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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상업영화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악질경찰>과 <생일>
[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상업영화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악질경찰>과 <생일>
  • 임정식(영화평론가)
  • 승인 2019.03.2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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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상업영화가 ‘세월호’를 소환했다. 이정범 감독의 <악질경찰>(20일 개봉)과 이종언 감독의 <생일>(4월 3일 개봉)이다. 두 영화는 불과 5년 전에 일어났던 세월호 참사를 상업영화의 영토 안으로 처음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정범, 이종언 감독은 언론시사회에서 이구동성으로 “진정성”을 강조했다. 이정범 감독은 “논란을 각오하고 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는 두 감독이 ‘세월호’를 다룬 상업영화를 제작하면서 심적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감독들의 이러한 부담감은 영화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상업영화가 여전히 생생한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비극적인 실화를 기억하는 방식이 고정돼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략적인 분류는 가능하다. 이때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상업영화를 참고할 수 있다. <꽃잎>(1996)이나 <화려한 휴가>(2007), <26년>(2012)은 사건의 당사자 혹은 유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택시운전사>(2017)는 사건과 관련이 없는 외부인의 이야기이다. 즉 영화 주인공이 사건과 직접 관련돼 있는 인물인가 아니면 외부인인가 하는 두 가지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인물의 이러한 차이점은 영화 서사 및 주제와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악질경찰>은 외부인, <생일>은 내부자의 이야기이다. 분노와 응징, 피해자들의 정신적 연대, 화해의 서사로 나눌 수도 있다.

 

<악질경찰>의 조필호는 안산단원경찰서 소속의 경찰관이다. 하지만 그는 세월호 참사와 무관한 인물이며, 그에 대해 관심조차 없다. 조필호는 오직 ‘뒷돈은 챙기고, 비리는 눈감고, 범죄는 사주하는 악질경찰’일 뿐이다. 범죄조직과 연루돼 목돈이 필요했던 조필호는 경찰 압수창고를 털 계획을 세우는데, 그의 사주를 받아 창고에 들어갔던 한기철이 뜻밖의 폭발사고로 죽으면서 계획이 틀어진다. 그리고 조필호가 폭발 사건의 결정적인 증거를 우연히 가지게 된 고등학생 미나를 만나면서 서사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미나의 존재가 서사의 핵심적인 변곡점이 된다.

<악질경찰>은 장르적으로 범죄, 액션물이다. 그리고 쓰레기 같은 경찰, 대기업 오너를 통해 부조리한 시대상을 고발하는 장르영화의 기본 문법을 충실하게 따른다. 이는 <열혈남아>, <아저씨>, <우는 남자> 등 장르영화에 천착해 온 이정범 감독의 장기이기도 하다. 실제로 <악질경찰>에는 범죄, 액션드라마의 기본 속성인 폭력의 선정성이 흘러넘친다. 특히 언어의 폭력성은 다른 범죄, 액션영화보다 훨씬 강력하고 노골적이다. 부패 경찰, 범죄 집단, 타락한 대기업 오너 등은 우리나라 범죄, 액션드라마의 전형적인 인물 유형이다.

<악질경찰>은 ‘세월호’를 소환해 차별성을 꾀한다. 감독의 말을 빌려서 정리하면, <악질경찰>은 장르영화에 ‘세월호’를 추가한 것이 아니라 ‘세월호’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장르영화의 틀을 빌린 작품이다. <악질경찰>의 이러한 특징은 미나의 행적, 그리고 미나와 조필호의 관계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문제는, <악질경찰>이 왜 ‘세월호’를 이야기하는지 혹은 ‘세월호’의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조필호는 인물의 성격이 변화한다는 점에서 입체적인 캐릭터이다. <악질경찰>은 조필호가 변화한 결정적인 계기를 ‘세월호’에서 찾고 있다. <악질경찰>은 조필호의 성격 변화의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를 초반에 마련해 놓는다. 조필호가 모텔에서 애인과 노닥거리고, 텔레비전에서 세월호 참사 현장을 생중계하는 장면이다. 이때 조필호는 텔레비전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 텔레비전 화면이 왜 세월호인가 하는 것이다. 공간의 인접성만으로 인물과 사건의 유기적인 관련성을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악질경찰>은 이 질문에 설득력 있는 대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조필호는 우리나라 범죄, 액션영화의 전형적인 인물 유형이며, 그의 행동은 부패 경찰들이 보여준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의 근무지가 경기도의 다른 지역이어도 무방하다. 따라서 조필호의 변화 요인은 ‘세월호’가 아니어도, 미나가 아니어도 관계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악질경찰>은 또한 태성그룹 회장이자 희망장학재단 이사장 정이향의 행적을 비중 있게 다룬다. 그의 이중성과 부패를 통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고발한다. 즉 <악질경찰>은 대기업의 부조리와 ‘세월호’를 같은 맥락에서 접근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기업 오너와 세월호 참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는 느슨하고 추상적이다. 조필호, 정이향, 미나의 연결고리가 된 폭발 사건이 우연에 기대고 있는 탓이다. 조필호와 마찬가지로 정이향의 행적 역시 관습적, 보편적이라는 점도 <악질경찰>을 ‘세월호’와 관련시키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래서 정이향을 향한 조필호의 분노는 허공을 가르는 주먹처럼 느껴진다. 그는 다른 과녁에 화살을 쏜 궁수인 것이다. <악질경찰>은 장르영화로서 ‘세월호’를 분노와 각성의 이야기로 재구성하지만 의도의 순수성이 결과물의 진정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아쉬움을 남긴다.(그러한 점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외부자, 방관자였던 <택시운전사>의 김만섭의 행적이 참고가 될 수 있다.)

 

<생일>은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이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엄마 순남과 아빠 정일, 주변 인물과 다른 유가족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린다. 죽은 아들의 생일 모임에서 남은 이들이 서로 간직하고 있는 기억을 나누는 장면이 핵심이다. <생일>의 장점은 에피소드의 구체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미덕은 이종언 감독이 2015년 여름부터 유가족들 곁에서 봉사활동을 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악질경찰>이 액션과 폭력, 분노와 슬픔의 서사로 채워진 것과 달리 <생일>은 눈물과 슬픔, 화해의 서사로 이뤄져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생일>에서 갈등은 순남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순남과 정일, 순남과 다른 유가족의 관계는 어긋나 있다. 정일은 세월호 참사 당시 베트남에 있었고, 다른 유가족들은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일>의 인물들은 선악 이분법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그들은 상처를 받아들이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따라서 순남의 변화는 감독의 주제의식과 연결돼 있다. 생일 모임에 참석한 행위가 곧 망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일>은 기억을 공유하는 것, 슬픔에 공감하는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악질경찰>과 <생일>에서 조필호와 순남은 내면의 변화를 겪는다. 그 변화의 방향과 질감은 서로 다르다. 이는 두 영화가 ‘세월호’를 전유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 어떠한 방식이 더 적절한지 혹은 옳은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외부자/내부자, 폭력/눈물, 분노/용서, 각성/화해처럼 각 영화의 장르나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영화 서사의 관점에서,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사건을 소재로 소비하는 일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결과론적이라고 해도, 결국은 영화가 짊어져야 할 몫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 임정식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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