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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북>―전복된 위치, 변화하는 시선
 <그린북>―전복된 위치, 변화하는 시선
  • 김희경
  • 승인 2019.01.3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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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된 자리, 두번의 전복

흑인 피아니스트 셜리, 그가 미국 남부로 공연 투어를 가기 위해 고용한 백인 운전사 토니. 이들은 줄곧 밀착돼 있다. 그 밀착은 물리적 거리를 의미한다. 미국 남부의 드넓은 지역을밀폐된 공간인 자동차로 이동하며 오랜 시간 먹고 얘기한다.

피터 패럴리 감독의 ‘그린북’은 그렇게 두 인물의 밀착으로 시작하고 완성되는 로드무비다. 이들의 밀착은 극도의 ‘고착성’을 기반으로 한다. 두 사람의 자리는 항상 고정돼 있다. 토니의 채용 면접을 볼 때부터 셜리는 카네기홀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높고 좋은 의자에 앉아 그를 내려다본다. 차 안에선 토니가 운전석에 앉아 차를 몰고, 셜리는 뒷좌석에 앉아 이동한다.

그런데 둘의 위치가 갑자기 바뀌는 장면이 두번 나온다. 먼저 셜리가 혼자 호텔 테라스에 앉아 위스키를 마시고 있는 것을 토니가 위층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숏이다. 셜리는 화목해 보이는 백인 가족들을 바라보며 쓸쓸히 술을 들이키고 있다. 두 번째는 기나긴 공연 투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셜리가 지친 토니를 위해 자리를 바꾸는 장면이다.

영화는 왜 이들의 위치를 고정했나. 그러다 갑자기 자리를 바꾸는 이유는 무엇인가. 두번의 변화는 무엇을 암시하는가.

 

묘사의 시작은 위치 변화로부터

자리를 고정시켜 만들어낸 이들의 밀착은 오히려 유대를 느슨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질적인 상대의 행동과 언어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고 갈등도 겪는다. 하지만 거리가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벌어지는 현상은 아니다. 중요한 건 자리의 특성이다. 영화가 이들에게정해준 자리는 ‘부여’된 것이 아니라 ‘한정’된 것이다. ‘특권’이 아닌 ‘제한’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얘기다.

위치의 제한은 곧 공간에 대한 제약을 의미한다. 영화는 각 인물에게 있어야 할 곳과 있어선 안될 곳을 구분 짓는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그린북’은 공간을 나누는 영화적 장치로 작용한다. 그린북은 실제 1936~1966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흑인 전용 여행 가이드북이다. 흑인들이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 이용 가능한 숙박시설, 레스토랑 등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카메라는 차 안, 셜리가 공연을 하는 장소를 제외하곤 이 그린북이 이끄는 대로 움직인다. 두 인물은 이에 따라 흩어졌다가 합쳐지길 반복한다.

 

‘그린북’이 가진 의미는 중의적이다. 흑인에겐 최소한의 ‘안전’을 위한, 백인에겐 최대한의 ‘제약’을 하기 위한 수단이다. 셜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안전에 만족하지 않는다. 최대한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공간 제한을 없애고 싶어한다. 셜리가 미국 남부에서 공연을 하는 것은 이런 욕구의 표현이다. 흑인 차별이 심각한 남부에서 백인 사회, 그것도 상류층이 있는 저택과 공연장 속으로 들어간다. 자신이 닿을 수 없던 공간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다. 공연을 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공간에 들어갈 권한을 얻었지만 이뿐이다. 화장실도 마음대로 쓸수 없고, 식사도 할 수 없다. 오직 공연만이 허용된다. 욕구와 제약의 충돌 속에서 셜리의 존엄성은 수차례 무너진다.

영화의 첫번째 위치 전복은 이런 셜리에 대한 토니의 시선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토니는 셜리와 길을 떠나기 전엔 흑인들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던 인물이다. 자신의 집에 수리를 하러 온 흑인 인부들이 사용한 유리컵을 휴지통에 버리기까지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셜리의 운전사가 되지만 처음엔 티격태격할 뿐이다. 서로 감정을 살피려는 노력도 없다. 하지만 위치가 바뀌면서 시선이 달라진다. 셜리를 아래가 아닌 위에서 보았더니 비로소 보인 것이다. 그가 혼자 있을 때 어떤 대상을 응시하고 있으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말이다.

이에 따라 변화된 시선을 보여주는 영화적 기법으로는 ‘묘사’가 활용된다. 토니는 홀로 외로이 위스키를 마시던 셜리를 위층 테라스에서 보게 된 후 아내에게 편지를 쓴다. “셜리는 항상 생각이 많은 것 같아. 하지만 즐거워 보이진 않아.” 편지의 목적은 아내에게 사랑을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셜리에 대한 관찰 일지로도 이용된다. 그리고 영화는 이 묘사를 통해 두 사람의 거리적 밀착뿐만 아니라 심리적 밀착까지 높여 나간다.

 

이중의 제약을 거둬낸 시선

두번째 위치 전복은 무엇을 의미할까. 영화는 토니가 셜리에 대해 묘사를 하면서부터, 셜리가 가진 이중의 고통을 하나씩 드러낸다. 셜리는 어떤 공간에서도 완전하게 존재하지 못한다. 백인들의 공간에선 일정 부분 제약을 받아야 하고, 흑인들의 공간에선 스스로를 제약한다.

셜리는 토니가 흑인 음악가들의 노래를 들으며 ‘당신네 사람들’이라고 칭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집단화, 구별짓기로부터 차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셜리는 이 틀에 갇혀 또다른 구별짓기를 하는 모순에 빠진다. 셜리가 방에 있는 높은 왕 의자에 앉아 토니를 바라보고 있었던 장면을 다시 떠올려보자. 백인들에 비해 늘 낮은 곳에 있던 흑인들과의 구별짓기를 시도하며, 토니에게 그들과 다름을 인식시켜 주려는 듯 보인다. 켄터키주의 유색인종 숙박 시설에서도 흑인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길거리로 나와 술집을 찾아간 것도 구별짓기와 연결된다.

셜리의 행동과 언어는 이런 강박을 보여주는 장치다. 그는 스스로에게 규칙을 부여하고 그 안에서 허용된 것만 한다. ‘평범한 백인’보다도 더 나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고급스런 행동과 언어만 자신에게 강요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억누르면서 셜리는 더욱 외롭다. “난 충분히 백인스럽지도, 충분히 흑인스럽지도 않아”라며 울부짖는 장면에선 그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고립된 것을 괴로워하고 있었음을 잘 알 수 있다.

그러다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자신을 초대한 백인들의 레스토랑에서 공연만 하고 식사는 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들으면서다. 그는 화를 내고 공연을 취소하며 돌아선다. 백인들이 강요한 제약을 거부하고, 스스로가 만든 제약에서 벗어나는 최초의 행위다. 이곳에서 벗어난 셜리는 흑인들만 잔뜩 모인 식당으로 가 클래식 공연을 펼친다. 그동안 흑인이란 이유로 재즈 음악만 해오다가 그 규칙을 벗어난 것이다.

규칙을 처음으로 깨본 셜리는 두번째 위치 전복을 통해 토니와 자신에 대한 이중의 시선 변화를 알린다. 흑인 식당에서 공연을 하고 나온 후 셜리는 토니와 집으로 돌아가다가 그를 위해 운전석에 앉는다. 토니가 아내와 약속한 날짜에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위험한 눈길에 지친 그를 대신해 운전을 하는 것이다. 토니는 자신이 고용한 ‘평범한 백인’이다. 그 ‘평범한 백인’을 ‘평범한 흑인’이 하던 운전기사 자리에 앉힌 셜리 자신은 ‘특별한 흑인’이다. 그러나 이 숏에선 어떤 구분도 존재하지 않는다. 셜리는 구별짓기의 요소를 모두 제거한 시선과 상대를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새로운 자리에 앉을 뿐이다.

 

‘초인종 누른 자’가 가져온 논란과 영화적 답변

결국 두 인물의 밀착은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완성된다. 둘은 서로 아쉬움을 감춘 채 헤어진다. 셜리는 자신의 집으로 와 외롭게 덩그러니 있고, 토니는 가족들과 오랜만에 봤지만 파티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결국 셜리는 용기를 내 토니의 집으로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고, 함께 파티를 즐긴다.

물론 ‘초인종을 누른 자 ’가 토니가 아닌 셜리라는 점은 많은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흑인이 백인에게 손을 적극 내밀어야만 밀착이 완성될 수 있다는 얘기로 해석될 수 있다. 영화 초반 토니의 일상이 훨씬 더 비중있게 다뤄진 것도 백인에 더 우호적이란 인상을 남긴다. 실제 토니 아들인 닉 발레롱가가 영화 각본을 썼다는 점도 이런 논란에 불을 지핀다.

그럼에도 두 번의 위치 전복의 의미를 되새기며 조금은 다른 영화적 답변을 내리고 싶다. ‘평범한 백인 ’, ’특별한 흑인 ‘이 아닌 새롭게 서로를 응시하고 변화하고자 했던 두 ‘평범한 인물’이 있었다고.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글·김희경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영상정책 및 기획 전공 박사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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