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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사이언스픽션 대중서사(3) -멸망하는 세계, 아이들은 살아남는다!
[기획연재] 사이언스픽션 대중서사(3) -멸망하는 세계, 아이들은 살아남는다!
  • 최배은 l 숙명여대 대우교수
  • 승인 2019.08.01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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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네트가 별을 뒤덮고, 전자와 빛이 우주를 떠도는” 우리 시대의 사이언스 픽션은 일상화된 과학기술의 마법을 향유하고, 가상 공간과 포스트 휴먼과 더불어 살아가는 진화 너머의 인류를 꿈꾸는 오래된 미래의 멋진 로맨스다.


사이언스픽션 대중서사 연재순서

(1) 이지용 데이터화된 몸(신체)과 SF, 포스트휴먼
(2) 최애순 왜 다시 카렐 차페크인가?
(3) 최배은 한국 어린이 SF의 이면 - 우주 시대의 디스토피아
(4) 김성연 sf서사와 과학적 상상력의 본질: 왜 sf시는 드문가?
(5) 오윤호 인공지능과 젠더하기
(6) 노대원 SF의 미래 인간은 상처 입지 않는 신이 될까?

우주 시대 아동‧청소년 SF

앞으로 7년 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할까? 1974년, ‘한국 SF작가클럽’의 강성철은 서기 2026년을 이렇게 상상한다. 

‘울창한 숲으로 변한 명동, 100층 이상의 빌딩으로 이뤄진 세종로 주택가, 하늘 위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유보도(움직이는 도로)로 이동하는 사람, 로봇의 서비스를 받고 달에서 요양과 휴식을 취하는 사회.’

다른 건 몰라도, 이상기후와 미세먼지가 점점 심각해지는 현실을 볼 때 7년 후, 명동에서 숲을 만나기는 어려울 듯하다. 우주 시대(1950~1970년대)에 『서기 2026년』에서 보인 과학주의 유토피아는 한국 아동 SF를 지배했다. 그 배경은 한국의 전후 재건 정책과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에서 찾을 수 있다. 다프나 주르가 『한국의 미래를 그리며-한국 근대 아동문학』에서 지적했듯 한국전쟁 후 아동문학은 남과 북 모두에서 SF가 대성황을 이뤘다. 가난과 폐허에서 벗어나자는 목표와, 그것을 과학주의 정책으로 해결하려는 방향이 동일했기 때문이다. 

남북한은 아동‧청소년들에게 과학기술이 초래할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과, 과학지식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SF를 활용했다. 더구나 미국과 소련이 달 탐사 등에서 최초의 자리를 겨루며 우주를 경쟁의 도구로 삼는 시대, 아동‧청소년 SF는 반공주의, 제국주의에 입각한 유토피아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때에도 독재 권력의 과학기술 신화를 무참히 깨뜨리는 디스토피아 SF가 존재했다. 작가들은 디스토피아 SF를 통해 현실의 억압된 욕망과 공포를 드러내 금기에 도전했다. 

 

과학 계몽주의 시대의 불온한 상상력

한낙원은 1959년부터 1994년까지 아동‧청소년 SF를 창작해 많은 사랑을 받은 과학소설의 선구자다. 그는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한국의 아동‧청소년을 중심으로 전개해 당시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풍자한다. 이것은 SF 작가들이 대개 배경과 인물을 서구에서 취하고, 아동 SF일지라도 아동이 보조적 역할에 머물렀던 관습에 비추어볼 때 매우 획기적이다.

 

『우주벌레 오메가호』(1967.8.), 272쪽.

한낙원의 SF에서 과학기술은 인류의 구원자이자 파괴자다. 기술은 하나의 가능성으로 존재할 뿐, 세계의 방향은 그것을 사용하는 주체의 판단과 선택에 달려 있다.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1967년부터 1969년까지 <학원>에 연재한 『우주벌레 오메가호』를 들 수 있다. 

이 소설은 우주 시대에 유행했던 외계인 침략을 주제로 삼지만 승리와 정복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두가 파멸하는 이 이야기에서 침략자도, 공격자도 실패자에 불과하다. 당시 외계인 이야기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화성인 대신 목성인을 등장시킨 점도 기발하다. 당대의 어느 날,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목성인들이 지구를 식민화하기 위해 침략한다. 침략방식 또한 고도의 과학기술을 활용해 매우 교묘하다. 지구인들은 목성인에게 납치되고 살해되지만 그 실체를 알지 못한다. 목성인은 보이지 않게 공격하고, 우주벌레를 통해 지구인의 정신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오메가 모양의 우주벌레에 물리면 지구인의 세포는 죽고 목성인과 텔레파시가 통해 그들의 노예가 된다. 하지만 지구를 멸망에 이르게 한 결정적 원인은 목성인이 아니다. 지구는, 목성인의 공격을 적대국의 침략으로 오인한 국가들이 서로 핵폭탄을 터뜨려 멸망한다.

우주 시대의 디스토피아 SF에서 원자폭탄은 지구를 멸망케 한 결정적 계기로 자주 등장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을 항복하게 한 원자폭탄에 대한 공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조능식의 『곤충왕국』(1959, <학원>)에서는 당대의 어느 날 곤충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인류는 멸망하고 지구는 곤충 떼로 뒤덮인다. 원자폭탄의 부산물인 방사성 동위원소 실험으로 태양 에너지가 변화해 곤충계에 큰 이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백만 년 여행』(1955.10.), 183쪽.  

그런데 이 파멸은 태양계 차원에서는 새로운 탄생의 과정이다. 위 실험의 결과 태양이 젊어져서 지구를 원시의 상태로 회복시킨 것이다. 이와 같이 우주 시대의 디스토피아 SF는 태양계의 지평에서 지구 멸망의 원인과 의미를 좀 더 근원적으로 제시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보면 모든 존재의 생성과 소멸은 자연의 이치이다. 주일석의 『백만 년 여행』(1955, <학원>)에서는 종호가 할아버지가 발명한 타임머신을 타고 1백만 년 후 지구에 가본다. 지구는 태양이 사멸해 어둡고 산소가 부족하다. 인류는 살지 않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짐승들만 남아 있다. 그런데 그 원인이 앞선 작품들과 달리, 인간에 있지 않고 시간에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와 같이 디스토피아 SF는 과학기술의 위험성과 인간의 한계를 경고한다는 점에서 과학 계몽주의에 역행한다. 하지만 이 불온한 상상력은 아동‧청소년들에게 과학 유토피아의 판타지 대신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는 점에서보다 과학적이다.

 

멸망하는 세계에서 살아남은 아이들
 
우주 시대의 디스토피아 SF에서 가장 그럴듯하지 않은 일은 멸망하는 세계에서 주인공 아이들만 온전히 살아남은 것이다. 『우주벌레 오메가호』에서는 목성인 우주선에 납치됐던 일우와 애나가, 『곤충왕국』에서는 정식이와 용희가 살아남는다. 

 

『곤충왕국』(1959.9.), 189쪽.

정식이와 용희는 최후의 인류로서 곤충왕국의 천연기념물이 돼 원시생활을 한다. 일우와 애나는 한국에서 우주벌레 치료제를 발견하고 희망을 품는다. 이런 결말은 아동‧청소년 SF의 제약, 또는 작가들의 부담을 시사한다. 혹자는 작가들이 아동‧청소년에게 미래의 희망을 봤기 때문이라고 해석할지 모르겠지만 그러기엔 희망의 근거가 약하다. 작가들이 구축한 세계와 그 멸망의 과정은 불가항력적인 것이기에 살아남은 아이들에 대해선 감동보다 기이함이 앞선다. 

그들의 의지나 능력보다는 운에 의해, 좀 더 노골적으로는 ‘주인공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법칙에 의해 살아남았기 때문에, 생존 이후의 삶은 생략됐고 막막하다. 작가들은 생존자를 주인공으로 해 미래를 개척하는 후속편을 쓸 계획이 없었던 게 분명하다. 다시 말해, 그들이 들려준 멸망 이야기에서 아이들의 생존은 핵심적인 의미를 형성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아이들마저 죽게 하면 우리는 이 작품을 아동‧청소년 SF로 마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동‧청소년 디스토피아 SF의 딜레마

아동‧청소년 문학에서 인류의 멸망을 상상하는 일은 매우 곤란하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성장하는 존재인 그들에게 그들이 선 땅을 무너뜨리는 상상은 그들에게 공포감을 주고, 세계에 대한 믿음보다 불신을 먼저 가지게 한다는 점에서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정치적‧자연적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디스토피아에서 어린 생명의 성장은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서양에서도 아동‧청소년 문학에 디스토피아가 등장한 것은 최근의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주 시대에 등장한 디스토피아 SF는 2000년대 이후, 한국 청소년 SF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거기엔 SF로 그릴 수밖에 없는 절박한 이 시대의 모순이 자리할 것이다. 과학주의가 지배하는 유토피아 판타지도 진실과 거리가 멀지만, 디스토피아적 상상이 지배적인 현상도 자연스럽지 않다. 그 부조리의 진실을 어디까지 어떻게 추구해야 아동‧청소년을 위한 문학이 될 것인가? 아동‧청소년 SF의 딜레마이자, 과제다. 

 

 

 

글‧최배은
숙명여대 초빙대우교수. 아동‧청소년문학, 스토리텔링 연구자. 저서로 『한국 근대 청소년소설의 정치적 무의식』(박문사, 2016), 평론으로 『한국 아동‧청소년 과학소설에 재현된 ‘공포’의 상상력』(『아동책이야기』44호, 2018), 논문으로 『한국 웹소설의 서술형식 연구』(『대중서사연구』, 2017)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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