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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눈에 비친 MB 공화국
유럽의 눈에 비친 MB 공화국
  • 매슈 라이스
  • 승인 2010.10.08 17:3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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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ée]


▲ <물고기들>, 2004-노은님(파독 간호사 출신 한국인 화가)
서울·상하이·일본열도와 등거리에 있는 한국의 작은 섬, 제주도의 주민은 오랫동안 선조의 문화를 보존하며 살아왔다. 특히 죽은 이들의 영혼을 달래는 굿이 일상 속에 뿌리내린 곳이다. 요새처럼 우뚝 선 화산암 절벽이 햇빛에 반짝거리는 동중국해를 굽어보고 있는, 백록담과 용암동굴 등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제주도는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관광객만 제주도의 석호(潟湖)를 찾는 것은 아니다. 이곳이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며 군침을 삼키는 군수기업이 있다. 주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주도는 곧 일본의 오키나와와 같은 운명이 될 처지다.

한반도 내륙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한국의 군수산업은 성숙한 ‘시민사회’에서 견제하고 있다. 한국의 일류 대학과 의료체계, 자기주장을 펼 수 있는 언론·시민의 정치 참여는 자랑할 만한 수준이다. 그러나 최근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한국 사회가 과거 권위적 시대로 회귀하며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우려를 자아낸다. 그 예로, 지난 3월 천안함 사건(1)의 공식 조사 결과에 의혹을 제기하며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빌미로 북한을 비난해 대결구도를 조성하고 있다’고 비판하던 이들이 정부로부터 보복을 당했다. 한때 태평양에서 많은 해전을 치른 일본은 지금 지속가능한 경제 발전과 군비 지출이라는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일본 민주당은 주요 도시 외곽의 미군 기지 유지에 드는 천문학적 비용 삭감, 미국의 노선과 다른 독자적인 대중국 관계 구축, 자유무역을 기반으로 한 아시아 경제공동체 건설 등의 공약으로 2009년 9월 총선에서 승리했다. 결국 민주당은 미군 공군기지를 오키나와 인구밀집 지역 밖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지키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미국 군산복합체가 한국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계기가 되지 못했다.

중국을 외교적 공략 대상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취임하자마자 미국에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걸어온 노선과 완전히 반대되는 태도다. 이 대통령은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직 대통령들이 북한과 맺은 약속을 비난했다.- 이 약속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통해 추진하던 화해 노력 속에서 이룬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하던 언론개혁을 중단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몇 주 만에 미국을 방문해 조지 부시 대통령과 캠프 데이비드에서 회담을 했다. 미국 쇠고기 수입 제한 철폐와 동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의 새로운 역할에 관한 얘기가 오갔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미국의 록히드마틴에서 제작한 탄도요격미사일(ABM)과 레이더 시스템을 탑재할 수 있는 국내 최초의 이지스함(세종대왕함)을 건조했다. 2010년에는 이지스함 6척으로 구성될 함대의 두 번째 구축함을 진수할 예정이었다. 이런 움직임은 중국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을 외교적 공략 대상으로 설정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의 이지스함들이 완성되면 서태평양 지역을 장악하는 중국 해군에 대한 미국의 대응 능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해군의 임무는 현재까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자국의 영해를 지키는 데 국한된다. 그러나 현대-록히드의 이지스함 6척이 무장을 마치면 한국은 일본과 함께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데 중요한 카드가 될 것이다. 한국의 이지스 함대는 2014년부터 제주도 인근 해역에서 성조기를 단 미 군함들과 함께 나란히 작전을 수행할 것이다.

중국 인민해방군 다이슈 공군 대좌(대령)는 미국과 동맹국들의 탄도요격미사일 배치를 일본·한국·인도를 잇는 ‘초승달 포위전략’의 일환으로 본다. 현재 이 지역에서 중국의 해군력이 우위를 점하지만, 자국의 영해 인근에 탄도요격미사일이 배치되면 마땅한 대응 방안이 없다. 2009년 한국의 산업 재벌 현대와 미국의 록히드마틴은 한국 해군에 이지스함을 넘긴 뒤에도 파트너십을 연장해 인도에 비슷한 종류의 구축함을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두 기업의 야심찬 프로젝트는 해군기지 터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벽에 부딪혔다.

2002년과 2007년(각각 김대중과 노무현이 대통령이던 시기) 한국 정부는 지역 주민의 반대에 부딪혀 두 번에 걸쳐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단념해야 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무슨 일이 있어도 기지를 건설하겠다고 결심한 듯하다. 작은 어촌 마을 강정이 기지 후보지로 최종 선정됐다. 제주도 지사는 제주도 주민의 94%가 기지 건설에 반대한다는 사실을 강조했지만, 국방부는 이미 공사 부지의 나무를 베어버리고 철조망을 쳐서 출입을 통제했다. 정부가 지역 주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외교정책을 밀어붙이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농업·어업·관광업으로 살아가는 강정마을 주민은 하와이·괌·필리핀·일본의 기지 주변 주민이 겪은 일을 반복하길 원하지 않는다. 어업권 파괴, 관광객 감소, 군대 주둔이 야기하는 사회문제, 유독물질 방출 등 여러 문제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주민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제주도가 ‘제2의 오키나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강정마을 주민이 ‘해군기지 건설로 주민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며 낸 소송에 법원은 판결을 무기한 연기해버렸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제주도, 제2의 오키나와 되나

천안함 사건 발생 직후 국방부 장관과 국정원장은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볼 만한 어떠한 증거도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 뒤 국제합동조사단은 천안함이 북한의 공격으로 침몰되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테러행위를 비난하며 강력한 대응 의지를 천명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도 이에 가세해 이번 사건을 북한의 소행이라고 볼 만한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발표했다. 그 뒤 한국 영해에 미국 항공모함이 파견되고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지역에서 한-미 연합 대잠수함 훈련이 실시됐다.

한국 정부가 강경한 태도로 돌아선 것은 6월 지자체 선거를 불과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특히 수도권 지역에서 야당에 표를 던짐으로써 정부의 태도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 결과에 굴하지 않고 사회운동 조직을 탄압하고 천안함 조사 결과에 의혹을 제기한 사람을 체포했다. 국가 안보가 위협받는다는 의식이 팽배한 분위기는 제주도 주민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은 다르다. 굳이 법원의 판결 따위를 기다릴 필요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중국 해군은 인근 국가 영해를 자주 침범하고, 동쪽과 남쪽 공해 상에서 미군의 정보수집 활동을 방해하는 등 서태평양 지역에서 전략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미 국무부 부장관 제임스 스타인버그는 최근 “중국이 동아시아 지역 동맹국의 안전을 보장해주면 이 지역에서 중국의 이해관계를 존중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미국은 이 지역에 새 미사일을 배치하고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함으로써 그와는 정반대의 메시지를 중국에 보낸다.

탄도요격미사일에 핵무기 탑재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핵 억제력이 약한 중국으로선 현대-록히드이 생산한 구축함들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또 다른 한편으로 한국과 일본의 기업이 펜타곤의 ‘안보 전략’에 참여하는 것은 중-일, 한-일 관계 개선 노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무기 수출과 대외 정책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건 불가능하다. <뉴욕 매거진>은 천안함 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와 함께 호전적 태도로 일관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을 ‘록히드 상원위원’이라고 부르며 그녀가 록히드와 맺는 끈끈한 관계를 기정사실화했다. 2008년 대선 유세 때 록히드는 공화당과 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후보자들에게 선거 자금을 제공했다. 그중 가장 먼저 자금 지원을 받은 사람이 힐러리 클린턴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구축함의 해군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집요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의혹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는 1992년까지 현대그룹 계열사 사장을 역임했다. 부패방지위원회 위원장은 “지금까지 부패방지위원회, 국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어느 곳에서도 그와 측근들의 사적인 이해관계와 록히드-현대 계약 사이의 관계 여부를 조사한 바 없다”고 밝혔다.

중국이 해군력을 증강하고,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 동맹국의 군사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서태평양 지역 군사훈련을 강행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여론은 반대의사를 쉽게 표명하지 못한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평화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을 강제 해산시켰다. 전통적으로 집회 장소로 사용되던 서울광장도 폐쇄해버렸다. 서울광장에서 시위를 벌이면 이제 법적 처벌을 감수해야만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지로 한국을 선택한 뒤 프랭크 라 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의 민주주의 진전 상황을 살펴보고 ‘한국이 G20을 개최할 자격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는 지난 5월, “한국에서 의사 표현과 집회의 자유가 이명박 정권 들어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도 자다가 잡혀갈까 겁난다”

이명박 정권은 TV 시사 프로그램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제한 철회 관련 방송을 내보낸 이후부터 강경한 태도로 일관했다.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PD들은 한밤중에 자택에서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이들에게 2년에서 3년형이 구형됐지만 법원은 무죄를 판결했다. 언론의 독립성이 후퇴하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시사 주간지 <시사IN>의 신호철 기자는 “나도 밤에 집에서 자다가 잡혀가는 것 아니냐”며 불안을 토로했다.

<PD수첩> 법정 공방이 진행되던 2년 동안 이명박 대통령은 공영방송사 사장을 해임하고 그 자리에 측근을 앉혔다. 이 대통령이 임명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언론독점방지 규정을 철폐함으로써 보수 일간지에 케이블TV 방영권 획득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때부터 한국의 주요 언론은 정부 정책에 비판을 삼가기 시작했다. 2008년 봄 <PD수첩> PD들이 구속됐을 때, 올해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에 의혹을 제기하는 시민들이 정부에 탄압받았을 때 예전 같은 대규모 촛불시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제주도 주민은 현재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결사항전’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태세다. 지난 6월 3일에는 국방부가 기지 건설 부지에 건설용 비계와 기중기를 설치하려고 했지만 주민의 ‘불복종 행위’로 무산됐다.

글•매슈 라이스 Matthew Reiss
언론인.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각주>
(1)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이 침몰하면서 46명의 사망자를 냈다. 국제조사단은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 내렸지만, 조사 결과에 의혹을 나타내는 이들이 있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 쪽 전문가들이 조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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