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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칼럼] 돌아갈 곳은 없다
[차기태의 경제칼럼] 돌아갈 곳은 없다
  • 차기태
  • 승인 2019.04.04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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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1999년 4월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가 된 지 20년 만에  물러나게 됐다. 지난달 27일 열린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이 부결됐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최근 들어 급부상한 주주행동주의 물결의 첫 희생양이 됐다. ‘강성부펀드’라고 불리는 KCGI가 혜성처럼 등장해 그의 사내이사 연임반대를 외쳤고, 국내외의 기관투자가와 소액주주들이 공감했다, 막판에는 국민연금까지 거들었다. 
 
회사측도 나름대로 대비했다. 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주들을 찾아다니며 회사측을 지지해달라고 읍소했다. 그럼에도 주주행동주의의 거센 물결을 막아내지 못했다.
 
조 회장의 ‘실각’을 초래한 것은 최근 잇따라 일어난 총수일가의 ‘갑질’ 파문이었다. 흔히 ‘오너리스크’로 일컬어지는 해사행위였다. 지금까지 한국의 재벌역사에서 총수가 갑질 사건의 여파로 주총에서 밀려난 일은 없었다. 따라서 이번 대한항공 주주총회 결과를 두고 ‘주주혁명’이라고 일컫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동생인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은 부실경영으로 한진중공업이 자본잠식 상태에 빠짐에 따라 퇴진했다.  
 
항공업계의 경쟁사인 금호아시아나항공에서는 총수인 박삼구 회장도 부실경영 탓에 지난 28일 짐을 쌌다. 박삼구 회장의 퇴진은 그룹의 핵심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의 감사보고서가 회계법인에 의해 퇴짜 맞은 것이 계기가 됐다. 비록 다시 ‘적정’이라는 의견을 받아내기는 했지만, 시장의 불신은 해소되지 않았다.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문제가 겉잡을 수 없이 확산돼 갔다. 
 
그러자 박삼구 회장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자의인지 타의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그룹 내 모든 직함을 내려놓기로 했다. 총수 자리를 명실공히 내놓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계기로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 악화 문제는 더욱 크게 부각됐다.  
 
박삼구 회장은 과거 워크아웃으로 잃었던 경영권을 2015년 간신히 되찾은 바 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무리가 따르고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경영권을 되찾은 후에도 지난해 기내식파동의 경우처럼 바람 잘 날 없었다. 
 
이제 또다시 떠밀리듯 떠났으니 더 이상 되찾겠다는 꿈은 영원히 버려야 할 상황이다. 오르페우스가 저승에서 아내 에우리디케를 데리고 나오다가 영원히 놓쳐버렸던 것과 비슷한 처지이다. 박삼구 회장은 오히려 채권단으로부터 사재출연을 요구받는 등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추궁을 당할 처지에 놓였다.     
 
총수 자리에서 떠난 인물이 더 있다. 지난 2017년 비서 성추행 혐의가 불거진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자리를 비웠고, 지난해 11월 말에는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이 전격적으로 자진 사퇴를 선언했다.   
 
이들이 경영일선에 복귀하기는 아마 어려울 것이다. 동부그룹의 경우 김준기 회장의 사건이 워낙 불미스러운데다 해외에 나간 후 아직까지 귀국도 하지 않고 있다. 이웅렬 코오롱 회장도 ‘자진사퇴’후 차명주식 은닉 사실이 드러나 기소됐다. 그러니 무슨 면목으로 임직원과 주주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조양호 회장도 안심할 수 없다. 내년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이사의 직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번에는 강성부펀드의 지분보유 기간이 6개월 미만이라는 점을 들어 법원의 힘으로 강성부펀드의 공세를 봉쇄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내년에는 그런 방호벽도 사라진다. 그러니 다시 시험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이처럼 한국재벌의 고질적인 총수의 ‘황제경영’과 총수일가의 ‘갑질’이 설 땅은 좁아지고 있다. ‘시장의 힘’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고 올해부터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고 있다. 주주행동주의는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덕분에 소액주주들의 참여 공간도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총수가 무리하게 전횡을 부리거나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하면 시장의 힘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재벌총수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황제경영’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아직 멀다. 그렇지만 과거와 같은 전횡을 일삼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물러난 총수가 과거처럼 권토중래하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게다가 경영실패까지 겹쳐서 물러난 총수들에게 명예로운 퇴로는 더 이상 없다. 그러니 아직 현직에 있는 총수들도 이제는 정말로 자중자애해야 한다. 
 
차기태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편집장(eramus414@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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