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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만난다는 상상 자체로 이야기가 되는 - 영화 <우리 지금 만나>(2019)
[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만난다는 상상 자체로 이야기가 되는 - 영화 <우리 지금 만나>(2019)
  • 송아름(영화평론가)
  • 승인 2019.07.15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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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은 참 별스러운 것이다. 상대가 누구냐, 얼마나 만났느냐, 무슨 이유로 만나느냐 등과 같이 명확한 이유가 있다 해도 그 만남의 모든 상황들은 명확하지 않은 부스러기들로 기억에 남는다. 상대와 함께했던 카페의 노래나 서로 할애한 시간만큼의 유대가 형성되지 않은 어색함, 만난 이유는 미뤄둔 채 집중했던 유쾌한 수다들은 만난 의도 이상의 잔여들일테지만 결국 남는 것은 바로 이 흔적들이다. 만남을 기대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혼자 있을 때 늘어져 있던 감각들은 누군가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천천히 일어선다. 이 감각들은 상대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을 상대의 것으로 인식하면서 만남에 대한 인상을 남긴다. 그렇다. 만남은 상대와의 대면을 넘어 상대가 가지고 있는, 상대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 접속하는 일이다.

 

영화 <우리 지금 만나> 속 인물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만남이 현재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서로의 세계와 대면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지금 만나>는 통일부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 영화’ 제작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진 세 편의 영화, <기사선생>(김서윤), <우리 잘 살 수 있을까?>(강이관), <여보세요>(부지영)가 옴니버스로 엮인 영화로, 남과 북의 만남에 대한 담백한 시선을 담아낸다. 이 작품은 인물들의 만남으로 만들어지는 무수한 긴장, 놀람, 익숙함, 결국에는 스며듦까지가 표현해내는 방식에 있어 남과 북의 관계를 꽤나 수평적으로 전제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남의 입장에서 본 북에 대한 시선은 꽤나 오랫동안 한국영화를 거쳐 왔지만 (당연하게도) 그 방향은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의형제>(2010)나 <간첩>(2012),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공조>(2017), <강철비>(2018), <공작>(2018) 등을 거치며 생활에 섞여든 이야기로, 그리고 남과 북이 인간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그 방향을 옮겨갔지만 아직 그 중심에는 탈북=간첩이라는 서사적 디폴트가 존재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특징적인 것은 이 영화들이 잘 생기고 젊은 북의 간첩과 중년의 아저씨인 남한 남성의 만남을 그 중심에 둔다는 것인데, 늘 나이가 많거나 경제적 우위에 있는 남한의 남성이 고통 속에 놓인 젊은 북한 남성을 품어주며 보듬어준다는 점에서 은연중에 남과 북의 우위를 결정짓는다. 이 영화들에 젊은 북한 남성에게 밥을 먹이는 장면이 늘 등장한다는 것은 이를 가장 적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 영화들이 남과 북의 만남을 조금씩 익숙한 것으로 만들었다는 점은 긍정할 만한 것이지만, 어찌 보면 한쪽으로 기운 그 방향은 이곳에서의 재현이 택할 수밖에 없는 익숙함일 것이다.

2000년대 들어 독립영화에서 역시 생존이 중요해진 새터민에 대해 꾸준히 다루어 왔다. 생존에 뛰어들어 살아남아야 하는 이들의 모습은 녹록치 않은 현실과 맞물리면서 경제적 빈곤의 상황에 내몰린,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의 슬픔으로 묘사되었다. <무산일기>(2010)나 <처음 만난 사람들>(2007), <줄탁동시>(2012)나 <댄스 타운>(2010), <마담B>(2016)에서 그려지는 탈북자들은 모두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착취당하며 늘 움츠린 채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은 폭력이나 경제적 착취, 배신 등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사회로 진입하지 못한 채 겉돌고 있다. 전반적으로 우울한 분위기에 놓여 있는 이 영화들은 단지 만남만으로는 넘어서지 못할 현실의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남한은 발붙일 곳 없는 공포의 공간이자, 125로 시작되는 주민번호 뒷자리가 발각되는 순간 차가운 시선을 받아야만 하는 냉정한 곳이다.

 

이 영화들이 남과 북의 만남 사이에 명확하고도 현실적인 문제를 세운 채 딱딱한 만남을 전제하고 있다면, <우리 지금 만나>는 조금은 동화 같은 만남을 선사한다. <기사선생>의 성민(배유람)은 처음 개성공단으로 넘어가는 그 길이 어색하고, 무섭다. 청과물을 배달하는 성민은 처음 듣는 사투리에, 처음 보는 위압적인 복장을 한 이들에 눈 둘 곳을 찾지 못하지만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숙희(윤혜리)를 만나면서 개성공단으로의 출입에 조금씩 기대를 쌓기 시작한다. <기사선생>은 누군가의 풋풋한 연애담이라는 너무도 익숙한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남한의 남성과 북한의 여성으로 대체되었을 때 어떤 만남으로 그려질 수 있는지를 천천히 담아낸다.

성민은 mp3에 음악을 담아 숙희에게 들려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려 하지만, 개성공단의 폐쇄와 함께 어렵게 된다. 공단이 폐쇄됐다는 소식에도 생떼를 부리며 되돌아가는 성민의 온달청과 트럭은 한편으론 바보같지만 결국 마음이 향하는 곳은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기사선생>은 개성공단에서 10여 년 간 함께 일하던 이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문을 닫아버린 그 사이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자막으로 영화를 마무리 한다. <기사선생>은 옅은 노란빛의 화면을 통해 자주보고, 말을 나누고, 누군가를 기다리게 되는 순간부터 관계가 시작된다는 그 당연함이 개성공단에서 역시 당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밝고 화사하게 보여준다.

 

오랫동안 떨어져있던 누군가와 만남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다는 것, 그리고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때 그 관계는 엇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우리 잘 살 수 있을까?>는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한다. 재범(하휘동)과 현채(최남미)는 결혼을 앞둔 커플이지만, 신혼집을 꾸미면서 사소한 일로 끊임없이 부딪힌다. 그들은 단어나 말투에 대해 꼬투리를 잡고 선택을 번복하고 이에 짜증을 내면서, 그러니까 모두 사소한 말에서 갈등을 일으킨다. 이러한 갈등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너무나 쉽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해결책은 그리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 잘 살 수 있을까?>가 선택한 방법은 말이 아닌 춤이라는 몸의 언어이다. 이 작품의 오프닝이나 엔딩크레디트, 인물들의 옷으로 표현되는 빨강과 파랑의 대립과 화합, 갑작스런 춤으로의 전환은 작위적인 면이 있지만 그들이 결국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방법을 벗어나 새로운 언어를 발견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전환으로 볼만 하다. 춤이라는 선택은 남과 북이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언어, 즉 말없이 손을 맞잡는 그 순간이 몇 십 년간의 모든 것을 이야기했던 것과 같은 소통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춤이라는 방법을 찾은 그들은 앞으로도 ‘잘 살 수 있’을 것이고, 동시에 우리에게 새로운 방법에 대한 고민을 던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작품 <여보세요>는 누군가와 대면하지 않아도 ‘만남’이 가능하다는 것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보여준다. 정은(이정은)은 급식소와 건물 청소를 하며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신다. 하루하루가 힘겹던 중 북한에서 남한으로 건너간 아들을 찾는 다는 한 여인의 전화를 받는다. 아들을 찾아달라는 여인의 말에 정은은 잠시 돈을 떠올렸다가, 치매를 앓는 와중에도 북에 두고 온 동생 영옥을 찾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아들 찾기에 나선다. 두 사람의 통화는 그들의 거리가 얼마나 별것 아닌지를 쉽게 확인 시켜준다. <별에서 온 그대>를 보았다며 정은의 이름을 전지현으로 저장했다는 여인이나,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상대를 송혜교로 저장하는 정은의 모습은 그들이 생각하고 즐기고 누리는 것이 실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은은 여인의 아들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어머니와 함께 산책 중 이 소식을 전하던 중 어머니의 사투리 섞인 목소리를 들은 여인은 어머니와의 통화를 하게 해달라고 이야기한다. 어머니는 여인에게 ‘영옥’이라 부르며 이야기하고, 여인은 어머니를 언니라 부르며 안심시킨다. 바로 이 순간, 그들은 보지 않고도 만나며 서로를 안심시키고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 정은이 일하는 뒷모습이 담긴 많은 컷들은 굳이 마주보지 않아도 만날 수 있고,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수많은 만남들의 아름다운 상(像)이다. <여보세요>는 만남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그 결과가 쉽게 무시할 수 없고, 한번쯤은 떠올릴 수 있는 사소한 마음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그 어느 상황에나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천천히 더듬듯이 보여준다.

<우리 지금 만나>는 ‘우리가 지금 만나겠다는 것에 뭐가 이상한가?’라는 질문을 천천히 내미는 영화이다. 남과 북의 만남을 갑작스런 돌출이 아닌,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정체를 숨겨야 하는 상황이 아닌, 혹은 친해지는 것이 이상한 아이러니로 보이는 것이 아닌 그저 현재의 만남 그 자체로 펼쳐놓는다. 이 찬찬한 만남들이 이상해지지 않는 순간, ‘우리’라 칭할 수 있게 되는 순간, 그곳에 비로소 너무도 일상적이어서 기억조차 하지 못하게 되는 그런 만남이 놓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지금 만나>(2019 개봉)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아름

영화평론가. 한국 현대문학의 극(Drama)을 전공하며, 연극·영화·TV드라마에 대한 논문과 관련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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