조언자들이 세기의 위기를 촉발했기 때문이다. 신기술을 앞세운 유토피아에서 비롯된 환멸은 열린사회를 선호했던 사람들에게 쓰라림을 안겨줬다. 과거 자유주의 문명의 예언자로 각광받던 실리콘밸리의 민주주의 경영자들은 천하무적의 사회 통제장치와 감시 장치를 개발했고, 중국 정부는 이를 모방해 질서를 유지한다. 
 
두 개의 악, 모두를 거부할 용기가 있는가
 
전 세계를 연결해 세계의 아고라(광장)를 추진하려던 희망은 과거 민주주의의 메신저를 자처했던 이들에게 상처를 안긴 채 무너지고 말았다. 한 칼럼니스트는 “기술은 조작과 가짜 뉴스를 만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성이 아니라 오히려 감정을 전달함으로써 냉소주의자들이나 독재자들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16) 
 
베를린장벽 붕괴 30주년이 다가오지만 ‘자유세계’의 선구자들은 그것이 우울한 축제가 되지 않을까 염려한다. 후쿠야마는 “자유민주주의로의 이행은 교양 있고, 서구적인 것을 지지하는 엘리트에 의해 널리 뿌리 내렸다”고 인정한다. 애석하게도 무지몽매한 대중들은 “이 자유주의에 전혀 끌리지 않았고, 우리가 다인종, 다민족 사회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도 매력을 느끼지 않았다. 이런 사회에서는 동성결혼과 이민자들 때문에 모든 전통적 가치들이 사라지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17) 
 
그러나 교양 있는 소수자들에게 자유민주주의적 가치가 미치지 못한 것은 누구의 탓일까? 후쿠야마는 모든 젊은 부르주아들이 “현재 자기가 머무는 곳에 만족하고, 자신의 정신적 역량과 열정의 부재에 큰 불만이 없다. 그들은 카페 테라스에 앉아 모히토를 마시며 적에 맞서 모이는 것일 뿐”이라며 그들의 게으름을 한탄한다.(18)
 
오바마는 이런 상황을 잘 이해했다. 지난 7월 17일, 그는 지난 10년을 상세하고 통찰력 있게 분석했다. 사실, 오바마도 재임기간 중 신자유주의적 좌파가 자본주의 모델을 채택한 이후 생긴 고정관념을 반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바마는 세계화에 오류들과 탐욕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세계화는 노조의 힘을 약화시켰다. 세계화는 “컴퓨터 자판 하나만 누르면 간단하게 수천억 달러를 옮길 수 있음으로써 자본가가 세금과 국가의 법을 피할 수 있게” 했다. 그건 그렇다 해도, 치료법이 있을까? 혹시라도 자본주의자들의 인문주의적 윤리성을 믿는다면, 일부 수정된 ‘포괄적 자본주의’가 치료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바마의 말대로라면 이 “쓸모없는 미봉책”에 힘입어 이 자본주의 시스템의 결점 몇 가지 정도는 고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다른 치료법을 찾지 못할 땐 본질상 포괄적 자본주의가 적합할 수 있을 것이다. 오바마는 2008년의 위기와 그 위기에 대한 잘못된 대응 때문에(이 전직 미국 대통령도 포함해) ‘공포, 원한, 후퇴의 정치’가 발전하고, ‘강자들의 인기’가 높아졌으며, ‘무질서한 민주주의보다 중국식 권위주의 통제 모델’을 선호하게 됐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불안을 더욱 조성하고, 세계를 ‘더 위험하고 난폭한 구질서’로 돌아가도록 위협하는 ‘포퓰리스트들’에게 민주주의가 무절제해진 근본적 책임을 묻는다. 하지만 이는 위기 상황을 만든 사회적 엘리트들과 지식인들(그의 동료들, 이들은 대체로 이 위기에서 이득을 봤다)에게 면죄부를 주는 논리라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펼쳐지는 파노라마는 그들에게 이익이 된다. 독재가 우리를 위협한다고 되풀이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여전히 민주주의적 가치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게끔 할 수 있다. 
 
 오바마와 마크롱은 권력을 손에 넣자마자, (자신들이 포퓰리즘적 정책이라 생각해온)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를 줄이겠다는 열의를 공통적으로 드러냈다. 향후 10년간 정치계를 민주주의와 포퓰리즘, 개방과 국가주권주의(유럽연합에 반대하며 각국의 주권을 옹호하는 입장-역주) 사이의 대립 속으로 끈질기게 몰아가는 것은 서민계층에 어떤 위로도 되지 않을 것이다. 
 
서민계층은 민주주의가 자신들을 단념했고, 좌파가 학위를 소지한 부르주아로 변모했음을 깨달았다. 금융위기가 터지고 10년이 흐른 상황에서 모습을 드러낸, ‘난폭하고 위험한 질서’에 맞선 ‘성공적인’ 전투는 완전히 다른 것을 요구한다. 무엇보다도 ‘교양 있는 테크노크라트’ 및 ‘분노하는 억만장자’(19)와 동시에 싸울 수 있는 정치력의 발전을 요구한다. 
 
예를 들면 각자의 방식으로 인류를 위험에 빠뜨리게 할 두 진영 중 어느 쪽이라도, 단순히 지지하는 것만큼은 거부하자는 것이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피에르 랭베르 Pierre La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발행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조민영
서울대학교 불문학과 석사 졸업.
 
(1) Francis Fukuyama, 『Retour sur “La Fin de l’histoire?(‘역사의 종말’로 돌아오는 것인가?』, Commentaire, n° 161, Paris, 2018년 봄호.
(2) William Galston, ‘Wage stagnation is everyone’s problem’, <The Wall Street Journal>, New York, 2018년 8월 14일. Sur les destructions d’emplois due à la mondialisation(세계화로 인한 일자리 파괴에 관해), cf. Daron Acemoğlu et al., ‘Import competition and the great US employment sag of the 2000s’, <Journal of Labor Economics>, vol. 34, n° S1, Chicago, 2016년 1월.
(3) Bob Davis & Dante Chinni, ‘America’s factory towns, once solidly blue, are now a GOP haven’, 2018년 7월 19일, Bob Davis & Jon Hilsenrath, ‘How the China shock, deep and swift, spurred the rise of Trump’, <The Wall Street Journal>, 2016년 8월 11일.
(4) Adam Tooze, 『Crashed: How a Decade of Financial Crises Changed the World』, 재인용, Penguin Books, New York, 2018.
(5) John Lanchester, ‘After the fall’, <London Review of Books>, vol. 40, n° 13, 2018년 7월 5일.
(6) Jack Dion, ‘Les marchés contre les peuples(서민들을 등진 시장)’, <Marianne>, Paris, 2018년 6월 1일.
(7) Yanis Varoufakis, 『Adults in the Room. My Battle Against Europe’s Deep Establishment』, The Bodley Head, London, 2017.
(8) Pierre Moscovici, 『Dans ce clair-obscur surgissent les monstres. Choses vues au cœur du pouvoir(괴물이 툭 튀어나오는  이 명암법 속에서. 권력의 마음에 비친 사물들)』, Plon, Paris, 2018.
(9) Frédéric Lordon, ‘Le jour où Wall Street est devenu socialiste(파탄지경의 은행을 구하기 위해) 미 FRB가 사회주의자로 회귀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08년 10월호.
(10) Jean-Claude Trichet: ‘Nous sommes encore dans une situation dangereuse(우리는 아직도 위험한 상황에 있다)’, <르몽드>, 2013년 9월 14일.
(11) Adam Tooze, 『Crashed』, op. cit.
(12) Drew Hinshaw & Marcus Walker, ‘In Orban’s Hungary, a glimpse of Europe’s demise’, <The Wall Street Journal>, 2018년 8월 9일.
(13) Pierre Bourdieu & Loic Wacquant, ‘La nouvelle vulgate planétaire(세계적 규모의 새로운 라틴어 성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0년 5월호.
(14) ‘Prime minister Viktor Orbán’s speech at the 25th Bálványos Summer Free University and Student Camp’, 2014년 6월 30일, http://2010-2015.miniszterelnok.hu
(15) Michael Ignatieff & Stefan Roch(책임 편집), 『Rethinking Open Society: New Adversaries and New Opportunities』, CEU Press, Budapest, 2018.
(16) Éric Le Boucher, ‘Le salut par l’éthique, la démocratie, l’Europe(윤리, 민주주의, 유럽에 의한 구제)’, <L’Opinion>, Paris, 2018년 7월 9일.
(17) Michael Steinberger, ‘George Soros bet big on liberal democracy. Now he fears he is losing’, <The New York Times Magazine>, 2018년 7월 17일에서 인용됨.
(18) Francis Fukuyama, ‘Il y a un risque de défaite de la démocratie(민주주의에서 벗어날 위험이 있다)’, <Le Figaro Magazine>, Paris, 2018년 4월 6일.
(19) Thomas Frank의 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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