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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십 걸’을 보면 부자들이 좋아진다
‘가십 걸’을 보면 부자들이 좋아진다
  • 모나 숄레
  • 승인 2010.08.06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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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écial] ‘빈부’라는 초현실주의

“<가십 걸>에는 출생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세계에 대한 열망이 숨겨져 있다. 드라마 <디 오시>(The O. C.)(1)에서는 주인공들이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단지 내 거주민과 외부 주민을 엄격하게 분리·차단하는 주거 공간-역자)에 산다. 누구든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면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뉴욕의 어퍼 이스트 사이드(Upper East Side) 지역에 들어가려면 그곳에서 태어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들의 조상은 대부분 메이플라워호(2)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다. 나는 캘거리에서 아버지 없이 자랐다. 나는 내가 속한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을 단념할 순 없었다.”(3) 텔레비전의 귀재 조슈 슈와르츠와 함께 <가십 걸>을 제작한 시나리오 작가 겸 제작자 스테판 세비지의 말이다. 그녀의 말에는 ‘태생적 마조히즘’이라고 할 만한 것이 숨어 있다. 그게 이 드라마의 성공 비결은 아니었을까? <<원문 보기>>

‘태생적 마조히즘’이 성공 비결?

 

▲ <무제>, 2008-왕립예술회

<가십 걸>은 2007년 <CBS>와 워너브로스의 공동 소유인 청소년 채널 <CW>로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뉴욕의 사립 고등학교에 다니는 부잣집 아이들의 이야기다. 타깃 시청자인 청소년뿐 아니라 젊은 성인(대부분 여성)도 고교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 드라마를 즐겨 보고 있다. 이 드라마는 이제 전세계 50여 개국에서 방영되고 있다(프랑스의 경우는 <TF1>).

젊음과 미모를 겸비한 주인공들은 궁전 같은 집에 살면서 외출할 때는 반드시 리무진만 탄다. 그들이 벌이는 청춘사업과 경쟁심 속에는 심오한 형이상학적 주제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어떻게 하면 학교의 여왕 자리를 차지·유지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예일대학 학장에게 잘 보일 수 있을까?” “내게 B학점을 준 저 빨갱이 교수에게 어떻게 복수하지?”) 배경은 최신 유행의 파티나 근사한 송년 파티, 폴로 시합, 소더비 경매장 같은 곳이다. 이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악의에 찬 거만함을 자랑한다. “지하철은 쥐가 우글거리는 곳”이며 어퍼 이스트 사이드를 제외한 세계는 저주받아 마땅한 곳이다. 이들은 자주 사회계급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린다. 한때 연애깨나 했다는 주인공 어머니의 입을 통해 우리는 “사르코지가 키스에 서툴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가난한 시청자 유인하는 신데렐라

이 드라마를 즐겨 보는 사람은 주인공들이 경멸해 마지않는 바로 그 사회계급에 속한 이들이다. 그런데도 드라마를 보면서 차츰 밉살스러운 부잣집 악동들에게 일말의 애정이 싹트는 건 왜일까? 다른 두 명의 등장인물이 그 이유를 설명한다. 작가는 야심만만한 남매 댄과 제니를 줄거리 속에 던져넣는다. 이들은 브루클린의 한 로프트에서 산다. 화랑 주인인 아버지는 자식들 사립 고등학교 학비를 대느라 등골이 휜다. 제니는 스타일리스트가 되는 게 꿈이고, 댄은 작가가 되고 싶어한다. 그는 좌파적인 빈정거림으로 자신을 무시한 녀석들에게 복수한다. 그가 학교에 적응해나가는 과정을 따라가던 시청자는 어느새 자신도 드라마에 적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처음엔 역겨움에 시달리던 댄은 점차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심지어 이 세계의 매력에 끌린다. 그를 가로막고 있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침대보에서 좋은 향기가 나는 이 세계만의 매력을 발견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품고 있는 은밀한 상처를 엿보면서 속물 같은 아이들 마음에 숨겨진 인간미를 발견한다. 친구 아버지가 어떤 과정으로 사업을 일으켰는지(방화로 거액의 보험금을 타냈고, 이로 인해 무고한 사람이 불에 타 숨졌다)를 알게 된 댄은 그 사실을 폭로해야 할지 말지 망설이지만 결국 포기한다. 댄의 아버지도 그의 결정에 찬성한다. “너는 친구의 가족을 보호한 거야.” 부자들과 한통속이 되라는 말이다.

<가십 걸>은 특정 타깃을 겨냥해 만든 문화상품의 완벽한 예다. 이 드라마의 아이디어를 처음 내놓은 곳은 주로 젊은 여성을 위한 픽션을 제작하는 ‘17 스트리트 프로덕션’이었다. ‘가십 걸’이라는 필명을 쓰는 정체불명의 블로거가 부유층 자제들의 삶을 이야기한다는 내용이었다. 리틀브라운 출판사는 이 콘셉트를 사들여 시리즈 소설로 내놓았다. 17 스트리트 프로덕션에서 시놉시스 작가로 일하던 세실리 본 지게사는 이 소설로 하루아침에 ‘젊은 여성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소설’ 분야에서 일약 스타 작가로 등극했다. 아니, ‘하이틴 로맨스’라고 하는 편이 정확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작품은 TV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재미가 덜해졌다. 마약이나 거식증, 모호한 성관계 같은 문제는 모두 자취를 감췄다. 머리를 전부 밀어버린 펑크족은 매력적인 혼혈아가 대신하고, 허무주의에 빠진 시인은 보이스카우트가 됐다. 초반 에피소드에서는 사람들이 흔히 부유층에게 갖는 의구심이 모습을 드러낸다. 코카인 중독에 공금까지 횡령한 아버지와 실랑이를 벌이는 아들이라든지, 딸의 미모와 몸무게를 가혹한 방식으로 관리하는 어머니 같은 유형의 인물이 등장한다. 그러나 에피소드가 거듭되면서 이런 비판의 욕망은 훨씬 덜 지적인 메시지 하나로 수렴한다. “어쨌든 돈이 많고 볼 일이다.”

<가십 걸>의 주인공들은 날마다 파티를 열고 쇼핑을 하러 돌아다니면서도 좋은 성적을 유지한다. 그들에겐 사랑을 베푸는 부모와 사려 깊은 하인들이 있다. 이제 막 시작한 성관계는 미숙하고 거칠다.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여자 주인공들은 완벽한 몸매를 자랑한다. 그중에서도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금발의 세레나 반 데어 우드슨은 청소년이 <피플>지를 보며 꿈만 꾸는 일들을 차례로 실행에 옮긴다. 패션모델처럼 옷을 입고, 맨 앞자리에 앉아 패션쇼를 관람하고, 개인 전용기를 타고 스페인으로 날아가 주말을 보내고, 파파라치들에게 추격당한다. 댄도 모든 남학생의 꿈을 실천에 옮긴다. 학교에서 가장 예쁜 여학생을 꾀고 나중에는 할리우드 스타까지 넘본다.

패션쇼와 전용기, 무뇌아적 판타지

지치지도 않고 화면을 가득 채우는 판타지는 제작자가 의도한 것과 달리 무뇌아적이고 지루한 내레이션으로 보충된다. 원작자 세실리 본 지게사는 줄거리의 출발부터 이디스 워턴의 <순수의 시대>(4)에서 영감을 받은 듯하다. 그런 증거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연기력보다는 미모 때문에 캐스팅된 배우들이 내뱉는 대사는 유치하다 못해 안쓰럽다. (“뭐라고? 숨겨둔 내 아들이 내 얼굴도 못 보고 차사고로 죽었다고? 그건 그렇고 오늘 저녁은 중국음식 어때?”) 진부한 줄거리에 개연성 없는 사건이 벌어진다. 어차피 시청자의 관심은 “나랑 가장 친한 네가 어떻게 내 애인과 잘 수 있지?” 같은 대사가 아니라 배경 장식과 배우들이 입고 있는 옷이다. 럭셔리한 세계의 모든 디테일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저 치마 너무 예쁘다! 세상에, 저 호텔방 좀 봐, 어디서 저런 목걸이를 구했지 등등.

제작자에겐 환영할 만한 일이다. 드라마에 PPL(화면 속 간접광고)를 잔뜩 삽입한 것도 모자라 채널 <CW>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평균 세 컷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배우들의 옷이나 액세서리 등을 판매한다. 이 사이트는 매회가 끝날 때마다 엄청난 매상을 올린다. <가십 걸>은 <섹스 앤드 더 시티>의 뒤를 이어 패션산업의 광고 미디어 구실을 훌륭하게 수행한다. 대신 줄거리는 그만큼 더 빈약해졌다. 여성잡지가 앞다퉈 <섹스 앤드 더 시티>로 유명해진 스타일리스트의 패션 조언을 싣는다. 그는 올봄에 영국의 한 프레타포르테 브랜드가 주최한 ‘가십 걸’ 콜렉션을 기획했다. 모방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라고 부추기는 오래된 광고의 패러독스(“너는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다”)가 더욱 강력해진 모습으로 등장한다. 소비자에게는 이제 다양한 스타일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진다. 등장인물이 각각의 스타일을 대표한다(록, BCBG, 에트닉, 보헤미안 등).

눈살 찌뿌리다 “돈은 많고 볼 일”

<가십 걸>은 주인공들을 보며 느낄 수 있는 정당한 분노를 욕망과 매혹으로 순치하면서 사회적 순응을 생산할 뿐 아니라 소비자가 별 망설임 없이 많은 돈을 쓰게 한다. 청소년 딸을 둔 미국의 한 어머니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딸이 드라마를 보고 지나친 구매 충동에 사로잡힐까 걱정한다. “나도 젊었을 때 브랜드를 좋아했지만 기껏 70달러짜리 청바지를 사는 정도였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망설임 없이 700달러짜리 백을 산다. 제정신이 아니다. 점점 많은 청소년들이 럭셔리 브랜드를 걸치고 다닌다.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중에 사회에 나가 월급을 통째로 털어 구두 한 켤레를 사고 나면 그 다음엔 어쩔 셈인가? 식비와 집세, 의료보험료는 누가 대신 내줄 것인가? (중략) 나도 <가십 걸>을 즐겨 보지만 일종의 기분전환일 뿐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타깃은 나 같은 어른이 아니라 청소년층이다. 정상적인 아이라면 이 맨해튼 엘리트들의 럭셔리한 삶이 자신과 아무 상관 없다는 걸 눈치채지 않을까?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꿈꾸는 삶이 이런 것이라면? 아이들은 동화보다 더 동화 같은 이런 드라마들을 보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처지에 크게 낙담할 것이다.”(5)
 외국 시청자는 오히려 덜 삐딱한 시선으로 <가십 걸>을 본다. 현재 중국에만 시청자 수가 300만~5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중 한 학생이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미국의 고등학생들은 화장한 얼굴에 부츠를 신고 다니고 샴페인을 마시며 최신 휴대전화를 들고 다닌다. 그들도 고민과 열정으로 가득한 사랑을 한다. 그런데 우리 처지는 어떤가? 유행에 뒤떨어진 교복을 입고 만날 시험만 보고 맹꽁이 같은 안경을 쓰고 다닌다. 연애도 몰래 해야 한다.”(6)

평민 출신, 끝내 신전에 입성하다

<가십 걸>은 특별히 내세울 점이 없다 보니 최신 유행의 이미지를 위해 OST에 공을 들였다. 유명 가수들이 OST 녹음에 참여했다. 대표적인 예로, ‘시즌3’에 레이디 가가가 참여했다. ‘평민’ 출신의 댄과 제니 남매의 아버지도 화랑 주인이 되기 전에는 한때 인기 록그룹의 보컬이었다. 댄과 제니를 사립학교에 보낸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한마디로, 평민 출신으로 특권층의 올림푸스 신전에 입성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쇼 비즈니스에서 성공한 사람들과 그 자식뿐이라는 말이다. 이 드라마는 ‘록의 귀족’, ‘록의 제왕’이라는 유행어를 써가며 연예계의 족벌주의와 계보학을 들먹이는 영미 언론과 한통속이다.

‘시즌2’에서 고급스러운 주택의 수위가 보수 정치 논객으로 잘 알려진 앤 콜터의 저서 <유죄: 진보의 희생자들과 미국에 대한 반격>(Guilty: Liberal ‘Victims’ and Their Assault on America)(7)을 읽다가 들키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식으로 ‘루저들’의 독재라는 진부한 주제가 다시 등장한다. 수위는 폴란드 출신의 가정부 도로타가 이 ‘건전한’ 책을 추천해줬다고 말한다. 도로타는 몸과 마음을 바쳐 도도한 주인집 딸을 보살핀다. 그녀는 노심초사하며 삼류 소설 같은 아이의 일상을 지켜본다. <가십 걸>을 바라보는 시청자가 동일시해야 할 인물은 바로 이 수위와 가정부가 아닐까?

글•모나 숄레 Mona Chollet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각주>
(1) <가십 걸> 이전에 같은 제작사에서 내놓은 작품(2003~2007).
(2) 미국의 정치인과 연예인 상당수가 이 배를 타고 온 조상의 후손이다.
(3) <The Toronto Sun>, 2010년 5월 10일.
(4) Edith Wharton, <The Age of Innocence>, Garnier Flammarion, 파리, 1993(1920). (여러 출판사에서 한국어 번역본이 나와 있다.-역자)
(5) Nina Goyco, <The Gossip Girl Era>, Ay Mama!, 시카고, 2010년 5월 19일.
(6) ‘Why China Loves Gossip Girl’, Forbes.com, 2010년 4월 24일.
(7) Crown Forum, 뉴욕,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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