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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거르지 않은 감정으로 이야기하는 - 영화 <미성년>(2019)
[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거르지 않은 감정으로 이야기하는 - 영화 <미성년>(2019)
  • 송아름(영화평론가)
  • 승인 2019.06.17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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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성년>의 진행은 빠르다. 딸이 우연히 아빠의 불륜을 목격하는 것이 아닌, 이미 알고 온 듯 현장을 확인하는 것 같은 첫 장면에서 이 영화는 그것이 무엇이든 굳이 숨기는 것과는 거리가 먼 영화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이 영화가 가장 숨김과 먼 거리를 설정해 놓은 것이 바로 감정이다. 영화 <미성년>의 인물들은 현재 자신의 감정을 차분하게 혹은 버릇없게, 폭발적으로 보여주는 데에 거침이 없다. 여고생 딸을 둔 부모의 불륜을 사건을 중심에 두면서도 으레 생각할 수 있는 예의 그 뻔한 장면들을 모조리 걷어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까발려 놓은 감정의 솔직함에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 솔직함이 바로 영화 <미성년>의 섬세함을 유지하는 힘이다. 영화 <미성년>은 인물들의 감정에 의문을 품게 만들면서 긴장을 유발하고, 그것은 곧 사소한 손짓, 예민해진 표정, 올이 나가버린 스타킹의 사소함 등으로 해소된다. 이미 아빠가 바람피우는 것을 목격하고 돌아온 딸과 아빠의 대면, 남편의 바람을 알아버린 부인과 역시 그것을 알고 있는 딸과의 마주침, 부모의 불륜으로 인해 무작정 서로에 대한 미움을 앞세운 두 여고생 등은 주리(김혜준)와 윤아(박세진)가 강화유리를 깨뜨릴 만큼의 육탄전을 펼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바라보는 바로 그 마음을 헤아리게 한다.

 

이 작품의 제목과 성인과는 대비되는 두 여고생의 책임감, 혹은 스며드는 유대관계로 인해 쉽게 어른과 미성년의 역전처럼 읽힐 수 있지만, 이 작품에서 어른들이 나약하거나 위선적으로 보이는 것은 흥미롭게도 그들이 솔직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미희(김소진)은 대원이 멀어진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만나러 와달라고 이야기하며, 영주(염정아)는 고해성사를 통해 미희와 대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에 대한 분노를 드러낸다. 대원은 자신을 부르는 딸을 뒤로 한 채 그 어느 때보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도망을 친다. 윤아가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찾아간 아빠(이희준)는 딸의 나이도 잘 모른 채 성인이 되었다면 카드를 하나 만들고 가라며 태연하게 이야기한다.

이 어른들을 비아냥댈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만들어놓은 결과 때문이겠지만, 사실 그 결과는 이들이 자신의 감정에 매우 솔직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를 만나고 싶고, 나를 배신한 이들을 저주하고 싶으며, 맞닥뜨리기 싫은 것은 피하고 원하는 것을 위해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주리와 윤아가 보여주는 감정들, 그러니까 자신과는 상관이 없지만 부모의 일로 엮인 서로를 미워하고 분노하며 할퀴어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의 이 모습이 비겁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들이 흘려보냈을 세월동안 솔직함에 포함되어야 하는 수많은 제약들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의 다음, 아이를 얻은 그 다음, 누군가를 미워하게 된 그 다음,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그 다음. 바로 이 ‘다음’은 감정을 지나 어른이라 불리는 이들이 갖추어야 할 당위였을 것이다.

 

물론 어른들이 굳이 이 솔직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고 해도 이를 정당한 것으로 둔갑시킬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너를 생각해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뒷담화를 훈계로 바꾸고, 걱정된다는 말을 앞세워 반말을 던지며,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없었다는 한탄으로 아이들의 입을 막을 수 있다. 그들이 겪어낸 세월이 무기가 되었을 때 ‘다음’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 그것이 어른이라면 그들의 위선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위험해 질지도 모를 일이다. 솔직한 감정이 책임을 더해가며 변모해가는 것, 바로 거기에 <미성년>의 세심함이 녹아든다.

<미성년>에서 그려내는 감정은 너무도 다양하고 섬세하게 유동하고 있다. 윤아는 자신을 힘들게 하는 엄마에게 왜 내가 엄마를 좋아하게 만들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그 말을 듣고서야 미희는 울음을 터뜨린다. 어찌 생각하면 이 단순한 감정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을 텐데 바로 여기에 들러붙는 온갖 것들로 우리는 늘 고난 뒤에 선다. 얼마나 감정을 숨겨야 할지, 또 얼마나 드러내야 할지, 감정과 이성이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여기에는 무엇이 고려되어야 할지 늘 고민스럽다. 영화 <미성년>은 머무를 수 없는 감정을 최대한 조심스레 붙들며 이야기한다. 당신의 마음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그 마음이 지금 당신에게 어울리는 것이냐고.

 

 

<미성년>(2019)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아름

영화평론가. 한국 현대문학의 극(Drama)을 전공하며, 연극·영화·TV드라마에 대한 논문과 관련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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