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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기의 시네마 크리티크] 도시적 은유와 개인의 삶 - <카페 뤼미에르>와 <동경 이야기> 다시 보기
[조한기의 시네마 크리티크] 도시적 은유와 개인의 삶 - <카페 뤼미에르>와 <동경 이야기> 다시 보기
  • 조한기(영화평론가)
  • 승인 2019.05.0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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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뤼미에르>는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오즈 야스지로 감독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만든 작품이다. 영화사에서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이름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의 독특한 영화세계는 여러 비평가의 논의를 통해 내용과 형식을 톺아보는 다양한 담론을 집적해 왔다. 가족과 일상에 대한 천착, 상대적으로 미약한 서사성, 정중동의 카메라 촬영 기법, 이른바 ‘다다미 쇼트’로 불리는 독창적인 로우 앵글의 사용, 영화의 정서적 가교 역할을 담당하는 인서트 등이 그렇다. 하스미 시게히코의 지적처럼 오즈 야스지로의 독특한 영화 미학은 서구의 관습화된 영화 형식에서 벗어나 추상적인 일본 전통의 미의식을 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중 <동경 이야기>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대표작으로서 특유의 영화 미학을 경유해 일본의 근대화 양상과 전통적인 가족관계의 변화 양상을 포착한다. 영화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오노미치에서 살던 노부부는 동경으로 이주한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 상경한다. 그러나 노부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녀들에게 부담스러운 존재로 인식된다. 노부부는 장남의 집에서 차녀의 집으로, 자식들이 보내준 아타미의 여관으로, 아들과 사별한 며느리의 집으로 떠돌게 된다. 이후 본가로 돌아가던 어머니는 동경에서의 여독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한다. 이때 산업화가 진행 중인 동경은 시대적인 흐름과 개인의 내면을 표상하는 장소로서 작품의 주제의식을 표상한다.

그런데 <카페 뤼미에르>에선 오즈 야스지로 감독에 대한 오마주로 그치지 않는 창조적인 작가의식 드러난다. 오즈 야스지로가 천착했던 동경이라는 도시 공간과 가족의 불안정성이라는 주제를 수렴하면서 그 경계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흐르는 일상을 담는 <카페 뤼미에르>의 느슨한 플롯은 여러모로 수용자의 기대를 비껴나간다. 대신 자유로운 사유의 여지를 남기는 카메라의 시선과 ‘인물-공간’의 미묘한 정서적 교차는 영화를 읽어내는 유다른 해석을 견인하기도 한다. 이방인의 시선에서 재현되는 일본을 살피는 것 역시 흥미로운 시사점을 남긴다.

잘 알려진 대로 허우 샤오시엔은 대만의 ‘뉴시네마 운동’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차분하고 긴 호흡으로 이루어진 그의 작품들은 관조적인 시선을 경유해 수용자의 사유를 요청하곤 했다. 장르 영화 관습을 벗어나는 그의 영화 작법은 수용자에게 감정이입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의 기억을 더듬곤 하는 그의 작품 세계는 보는 이에게 기묘한 회감(回感)을 일으키곤 한다. 이처럼 그의 작품 안에 짙게 깔린 독특한 정조는, 일찍부터 오즈 야스지로 감독과 비교되기도 했다. 허우 샤오시엔은 <카페 뤼미에르>에서 오즈 감독의 영화 문법을 통관하며 창조적인 재현을 시도한다. 여기엔 더 이상 대도시의 위용에 압도되는 순진한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경 이야기>가 부모의 동경 나들이를 계기로 전통적인 가족 공동체의 위기를 포착했다면, <카페 뤼미에르>는 가족에 대한 전제 그 자체를 되짚어 본다.

대만 여행에서 돌아온 요코는 성묘를 위해 타카사키로 귀향한다. 요코는 부모에게 대만인 애인의 아이를 뱄으며 미혼모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그런데 영화에서 가장 극적인 이 사건은 기이할 정도로 차분하게 묘사된다. 이야기는 결말부에 이르러서도 도덕적 딜레마나 첨예한 갈등으로 치닫지 않는다. <카페 뤼미에르>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족 문제들(핵가족, 미혼모, 혼혈아, 이혼 가정)은 오즈가 천착해 왔던 가족이라는 주제를 포섭하며 동시에 기묘하게 비트는 것처럼 보인다. 오즈가 근대화의 흐름에서 발생한 전통 일본 사회의 균열을 포착했다면, 허우 샤오시엔은 이방인의 관점에서 일본의 전통적인 가족관 그 자체를 찢는다. <카페 뤼미에르>의 가족 공동체는 규범화된 정체성에서 벗어나 미분화되고 다원적인 세계에 이미 발을 딛고 있는 것이다. 허우 샤오시엔은 마치 특정한 정체성에 얽매인 반성적 사유의 시기는 이미 지났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는 일본 전통 미의식의 정수를 담아냈다고 평가 받는 오즈의 영화 미학을 교란하려는 시도로도 보인다.

 

동경의 복잡한 도심을 담는 카메라의 관조적인 시선은 그러한 문제의식에 유의미하게 결부된다. 프리랜서 작가인 요코는 고서점 주인 하지메의 도움을 받아 과거 동경에서 활동했던 대만 출신의 음악가, 장원예의 일생을 추적한다. 거미줄처럼 얽힌 철도, 차들의 행렬, 무수한 행인들, 낯선 외국인들… 동경에선 이방성을 지닌 수많은 존재들의 교차가 일어난다. 흥미로운 부분은 카메라가 담는 도시의 구체적인 공간들이다. 허우 샤오시엔은 잉여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쇼트의 연접을 통해 임계까지 팽창한 대도시에서 일어나는 온갖 중첩을 조망한다.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배경은 전차의 내부와 외부, 역의 플랫폼, 건널목, 교차로 같은 도시의 연결고리들이다. 요코는 동경의 ‘산책자(Flàneur)’가 되어 동경의 옛 지도를 들고 장원예의 흔적을 더듬는다. 영화는 요코의 행로를 좇으며 동경에 혼재된 시공간의 폭과 깊이를 헤집는 것이다. 그녀가 찾는 것은 급격한 시대 흐름에 스러져가는 것들을 반추할 수 있는 기억이다. 여기서 이방인이 남긴 흔적이 동경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표지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오즈의 <동경가족>은 동경/고향의 이미지 대비를 통해 장소의 의미에 경계를 세운다. ‘동경=근대’/‘고향=전통’이라는 이분법적인 문화 코드의 충돌을 경유해 근대사회에서 펼쳐질 인간관계의 암울한 전망을 본 것이다. 그렇게 근대성의 딜레마 안에서 전통적인 인간관계의 균열은 개인의 불안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카페 뤼미에르>에서 도심 풍경은 근대화의 폐해를 노출하기 위한 상징물로 환원되지 않는다. 온갖 이질성이 혼종화된 거대 도시에서 안과 밖의 경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허우 샤오시엔은 장원예의 삶을 동경의 현재 시공간에 교착시키며 동경(도시)이 원래 불순한 장소였다고 역설하는 듯하다. 불균질한 요소들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고 느슨하게 연결함으로써 균일한 정체성에 기반을 둔 대립 도식과 변별점을 두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동경을 둘러싼 다의성을 상기시키는 <카페 뤼미에르>의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전체적인 구도에서 보면 강을 경계로 주택가의 부동성과 전차의 유동성이 대비된다. 그러나 두 공간은 근본적으로 가교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한편에선 여러 대의 전차가 가깝고도 멀게 서로를 스쳐간다. 영화 속에서 만남과 엇갈림을 반복하는 요코와 하지메의 관계는 이러한 이미지에 미묘하게 중첩되기도 한다.

<동경 이야기>가 근대화에 따라 새롭게 변주되는 ‘거주하는 삶’의 형태에서 전통 세계의 명멸을 보았다면, <카페 뤼미에르>는 복합적이고 중층화된 현대의 ‘풍경화된 삶’을 조망한다. 두 영화는 시공간의 이격 속에서 서로 닮은 부분과 닮지 않은 면을 지속적으로 소환한다. 개인과 공동체, 사회와 문화의 연속과 단절 과정이 표상되는 것이다. 여기서 영화 속 도시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삶을 매개하는 의미의 장소로서 자리매김한다.

사실 대중 영화의 관습에 익숙한 관객에게 <카페 뤼미에르>와 <동경 이야기>는 손쉽게 다가기 힘든 작품이다. 특히 적극적으로 감정이입을 유도하지 않는 느슨한 플롯과 느린 호흡은 영화를 보는 다른 심미안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 글은 두 영화를 경유해 사유할 수 있는 한 지점을 밝힌 글이다. 바라건대 다각적인 관점에서 영화를 자유롭게 즐겨주시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 조한기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박사수료. 2018 영평상 신인평론상과 한국콘텐츠진흥원 주관 2018 만화비평 공모전 대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문화와 스토리텔링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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