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호 구매하기
[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원시 신화의 현대화-<라이온 킹>
[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원시 신화의 현대화-<라이온 킹>
  • 임정식(영화평론가)
  • 승인 2019.07.24 10: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라이온 킹>(2019)을 ‘내셔널지오그래픽+동물의 왕국의 영화 버전’이라고 말하는 것은 흥미롭다. 그만큼 영화 캐릭터와 배경이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이다. <라이온 킹>은 아프리카 초원의 일출과 노을, 동물들의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과 바람의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갈기, 흐르는 시냇물과 나뭇잎의 팔랑거림 등을 세밀화처럼 담아낸다. 그런데 <라이온 킹>의 극사실주의에는 뜻밖의 함정이 있다. 영화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관객들을 다소 당황하게 만든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운운하는 반응은 <라이온 킹>의 이 생경함에 대한 반응이다.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관객도 더러 있다. 이러한 반응은 한번쯤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라이온 킹>은 실사형 애니메이션으로 불린다. 애니메이션이면서도 실사영화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아니, 웬만한 실사영화보다 더 사실적이다. 존 파브로 감독의 <라이온 킹>이 1994년의 애니메이션과 가장 차별화되는 특징이다. 이는 <라이온 킹>이 애니메이션의 성격을 재구성하고, 장르의 영토를 넓힌 지점이기도 하다. 거칠게 말하면, 다큐멘터리는 실제 세계를 사실적으로 다룬다. 애니메이션은 추상적인 허구의 세계이다. <라이온 킹>은 혼성 장르인 셈이다. 영화계에서 이런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출신의 아리 폴만 감독이 연출한 <바시르와 왈츠를(Vals Im Bachir)>(2008)도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로 불렸다. 역사 속의 실제 사건과 주인공의 주관적인 기억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하지만 <바시르와 왈츠를>은 대중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라이온 킹>의 장르를 무엇이라고 부르든, 이 영화는 대중들에게 새로운 관람 체험을 제공한다. <라이온 킹>은 가상 세계를 실제 세계인 것처럼 형상화한다. 그래서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이 허구라고 생각했던 관객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 낯섦의 바탕에는 첨단 기술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관객의 호불호와 관계없이, <라이온 킹>의 새로운 기술적 도전이 성공한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라이온 킹>은 아르놀트 하우저가 현대는 영화의 시대이며, 그 기반은 ‘기술’이라고 말한 바를 실천한 작품 리스트에 오를 자격이 충분하다.

<라이온 킹>의 동물 캐릭터들은 극사실적이어서 어떤 관객들은 이 영화가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어버린다. 그런데 <라이온 킹>의 동물 캐릭터들은 또한 추상적인 존재들이다. 그들은 인간처럼 말을 하고 행동하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이 지점에서 다큐멘터리 같은 애니메이션은 인간과 동물의 소통 혹은 심리적 거리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애니메이션은 당초 허구의 세계이다. 이 상상 세계에서는 동물과 사람이 대화하고 소통하며, 희로애락을 공유한다. 이는 감독과 관객이 미리 약속한 내용이며 관습이다. 그래서 관객들은 인간이나 다름없는 동물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러한 점에서 애니메이션은 우화와 유사하다. 주요 관객(독자)이 어린이인 배경이다. 이는 또한 원시신화의 세계이다.

 

원시 신화의 세계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구분이 없다. 원시 시대에는 인간과 동물은 다르지 않은 존재였다. 인간이 털가죽을 걸치면 곰이 되고, 인간과 곰이 결혼해 아이를 낳기도 했다. 동물과 인간이 함께 생활하고, 동물이 말도 했다. 또 사람은 동물로, 동물은 사람으로 변신했다. 익숙하지 않은가? 수많은 애니메이션에서 보아온 장면이다. 많이 변하기는 했지만, 현대에도 애니메이션 관객의 주류는 여전히 어린이들이다. 이는 “어린아이와 동물의 관계는 미개인과 동물의 관계와 아주 흡사하다. 어린아이는 거리낌 없이 자기와 동물이 완전히 동등하다는 것을 인정한다.”(『종교의 기원』, 열린 책들, 2004, 16쪽)는 프로이트의 언술을 연상시킨다. <설국열차>의 엔딩이나 <정글북>이 이와 유사한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라이온 킹>은 완전한 동물의 세계를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동물의 세계를 인간화한다. <라이온 킹>의 동물 캐릭터들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권력 투쟁, 사랑, 모험, 복수를 한다. 1994년 작품에서는 이 서사와 연출이 익숙했다. 동물 캐릭터의 감정 표출도 자연스러웠다. 애니메이션의 전통적인 문법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9년 <라이온 킹>은 다큐멘터리 같은 애니메이션이다. 극사실적이고 생생한 화면은 관객을 아프리카 초원으로 데려간다. 이곳에서도 동물들은 인간 세계와 다름없는 질서 속에서 생활한다. 다만, 다큐메이션 혹은 애니다큐 <라이온 킹>에서는 인간과 동물, 관객과 동물 캐릭터의 관계가 간접적이고 관찰자적이다. 원시 신화를 현대화한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관객으로서는 새롭고, 낯설고,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라이온 킹>의 도전과 모험의 결과이다.

 

그러한 점에서 존 파브로 감독이 원작의 이야기 틀을 고수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단지 원작의 스토리가 탄탄하고, 그 명성과 권위가 드높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만약 장르적인 낯섦에 스토리의 변화까지 시도했다면, <라이온 킹>의 대중성은 장담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잘 알려진 대로, <라이온 킹>의 인물과 플롯, 주제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빌려온 것이다. 무파사-심바-스카의 관계, 스카의 음모, 심바와 아버지의 관계 등이 『햄릿』과 닮은꼴이다. 또 심바가 스카의 음모에 의해 쫓겨났다가 돌아오고, 악당을 물리치고, 왕국의 질서를 되찾아 영웅으로 거듭나는 스토리는 영웅 신화의 서사구조를 계승한 것이다. 즉 <라이온 킹>은 수천 년을 이어온 익숙한 스토리 및 서사구조와 기술적 새로움에서 비롯된 장르적 변주를 효과적으로 결합한 영화이다. 디즈니는 <라이온 킹>을 통해 대중영화(애니메이션)의 영토를 다시 확장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관객에 따라 감탄과 감동 사이에 틈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은 고려해야 할 것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임정식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정기구독자님이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바랍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시 종이신문 과월호를 발송 드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