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일파만파 퍼지는 KT 정관계 로비 의혹
일파만파 퍼지는 KT 정관계 로비 의혹
  • 정초원 기자
  • 승인 2019.03.25 11: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혜채용 논란 이어 경영고문 명단 '수면 위'
"군·경찰 출신 경영고문에 총 20억원 지급"
황창규 KT 회장. 사진/뉴스1
황창규 KT 회장. 사진/뉴스1

KT가 특혜채용 논란에 이어 정관계 로비 의혹에 휩싸였다. 정치권 인사들과 군인·경찰 출신 등 고위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자문료를 지급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황창규 KT 회장이 이 과정을 주도했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2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황 회장이 약 20억원에 달하는 자문료를 들여 위촉한 'KT 경영고문' 명단과 '경영고문 위촉계약서', '경영고문 운영지침'을 함께 공개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KT는 2014년 1월 황 회장 취임 이후 민원 해결을 위해 이들에게 고액의 급여를 지급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우선 이 의원은 KT가 정치권 인사 6명, 퇴역 장성 1명, 전직 지방경찰청장 등 퇴직 경찰 2명, 고위 공무원 출신 3명, 업계 인사 2명에게 매월 자문료 명목의 보수를 지급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KT 퇴직 임원이 맡는 고문과 다른 외부 인사로, 그 동안 자문역, 연구위원, 연구조사역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그중에서도 친박 실세로 꼽히는 홍문종 의원의 측근은 3명으로, 이들은 각각 홍 의원의 정책특보, 재보궐선거 선대본부장, 비서관을 지냈다. 위촉 당시 홍 의원은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현 과방위) 위원장이었다. 

2016년 8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KT 경영고문으로 활동한 남모씨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과 18대 대선 박근혜 캠프 공보팀장을 지낸 인물이다. 17대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을 지낸 박성범 전 한나라당 의원은 2015년 9월부터 2016년 8월까지 매월 517만원을 받고 KT 경영고문으로 활동했다. 2015년 1월부터 2017년 1월까지 활동한 이모씨는 경기도지사 경제정책특보 경력을 발판으로 KT에 영입됐다. 정치권 출신 고문들은 매달 약 500만~800만원의 자문료를 받았다.

이 의원은 공무원 출신 경영고문들이 정부 사업 수주를 도운 것으로 보고 있다. 2016년 KT가 수주한 '국방 광대역 통합망 사업' 입찰 제안서에는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신참모부장, 육군정보통신학교장 등 군 통신 분야 주요 보직을 거친 경영고문 남모씨가 등장한다. 국방부의 사업 심사위원장은 남모씨가 거쳐간 지휘통신참모부 간부이기도 하다. 당시에도 KT가 남모씨를 내세워 750억짜리 사업을 수주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KT와 직접적 업무관련성이 있는 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국민안전처, 행정안전부 고위공무원 출신도 경영고문에 위촉됐다. 이들은 2015년 '긴급 신고전화 통합체계 구축 사업'을 비롯한 정부 사업 수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물로 분류된다. 경찰 출신 고문은 사정·수사당국 동향을 파악하고 리스크를 관리해줄 수 있는 IO(외근정보관) 등 정보통들로 골랐다는 게 이 의원의 설명이다. 

이 의원은 "KT 직원들은 물론 임원들조차 이들의 신원을 몰랐다"며 "공식 업무가 없거나 로비가 주업무였던 셈"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경영고문이 집중적으로 위촉된 2015년 전후는 △유료방송 합산규제법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의 합병 △황 회장의 국감 출석 등 민감한 현안이 많았을 때다. 이 의원은 "정치권 줄대기를 위해 막대한 급여를 자의적으로 지급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점을 고려하면 황 회장은 업무상 배임 등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로비의 대가로 정치권 인사를 가장 취업시켜 유・무형의 이익을 제공했다면 제3자 뇌물교부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KT가 정관계 인사들에게 거액의 고문료를 지급하는 과정을 황 회장이 직접 주도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날 이 의원 측이 공개한 '경영고문 운영지침'을 보면 제5조의 '경영고문에 대한 위촉 권한은 회장에 있다', 제7조의 '고문의 최종 위촉여부는 회장이 결정한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이 운영지침대로라면 회장은 경영고문으로 특별한 비용과 기간의 제한 없이 누구든 위촉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제14조의 '복리후생 기준은 회장이 별도로 정한다', 제17조의 '정하지 아니한 사항은 회장이 정하는 바에 따른다'는 조항을 보면 회장의 전권 아래 경영고문 운영이 이뤄진 것으로 해석된다. 

경영고문 중 일부 인사는 운영지침 결격사유에 해당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 방송통신위원회 국장을 지내고 공직유관단체 근무 이력이 있는 차모씨의 경우 취업제한심사를 받지 않았다. 운영지침 제8조에 따르면 '직자윤리법에 의해 관련 사기업체의 취업이 제한되는 자로서 관할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취업제한 여부의 확인 또는 취업 승인을 받지 않은자'는 결격사유에 해당한다. 

이 의원은 "경영고문이 애당초 회사 내규와는 상관없이 회장 임의대로 운영됐고, 운영지침은 채용의 불법성을 가리기 위한 장치일 뿐이었다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면서 "민간 기업 KT가 내규로 경영고문을 위촉하는 것은 자유지만, 뚜렷한 활동 내역이나 실적이 없는 자에게 급여를 지급해왔다면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가 된다"고 지적했다.

KT의 정관계 로비 의혹이 일파만파 번지자 KT 노동조합도 반발하고 나섰다. KT 새노조는 "KT 내에서는 유력자 자제 특혜채용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던 게 소위 그 자문위원들이었다"며 "황 회장은 지금이라도 자문료의 출처와 지급 규모 전체를 밝혀야 한다. 새노조는 경영진에 대해 자문료 지급 경위에 대해 추가 고발을 즉각 단행하겠다"고 했다. 노조는 오는 29일 KT 주주총회를 앞두고 황 회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황 회장이 대표이사로서 주총을 주재한다면 주주를 농락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KT 측은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해 "관련 부서의 판단에 따라 경영상 도움을 받기 위해 정상적으로 고문 계약을 맺고 자문을 했다"고 해명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

정초원 기자
정초원 기자 chowon616@ilemonde.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