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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네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
기본소득, 네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
  • 강남훈
  • 승인 2010.08.06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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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ée 특집] 소득보장제도의 새 패러다임

▲ <아침>, 2009 - 이강혁
모두에게 아무 조건 없이 지급하는 기본소득이라는 말을 처음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우리 집안에 어려운 사람이 한 명 있는데, 기본소득을 받게 되면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므로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몇 가지 우려스러운 질문을 하게 된다. 이 글은 대표적인 네 가지 질문에 답하려고 한다.
 
질문 1.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노동유인이 사라져 아무도 일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우리 국민의 총소득이 1천조원 정도니까, 스웨덴처럼 50%를 세금으로 낸다면 500조원의 세금을 걷을 수 있다. 이 중에서 정부의 일반예산으로 200조 원을 쓴다면, 300조 원 정도를 기본소득으로 나눠가질 수 있다. 좀더 현실적으로 35%를 세금으로 걷는다면, 1인당 월 25만원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할 수 있다. 이 정도의 돈을 받는다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일하지 않는 경우는 극히 드물 것이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키우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아주 가난한 사람들만 선별해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는 선별복지 정책을 쓰고 있다. 선별복지는 사람들을 ‘복지의 함정’에 빠뜨리는 경향이 있다. 복지 함정이란 한번 복지 혜택으로 살되면, 계속 복지에 의존해 살아가려는 경향을 말한다. 복지 함정에 빠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최저생계비 100만원을 보조받던 사람에게 100만원짜리 일자리가 생겼다고 가정해보자. 이 사람은 이 일을 안 할 것이다. 일을 하면 월급 100만원을 받는 대신 최저생계비 100만원을 못 받으니까 소득은 100만원 그대로다. 괜히 일하느라 힘만 들게 되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보편복지에 속한다. 기본소득에는 이런 복지 함정이 없다. 4인 가족이 기본소득 100만원을 받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아빠에게 100만원짜리 일자리가 생기면 아빠는 당연히 그 일을 할 것이다. 일을 하면 힘들겠지만 소득이 200만원이 되기 때문이다.
 
질문 2. 부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 부자를 이롭게 할 뿐이며, 사회적 낭비다.

부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모든 국민에게 인간답게 사는 헌법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기본소득을 보장한다는 이념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부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부자가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니라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만드는 것이다(표 참조).

어떤 나라에 모두 5명이 있고 소득은 0원, 200만원, 400만원 등이다. 사람 1에게 90만원의 소득을 보장하는 선별복지 정책을 실시하려면 세금을 90만원 걷으면 된다. 비례세를 가정할 때 3%의 세율이 된다. 3%의 세금을 내고 복지를 받고 나면 사람들의 소득은 90만원, 194만원, 388만원 등으로 바뀐다. 사람 1 외에 모든 사람의 소득이 줄어든다.

이제 모든 사람에게 90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실시하려면 세금 450만원을 걷어야 하고 세율은 15%가 된다. 세금을 내고 기본소득을 받고 나면 사람들의 소득은 90만원, 260만원, 430만원 등으로 바뀐다. 제일 부자인 사람 5를 생각해보자. 선별복지일 때에는 소득이 1552만원이었는데, 기본소득일 때에는 1450만원이 되었다. 이와 같이 부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 부자에게 유리하지 않고 불리하다. 기본소득 정책을 쓸 때 부자는 세금을 더 많이 내게 된다. 부자에게 기본소득을 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숨은 의도는 부자를 이롭게 하려는 것이다.

이 표는 두 가지 중요한 결과를 더 보여준다.

첫째, 노동유인을 비교하기 위해, 일하지 않는 사람 1과 일하는 사람 2의 세후소득 차이를 보자. 선별복지 아래에서는 104만원이었는데, 기본소득 아래에서는 170만원으로 벌어진다. 기본소득이 일을 하는 사람에게 훨씬 유리한 것이다.

둘째로 선별복지 정책은 사람 1만 이득을 보지만, 기본소득은 사람 3까지 이득을 본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본소득은 인구의 대다수를 이롭게 하는 정책이다. 소득 격차가 클수록, 그리고 누진 세율로 과세할수록 전체 국민 중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의 비율은 더 커진다.
 
질문 3. 기본소득보다 완전고용이 더 중요하다.

지금까지 자본주의 역사에서 모든 정부가 고용 창출을 목표로 해왔지만 완전고용은 한 번도 달성된 적이 없었다. 특히 1970년대 이후에는 완전고용이라는 목표를 포기하고 고용 창출이라는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지금까지 완전고용 정책이 실패했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현대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기술(IT) 혁명이다. IT 혁명으로 산업혁명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노동을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고용 없는 성장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항구적 추세가 되었다. 노동이 불필요해지니까 노동자를 비정규직이나 파트타임으로 고용해 저임금을 주는 것이 가능해졌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노동자는 정규직  800만 명과 비정규직 800만 명으로 구성됐는데,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다. 영세자영업자가 400만 명이고, 사실상의 실업자가 100만 명이다. 청년의 체감실업률은 25%나 된다. 청년 4명 중 1명이 백수인 셈이다. 대기업 정규직으로 취직하는 것은 일류 대학에 진학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게 되었다.

정부가 나서서 아무리 채용하라고 외쳐도 기업은 더 이상 고용을 늘리지 않는다. 실제로 다른 기업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태에서 불필요한 고용을 늘릴 여력이 없다. 청년은 ‘88만원 세대’로 전락해 결혼도 못하고 아이도 못 낳고 있다. 30살에 결혼하면 빨리 결혼한다고 축하를 받게 되었다. 이제 유토피아 사회에서나 완전고용을 꿈꿀 수 있을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미드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쓴 마지막 저작들(대표적으로 1995년의 <완전고용 다시 회복?>)에서 현재의 조건에서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본소득은 다음과 같은 여러 경로로 완전고용의 길을 열어준다.

첫째, 기본소득은 노동시간 단축을 가능하게 해준다. 현대자본주의에서 노동시간 단축 없이 완전고용은 불가능하다. 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잔업의 필요가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힘들게 잔업하는 대신 여가를 활용하고 싶은 노동자가 생겨날 것이다.

둘째로, 기본소득은 비자본주의적 노동을 증가시켜 노동시장에 공급 압력을 줄인다. 우리 사회에는 돈을 많이 버는 노동보다 보람 있는 노동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 예로 친환경 농부, 노동운동이나 시민운동 등 비영리단체 활동가,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종사자, 예술가, 비인기 학문 전공자, 정치가, 지역 운동가, 발명가, 환경운동가, 고아원·양로원 복지가, 언론인, 사회복지 노동자 등 수많은 사람을 들 수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대부분은 생계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노동에 종사하지 못하고 자본주의적 기업에서 임금노동자가 되어 불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은 이런 사람들을 비자본주의적 노동에 종사할 수 있게 해준다.

셋째로, 기본소득은 자본주의적 일자리를 증가시킨다. 기본소득은 내수시장을 키운다. 서민 지출이 늘기 때문에, 서민이 소비하는 상품과 서비스 시장이 커진다. 내수 서민 부문은 수출 부문이나 사치품 부문에 비해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이 존속할 수 있는 여지가 크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증가하게 된다. 노동자가 중소기업에 취업하려는 의사도 커지게 된다. 중소기업에 취업하더라도 중소기업에서 받는 임금과 기본소득을 합치면 생활이 보장될 뿐 아니라, 중소기업이 실패하더라도 기본생활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 이와 같이 기본소득은 중소기업의 구인난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질문 4. 기본소득은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 경제는 기본소득에 대한 재정 부담을 질 여력이 충분히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세금을 적게 내는 나라에 속한다. 2008년 총조세부담률은 26.6%에 불과하다. 우리나라가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가  되려면 소득의 5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세금을 더 내지 않으면서 복지국가가 될 수 있는 길은 없다. 흔히 세금을 많이 내면 경제성장을 못하게 될까 걱정하는데, 스웨덴 등 북유럽 복지국가는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앞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기본소득 도입을 위해서는 총조세부담률을 35~40%로 늘리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세금을 너무 적게 내고 있어서 세금을 걷을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다. 부동산세를 토지세로 단일화하고 3% 세율을 매기면 30조원이 마련된다. 증권양도소득세를 신설하고 배당, 이자소득세율을 30%로 인상하면 적어도 60조원이 생긴다. 탄소세 같은 환경세를 매겨 30조원을 마련할 수 있다. 앞으로 환경세는 더 늘려가야 할 것이다. IT 기술을 활용하면 250조원의 지하경제에서 세원을 포착해 30조원을 더 걷을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소득세나 부가가치세를 인상하지 않고도 1인당 연간 300만원씩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다.

우리나라 경제력에 비춰보면 기본소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문제는 정치적 의지다. 기본소득은 실제로 상당히 가까이 와 있다. 몽골·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독일에서 대다수가 찬성하고 있고, 나미비아의 실험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미국 알래스카주에서는 이미 실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노인의 70%는 기초노령연금을 받고 있다. 이것을 100%로 늘리고 증액하면 된다. 아동수당법은 올해 발의됐다. 증액을 하고 시기를 앞당겨서 법을 통과시키면 된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불행한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청장년에게도 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합의하면 된다.

기본소득은 생각을 바꾸기만 하면 당장에라도 실현할 수 있는 정책이다. 또한 우리나라처럼 복지 수준이 낮고, 경쟁력을 중시하고, 정부에 대한 불신이 큰 나라에 적합한 복지정책이다.

글•강남훈 
한국 기본소득네트워크 대표, 전국교수노조 부위원장. 주요 저서로 <정보혁명의 정치경제학>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을 위하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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