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9월호 구매하기
[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여성의식 노래하는 성장서사: 김보라 감독 <벌새>
[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여성의식 노래하는 성장서사: 김보라 감독 <벌새>
  • 정재형(영화평론가)
  • 승인 2019.08.19 10: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의 저항의식은 이 영화의 커다란 줄기다. 그런 점에서 여성영화는 흥미로운 주제다.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뒤집어볼수 있는 프리즘과도 같은 존재이다. 여성영화의 측면에서 <벌새>는 부당한 억압속에서 자기 주체로 당당히 서가는 어린 여성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

왜 제목이 벌새일까? 영어로는 <The House of Humming Bird>이다. ‘노래하는 새의 집’이다. 벌새는 새중에서 가장 가냘프고 작은 새로서 1초에 80회나 날개짓을 한다. 부지런한 날개짓이 소리를 내어 서구에서는 ‘허밍버드’, 노래하는 새로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는 벌처럼 작은 몸체라 벌새다. 우리와 서구의 이름이 둘다 주인공 은희에게 어울린다. 그녀는 중2 여학생이라는 보잘 것 없는 작은 아이이고 노래는 자유로움과 저항의 한 상징이다. ‘노래방 대신 서울대 간다’는 복창이 그걸 단적으로 보여준다. 노래방은 서울대의 반대말처럼 설정되어 있다. 노래방은 대학진학 공부에 몰두하지 않고 개성을 계발하고 꿈을 꾸는 행동을 상징하는 것이다. 은희는 노래를 틀어놓고 미칠 듯이 괴성을 지른다. 아네스 바르다의 영화 <노래하는 여자, 노래 하지 않는 여자>의 세계로 연결된다. 그 영화에서 여성해방을 상징하는 것은 노래하는 여자다. 은희는 노래하지 않는 여자에서 학원선생 지영을 만나 깨어나 노래하는 여자로 살기로 한다. 은희에게 세상은 알이고 지영은 아브락사스며 그 새를 통해 알을 깨고 나온다. 영화는 이렇게 헤르만 헤세의 세계와도 연결된다. 영화속에 나온 책 [크눌프]의 등장은 우연은 아니다.

 

<벌새>는 엔딩이 정해져 있는 헐리우드 고전 스타일 드라마가 아니다. 영화속 문제는 표피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은희는 자신의 삶이 고통스럽다. 그 이유는 하나가 아니다. 맨처음 그녀에게 고통을 준 존재는 오빠이다. 오바는 그녀를 하녀처럼 시키고 말을 듣지 않으면 혼낸다. 순종적이지 않은 은희는 문제제기를 한다. 가족의 최고 어른인 아버지에게 부당함에 대한 해결을 요구했으나 아버지는 해결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오빠가 서울대를 가고 출세해야 하므로 오히려 그를 두둔하고 보호해준다. 아버지의 비호에 힘입어 오빠는 은희에 대한 가해를 대놓고 한다. 가정에서 여성이 동등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은 보편적인 한국의 관습이다. 영화는 은희 개인사를 그리지만 동시에 한국의 보편적이며 공적인 역사를 그린다. 영화는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문제를 건드리므로 공감대가 크고 대중적이다.

은희를 억압하는 세력은 가정으로부터 출발하여 더 큰 사회 학교로 이동한다. 수업에서 선생은 학생들에게 복창하게 한다. ‘나는 노래방 대신 서울대 간다’. 영화에서 서울대는 특정 대학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은유화된 대상으로서의 서울대다. 그것은 기성세대가 청소년들을 몰아넣어 청춘을 불사르게하고 기성세대들의 가치관대로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하게 만드는 지배적인 가치개념이다. 서울대를 목표로 지향하는 순간 개인은 몰개성적이며 비인간적이고 물질지향적인 인간으로 재탄생한다. 그는 이웃의 개념이나 공동체의 이익 따윈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자신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 시간과 정열을 불태운다. 개인의 창의성이나 자율성, 책임과 의무, 자유의지, 희생과 봉사, 사랑, 공동체와 공동선에 대한 가치는 멀어진다. 오로지 경쟁속에서 남을 누르고 일등을 하는 의식만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한다. 영화는 사회와 정치가 개인을 억압하는 공식을 보여준다.

 

억압의 극한에서 은희가 탈출하는 해방구는 사랑이다.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다가가 키스 한다. 영화는 은희가 경험하는 많은 사랑의 관계를 보여준다. 영화는 한 마디로 사랑의 영화이며 관계의 영화이기도 하다. 그녀는 가까이 있는 남자친구와의 첫 키스에서부터 시작하여 학원을 같이 다니는 단짝 친구, 일년 후배, 그리고 학원선생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통해 가족과 학교가 가한 억압에서 탈출하여 사랑의 도피를 하게 된다.

영화는 1994년을 소환한다. 그 해는 주인공 은희에게 놀라운 자각을 하게 한 해다. 성수대교가 붕괴하여 많은 사랑하던 사람들이 강제 이별했고 북한인민들은 어버이같은 수령 김일성을 잃었다. 은희 역시 가장 사랑하던 사람을 잃음으로써 사랑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어느날 순간 단절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녀에게 성장은 그렇게 고통이며 인생은 슬픔임을 알게한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 또한 소녀에서 성인 여성이 되며 세상의 새삼스런 성평등의 가치를 깨닫는다. 이 영화는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성장서사다. 그동안 남성입장에서 바라본 성장서사가 놓쳤던 또 다른 문제를 인식시킨다. 이 영화의 소중한 수확은 바로 그런 것이다.

 

 

글·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이며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을 역임했다. 『영화이해의 길잡이』, 『영화영상스토리텔링100』 등의 역저서가 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정기구독자님이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바랍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시 종이신문 과월호를 발송 드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