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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보희와 녹양> ― 아버지 찾기와 자기성찰의 여정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보희와 녹양> ― 아버지 찾기와 자기성찰의 여정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19.06.03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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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름과 과거에 대한 끔찍한 기억

누구나 한번쯤은 자신의 이름에 대해 불만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독특하고 이상한 이름을 가진 필자는 과거에 놀림을 당하고, 이상한 별명으로 불리고, 이름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 라는 책을 선물 받는 등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가득하다. 이름을 개명하려는 생각을 끊임없는 하는 시간 속에서 어느새 이름에 익숙해지고 정이 들어버려 이제는 버릴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영화 <보희와 녹양>은 자신의 이름에 대한 불만, 자신의 엄마에 대한 불만으로 보희가 친구 녹양과 함께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는 아버지 찾기, 형제 찾기, 친구 찾기라는 세 가지 플롯을 통해 보희가 자신과 가족을 받아들이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2. 아버지 찾기: 세상에는 다양한 부모가 있다

<보희와 녹양>에서 보희는 친아버지를 찾는 과정에서 여러 유형의 아버지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아버지의 처지와 엄마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영화는 보희와 녹양이 보희의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남자친구를 단골손님이라고 얼버무리는 엄마의 태도와 아직은 새아버지를 받아들일 수 없는 자신의 마음으로 힘들어하던 보희는 친구 녹양과 함께 자신의 친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보희는 여러 아버지 후보자를 만나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기억과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한때 배우였던 백수 아버지(후보)는 라면을 먹고 커튼을 닫는 등의 행동을 해서, 보희와 녹양은 성범죄를 연상하며 두려움 속에서 어두운 공간을 탈출한다. 64살 교수 아버지(후보)는 자신이 아내에게 갑자기 이혼당한 사연을 털어 놓아, 보희와 녹양은 자상한 그의 과거 상처를 건드린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을 느끼게 된다. 마침내 찾은 영화감독인 친아버지는 보희 이름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고, 영화 속 동물원 장면에서 “보희야, 가자”라는 대사를 넣어 보희를 울게 만든다. 친아버지를 쫓아간 보희는 그가 남자와 포옹하고 키스하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친아버지가 자신과 엄마를 떠난 진짜 이유를 깨닫고는 그 자리를 떠난다.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온 보희는 외롭게 지낸 엄마와 단골손님 남자친구의 관계를 받아들이게 된다.

 

아버지가 부재하는 보희와 엄마가 부재하는 녹양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서로의 결핍을 채워 나간다. 보희는 아버지 후보자를 만나면서 긴장하고 후회하고 괴로워한다. 이에 녹양은 보희에게 자신은 돌아가신 엄마를 만날 수 없지만 보희는 친아버지를 만날 수 있어서 더 행복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녹양에게 할머니는 바로 엄마의 결핍을 채워주는 존재라는 점에서, 녹양이 태어나면서 담근 인삼주는 바로 엄마의 부재로 인한 시간이며, 인삼주를 다 마셔버린 할머니의 행동은 엄마의 부재를 명확히 하는 순간이다. 인삼주가 없이 인삼만 남은 병을 들고 다니는 녹양도 사실상 자신의 마음속의 엄마를 찾아나서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보희는 놀이터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자신이 녹양을 만나 더 이상 아버지를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보희는 아버지에 대한 과거의 기억을 되찾고 상상 속에서 과거의 기억을 재편하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내면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엄마가 기억나지 않아서 슬프다는 녹양의 말을 듣고, 보희는 과거 동물원에서의 아버지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집에 항상 있던 자신과 엄마의 동물원 사진을 액자에서 꺼내자, 접혀진 부분에서 숨겨진 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난다. 보희가 어릴 때 놀이터에서 떠나간 아버지를 한없이 기다리자, 엄마는 보희에게 아버지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상상 속에서 어린 보희는 놀이터에서 아버지를 만나 포옹하고, 아버지가 떠난 것이 자기 때문인 줄 알았다며 눈물을 흘린다. 보희는 아버지가 그린 엽서를 하늘로 날려 보내는 환상의 행위를 통해, 자신의 숨겨진 죄책감과 상처를 끄집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아버지와 그의 부재를 받아들인다. 보희는 과거의 기억에 대한 아픔을 다시 재편하는 상상 속의 기억으로 어린 시절의 자신을 위로하고 달래주고 치유한다.

 

3. 형제 찾기: 유사 가족도 가족이다

<보희와 녹양>에서 보희는 아버지를 찾는 과정에서 성욱과 유사 가족의 관계를 형성하게 되면서,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결핍을 채워 나간다. 보희는 계부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가출을 결심하게 되면서 사촌 누나와 그녀의 남친 성욱과 만난다. 이 과정에서 보희는 성욱에게 형제의 정을 느끼게 되며 유사 가족을 형성하게 된다. 바텐더인 성욱은 보희에게 형 혹은 아버지의 역할을 수행한다. 성욱은 말로는 보희를 귀찮아하고 구박하고 무뚝뚝하게 대하지만, 행동으로는 보희가 힘들 때마다 그를 위로해 주는 따뜻함을 보여준다. 성욱은 보희의 말을 들어주고, 보희가 끓인 김치찌개를 칭찬하고, 보희가 때린 남학생 집에 같이 찾아가서 사과하고, 보희 엄마 미용실에 찾아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물어봐주고, 찜질방의 ‘남탕’에 데려가 주고, 바에 찾아온 보희에게 칵테일을 사주고, 보희가 아프자 병원에 입원시키고, 생일에 찾아와 축하해 준다. 성욱은 나중에 자신을 보희의 나이든 형이라고 소개함으로써 보희와 마음을 나눈 유사 가족임을 인정하게 된다. 보희도 형과 아버지 역할을 동시에 해주는 성욱으로 인해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결핍을 채워 나간다.

 

보희는 아버지가 부재하고 성욱은 부모가 부재하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소통한다. 보희와 성욱은 보희와 몸싸움을 한 승현의 집에 함께 찾아가서 그의 부모를 만나 사과한다. 자신에게 빌어먹게 생겼다고 모욕을 하는 승현의 말에 성욱은 보희에게 더 때려주지 그랬냐며 보희의 입장을 이해해 주는 발언을 한다. 성욱은 자신이 고아였으며 부잣집 부모에 대한 동경을 가졌지만, 자신은 부잣집 아이가 되지 못할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보희와 성욱은 부잣집 동네에 위치한 승현의 거대한 저택, 남자들 사이의 싸움을 쿨하게 인정하는 승현의 아버지로 인해 동경의 마음을 안고 그 집을 나선다. 갑자기 보희가 쓰러지자, 성욱은 그를 업고 뛰기 시작한다. 지나가는 자동차나 택시가 없는 부잣집 동네는 오히려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 성욱의 등에 업혀 우는 보희와 그를 업고 뛰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성욱의 모습은 과거의 아픔을 이해하고 현재의 정을 느끼는 두 사람의 유대감을 강조한다.

 

4. 친구 찾기: 이름과 자신을 받아들이다

<보희와 녹양>에서 보희는 녹양과 견고한 친구 관계를 형성하며, 서로의 성격적 문제와 부모의 부재로 인한 결핍을 채워 나간다. 산부인과에서 같이 태어난 출생일부터 지금까지 보희는 불알친구 녹양과 견고한 친구 관계를 형성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가족에 대해서 잘 알고, 보희의 아버지 찾기와 녹양의 할머니 죽음에 함께 한다. 부잣집 아들 승현은 보희와 녹양의 견고한 관계를 질투하며 두 사람을 고아 새끼라고 놀린다. 승현은 부유한 가정환경, 다정한 엄마, 관대한 아버지 등 많은 것을 가졌지만, 친구의 부재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보희는 대범한 녹양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녹양은 소심하지만 섬세한 보희를 좋아한다. 두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면을 상대방에서 찾음으로써 매력을 느끼고, 아버지 혹은 엄마의 부재라는 서로의 결핍을 채워간다. 다큐멘터리 감독을 꿈꾸는 녹양은 보희에게 있어서 극영화 감독인 아버지와 등가의 인물이 된다.

 

보희는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부모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자신의 이름과 존재에 대해서도 성찰하게 된다. 보희는 ‘보지’라고 놀림당하는 자신의 이름을 싫어하며 이름을 바꾸고자 한다. 보희는 아버지 후보자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쓰레기 혹은 나쁜 사람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기대치를 낮추게 된다. 나중에 자신의 아버지가 게이였기 때문에 가정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고, 보희는 과거의 상황을 수긍하고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보희는 고독한 늑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혼자만의 고통에 잠기지만, 한강물에 들어가 자신의 마음을 정화시킨다. 또한 보희는 녹양이 찍은 자신에 대한 과거의 동영상을 보며 자신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나중에 보희는 “전 이보희입니다”라고 말하는 자신의 동영상에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이름, 존재,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된다.

 

5. 기억의 재편과 관습의 전도

<보희와 녹양>은 인물 면에서 성별의 관습과 세대의 관습을 뒤집는 설정으로 유쾌한 웃음을 창출한다. 서로를 보완하는 보희와 녹양 그리고 서로의 닮음꼴이면서 으르렁거리는 녹양과 성욱은 성격적 대비로 영화에 유쾌한 재미를 이끌어낸다. 소심한 보희와 대범한 녹양은 기존의 성별에 따른 관습을 뒤집는다. 어른과 맞장 뜨는 녹양 그리고 그런 녹양에 어이없어 하는 성욱도 청소년과 성인의 관습을 뒤집는다. 보희도 ‘스튜어디스’를 ‘스튜디어스’로, ‘칠칠맞지 못하게’를 ‘칠칠맞게’라고 잘못 말하는 성욱을 끊임없이 지적하면서 청소년과 성인의 관습을 뒤집는다.

 

스타일 면에서 과거/현재의 공존, 부재/존재의 더블링, 중첩된 기억의 공간은 그 대비와 유사성으로 영화의 독특한 이미지를 형성한다. 동물원에서 현재 보희가 녹양과 이야기하는 장면과 과거 보희가 남희누나를 만나는 장면이 화면의 뒤와 앞에서 동시에 펼쳐지면서, 마치 현재의 자신이 과거의 기억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준다. 또 전철에서 아버지를 생각하는 보희와 옆에서 기대자고 있는 녹양의 모습이 더블링으로 반복되면서,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보희의 긴장감 그리고 아버지의 부재를 채우는 친구의 존재에 대한 보희의 깨달음을 대비시킨다. 동물원은 숨겨진 아버지에 대한 기억, 남희누나와의 만남에 대한 기억, 녹양과의 새로운 추억 등 모든 기억과 추억의 집합소로서의 공간적 의미를 함유한다.

 

<보희와 녹양>은 보희가 아버지, 형제, 친구를 찾아나서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기억, 유사 가족, 이름을 받아들이는 여정을 보여준다. 아버지를 찾아가는 과정은 세상의 다양한 아버지와의 만남을 통해 게이인 자신의 아버지를 받아들이고, 엄마와 남자친구의 관계를 받아들이고, 아버지의 부재를 받아들이게 된다. 보희는 과거 속의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를 치유하는데, 이때 영화는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적 일기의 역할을 한다. 상큼하고 도발적인 10대의 모습을 보여준 보희와 녹양의 이야기는 그들의 성장을 계속 지켜보게 싶다는 점에서 속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서울시 영상진흥위원회 위원장, 한국영화1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학술출판분과 위원장, 르몽드 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미디와 전략』, 『영화와 N세대』 , 『영화와 관계』 (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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