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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의 시네마 크리티크] 뜨거운 욕망과 차가운 외로움 그 사이 어딘가 : <호수의 이방인>
[최재훈의 시네마 크리티크] 뜨거운 욕망과 차가운 외로움 그 사이 어딘가 : <호수의 이방인>
  • 최재훈(영화평론가)
  • 승인 2019.04.01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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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과 욕망의 이야기 앞에서 관객들은 머뭇거리게 된다. 억누를 수 없는 개인적 욕망이 사회적 윤리에 맞설 때,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주인공은 단죄해야 할 대상인지 동정해야할 객체인가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 관객들은 개인적 욕망에 빠져 도덕이라는 사회적 함의를 배신한 주인공이 단죄 받는 것으로 매끄럽게 죄의식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관객들은 은밀한 동물적 욕망에 대해서는 충분히 대리만족하고 싶지만, 동시에 도덕률에 갇힌 자신의 상식적 삶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고, 상식과 도덕의 틀에 갇혀 살아가는 스스로의 삶을 위안 받고 싶은 것이다.

사회적 제제와 욕망의 자발성, 그 사이의 힘겨루기에서 인간 욕망이 도덕을 누르는 순간, 열띠게 순수했던 욕망은 사실 도덕적 비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런 사회적 금기를 대하는 도덕적 함의 속에서 금지된 인간의 욕망을 그리는 영화는 언제나 이런 딜레마와 맞서야 한다. 그렇게 영화 속 금지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관객들의 관음적 욕망을 위해 적나라하게 노출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문화적 함의를 그 위에 단단하게 덧입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안전장치를 과감하게 깨부수고, 강렬한 메시지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영화도 있다. 적나라하게 노출하지만 도덕적 안전장치를 거세시켜버린 알랭 기로디 감독의 <호수의 이방인>은 어떤 의미에서 관객들을 꽤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제목처럼 호숫가이다. 잔잔하게 숲 속을 어우르는 바람과 따스하게 호수를 비치는 햇살, 그리고 그 아래 여유롭게 누워있는 사람들. 얼핏 보기에는 한가로운 휴일 풍경 같지만, 남자들만이 모이는 이 호수의 사정은 다르다. 호수에 도착한 프랭크는 대뜸 옷을 벗고 주위를 둘러본다. 욕망의 눈길로 서로를 훑는 남자들. 프랭크가 간 호숫가는 게이들이 짝을 찾아 즉석에서 섹스를 하는 장소이다. 모두 섹스를 원하지만 그렇다고 모두와 섹스를 하는 것은 아니다. 취향에 맞지 않는 사람의 접근은 피하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은 늘 다른 사람과 함께 있다. 허탕만 치다가 프랭크는 어느 날 미셸을 만나 섹스를 한다. 그리고 몸을 나눈 뒤 마음이 자란다. 격한 절정의 순간이 끝난 후, 그 공허함처럼 모두가 외롭다. 어쩌면 호수에 모인 사람들은 섹스를 원하는 것 같지만, 헐벗은 몸으로 나누는 체온이 더 간절해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미셸이 살인자라는 사실이다. 스릴러의 외피를 한 <호수의 이방인>의 본격적인 공포가 시작되는 지점은 여기다. 알랭 기로디 감독은 살인자가 누구인지를 일찌감치 관객들과 주인공에게 알려버린다. 문제는 정보가 드러난 그 이후다. 프랭크는 미셸이 살인자라는 사실을 알고 그를 두려워하지만 동시에 욕망한다. 프랭크와 관객이 살인자의 정체를 알아 챈 다음, 기로디 감독이 집중하는 것은 인물 사이의 심리적 변화다. 살인사건이 일어났지만, 호숫가는 변한 것이 없다. 쾌락의 욕망이 도덕을 앞선다. 호숫가에 모인 사람들은 누군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거나, 자신도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앞서 맘껏 섹스의 쾌락을 누릴 수 있는 자신들만의 아지트가 사라질까 걱정하고, 다시 섹스를 위해 모인다.

 

섹스와 지독한 욕망을 다루지만, <호수의 이방인>이 품어내는 이야기는 ‘인간본성’의 잔혹함과 동시에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인간 본연의 외로움이다. 영화 속 섹스 장면은 여과 없이 자극적이고 적나라하다. 만나고, 탐색하고, 눈이 맞으면, 애무하고, 섹스하고, 끝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망설임도 죄책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떤 쾌락의 끝에도 채워지지 않는 이들의 근원적 외로움은 반짝이는 호수의 심연처럼 그 깊이를 알 수가 없다. 인과응보나 권선징악이라는 윤리적 단죄도,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파괴한 타인의 가치에 대한 반성도 없이 <호수의 이방인>은 끝이 난다.

영화 속 섹스 파트너를 찾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동물적 본능에 뜨겁게 달궈져있지만 그들의 마음은 차갑고 시린 바닥에 맨 발로 선 것 같다. 짧은 포옹과 키스, 뜨거운 섹스로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인 이들의 욕망은 잠시나마 따뜻해지라고 뜨거운 물을 붓거나, 도톰한 양말을 신어보는 행위 같다. <호수의 이방인>은 인간이 탐할 수 있는 욕정과 욕망의 그 끝을 극한으로 보여주며, 동시에 마음이 시리고 외로운 사람들의 맨발을 꾸역꾸역 이렇게라도 들여다보자고 말한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진공상태에 가까운 이 영화의 엔딩은 그 공허함만큼이나 큰 울림을 만들어 낸다.

 

 

* 사진 출처 : imdb.com_stranger by the lake

 

 

글 :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제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였다. 2018년 이봄영화제 프로그래머, 2018년 서울무용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객석, 텐아시아 등 각종 매체에 영화와 공연예술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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