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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된 오리엔탈리즘의 종말
복제된 오리엔탈리즘의 종말
  • 성일권 l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19.08.01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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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베 신조의 뒤틀린 행태를 보면, 구한말의 어두운 풍경이 자꾸만 어른거린다. 당시나 지금이나, 일본지도자가 자국팽창을 위한 광기에 사로잡혀 분별없이 설쳐대는 꼴이라니! 국제사회의 평화질서를 깨고 한반도 중국, 만주, 몽골, 대만 등 아시아 전역을 피비린내 나는 도륙(屠戮)의 사지로 내몬 일본이, 정당한 배상을 요구하는 이웃나라의 목소리에 반성은커녕 해악한 독기를 뿌리고 있다. 과거와 다른 점은 총칼 대신 무역보복을 내세웠다는 점인데, 이웃나라를 괴롭히는 방식이 더 교묘하고 지능적이 된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현재 진행형인 일본의 악행이 긴가민가하는 ‘데자뷔’나 ‘자메뷰’가 아닌 명백한 현실임에도, 아베와 그 무리에게 북을 치고 추임새를 넣는 ‘어둠의 세력’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한말과 일제 식민시대에 많은 이들이 생존과 출세 등을 위해 ‘생계형 친일’을 저질렀다면, 지금은 자만과 확신으로 가득한 ‘숭일(崇日)’을 저지르고 있다.

이 땅에서 태어나, 이 땅의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이 땅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글과 말을 읽게 하고 들려줘야 할 지식인과 언론인들이 스스로 친일을 넘어 숭일에 전념하는 것은, 사실 자신이 누구인지 헷갈리는 이른바 주체의 전도(顚倒)에 기인한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서구 근대사회의 이성이 제국주의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오리엔탈리즘으로 변질됨으로써 오로지 서구 세력만이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문명인인양 행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필자는 요즘 숭일 지식인의 ‘활약’을 보면서 오리엔탈리즘이 유럽을 지나 미국과 일본을 거쳐, 자가 복제된 채 우리 사회 깊숙이 스며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리엔탈리즘적 욕망에 사로잡힌 미국이 자신만이 “악의 제국들을 무너뜨릴 절대 선”이라고 주장해왔듯, 우리 사회의 오리엔탈리스트들도 자신들만이 친북·좌파·반미·반일이라는 ‘악의 세력’을 축출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일각의 전문가들이 분석하듯 아베와 그 무리의 도발적인 굿판의 목표는, 과거 정권과 달리 과거사 바로잡기에 노력해온 문재인 정권의 몰락이다. 마찬가지로 친일세력의 화려한 부활을 꿈꾼 ‘숭일론자’들이 그들의 굿판에 얼쑤 추임새를 넣은 것이라면, 그 상상만으로도 섬뜩하다. 

늘 그렇듯,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8월호에서도 사유와 전복, 연대와 관용, 환경과 인간의 조화를 주제로 삼아 깨알 같은 읽을거리를 풍부하게 담았다. 자본의 탐욕에 따른 지구촌 종말을 우려한 자본세 부과, 국제질서를 재설정한 베르사유 조약에 대한 회고 등도 유익하고, 파리코뮌 당시 여성들의 역할, 미국과 프랑스 정부의 위험한 인종 분류, 탈공업화한 후기산업시대의 미래, 그리고 극단으로 치닫는 각국의 포퓰리즘화 현상, 그리고 미국이 탐내는 베네수엘라의 지정학…. 

이 밖에도 꼼꼼히 밑줄을 치며 곱씹어야 할 내용이 수두룩하지만, 그중에서도 필자는 크리스토프 알방이 쓴 ‘일본의 망각과 교과서 왜곡’과 한승동 ‘피렌체의 식탁’ 편집인이 쓴 ‘그들이 일본 극우와 왈츠를 출 때’를 추천하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그들’은 복제된 오리엔탈리즘을 자기 것인 양 착각하며, 숭일을 위한 자판을 두드리는 우리네 언론인들과 지식인들이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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