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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미세먼지, 봄꽃, 사랑
[안치용의 프롬나드] 미세먼지, 봄꽃, 사랑
  • 안치용 / 한국CSR연구소장
  • 승인 2019.03.18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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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인 설명이 따라야 하겠지만 단순화하여, 미세먼지가 우리 몸에서 어떤 DNA의 스위치를 켤 수 있다고 한다. DNA는 말하자면 생물학적 본질인데, 외부 환경 변환에 우리의 본질이 변한다고 하니 두려운 마음이다. 변화는 생명의 또 다른 본질이기에 변화가 두려운 게 아니라 그렇게 쉽게, 미세먼지 따위에 변할 수 있다는 게 두렵다. 변한다는 것을 알지만 잠정적인 변화의 유예를 가정하며 우리네 삶이 꾸려지지 않는가. 다시금 우리 몸이 우리 존재가 얼마나 취약한지 실감한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황사,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그래도 봄이 오면 꽃이 핀다. 늘 돌아오는 계절이지만 이 계절에, 어디선가에서 개나리라든지 매화라든지 혹은 목련꽃이라든지 봄꽃과 처음으로 맞닥뜨리면 늘 새롭게 놀라곤 한다. 며칠 전 길모퉁이를 돌다가 갑자기 개나리와 마주쳤을 때 그랬다. 미세먼지가 어떤 DNA의 스위치를 켜려면 체내에 쌓여야 하지만, 봄꽃과 조우함에 따른 또 다른 DNA 스위치의 켜짐은 축적이 필요 없다. 한 송이 봄꽃으로 족하다.

 

잘 살아왔다. 50번이 넘는 봄꽃과의 첫 만남을 모두 그럭저럭 잘 버텨왔다. 봄꽃이 매년 이즘에 작동시킨 내 몸속의 특정 DNA는 내 몸과 내 마음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라디오를 틀면 흘러나오는 유행가는 언제나 사랑을 주장한다. 그 정도로 사랑이 유행하는 것은 아니지 싶은데, 조만간 펼쳐질 저 봄꽃의 창궐처럼 그렇게 압도적이진 않지 싶다만, 유행가는 떠난 뒤에야 사랑인 줄 안단다. 그렇기는 하다. 동시에 그런 판단은 사랑의 알리바이가 아닐까. 부재증명으로 존재를 입증하려는 역설의 기도. 사랑이 떠난 뒤에야 알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봄은, 개화는 도래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임재를 깨닫게 한다고 하겠다. 사랑과 개화가 관점에 따라선 작동메커니즘이 비슷한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사랑이 여러모로 고비용의 과업인 반면 봄꽃은 공짜로 주어진다는 결정적 차이가 있기는 하다. 공짜이지만 사람을 놀라게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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