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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국의 문화톡톡] 탈 - 회중시계 그리고 춤
[최양국의 문화톡톡] 탈 - 회중시계 그리고 춤
  • 최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19.09.02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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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선-증기선 그리고 일몰.
19세기 영국의 대표적 풍경화가인 윌리엄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 얼굴이다.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1775~1851),The Fighting Temeraire;1838~1839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1775~1851),The Fighting Temeraire;1838~1839
트라팔가 해전의 영광을 뒤로 하고 작은 증기선에 끌려 해체되기 위해 예인되어 가는 큰 범선이 “나는 이제 사라지지만 잊지 말아 달라”는 말을 일몰에게 던지는 듯 하다.
<007 스카이폴>은 007 시리즈 전작 중 가장 나약한 제임스본드(대니얼 크레이그)가 등장한다.
<전함 테레메르>를 보고 있던 본드에게 다가와 앉으며 첨단 무기 개발요원 Q(벤 위쇼)가 던지는 말, “시간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법인가 보죠?”
어떤 그림 속 그 색깔의 안경을 쓴 새로운 탈들이 어쩔 수 없는 일몰의 스러짐과 함께 다가온다.
 
누군가의 책상에는 매 순간 앞으로만 나아가는 회중시계가 앉아 있다.
선물로 맞은 마카오 회중시계와 선물인 듯 찾아온 ICBMA(4차산업혁명;4.0)에서 흰토끼의 핑크빛 눈과 회중시계에 끌려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를 떠올린다,
회중시계는 닫힌 순환의 원을 그리며 점과 점의 숫자만으로 사라지지 않는 가도(街道)의 시간을 안내한다.
데이터로 만들어진 탈을 쓴 채 익숙함을 떠나 낯설음을 찾아 떠난 길.
익숙함은 망각이라는 블랙홀 속으로 빠르게 사라지며 우리의 내면에 경험으로 남는다.
남겨진 내면과는 다른 놀라움을 안겨주는 경험에서 즐거운 감정을 오롯이 얻을 수 있을 것을 기대하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가지 않은 길을 걷는다.
우리는 어디든 도착만 하면 되는 것이기에 어디로 가고 싶은 곳은 없는 듯, 어느 길로나 걸어가며 순환을 반복한다.
 
그러나 낯익음과 낯설음은 자신의 색깔을 가진 탈과 춤이 되어야 하고,탈춤처럼 어떤 기원을 향한 감성을 교감하며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봉산탈춤이 봉산별산대놀이나 통영오광대가 될 수 없고 봉산탈춤이 있어야 말뚝이와 취발이 탈이 필요 하듯이, 낯익음과 낯설음은 우리들 풍농(豐農)의 흥을 위한 얼씨구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
세상이 온통 놀라움의 감탄사로만 가득 채워져 있다면, 우리는 탈춤을 추기 전 우리들의 잃어 버린 시간을 다시 찾아 보는 것이 좋겠다.
계속해서 충격적인 장면만 보여주는 영화는 왠지 불편하고 거북하다.
익숙하지 않은 박자와 음계로만 이루어진 정간보와 오선보 음악은 어쩔 수 없이 지루하고 집중할 수 없다.
범선의 닻과 같은 낯익음이 있어야 증기선과 같은 낯설음으로 항해하며 우리만의 탈춤을 출 수 있다.
 
낯익음이 구심적이라면 낯설음은 원심적이다.
우리들 탈춤의 춤사위는 낯익음과 낯설음이라는 두 개의 초점을 가지는 타원 궤도위의 궤적이 되어야 한다.
 
<007 스카이폴>은 낯익음을 바탕으로 한 낯설음으로 007 시리즈 중 최고의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탈들이 회중시계 품에서 춤을 춘다.
숨겨진 얼굴들은 낯익음에 눈이 멀고
톡톡톡 터지는 탈들 그 색감이 짠하다.
 
탈 안에 얼굴이 있고, 얼굴 너머에 탈이 있다.
 
 
·최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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