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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스승을 찾는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스승을 찾는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19.05.13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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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엔 기념해야 할 날이 많다. 그중에서 5월 15일 스승의 날 하면 떠오르는 영화중에서 가족, 우정, 스승의 의미 등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담긴 영화하면 구스 반 산트 감독의 2000년 작 <파인딩 포레스터>가 먼저 떠오른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우리에겐 또 하나의 스승영화로 기억되는 <굿 윌 헌팅>을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그래서 종종 두 영화가 비교되곤 하는데, 일단 두 영화의 주인공이 모두 천재인데, 살아온 환경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점, 그리고 그에게 훌륭한 멘토가 나타난다는 것, 멘토와 멘티가 교류하면서 서로 함께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두 영화가 닮았다. 그런데 이 <파인딩 포레스터>는 특히 스포츠와 문학을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좀 더 지적인 감성으로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스토리를 먼저 살펴보면 흑인빈민가에 사는 소년 자말은 친구들과 농구를 즐기는 평범한 열여섯 살 소년이다. 그런데 농구장 근처 한 아파트에 이상한 남자가 산다는 친구들의 이야기에 그 집에 몰래 들어가 보게 되는데,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그 남자의 인기척에, 자말은 가방도 내팽긴 채 도망쳐 나온다. 그리고 며칠 뒤, 그 남자가 창문 밖으로 던진 자말의 가방 속 수첩엔 남자가 적은 예사롭지 않은 첨삭된 글들이 있다. 사실 자말은 평범한 소년처럼 보였지만, 문학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 평소 자말이 쓴 글에 이 남자가 평가라면 평가, 조언이라면 조언을 덧붙인 건데, 알고 보니 이 수상한 남자는 50년 전에 단 한 편의 소설을 발표하고 그 소설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후 은둔생활을 하는 작가 윌리엄 포레스터였다.

 

포레스터 역은 숀 코너리가 맡아, 그 무게감을 더 해주고 있다. 위스키를 홀짝이며 아파트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동굴의 사자처럼 으르릉 대는 그의 카리스마는 영화 전체를 탄탄하게 만들어준다. 나중에 자말을 위해 세상 밖으로 나올 땐 그 위풍당당한 모습이 정말 멋지다. 여기에 자말 역을 맡은 롭 브라운의 연기도 좋다.

 

우리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성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꿈에서 멀어져 간다

롭 브라운이 연기한 자말은 농구를 잘하는 가난한 10대 흑인 소년인데, 여기에 천부적인 작가의 재능까지 더해진, 좀 복합적인 인물이다. 영화 속에서도 자말은 작가로서의 재능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그저 동네의 또래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자말은 자신 앞에 놓인 현실의 벽을 느끼고 있었던 거다. 혼자 걸어 다니기도 위험한 빈민가에 태어난 흑인 소년은 친구와 가족으로부터 다른 존재로 격리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런데도 시험성적도 좋았고, 농구까지 잘했던 자말은 근처 최고의 사립학교에 입학할 기회를 잡게 되고, 덩달아 작가 포레스터와 본격적으로 교류를 한다. 여기서부터 글쓰기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귀가 솔깃해질 대사와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포레스터가 ‘가슴으로 초안을 쓰고, 나중에 머리로 쓰는 거야’ 그러면서 그냥 타이핑을 하는데 금세 한 장이 완성된다.

우리가 뭘 하려고 할 때 너무 생각이 많다. 일단 해보면서 그걸 수정하고 보완해나가면 진도도 더 빠르고, 배우는 게 더 많을 텐데, 그런 점에서 이 대사는 꼭 글쓰기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세대를 뛰어넘는 따뜻한 우정, <파인딩 포레스터>는 포레스터와 자말 두 사람의 우정은 물론이고, 진정한 스승의 의미까지 생각해보게 한다. 제목부터 스승인 포레스터 찾기(Finding Forrester)라는 의미는 스승이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종종 ‘내게 스승이 있었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보면 스승이란 제자가 마음을 열어 누가 나의 스승인지 “찾는 과정(Finding)”이 아닐까.

 

자말이 다니는 학교엔 젊은 시절 작가의 꿈이 좌절된 문학교수가 있는데, 포레스터와 대비되는 인물로 나온다. 포레스터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고, 크로퍼드 교수는 자신이 쓴 글을 출판조차 하지 못했다. 그의 그런 열등감은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가진 제자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빈민가에 사는 흑인 소년이 지금 이 글을 적었다는 거야? 그럴 리가 없어’하며 그의 재능을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한다. 이런 옹졸한 자질을 가진 사람은 좋은 스승이 될 수 없다. 마침 크로퍼드 역은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를 질투하는 살리에리 역을 맡은 머레이 아브라함이 맡아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한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재능을 발견해 발전시켜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재능이 뭔지, 그걸 발견해보기도 전에 비슷비슷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자말 역시 집안에 힘든 일이 있고 난 후에 책에 몰두했고, 그냥 그게 다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포레스터가 그게 바로 너의 재능이야, 하고 알게 해 준다. 자말은 정말 운이 좋았던 건데, 만약 청소년기에 우리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해줄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스승의 역할은 제작의 부족함과 결핍을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메울 힘을 주는 사람이다.

그런데 스승 포레스터는 오히려 자말을 통해 꿈을 이룰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포레스터 역시 아픈 가족사가 있고, 그래서 작가로서의 성공이 오히려 짐이 됐지만, 이젠 자말의 손을 잡고 세상 밖으로도 나오게 되고, 나중엔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는 고향으로의 여행도 결심한다.

 

“친애하는 자말에게.

한때 난 꿈꾸는 걸 포기했었다.

실패가 두려워서, 심지어는 성공이 두려워서.

네가 꿈을 버리지 않는 아이인 걸 알았을 때,

나 또한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지.

계절은 변한다. 인생의 겨울에 와서야 삶을 알게 되었구나.

네가 없었다면 영영 몰랐을 거다.”

 

- William Forrester

평생 단 한 작품만을 출판하고 이후 은둔생활을 했던 작가하면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J.D 셀린저는 여러모로 영화 속 포레스터와 겹친다. 이 영화가 나왔을 때 포레스터가 셀린저를 모델로 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올 만큼 유사한 점이 많다. 차이가 있다면 포레스터는 자말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지만, 셀린저는 201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영화를 보면 마음에 남는 대사도 많고, 포레스터와 자말의 우정이 단순히 두 사람의 우정을 넘어서 포레스터로 대변되는 순수문학과 자말로 대변되는 대중문학의 만남, 또 나이를 떠나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과정도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꿈을 꾸는 건 자유이기도 하지만 또한 능력인 것 같다. 버릴 때 버릴 수 있는 능력, 포레스터가 은둔생활을 버리고 꿈을 이루고, 자말도 농구선수로서 자부심을 버리고 작가의 꿈을 얻는 것처럼, 꿈은 저 멀리 떠가는 구름 같은 게 아니라, 갈고닦고 노력하고 때론 버리고, 희생할 수도 있는 용기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글‧서성희
영화평론가, 대구경북영화영상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 대구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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