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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충실하게 추구되는 의미가 구겨진 텍스트 위로 널어지다 <언더 더 실버레이크>
[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충실하게 추구되는 의미가 구겨진 텍스트 위로 널어지다 <언더 더 실버레이크>
  • 안치용(영화평론가)
  • 승인 2019.09.1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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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더 실버레이크>는 관객보다는 영화기자나 영화평론가를 괴롭히는 유형의 영화다. 조금 당혹스러울지 모르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내 생각엔)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물론 영화관을 나오면서 이렇게 말하리라. “도대체 뭔 소리를 한 거야?”

영화기자나 평론가는 이렇게 말할 수 없다. 용감한 이들이 더러 관객의 편에 서서, (내가 종합해 보면) 감독이 자의식의 분열을 보여주며 잘난 체 할 뿐 알맹이라곤 없는 영화라고 돌직구를 날린다. 이 영화를 옹호하는 이들은, 대중이 간과한 숨은 의미를 보여준다며 아마도 글에다 잔뜩 힘을 집어넣고 자신의 식견이 얼마나 높은지 자랑하는 기회로 삼을 법하다. 외국 언론에서 써먹은 “데이빗 린치와 히치콕의 아름다운 오마주” 같은 전형적 설명도 가능하리라.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회피할 공산이 크다. 이 영화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혹은 언급할 내용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우선 <언더 더 실버레이크>의 서사가 꼬여 있다. 큰 얼개는 선형(線型) 서사라고 할 수 있지만 틈날 때마다 완결적이지 않은 다른 선형 서사가 마구잡이로 끼어들어 전체 영화를 비선형(非線型)으로 만든다. 이어져 있지만 끊어져 있다. 즉 생각보다 단순한 줄거리임에도 따라가기가 힘들다. 더 곤란한 것은 ‘영화적 오마주’가 차고 넘쳐서 그 ‘오마주’들이 생성할 후경(後景), 혹은 아우라를 간파해서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나에게도 해당할 이야기로, 포착하지 못할 ‘오마주’가 적잖아 보였다. 평을 썼을 때 본전 건지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말도 안 되게 재미있는 영화”?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존 더스패서스의 소설 『맨해튼 트랜스퍼』를 떠올렸다. 미국 ‘로스트 제너레이션’의 대표작가의 하나인 더스패서스가 1925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실험적 기법으로 유명한 미국의 대표적 모더니즘 소설이다. 소설 『맨해튼 트랜스퍼』가 뉴욕과 뉴욕의 군상을 몽타주를 이어붙였다면 영화 <언더 더 실버레이크>는 할리우드의 탐욕과 할리우드 탐욕의 인간군상을 만화경처럼 제시한다. 두 작품 간의 명백한 차이는 『맨해튼 트랜스퍼』가 스무 명이 넘는 등장인물의 인생을 횡단하듯 전시한 반면 <언더 더 실버레이크>는 철저하게 주인공 샘(앤드류 가필드 분)의 시선에 의지하며 할리우드를 종단한 데서 찾을 수 있다.

‘FilmDrunk’는 <언더 더 실버레이크>를 “초현실 LA 느와르 마스터피스”라고 평했다. “LA”와 “느와르”는 이 영화를 해석하는 데 불가피하게 포함되어야 하는 단어이다. “초현실”이란 단어에 대해선 유보적이다. 영화가 현실을 그려내는 이른 바 ‘재현’의 측면에서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그리하여 과잉이 목격되지만 재현 자체에서 비틀림은 없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현실이 익살맞게 과장되었지만 현실적일 수 있겠다는 합리적 수긍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화 안으로 들어오면, 충실하게 추구되는 의미가 구겨진 텍스트 위로 널어져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텍스트가 움푹 파인 곳에선 의미가 층층이 쌓여 의미들의 하나하나를 구분하기가 어렵고 더러 의미끼리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기도 한다.

영화는 초현실(주의)보다는 모더니즘에 가깝고, 따라서 영화는 『맨해튼 트랜스퍼』같은 모더니즘 소설과 닮게 된다. 영화이든 소설이든 모더니즘은, 외양이 주는 오해와 달리 세계의 진지한 탐색을 모색하며 <언더 더 실버레이크> 또한 진지하다.

그러나 데이빗 로버트 미첼 감독의 진지함은, 이 영화에 열광하며 쓴 평론들에서 드러날 법한 허영과 과시가 배제된다. 정교한 형식과 의미의 자제는 모더니즘의 기초이다. 미첼 감독의 진지함은 이리저리 가로지른 ‘오마주’와 모더니즘 장치들 사이에 자신의 목소리를 조심스럽게 숨겨놓은 데에서도 발견된다. 난해하고 기이한 영화라는 오해는, 감독이 자신의 목소리를 아래로 가라앉히고 작가와 시대를 넘나든 현란한 영상언어를 위에다 종횡으로 배치한 데서 연유한다. (자신의) 의미의 과잉보다는 (타인의) 형식의 과잉을 택함으로써 의미집중이 야기할 ‘꼰대화’를 모면한다. 아무튼 우리는 이 영화에서 ‘아래(under)’를 보아야 한다.

영화제목 <언더 더 실버레이크>의 ‘실버레이크’는 할리우드에 있는 저수지이다. 실버레이크가 상징하는 바는 뚜렷하다. 미첼 감독은 “<언더 더 실버레이크>는 우리 문화를 정의하는 영화와 음악, 잡지 등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 안에 담긴 숨은 의미에 관한 영화이다. 우리는 모두 대중문화라는 호수 안에서 헤엄치고 있다. 하지만 수면 저 아래에서 우리가 모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배급사에서는 영화를 이렇게 소개한다. “청년 백수 샘이 하룻밤 새 사라진 이웃집 썸녀 사라를 찾아 할리우드 실버레이크 아래 감춰진 비밀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로맨스릴러다.” 영화의 기본골격은 탐정영화이다. 비밀은 밝혀지지만 속 시원하지는 않다. 로맨스라고 할 만한 것도 별반 제시되지 않는다. 스릴러 같기는 하지만 이보다 더 강력한 스릴러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언더 더 실버레이크>를 스릴러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결여와 부족은 형식 과잉의 불가피한 결론이다. 형식과 의미의 비대칭, ‘오마주’와 모더니즘의 결합은 구조 자체를 메시지로 만든다. 어렵사리 진실이 부상한 순간의 수면을 카메라 앵글이 마침내 잡는다고 하여도 진실은 곧바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며, 관객은 여전히 수면 위를 볼 수 있을 뿐이다. 다만, 한번 수면 위로 떠오른 진실을 보았다면 진실이 가라앉은 다음에, 수면 위만 보는 우리가 수면 아래의 진실을 상상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진실은 상상할 만큼 값어치가 있는 것인가.

 

‘언더’는 미스터리와 관계되지만 영화의 사회학적 전망과도 이어진다. 사라(라일리 코프 분)는 일부다처제와 순장이 결합된 시대착오적인 아래세계로 자발적 유폐를 결행하고 자타공인의 루저 샘은 자기 방에서 쫓겨나 아래층 노출녀의 방으로 옮아간다. 이러한 공간구조는 분명 계급적인데, 영화 속에 드러난 결과가 세상에서 관철되는 계급적 이해와 관행과는 다른 것이어서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 대중문화와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과 함께 영화적 블랙코미디를 통한 명료한 계급갈등을 보여준다. 영화가 샘의 관점에 의존하다 보니 감독이 의도하지 않은(혹은 미처 자각하지 못한) 여성혐오가 노정된다는 사실 또한 지적할 수 있겠다.

영화의 모두에 등장하여 중요한 모티브로 작동한 ‘개 도살자(dog killer)’는 누구이고 어떤 의미일까. ‘개 도살자’가 알프레드 히치콕의 맥거핀 같은 게 아님은 분명하다. ‘실버레이크’ 외에 ‘개 도살자’라는 또 하나의 핵심플롯은 관객에게 괴로움이거나 즐거움일 텐데 내 생각엔 즐거움이지 않을까 싶다. ‘개 도살자’가 누구인지에 관한 내 생각은 있으나 미첼 감독의 연출방식을 존중하여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구분이 굳이 필요한가 싶지만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끝으로 한 마디 남기면 이 영화는 예술영화가 아니라 상업영화이다. 매대에서 땡처리하는 유형만을 상업영화라고 착각할 필요는 없다. “말도 안 되게 재밌는 영화”라는 ‘Voices&Visions’의 평에서 “말도 안 되게”를 빼면 그 평에 동의한다. “당신은 이 영화를 두 번 보게 될 것이다”는 ‘Cinemanía’의 의견에도 동의한다. 두 번 보지 못할 사람은 한 번 볼 때 영화 중간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19일 개봉.

 

 

글·안치용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겸 한국CSR연구소장으로 영화평론가로도 활동 중이다. 지속가능성과 CSR을 주제로 사회활동을 병행하며 같은 주제로 청소년/대학생들과 소통 및 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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