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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여성노동자들, 가난한 남성의 표적이 되다
사하라 여성노동자들, 가난한 남성의 표적이 되다
  • 가니아 무포크
  • 승인 2010.08.06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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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écial] ‘빈부’라는 초현실주의

2001년, 알제리 사하라사막의 하시메사우드에서 여성을 표적으로 한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2010년 상황은 어떨까? 석유 채굴 지역 일대에 건설된 하시메사우드에는 여전히 짙은 긴장감이 감돈다. 지역민 일부는 깊은 소외감에 빠져, 여성 노동자의 유입을 눈엣가시로 바라본다. 근자에 들어 독립성을 갖추게 된 여성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탓이다.

 

▲ <알제 남서쪽 도시 시디 페루치>, 2007-데니스 부르게스

거센 후폭풍이 이는 데는 <엘 와탄>의 기사 한 편(1)이면 족했던 듯싶다. 이 일간지를 통해 2010년 봄 하시메사우드에서 여성을 표적으로 한 폭행 사건이 재발했다는 보도가 나간 뒤, 프랑스에서는 이 문제를 다룬 논평 기사와 특집 방송, 대담 프로, 거리행진 등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정도는 덜하지만 알제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졸지에 하시메사우드는 ‘강간의 도시’(2)가 돼버렸다. “칼을 들고 터번을 둘러쓴 (중략) 여러 무리의 강간범”이 ‘만행’을 벌이는 도시, 매일 “여인의 주검이 모래사막에서 발견되는” 도시가 돼버린 것이다(3).

 

여성 노리는 폭행·학대·성폭력

2001년 하시메사우드는 뉴스 1면을 장식했다. 7월 13일, 남자 100여 명이 ‘미풍양속’을 다스린다는 명분으로 엘 하이샤가의 여성들을 폭행했다. 이날 피해 여성들은 “손찌검을 당하거나, 두들겨맞았고, 칼에 찔리거나, 옷이 찢겨졌다. 알몸으로 거리에 끌려나와 바닥에 질질 끌려다녔고, 집단 폭행과 상해·학대·강간을 당했으며, 몇몇은 생매장되기까지 했다.”(4) 9년이 지난 지금, 하시메사우드의 상황은 어떨까?

누군가는 하시메사우드에 들어가려면 통행허가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취재진은 알제에서 1시간 남짓 남동쪽으로 850km를 비행한 끝에 공항에 착륙했다. 어느덧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공항 보안담당이 무성의한 태도로 방문 목적을 물었다. 우리는 시치미를 떼고 존재하지도 않는 회사 이름을 툭 내뱉었다. 그리고 마침내 성역이나 다름없다고 소문난 하시메사우드에 입성했다. 처음 본 도시는 충격 그 자체였다. 이곳이 진정 알제리의 엘도라도, 가장 부유하다고 소문난 그 도시가 맞는 걸까? 울퉁불퉁한 도로와 엉성하게 놓인 보도, 대충 수선한 흔적이 역력한 건물 외관에 낡은 시멘트 균열까지, 도시는 황폐했다. 동네 모퉁이든 좁다란 골목이든 가는 곳마다 쓰레기가 즐비했다. 심지어 사막에도 수천km에 걸친 쓰레기가 햇빛에 바싹 메말라 있었다.

이 지역의 모든 활동은 석유층 주변에 7만1천㎢에 걸쳐 형성된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한쪽은 산업지대와 기업들의 호화스러운 ‘베이스캠프’가, 다른 쪽은 도시와 사막에 둘러싸인 분지가 자리하고 있다. 인구조사에 따르면 하시메사우드에는 주민 6만여 명이 산다. 하지만 한 전직 의원은 “실제로는 족히 두 배는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1990년대 이 도시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수천만 명의 사람이 테러(당시 이곳은 안전한 도시로 명성이 높았다)와 실업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곳에 이주해왔다. 그 결과 1987~98년에 이 도시의 인구는 1만1428명에서 4만368명으로 급증했다. 시 예산도 무려 40억 디나르(약 4370만 유로)에 달했다. 하지만 도시 상황은 예산 규모가 무색할 만큼 형편없다. 수돗물은 음용수로 부적합하고, 가스 이용은 호사나 다름없으며, 공공교통은 아예 없다. 유흥시설도 전무하다. 물론 유명 인사라면 도시 외곽에 높은 담장을 드리우는 해외나 국내 기업의 베이스캠프에 초대돼 바비큐 파티를 즐길 수 있겠지만, 평범한 사람이라면 거리를 배회하는 것 말고는 즐길 만한 게 마땅치 않다.

사막 위에 세워진 공업도시

애초 이곳에 도시를 세우겠다는 것부터가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1985년 이 지역에 ‘시’라는 호칭이 붙으면서, 그동안 남자가 주로 살던 베드타운에서 여자와 아이들이 함께하는 거주 지역으로 변모했다. 그렇게 하시메사우드는 모든 안전 규범을 무시한 채, 정유공장과 밤낮으로 불기둥을 내뿜는 플레어스택(배출가스 연소탑)이 즐비한 송유관 위에 건설됐다. 그리고 2005년이 되어 비로소 이곳은 ‘고위험지대’로 지정됐다.

하시메사우드는 과거의 토대도 없이 미래만을 추구했다. 정부는 이 도시에 웅장한 미래를 약속했다. 단, 도시를 전부 밀어버려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50억~60억 달러를 들여 이 혼돈의 중심에서 수km 떨어진 곳에 다시 신도시를 지었다. 마치 줄을 그어 실수를 삭제하듯 도시에 먹매김(건축 공사시 먹줄 등을 이용해 기초, 기둥, 옹벽 등이 세워질 곳에 표시를 해두는 작업-역자) 자국이 생겼다. 하지만 2015년 완공을 앞두고 현재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한 현지 기자는 “신도시는 결코 빛을 보지 못할 것”이라며 “주민을 어찌 할 것인가? 이곳에 이미 터전을 마련해 재산을 축적한 이도 있고, 가족과 함께 정착해 살고 있는 이도 있다. 만일 신도시 건설이 중단된다면 이들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보상 대상은 누구고, 어떤 방식으로 보상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기는 정부 당국도 마찬가지인 듯싶다. 이후 신도시 계획은 전면 중단됐다. 더 이상의 건설 허가도 없었다. 상황이 열악한 몇몇 빈민촌에 모여 살던 극빈층만이 무력으로 강제이주 조치를 당했다. 그나마 운이 좋은 이들은 이웃 도시에 재정착할 수 있었다. 전에 이곳에 살던 주민 한 명은 “이들은 미국인과 미국인 가족을 위해 댈러스(석유 개발에 힘입어 발전한 미국 텍사스주의 도시) 같은 도시를 만들려 한다. 빈민촌 사람들은 타 지역으로 쫓겨났지만,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만큼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라며 애써 스스로를 확신시켰다.

강제이주 빈민들 불만 팽배

2007년 하시메사우드의 시의회가 해산됐다. 법률상 45일 뒤 조기 선거가 실시돼야 했다. 하지만 의원들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우스갯소리처럼 씁쓸하게 회자되는 이곳에 시장 선출이 뭐 그리 큰 의미가 있겠는가? 이곳 사람들은 “시장으로 선출되면 2년 정도 버틴다. 그다음 공금횡령이나 부정부패 혐의로 체포된다. 2~3년형을 살고 나오면 억만장자가 된다”고 말한다. 이곳에서는 군수에 해당하는 다이라의 수장이 일반 행정을 담당한다. 그는 문자 그대로나 비유적인 의미로나 모두 ‘폭탄을 쥐고’ 있다. 보안대에 대한 주도권을 지녔다는 것이 그가 폭탄을 소지한 유일한 명분이다.

‘검은 황금’의 나라에서 새로운 여성 노동자 세대가 겪는 사회사가 이런 믿기 힘든 혼돈과 닿아 있다. 석유기업에 여성 인력이 유입된 것은 1994년 개통한 마그레브~유럽 가스관 건설이 진행되던 무렵이었다. 건설 사업에 참여한 다국적기업은 공사 현장마다 청소·요리·세탁 등을 담당할 여성 노동자를 채용했다. 알제리 서부 전역의 공사 현장을 따라다니던 여성 노동자는 어느덧 어엿한 임금노동자로 자리잡았다. 가스관 공사가 끝나고 이들은 고용주를 따라 하시메사우드에 정착했다. 그리고 다른 여성 노동자를 위해 터를 닦아놓았다. 그토록 협소한 지역에 이렇게 많은 여성 노동자가 노동시장에 진입한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이들은 남자와 마찬가지로 공사 현장을 따라다니며 강제가 아닌 자유 의지로 노동을 제공했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규모의 현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 하나가 있다. 알제리사회보험기금에 따르면, 2001년 9700명에 불과하던 하시메사우드의 여성 노동자 수가 오늘날 공식 집계된 도시 인구 총 6만 명 중 2만8700명에 이른다고 한다. 더군다나 알제리 전체에서 여성의 경제활동 비율이 19%를 넘지 않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기현상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지금까지 남자가 주를 이루던 도시에 새로 대두된 이 기이한 현상에 대해 국가나 다국적기업의 고용주 어느 누구도 대비책을 전혀 마련해놓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국적기업은 1990년 석유시장 개방으로 그들 그늘에서 번성기를 맞이한 하청기업에 이 여성 인력을 풀어놓았다.

34살의 사미아도 그런 부류였다. 그녀는 1999년 운전사인 아버지와 함께 하시메사우드로 이주했으나, 아버지는 곧 병을 얻어 오레스 산지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동생과 나, 우리 둘은 용기를 내 이곳에 남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사미아는 차근차근 경력을 밟았다. 청소부에서 시작해 감독관 자리까지 올랐다. 다갈색 피부에 하얀 블라우스를 걸치고 아이섀도로 눈가를 짙게 강조한 그녀는 자신감 있는 태도로 모 기업의 베이스캠프에서 우리를 맞았다. 그녀는 그곳에서 급식전문업체(5)를 위한 채용과 인사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그녀 주변으로 직원 6명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베이스캠프 운영은 흡사 4성급 호텔 같았다. 출입구에는 경비실이 있고, 식당·바·부겐빌레아까지 호텔에서 볼 수 있는 건 모두 갖추고 있었다. 단기 체류 사업가에게 임대한 사하라식 방갈로에는 에어컨과 평면 TV가 완비돼 있었다. 사미아에게 유일한 위안은 비록 불안정하지만 어엿한 일자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기업은 이들의 월급 일부를 수수료로 떼어간다. 그래도 사미아는 불평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내게 일을 주고, 현장 이동도 책임진다.” 그녀의 평균 수입은 6만 디나르(약 650유로)지만, 실제로 수령하는 금액은 2만5천 디나르(270유로)에 불과하다.

공장과 함께 유입된 여성들

여성 노동자는 매일 승합차를 타고 도시를 가로지른다. 정반대의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곳엔 더 이상 부겐빌레아가 없다. 불법과 무질서가 횡행하는 혼란스러운 도시 속으로 던져지는 것이다. 이들이 그곳에서 처음 맞닥뜨리는 문제는 부동산 시장에 이렇다 할 명문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살 집을 구하는 일이다. 사미아 자매는 시내의 방 3개 딸린 아파트에서 미화원 4명과 함께 지낸다. 이들은 세 번의 노크 신호를 해야 문을 열어준다. 집주인이 방문객을 꺼리는 탓이다. “경찰이나 이웃과 마찰을 겪고 싶지 않아서”라고 이유를 댄다. 그런데도 집주인은 규칙도 엄격한데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이 아파트의 집세로 1만8천 디나르(약 190유로)를 요구한다. 젊은 이웃들의 괴롭힘도 심하다. 평화로운 이웃을 둔 대가로 건물 청소에 참여해야 한다며 타박하기 때문이다.

공장만 나서면 안전 무방비

사미아는 2001년의 끔찍한 사건을 직접 겪었다. 당시 그녀는 엘 하이샤가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용감한 친구 덕에 불행을 피할 수 있었다. “친구는 우리에게 ‘처녀인 너희는 어서 달아나. 저들은 내가 맡을게’라고 말했다. 그녀의 치맛자락이 펄럭이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우리는 한 이웃 남자가 택시 안으로 밀어 넣어준 덕에 무사히 달아날 수 있었다. 폭도가 바라는 것은 우리가 겁을 먹고 이 지역을 떠나는 것이었다. 사하라 지역 주민은 하시메사우드가 그들 소유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지금도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엘 와탄>에 실린 기사를 보고 난 뒤인지, 혹은 그 전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녀는 “이곳에서는 무슨 소문이든 금세 퍼지는데도, 이번에 발생한 ‘136가구’(2010년 봄 여성 폭행 사건이 발생한 동네) 사건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었다”고 덧붙였다.

취재진은 그녀의 도움으로 4월 폭행 사건의 피해자 한 명을 찾아냈다. 현재 휴식차 월차를 내고 도시를 떠나 있는 그녀와 전화 인터뷰를 시도했다. “4~5명이 방문을 부수고 난입했다. 칼로 위협하고 물건을 훔쳐갔다. 하지만 동생과 신을 걸고 맹세하건대 그들은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경찰서에 신고하러 갔을 때 많은 피해 여성을 보았다. 담당 경찰은 내게 ‘폭도들이 정도를 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라’(아랍어에서는 ‘성폭행하다’라는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피해 여성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며 당시 ‘136가구’에 살던 동생을 찾아가보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동생도 다른 희생자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동생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경찰들은 알고 있다”며 경찰을 찾아가보라고 했다. 헌신적인 우리 ‘정보원’과 베이스캠프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136가구’의 거주자가 진정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희생자를 찾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끝내 별다른 소득은 얻지 못했다.

피해자들의 입조심

폭력 사건은 실제 발생했다. 하지만 규모가 과장됐다고 현지 기자는 확신한다.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리 없다. 2001년 사건이 발생했을 때 도시 내에 온통 그 얘기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 캠페인의 목적이 뭔지 모르겠다.” 경찰에 따르면 4∼5월에 4~5건의 폭행 고소가 접수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신중하게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흥미롭게도 <엘 와탄> 기자가 취재한 피해자 수와 일치했다. 그렇다면 여성 학대 사실이 은폐된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유일하게 취재에 성공한 성폭행 피해자를 경찰서에서 만날 수 있었다. 한 조합원이 만남을 주선했는데, 그는 한사코 하시메사우드는 “다른 곳과 별반 다르지 않은 평범한 도시”라고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피해 여성인 라미아가 여기 버젓이 있지 않은가. 순진한 얼굴의 그녀는 24살쯤 돼 보였는데, 심한 트라우마를 입은 것 같았다. 그녀가 하시메사우드에 온 건 엄마 품을 막 떠난 무렵이었다. 그녀는 약혼자를 따라 이곳에 왔다가, 약혼이 깨지는 바람에 혈혈단신이 됐다. 그사이 그녀는 한 이탈리아 회사에 접수원으로 취직했다. “생활이 안정된 평화로운 시절”이었다고 그녀는 회상한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악명 높은 역전 부근,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그녀의 뒤로 남자들이 따라붙었다. “4명이었는데, 가장 나이가 많은 이도 24살이 돼 보이지 않았다. 술 냄새가 진동했고, 눈이 풀린 게 약을 한 듯했다. 일행 중 한 명이 목에 칼을 들이대더니 나를 성폭행했다. 눈물을 훔칠 새도 없이 다음은 그의 친구가 덤벼들었다. 3년에 걸쳐 쌓아올린 공든 탑이 단 하루 만에 와르르 무너졌다.” 그녀는 고소를 하고, 법의학 전문의의 진찰을 받았다. 그녀는 “먼저 말해둘 사항이 있는데, 그때 나는 처녀가 아니었다”며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듯 고백했다.

경찰, 고소-일자리 택일 요구

알제리에서 성폭행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2001년 여성 폭행 사건을 변호했던 카드자 칼푼은 문제는 형법이라고 꼬집는다. “성폭행 규정은 프랑스어로 된 형법 문서에만 나온다. 그런데 기준이 되는 것은 아랍어로 쓰인 법률이다. 아랍어에서는 매우 위선적으로 ‘성수치심 유발’(attentat à la pudeur)이라는 표현을 쓴다. 희생자보다는 ‘부족’의 명예를 우선시하는 탓에 사회적 차원이 강조되는 것”이라고 그가 설명했다. 한편 경찰서에서는 담당 경찰관이 라미아에게 물었다. “고소를 하는 것과 일자리를 얻는 것 중 무엇을 선택하겠나?” 그녀는 “일자리를 얻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마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한 지인이 우리에게 위험하니 ‘136가구’에는 가지 말라고 조언했다. 하시메사우드 외곽에 자리한 이 동네는 가장 최근에 형성된 지역으로, 대형 빌라와 임대주택, 부와 빈곤이 뒤엉켜 있다고 했다. 그는 사하라 지역 주민의 처지를 설명했다. 이들은 이 지역에 대해 선소유권을 주장했으며, 몇몇은 소외받는 현실을 통탄했다. 온갖 종류의 산업 폐기물에 둘러싸인 철제 아치 아래서 우리를 맞아준 이 남자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우리는 쓰레기들 덕분에 먹고산다. 우리 고용주는 인간이 아닌 도적이다. 정의가 실현되려면 나보다 더 강한 이가 들고 일어나야 한다. 여기서 우리를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대신 무슨 불만이라도 말했다가는 바로 감옥행이다. 친구 중 몇 명이나 감옥에 있는가?” 남자의 질문을 받은 20살이 채 되지 않은 한 청년이 “글쎄요. 족히 10명은 넘을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실직자 신세인 그는 이곳 일을 거들고 있었다. “입에 풀칠이나 하려고 일한다. 일자리를 구하려면 이 회사 저 회사를 돌아다녀야 하는데, 그러려면 택시비가 든다. 무슨 수로 경비를 감당하겠는가?”

특히 직업을 가진 여성을 곁에서 바라볼 때 소외감은 더욱 깊어진다. 노인은 “여자가 있어야 할 곳은 부엌”이라며 벌컥 화를 냈다. 하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고는 “우리는 이 여성들이 일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체계가 있는 법이다. 문제는 이 여성들이 청소며 빨래, 요리까지 모든 일을 독점하는 데 있다. 우리 아이들은 빗자루 쥐는 법을 알지 못할까? 상황이 이렇게 된 건 모두 국가 탓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계속 혼란을 일으키기 바란다. 계속 도적질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나도 젊었더라면 도둑질을 했을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천벌을 받을 만한 일까지 하도록 부추긴다.”

실직 남성들 “여성이 일자리 독점”

여기서 완곡하게 표현된 ‘일’이란 바로 성매매를 의미한다. 어찌 이곳에 성매매가 존재하지 않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수많은 이민자가 가족의 품을 떠나 홀로 생활하는 동안 세계로부터 고립된 이 분지 지역, 온갖 비참한 현실과 넘치는 부가 공존하는 이곳에 어찌 성매매가 존재하지 않겠는가? 한때 성매매에 발을 담갔다가 탈출한 한 어린 소녀는 “사실이다. 그런 부류 중 이곳을 즐겨 찾는 이들이 있었다”고 증언한다.

여성 노동자를 위협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비단 남자만이 아니다. 파델라는 평생 국영석유회사 소나트라크에서 일했다. 그녀는 “1977년 6월 26일 노동자 상담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바트나를 떠나 아버지와 함께 하시메사우드를 찾은 것은 4살 무렵이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국영석유회사 건강 상담 코디네이터로 승진했다. “27개 공사 현장을 담당하기 때문에 출장이 잦다. 운전기사와 함께 리비아 국경까지 가는 일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앞서 그녀는 우리에게 ‘하시메사우드 여성’ 지지 캠페인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당신들 언론은 우리를 더럽혔다. 이곳에 사는 여성의 명예에 먹칠을 한 셈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우리가 야만인처럼 보이는가? 물론 여성 폭행 사건이 발생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일은 일어난다.” 파델라는 ‘다수의 남자’가 선출한 노조 대의원이다. 그녀가 우리를 맞은 곳도 알제리 유일의 합법 노조인 알제리노동총연합(UGTA) 지부였다. 미혼인 그녀는 자매 3명과 살고 있다. 간부 직원, 중간관리자, 대졸자로 모두 국영기업을 통해 임금노동자의 통합을 달성한 사회주의와 국가주의의 딸이다. 그녀는 “이곳은 파리의 축소판이었다. 모두 수영을 즐겼다. 모든 주민이 서로 안면을 트고 존중하며 지냈다”며 화려하던 과거를 떠올렸다. 파델라는 다른 여성을 비난하면서까지 이른바 ‘자신이 사는 마을과 주민의 명예’라고 생각되는 것을 비호했다. 그녀는 그들의 불행이 어느 정도 자초한 일이라고 여긴다. 파델라는 “처음 이 지역에 등장한 여성 노동자를 보고 모두 ‘미국 여성’이라 불렀다. 옷차림새만 봐도 그런 말이 나올 만했다. 이들은 공사 현장에 머물다 나오는 이곳 남자들이 때로는 여자 구경을 못한 지 60일도 넘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여성의 몸에 대해 강박이 심한 사회, 어쩌면 무의식적 측면에서 문제의 본질은 단순히 여성의 일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혹 가문과 혈통에 대한 강박을 지닌 이 사회의 성 억압이 아닌지?

문제의 본질은 가부장적 억압

하시메사우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여성의 노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고향과 가족으로부터 해방된 젊은 독신 여성이 대거 유입되는 현상에 있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독립했고, 사회 경험도 있다. 다시 말해 자기 몸에 대해 자유로운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와 종교라는 ‘경찰’이 이들을 ‘성도덕 위반자’로 내몰며 ‘미풍양속’ 단속에 나서고 있다. 여성 문제와 관련해 종교적 명분을 내세우기 좋아하는 가부장적 사회는 가족의 사슬에서 해방된 여성이 추구하는 신세계를 성매매와 자유의 혼성으로 내몬다. 성 억압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글•가니아 무포크 Ghania Mouffok  
작가이자 언론인.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서 거주하며, 알제리의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르포 기사를 주로 쓰고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각주>
(1) 살리마 틀렁사니, ‘복면을 쓴 청년에게 야간 습격을 당한 여성들: 하시메사우드의 독신 여성 사냥’, <엘 와탄>, 알제, 2010년 4월 11일.
(2) 카롤린 푸레스트, ‘하시메사우드, 성폭행의 도시’, <르몽드>, 2010년 4월 24일. 최근 폭행 사건이 발생한 시점은 파티하 마아무라와 라무나 살라의 증언을 담은 나디아 카시의 저서가 출판된 시점과 일치한다. <죽음의 위험에 놓인 여성들: 하시메사우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집단폭행>, 막스 밀로, 파리, 2010. 이 사건이 보도되는 데 기여한 책이다.
(3) 라디오 방송 <프랑스 문화의 아침>, 2010년 5월 7일.
(4) 달릴라 이마렌 드제르발, ‘하시메사우드 사건’, <나크드> 제22~23호, ‘여성과 시민권’, 알제, 2006년 가을·겨울.
(5) 이 용어는 석유기업 베이스캠프에 납품 중인 서비스 업체, 특히 급식 업체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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