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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세속화는 성숙이다
종교의 세속화는 성숙이다
  • 김종락
  • 승인 2010.10.0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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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종교의 미래>
하비 콕스 지음, 김창락 옮김, 문예출판사

“1991년 2월, 호주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 개회식. 상복을 입은 한국의 한 젊은 여성 신학자가 징과 종 따위를 든 무용수들과 함께, 몸에 페인트칠을 한 원주민의 안내를 받으며 등장하자 객석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새어나왔다. 독일 주교, 미국 감리교 감독, 그리고 정교회 고위 성직자들은 유럽과 미국이 지배해온 그리스도교 시대가 끝났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책에서 전하는, 1991년 WCC 총회에서 정현경 이화여대 교수(현 유니온신학대 교수)가 행한 초혼제 분위기다. 정 교수는 초혼제에서 예수 탄생 당시 헤롯의 병사들에게 죽임을 당한 아기들의 영에서 중세 마녀사냥의 희생자,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희생자의 영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불러 위로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국내 보수 개신교계는 이 ‘굿판’에 격렬하게 반발했고, 지금까지 이들이 2013년 WCC 총회 한국 개최를 반대하는 명분 중 하나다. 정 교수가 선보인 ‘퓨전’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의 전통에 어긋나는 것인가.

WCC 총회에서 행한 초혼제

책의 대답을 찾기 전에 저자를 잠시 살펴보자. 하비 콕스는 냉전이 한창 달아오르던 1960년대 베를린에서 동독 교회와 하버드대학 간 연락책을 맡다가 민권운동과 학생운동에 참여한 개신교 신학자다. 이후 하버드대학에서 종교학을 가르쳤는데, <세속 도시>와 <예수, 하버드에 오다>란 저서로 우리에게 익숙한 학자다. 특히 1965년 첫 발간된 <세속 도시>는 세속돼가는 세상을 긍정하며 그 가운데 녹아들어가 세상을 변혁할 것을 주장함으로써 남미 해방신학의 탄생에 다리를 놓은 고전적 저작이다. 이 책에 따르면 세속화와 도시화는 반종교적이라기보다 인간의 성숙 과정이자 신의 선물로, 인간을 인간화하려는 신의 개입임을 뜻한다. 따라서 교회는 과거의 신조와 교리를 수호하는 것에서 탈피해, 사회변화의 선두에서 신의 역사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의 미래>는 콕스가 지난해 하버드대학 퇴임에 맞춰 출간한 책인데, 학자로서 필생의 업적뿐 아니라 지식인으로서 삶이 온축돼 있다. <세속 도시>가 탈종교 시대 종교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한 젊은 학자의 번득이는 재기가 돋보이는 책이라면, <종교의 미래>는 노학자의 폭넓은 통찰이 두드러지는 책이다. 하지만 서두는 다소 예상 밖이다. 새 천년 벽두, 영적 세계의 모습을 특징짓는 현상으로 “전 지구상에서 예상치 못하게 종교가 부흥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이런 추세는 앞으로 몇십 년간 궤도를 이탈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책은 이와 함께 20세기의 해악인 근본주의가 사라지고 종교의 근본적 성격이 변화한다고 쓰고 있다.

새천년, 종교가 부흥한다?

문제는 콕스의 진단과 예측이 안티 기독교가 폭증하고 교회 인구가 줄어드는 현실을 목도하는 우리의 관찰과 어긋난다는 것이다. 반지성적 분위기와 비민주적 구조, 물질만능과 성서의 아전인수 격 해석이 횡행하는 뒤틀린 근본주의에, 초대형 교회의 목사가 “나를 거역하면 본인이나 아들, 딸이 죽거나 알거지가 된다”며 신도를 겁박하는 종교가 앞으로도 부흥할 것이라니 말이 되는가. 근대 이후 최근 스티븐 호킹 박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학자·과학자들도 신이 설 자리를 뒤흔들며 종교를 공격하지 않던가.

이에 대한 콕스의 답은 우리가 아는 종교, 과학자가 공격하는 신은 ‘오래된 종교’이자 ‘오래된 신’으로, 최근 변화하는 종교와 다르다고 한다. 요즘 그리스도교만 해도 배타적인 교리나 신조나 특권화한 성직자 계급이 없는 서구의 바깥에서, 영적 체험과 예수의 삶 따르기, 그리고 사회 변혁을 강조하는 단체를 중심으로 성장한다는 이야기다. 과학자들의 종교 공격에 대해 콕스는 “성서 문자주의를 신봉하며 창세기를 지질학이나 동물학의 논문으로 보는 이들이나 이들을 공격하는 과학자나 덜떨어진 근본주의자임에는 다를 바 없다”며 가볍게 내친다. 이제 종교와 과학 사이에 전쟁이 있을 아무런 근거가 없으며 상호 보완적 사명이 있을 뿐이란다. 

기독교 역사의 세 시기

이런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콕스는 그리스도교 2000년 역사를 세 시기로 구분한다.

첫 시기는 예수 이후 로마가 그리스도교를 국교화하기까지 계속된 ‘신앙(Faith)의 시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알려진 초대 그리스도교라는 단일한 실체가 없었다는 것. 최근 연구에 따르면 초기 그리스도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했다. 삶 속에서 예수의 말씀을 실천하되 공동으로 읽히는 성서도 신학도 없었고, 일률적인 제의도 없었다. 성직자 계급도, 이단과 정통을 판가름할 구별도 물론 존재하지 않았다. 다양한 문화 속의 여러 인종이 다채로운 모습의 성서를 읽으며 풍성한 교의와 형식으로 예수의 말씀을 따르고 실천하는 잡종이었다. 따라서 글 첫머리에서 언급한 정현경 교수의 초혼제도 초기 그리스도교 전통에는 어긋나지 않는다. 문화적·인종적, 그리고 신학적으로 잡종이 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초기 그리스도교의 본모습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이후 ‘사도적 권위’라는 것을 발명하고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전혀 다른 종교로 바뀐다. 예수와 사도적 권위를 이었다는 성직자 계급이 단일한 신조와 교리를 만들고 강요한 두 번째 시기는 ‘믿음(Belief)의 시대’다. 교회가 마련한 신조에 어긋나는 이들은 ‘이단’으로 단죄된 시기, 물론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었다.

마지막 세 번째는 겨우 4반세기 전에 시작된, 재변화의 시기다. 개인의 영적 체험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성령(Spirit)의 시대’이고, 다양한 형태의 종파와 교의가 공존하고 현실 참여와 실천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초기 그리스도교와 흡사하다. 이 현상의 대표적인 사례는 남미의 해방신학과 아시아와 제3세계를 중심으로 퍼진 오순절 신앙이다. 이 시대 사람들이 종교로 돌아서는 것은 내세를 준비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이 약속한 천국, 또는 평화와 정의의 나라를  ‘지금 여기서’ 이룩하려 한다. 그리하여 새로운 그리스도교는 주로 지구촌 남반부를 중심으로 가난한 사람의 권리와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 그리고 개인이 체험하는 성령의 바람 속에서 새 시대를 여는 것이다. 

콕스가 남긴 미지수

이쯤 되면 <종교의 미래>는 <세속 도시>과 맥을 같이하지만 미심쩍은 점이 있다. 성령이 부흥한 주요 사례로 한국의 초대형 오순절 교회 등을 들며 이들을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의 기획과 동급으로 취급하는 점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성령을 강조하며 성장한 교회일수록 돈과 권력에는 민감하면서 사회정의나 인권, 생명평화 운동에는 무심하거나 오히려 장애물로 작용하지 않았는가. 기도와 헌금만 잘하면 영혼의 구원뿐 아니라 건강과 부까지 얻는다는 것이야말로 개신교를 성장제일주의와 물신주의로 몰아간 주요한 원인이 된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콕스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책은 성령을 강조하며 반지성·비민주적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교회의 위험과, 열심히 기도하고 헌금한 뒤에도 범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올 수 있는 신자의 위험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이들이 그리스도교에 신앙의 재탄생을 향한 연료를 공급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인지 여부도 미지수로 남긴다.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새 시대의 여명 속에서도 여전히 위기라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김종락 
농부. 오랫동안 신문사 문화부·국제부 등에서 일하다 문화부장을 잠시 지냈다. <스코트 니어링 평전>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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