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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마블 세계의 한국형 서사 영화<악인전>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마블 세계의 한국형 서사 영화<악인전>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19.05.22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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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엔드게임>의 기세 속에서 과감하게 개봉이라는 선택을 하고 의미있는 결과를 보인 영화가 둘이 있는데 하나는 <걸캅스>고 또 하나는 <악인전>이다. 나는 이 중 <악인전>을 보았다. 이 영화는 마동석을 불안 타파로 삼았던 테마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지만, 마동석 캐릭터를 한껏 성숙시킨 것은 틀림없었다. 사실 <악인전>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는 사실과 미국에서 리메이크 된다는 사실 그리고 리메이크 작에서도 마동석이 똑같은 역할을 맡아 연기하게 될 것이라는 흥미로운 사실들을 곱씹어보려고 마동석이라는 배우를 이야기해도 될 테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마동석의 영웅적 특성이 마블 히어로의 그것과 내밀한 유사성이 있다는 것과 그런 의미에서 <악인전>은 마블 영웅으로 등장하게 될 그만의 전초전일지 모른다는 사실에 더 주목해보려고 한다.

 

이 영화의 감독 이원태는 <악인전>의 이야기를 실화에서 영감 받았다고 하지만, <악인전>의 기본 설정은 사실상 마블 식의 영웅 서사를 요령 있게 차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마블의 토니 스타크 캐릭터는 태생적으로 자신은 결코 정의로울 수 없다는 한계를 극적으로 탈피한 영웅이라는 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바로 이 점에서 마블의 영웅, 토니 스타크는 기존 서부극 식 선악구조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영웅서사를 써내려 간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게 되면 장동수(마동석) 캐릭터와 토니 스타크 캐릭터는 어떤 묘한 유사관계에 놓여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유는 첫째, 막강한 부를 손에 넣어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날 수 있는 존재라는 점 둘 째, 영웅의 견고함이 깨져 있다는 점 셋째, 자신과는 다른 세계의 존재와 만나게 된다는 점 넷째, 결국 대놓고 ‘복수’에 성공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시 말해 <악인전>은 위에서 정리한 마블 식의 영웅 캐릭터, 특히 토니 스타크를 한국식 시나리오의 골격에 맞추면서 거기에 고유한 마동석의 캐릭터를 부여한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그래서인지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토니가 그러했듯이 <악인전>의 장동수는 정태석(김무열)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처한다. 장동수가 정태석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범인을 정확히 특정하는 것. 이 일은 그냥보기에는 장동수가 더 잘 해결할 일 같은데 첨예하게 대립중인 조직 간의 암투 속에서 살인범의 용의주도함이 자칫 조직간 싸움으로 비화되면 공멸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함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 조건은 장동수와 정태석의 경쟁심과 복수심에 불을 지핀다. 장동수와 정태석은 모두 범인을 잡아야만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들이 해결되므로 그 일에 몰두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공조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범인을 특정하여 검거하는 성과로 이어진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장동수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왜 정태석은 그토록 범인 검거에 집착했는가.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전작 중 <개들의 전쟁>의 주인공 ‘상근’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 영화에서 상근은 소위 자존심 꺾이는 상황에 처한 양아치 패거리의 무능한 두목이었다. 그래도 무엇보다 그는 자존심과 의리를 위해 살아간다. 꼭 김무열이어서가 아니라 이 문제는 주인공이면 꼭 지키려는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악인전>에서 김무열의 장태석은 ‘복수’하듯 범인을 검거해야 ‘자존심’이 회복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과 직결된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러니 결국 문제는 복수와 의무감의 충돌에서 불거진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복수와 의무가 뒤섞이는 일은 그들에게 부여된 정체성, 즉 조폭두목과 경찰이라는 신분을 강화시키거나 약화시킨다. <악인전>의 ‘악마 강성호’(김성규)는 결국 복수심과 의무가 뒤섞인 맹목적인 집착의 대상이 된다.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장동수의 미소는 그래서 복수의 의무를 다한 미소라 할만하다.

이 같은 이 영화의 서사는 그래서 입체적이지 못하다. 그 아쉬움을 메우는 것이 있다면 그건 캐릭터에 대한 호감도일 것이다. 특히 마동석의 캐릭터는 잔인해보이되 악해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를 마블 캐릭터의 한국식 버전이라고 한다면 그의 강펀치는 비현실적인 마블식의 파워에 비해서 더 현실적으로 보인다는 의미이다. 예컨대 그의 주먹이 나무로 만든 문을 뚫고 강경호의 얼굴 위로 무자비하게 내리꽂힐 때는 비현실적이라기보다는 통쾌한 현실의 쾌감을 선사한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가 마동석의 주먹을 따라가지 않고 ‘강경호’의 얼굴에서 머무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그렇게 악마의 얼굴은 폭력의 심각성보다 복수를 제대로 당한 얼굴로 정당화된다.

 

그 와중에 자주 벌어지는 두 사람의 싸움은 그래서 정의로움의 승리를 염원하게 되는 마음에 찬물을 끼얹기도 하지만 악마 강경호와 대립할 때면 새로운 치열함의 도식을 보여준다. 토니 스타크와 캡틴 아메리카의 싸움이 왠지 먹이감을 사이에 두고 싸우는 동족간의 결투로 보였던 바로 그 치열함의 재미가 거기에서도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악인전>은 이런 면에서 보면 마블식 ‘동물의 왕국’을 보는 것과 같은 재미가 있다. 매번 같은 동물이 등장해도 다시 보게 되는 그 동물의 호감도처럼 말이다. 마동석의 캐릭터가 변주될 때마다 건져 올리게 되는 꽤 의미심장한 반복의 차이는 그렇게 마블이 추구했던 동물의 호감도 생산방식을 차용하여 작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이끄는 ‘팀고릴라’는 ‘동물의 왕국’식 마블 세계를 새롭게 기획하는 또 다른 버전의 제작사가 아닐까? 어쨌든 마블 영화 <이터널스>의 영웅 캐릭터로도 캐스팅 되었고, 미국에서의 리메이크도 결정되었으며 칸 경쟁작에도 진출했으니 아무쪼록 좋은 결과가 있길 기대하며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 있는 그의 행보에 응원을 보낸다.

 

 

글·지승학
문학박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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