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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에 휩싸인 노트르담에 관하여
화마에 휩싸인 노트르담에 관하여
  • 브누아 뒤퇴르트르 l 작가
  • 승인 2019.04.30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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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1954-니콜라 드 스타엘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이자 작곡가인 티에리 에스케쉬가 노트르담 대성당 공연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저녁, 나는 이 성당의 석조 연단에 올라 파이프 오르간을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를 얻었다. 외부인 출입이 제한된 시간이었기에, 성당 안에는 공연 리허설을 참관하던 나와 몇몇 지인들만 오롯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장장 두 시간 동안 노트르담 대성당의 장엄한 궁륭(穹窿) 천장 아래서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감상하는 기쁨을 누렸다. 파이프 오르간 제작 명인 아리스티드 카바이에콜이 만든 이 기가 막힌 악기를 연주한 티에리 에스케쉬는 즉흥 연주를 곁들이기도 했다. 

그의 연주를 들으며 성당의 중앙홀을 굽어보는 아케이드와 그 바깥으로 길게 늘어선 복도를 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중세의 색채와 종교, 문학, 음악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공간에 압도돼 당대의 역사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감미롭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노트르담의 꼽추 콰지모도가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저명한 오르간 연주자였던 루이 비에른은 1937년의 어느 날, 바로 이 오르간을 연주하다 숨을 거뒀다고 한다.

시테섬에서 30년을 줄곧 살아온 나는 스스로 ‘노트르담 대성당 구역’의 주민이라 여기며, 주변을 지날 때마다 수시로 성당에 들어가 그곳의 고즈넉한 기운과 특유의 공간, 그리고 향내를 한껏 만끽하곤 했다. 관광 인파가 아무리 많아도 성화(聖畫)와 성물(聖物), 신앙심 혹은 주술적 의미를 담는 촛대가 놓인 성당 안쪽의 제실(祭室) 사이사이를 거니는 나의 즐거움을 가로막지는 않았다. 성당 앞쪽 제단에서 미사가 진행될 때면 관광객과 신도들의 영역이 분리돼 병존하는 듯한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지만, 성당의 넓은 공간은 종교와 광장의 역할을 함께 포용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기하학적인 고딕양식 구조와 대비되는 횡복도 위의 장미창과 바로크풍의 제단의 아름다움을 조용히 감상하곤 했고, 이후 성당을 나설 때면 성당 앞뜰 바닥에 있는 프랑스의 거리 측정 기준점 ‘푸앵제로(Poin zero, 도로원표)’에 눈길을 뺏기곤 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에 들를 때마다 그때그때 마음을 끄는 요소를 새로 발견하곤 했기에, 어디 하나 애정을 쏟지 않은 구석이 없을 정도다. 우선, 샤누아네스 거리 방향에서는 성당 북쪽 외벽의 석상과 석누조(石漏槽; 악마 형상을 한 고딕 건축물의 낙수받이)를 가까이에서 차분하게 살펴볼 수 있는데, 19세기 오스만 파리 개조사업으로 생겨난 대광장에서 조망하는 성당 서쪽의 장엄한 자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센 강변 좌안의 제방에서 마주하는, 꽃과 나무로 둘러싸인 화려한 성당 남쪽의 모습도 아주 일품이다. 겨울이 돼 잎이 무성하던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면, 그 위에 까마귀와 참새떼가 찾아와 바삐 울어대는 그런 곳이다. 좀 더 멀리 쉴리 다리 위에서 이곳을 바라보면, 파리의 중심에 우뚝 솟은 노트르담 대성당이 도시 전체를 듬직하게 지켜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보부르 거리에서 파리시청을 향해 걸어 내려오다 보면, 성당이 가장 높은 첨탑과 지붕(4월 15일 화재로 붕괴)부터 서서히 위용을 드러내는데, 그 자태가 꼭 시테섬의 다른 건축물을 모두 압도하며 군림하는 1인자처럼 보였다.

날이 좋을 때면 나는 성당 동쪽의 요한 23세 광장 그늘을 즐겨 찾곤 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아치형 기둥이 둥근 반원형을 그리며 성당의 후진(後陣)을 이루고, 주변의 아름다운 정원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한여름에는 청청히 우거진 나뭇잎이 선선한 그늘을 제공하고, 중세시대 만들어진 분수에서 뿜어 나오는 물줄기는 청량감을 더했다. 그리고 센강이 좌안과 우안으로 나뉘는 이곳에 설치된 야외 음악당에는 이따금 스웨덴 군악대나 프랑스 해군단의 공연이 펼쳐지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흥취와 도시의 정취에 흠뻑 젖어 즐거움은 배가됐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고, 관광산업에서 마땅히 보호해야 할 대상인 시테섬 일대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처음에는 몇 안 되던 가게들이 기념품 상점이나 가짜 향토음식점으로 신속히 변신했고, 그다음에는 하이브리드 자전거, 자전거 택시, 그리고 2층짜리 관광버스가 길을 오가기 시작했다. 결혼식 복장으로 웨딩스냅을 찍는 아시아인들의 수가 나날이 증가하면서 아르셰베셰 다리는 파리의 ‘낭만’이라는 키치적 환상을 자극하는 명소로 떠오른 동시에, 적잖게 훼손을 입기도 했다. 관광객들이 다리 난간에 채워둔 요상한 사랑의 상징인 자물쇠를 제거하느라 파리시는 기존의 난간을 새로 교체해야 했다.

프랑스의 여타 지역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구역을 급습한 실질적인 변화는 여러 차례에 걸친 테러 공격에 기인한다. 따라서, 이제 노트르담 대성당에 입장하려면 누구든 무조건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성당의 정문을 통한 신속하고 유동적인 출입은 옛일이 됐다. 대신 대성당 광장 한가운데까지 길게 늘어선 대기열을 거쳐야만 한다. 나는 아무 때든 주변을 지나다 한 번씩 노트르담 대성당을 드나드는 호사를 더는 누리지 못한다. 분실 가방을 폭발물로 오인한 경고조치도 예전보다 많이 증가했고, 심상치 않은 긴장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보안구역의 범위는 매번 확대됐고 경찰은 수중에 실탄이 장전된 총을 든 채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었다. 

아주 최근, 또 한 번 폭탄으로 의심되는 수상한 물체가 발견되는 바람에, 노트르담 대성당과는 상당히 멀리 떨어진 위치임에도 집으로 통하는 거리가 봉쇄돼 발이 묶이기도 했다. 당시 방벽 바로 뒤에 있는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을 설명하자, 젊은 여경은 “불편하시면 다른 동네로 이사 하시죠”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이런 보안 조치는 저명인사들이 노트르담 대성당을 방문할 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미셸 오바마가 자녀들과 함께 성당을 방문했을 당시에도 나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들이 성당을 떠나 진입 통제가 해제되기만을 마냥 기다려야 했다. 

2017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시테섬 정비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그 계획은 법원에서부터 경찰청을 거쳐 파리시립병원에 이르는 이 구역 일대를 대규모 관광·상업지구로 탈바꿈시킨다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예를 들면, 지역 활성화를 이유로 찬연스레 빛나는 꽃시장을 유리 돔으로 덮는 방안을 상정하는 식이었다. 

같은 시기, 아르콜 거리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왔던 오래된 가게가 문을 닫고 말았다. 신문과 종교 사진·삽화로 가득했던 그 가게는 노트르담 대성당 주변 구역이 에펠탑을 거쳐 유로 디즈니랜드에 가는 길에 들르는 관광지가 아니라, 엄연한 순례의 장소였음을 증명하는 최후의 증거였다. 가게가 있던 자리에는 하겐다즈가 들어섰다. 최근 경찰청은 요한 23세 광장 쪽 철문을 폐쇄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해당 통로를 주로 이용해 도주하는 관광객 대상 강도단을 소탕하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 따른 불편은 고스란히 구역 주민들에게 전가됐고, 나는 이제 이 광장의 정원을 예전처럼 자주 찾지 않는다. 더군다나 파리시청이 운영을 중단해 분수대는 거의 항상 메마른 상태로 방치돼 있다.

4월 초, 거대한 비계에 둘러싸인 첨탑을 보면서, 아주 오랜 기간 그 모습을 다시 보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조금 서글프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첨단 컴퓨터의 힘을 빌려 지난 150년 동안 그곳을 지켜온 이 취약한 첨탑을 안전하게 보수하기 위한 최선의 결정을 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15일 월요일 저녁 7시경, 몇 가지 장 본 물건을 들고 비좁은 비에브르 거리를 빠져나와 투르넬 강변로에 이르렀을 때, 수백 명의 관광객이 아르셰베셰 다리 위에서 손을 허공에 높게 뻗어 올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비록 대성당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라지만, 수많은 인파에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에 높은 불길에 휩싸인 비계(飛階)가 눈에 들어왔다. 바람이 불자 불길은 더욱 맹렬하게 벋쳐오르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화재의 위협보다는, 초저녁 푸르스름한 하늘 아래서 성당이 선명한 불길을 내뿜으며 격렬히 타오르는 광경에 강한 공포를 느꼈다. 

반쯤 얼이 빠진 상태에서 도대체 그 높은 곳에 어떻게 불길이 이르렀을까 의아해하다가, 과거의 경험을 상기하며 허겁지겁 발걸음을 재촉했다.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가야 해. 경찰이 곧 거리를 봉쇄할 거라고.”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난 후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우리 집 건물 앞에 도착한 경찰은 인근 주민들에게 지역 체육관과 심리치유센터로 이동할 것을 목청 높여 당부했다. 나는 차라리 죽은 듯 조용히 집안에서 밤을 보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소방관들이 화재를 어느 정도 진압해 거대한 연기 기둥이 이미 희미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가까운 거리에 있는 파리 심장부에 닥쳐온 환란에 의한 충격은 좀체 가시질 않았다.

다음날, 언론이 화재 관련 보도를 연이어 내보내는 사이, 시테섬은 신분증을 제시해야만 진입할 수 있는 요새화된 진지로 변해있었다. 지하철역은 폐쇄됐고, 가까운 거리의 이동에도 많은 제약이 따랐다. 사고의 규모에 비례하는 특단의 조치를 펴겠다는 정부 당국의 굳은 의지인지, 보안구역의 범위는 노트르담 대성당 일대를 훨씬 넘어섰고, 그 결과 센 강 좌안과 우안 양쪽에서 극심한 교통체증이 이어졌다. 파리 시장과 내무부 장관이 현장을 방문하는 동안 이곳 주민들은 시테섬 밖에서 대기해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보안에는 이토록 강박적인 집착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8세기에 걸쳐 성당을 지탱해온 골조가 한순간 연기와 함께 잿더미로 사라지는 일은 미처 막지 못하다니, 참으로 이상한 세상을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화재 이후, 센 강변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광객이 모여들어 검게 타버린 성당의 모습을 사진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하지만 나는 이제 성당을 바라만 봐도 가슴이 뻐근해지면서 미어질 듯하다.

그래도 꼭 한 번 연주 소리를 다시 들어보고 싶었던 파이프 오르간이 화마에 휩쓸리지 않고 온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에 그나마 위안을 얻었다. 마시옹 거리를 따라 성당으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보이는 중세 외벽에는 석누조들이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변함없이 성당을 지키고 있다. 또 다른 위안은 거주민들에게만 시테섬 진입이 허용되던 지난 며칠 동안, 그간 관광객을 주 대상으로 운영되던 2~3곳의 카페가 주민들을 위해 테라스를 개방하면서 화마의 상처를 입은 대성당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마을 광장이 다시금 활기를 찾았다는 사실이다.  

 

https://fr.map-of-paris.com/plans-monuments/plan-cath%C3%A9drale-notre-dame-de-paris

 

 

 

글·브누아 뒤퇴르트르 Benoît Duteurtre 
작가. 최근 저서로는 『En marche ! Conte philosophique(전진! 철학 이야기)』(Gallimard, 파리, 2018년)가 있다.

번역‧이푸로라 poorora@daum.net
번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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