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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항거: 유관순 이야기>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항거: 유관순 이야기>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19.04.11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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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의미 있게 개봉한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대한민국헌법 전문과 같이 4월 11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건립의 기초를 한 번 더 기억하고자 고른 영화다.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시작한 만세운동은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포하며, 3월 3일 고종황제의 장례식으로 몰려든 전국각지의 사람들에 의해 수개월간 전국에서 일어나게 된다. 1919년 4월 11일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3·1운동을 그 시작점으로 하고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만세운동에 참여한 인원 200만 명, 사망 7,509명, 부상 15,850명, 체포 45,306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일본은 3·1운동을 기점으로 그간의 무력을 앞세운 강압적인 무단통치에서 조선인을 분열시키기 위한 문화통치로 통치방식을 바꾸며 친일파를 양성하게 된다.

 

이런 모진 시대에 3·1운동의 상징이자 일제를 향한 저항의 상징이 된 유관순. 3·1만세 운동하면 생각나는 인물, 유관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친숙하고 어찌 보면 신화화된 인물인 유관순을 영화로 그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숭고한 유관순의 정신에 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항거 : 유관순 이야기>는 유관순이라는 인물이 가진 맑은 심성과 숭고한 저항의식을 드러내는 동시에 17세 소녀의 감성을 가진 실존인물로 그려내려고 노력한다.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을 보고 3월 8일 고향 병천으로 내려가 독립 만세운동을 전하고 이후, 4월 1일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서대문 형무소에 갇힌 후 고문으로 사망하기까지 1년 6개월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녀 유관순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날 만세를 부르다 죽어갔고, 자신과 오빠 유우석은 체포된다. 1심에서 징역 5년, 2심에서 3년을 선고받고, 몸 하나 뉠 곳 없는 세평도 안 되는 서대문 감옥 8호실에 수십 명의 사람들과 함께 수감된다. 그곳에는 학생, 아들을 잃은 엄마, 술을 따르던 기생, 그리고 만삭의 여인까지 3·1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잡혀 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다. 서 있으면 피가 안돌아 다리가 썩기 때문에 계속 방안을 빙빙 맴돌고, 노래하나 자유롭게 부를 수 없던 사람들, 그들은 울분을 참으며 하루하루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린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기개가 높았던 유관순은 끝까지 당당한 소녀에게 치욕을 맛보게 하려는 갖가지 고문을 가하는데 굴하지 않는다. 영화는 역사고증을 통해 유관순의 마지막 1년을 담아낸다. 요주의 인물이었던 유관순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1920년 3월 1일 또다시 만세를 부르며 끝까지 일제에 굴복하지 않고 항거한 용기 있는 외침은 100년 후 우리에게 단순한 감동 이상의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3·1 만세운동 속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위인들만이 아닌 평범한 여성이었던 다양한 독립운동가의 삶을 알게 되는 기회를 제공한다. 영화는 독립운동가이기 전에, 열일곱 소녀였던 유관순의 감정과 심리 변화, 그리고 서대문 감옥 ‘8호실 여성들’과 연대하는 유관순의 모습을 담아내며 우리가 몰랐던 유관순의 이야기를 알리고, 2019년 주체적이고 당당한 유관순을 새롭게 재조명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결국 유관순은 출옥을 이틀 앞둔 1920년 9월 28일 17살의 나이로 서대문 형무소의 차디찬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다. 사망원인에 대해 여러 설이 있는데 감옥 내에서 일본 경찰들에 의해 고문과 성폭력이 있었다는 당시 신문 기사도 있고, 2013년에 나온 옥중 보관문서에는 유관순 서대문형무소에서 “타살”이라는 기록도 남아있다.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생명 보존이라는 본능 앞에 비겁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17세의 어리고 가녀린 소녀를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만들었을까?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죽어간 수많은 독립투사들, 그들은 왜 자신의 생명을 던져가며 죽어갔을까? 이런 질문이 꼬리를 물지만 극한상황에서 인간이 낼 수 있는 강한 의지와 숭고미가 극치에 다다른 지점을 알기는 쉽지 않다. 영화는 이 고민을 ‘이시다’라는 친일파를 내세워 조심스럽게 보여준다.

유관순은 자유가 뭐냐고 묻는 ‘이시다’의 질문에 “하나뿐인 목숨을 내가 바라는 대로 쓰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 장면은 유관순을 가둬놓은 이시다보다 갇혀있는 유관순을 더 자유롭게 보이게 한다. 유관순에게 자유는 단순히 죽음으로써 얻은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서성희
영화평론가, 대구경북영화영상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 대구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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