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호 구매하기
[심지영의 문화톡톡] 마들렌의 초상에서 바나니아까지
[심지영의 문화톡톡] 마들렌의 초상에서 바나니아까지
  • 심지영(문화평론가)
  • 승인 2019.09.23 14: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식민지의 흑인모델

올해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열린 <흑인모델 - 제리코에서 마티스까지>전시는 서양의 정전을 비틀어보고자 하는 포스트식민주의 작품들의 전략과 맞닿아 있다.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다른 시각으로 고쳐 쓴 진 리스Jean Rhys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는 로체스터의 미친 아내버사를 다시 조명하며 탈식민주의의 입장에서 식민지와 제국주의의 관계를 설득력있게 그려냈고, 제인 에어와 대비되는 다락방의 미친여자가 얼마나 매혹적인 흑인문화를 물려받은 크리올이었는지 보여준다.

단지 작품에 검은 터치가 필요해서 흑인을 넣었다고 말했던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에서, 병풍처럼 그려졌던 흑인 모델을 부각시키고 대부분은 노예였던 이들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던 오르세의 전시는 흑인의 몸을 다시 한번 구경거리로 만든다는 껄끄러운 비판을 감내하고, 유럽 낭만주의/제국주의 시대의 흑인들의 존재와 이들이 겪었을 역사를 예술의 관점에서 조망했다.

 

오르세 미술관 특별전 '흑인모델'의 포스터
                                                오르세 미술관 '흑인모델'의 포스터

 

마리-기유민 브누아, '흑인여자의 초상'(1800), 루브르 박물관 소장
마리-기유민 브누아, '흑인여자의 초상'(1800), 루브르 박물관 소장

 

특히 마리 기유민 브누아(Marie-Guillemine Benoist, 1768-1826)가 그린 <흑인 여자의 초상화 Portrait d’une négresse>는 이 전시의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제목의 네그레스 négresse’라는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작품의 모델은 이 당시 대부분 프랑스에서 노예로 살고 있던 검둥이 여자였다. 화제를 일으킨 것은 작품의 주제와 재현방식 때문이다. 귀족 부인의 초상화에 이용되었을 법한 구도를 이용하여 우아하고 섬세하게 흑인 여자노예를 그렸던 화가는 노예제 폐지에 찬성하고 있던 여성 화가였다. 이 당시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노예제가 잠시 폐지되었지만 실행되지는 않고 있는 상황으로, 화가는 자신의 집에서 일하던 과들루프 출신의 해방된 노예 마들렌Madeleine을 우아한 초상화의 모델이 될 자격이 있는 당당한 개인으로 그렸으며, 화가와 작품은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이 작품은 이번 오르세 전시에서 <마들렌의 초상>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노예에서 해방된 검둥이 여자는 200년이 지나서야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단지 그 이름이 너무나 프랑스적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프랑스의 19세기는 공화국이 점차 체계를 갖추고 시민사회가 기틀을 잡아가는 선구적 모더니티의 시대였지만, 밖으로는 공격적인 식민지 확장을 주저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이와 같은 이중담론은 프랑스의 19세기를 이해하는 키워드일 것이다. 프랑스 안에서 백인들이 누리던 19세기의 찬란한 문화는, 프랑스 식민지의 피식민자들이나 프랑스에 들어와있던 흑인들이 겪었던 수난의 삶을 기반으로 했다.

제국주의적 식민지 정복이 가장 극심했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는 프랑스의 시각예술에 흑인들의 이미지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특히 이 시기는 프랑스의 <벨 에포크 Belle époque>시대로서, 판화 기술의 발전으로 그래픽 예술이 발전하면서 장식예술과 공연예술의 성공과 궤를 같이 하는 다양한 포스터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쉐레나 툴루즈-로트렉이 포스터를 그려주었던 폴리 베르제르나 물랭-루즈와 같은 캬바레나 공연장들이 성공을 거두었고, 프랑스 곳곳에 공연장들이 생겨나면서 흑인들도 무대위에 올려져 신기한 볼거리가 되었다. <인간 동물원>으로서 흑인들이 어떻게 소비되었는지는 이 시기의 공연 포스터로 쉽게 알 수 있다.

 

줄루족 폴리 베르제르 공연포스터(1878)
줄루족 폴리 베르제르 공연포스터(1878)
아샨티족 파리 공연포스터 (1887)
아샨티족 파리 공연포스터 (1887)

원래 19세기 중반부터 파리에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온 흑인들이 공연을 했었지만, 1878부터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이 파리 공연계에 등장했다. 줄루족이 폴리 베르제르 극장에서, 1887년 아샨티 족은 아클라마타씨옹 공원에서, 다호메인들이 카지노 드 파리의 무대에 출현했다. 공연들이 성공하고 대중적 관심을 이끌어 내면서 원주민들의 마을이 파리에 전시되기도 했으며, 아클라마타씨옹 공원에서 공연하던 극단이나 박람회에서 원주민 마을에 살던 극단들이 카바레나 극장으로 진출하는 경우도 있었다.

프랑스의 <벨 에포크>는 프렌치 콜로니얼이라 불리는 제국주의의 시기와 겹쳐 있었고, 당시 대중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프랑스 인들이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는 데에 극장과 카바레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극장에서는, 당시 사회 현안에 부합하는 공연들을 기획했는데, 예를 들어 프랑스가 수단을 정복한 후, ‘수단에서 보낸 5개월이라는 공연이 불로뉴 숲 극장에서 상연되거나, 다호메이를 정복한 후에 카지노 드 파리극장에서, ‘다호메이 정복이라는 공연이 상연되기도 했다. 이 공연들의 줄거리는 늘 한결같았는데, 문명을 전달의 미션을 수행하는 프랑스 군대를 위험한 원주민들이 공격하는 이야기가 반복되었다.

당시 인류학자들은 파리에 진출한 아프리카인 극단을 연구하기도 했는데, 1887년 폴리 베르제르에 등장했던 콩고의 피그미족 같은 경우가 인류학의 연구대상이었다. 공연 기획자가 이 극단을 데리고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파리로 순회공연을 하는 동안, 피그미족 극단은 인류학회에 소개되어 베를린과 파리에서 두 개의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이 연구들에서 피그미족들은 인류의 가장 열등한 종족으로 인식되었고, 원숭이들과 유사한 생명체라 소개되었다.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블랙비너스'(2010)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블랙비너스'(2010)
로시디 젬 감독의 '쇼콜라'(2016)
로시디 젬 감독의 '쇼콜라'(2016)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블랙 비너스>와 로시디 젬 감독의 <쇼콜라>19세기에 유럽에서 구경거리가 되었던 흑인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이다. 19세기 초, 남아공에서 온 사르키 바트만은 커디란 엉덩이에 긴 음순이 있다는 이유로 런던 명사들의 무대에 호텐토트의 비너스로 올려졌고, 유럽을 돌며 공연을 하다가 짧고 고단한 삶을 마감해서도 뇌와 성기 등이 박물관에 전시되는 수난을 당한다. 영화 <쇼콜라> 역시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벨 에포크 시대에 무대에 올랐던 최초의 흑인 광대를 주인공으로 한다. 주인공인 흑인광대가 짐승이나 식인종을 연기해서 돈을 버는 장면을 보면, 에펠탑이 세워졌던 만국박람회에서 실제로 반인반수의 컨셉으로 흑인들도 전시되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게 된다. 실제로 1906년 프랑스는 영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식민지 제국을 가지고 있었으며,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의 매우 강렬한 지배 욕구를 갖고 있었다. 이 시기의 식민지 박람회는 당시 프랑스인들의 호기심을 반영했다. 1906년에는 파리와 마르세이유에서 박람회가 개최되었다. 원칙은 간단했다. 그것은 전시장을 식민지 정복에 헌정된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건축, 의복, 생활양식, 의식 및 관행 등 모든 분야를 전시했으며, 이를 위해 실제 토착 마을이 건설되고 식민지의 사람들은 풍경을 채우는데에 동원되었다. 일부 동물들이 사람들과 함께 동행되었다. 공연이 준비되고, 관람객들이 몰려 들고, <인간 동물원>이 유행하게 되었다.

 

1906년 프랑스의 식민지 박람회 포스터
1906년 프랑스의 식민지 박람회 포스터

1906년의 식민지 박람회 포스터에서, 여성 캐릭터는 흑아프리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함축한다. 몸을 반쯤 드러낸 흑인 여성은 아이를 없은 채 유모와 같은 이미지로 등장한다. 아프리카에서 일상생활의 어려움, 의복의 단순함, 야만에 가까운 자연 상태를 연상시키며, 서구 사회가 기술적 발전을 이룩했다는 점을 더 강조한다. 이 요소에 원주민을 동물과 연관시키려는 욕구가 더해져, 흑인 여성은 타조의 존재와 그녀의 아이와 함께 더욱 그 지위가 강조된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식민지의 문명화를 강조하는 시각이 매우 유행했는데, 그림의 원경에 있는 건물은 이에 대한 가치 증진의 요소로 작용한다. 프랑스는 이 나라들의 정부가 되는 법을 알고 있었고, 흑인들의 복종은 공화국의 장점을 부각시켰다. 이 포스터는 박람회에 많은 사람들을 끌어 들이기 위해 고안되었다. 하단에 나와 있는 가격은 중요한 정보였다. 교양있는 파리 사람들에게 이 흑인 라이브 쇼에 참석하면 다양한 풍경을 체험할 수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국적인 식물 및 동물과 원시인을 발견하는 체험을 강조하는 이 포스터는 인간 동물원의 기억을 보여주며 식민지 역사에서 중요한 흔적으로 남아있다.

가장 최근까지 프랑스 식민제국의 광고로 남아있던 이미지는 <바나니아>의 광고이다. 20세기 초, 프랑스 식민 제국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식민지의 착취는 가장 중요한 무역의 수단 중 하나였다. 여행에 매료된 저널리스트인 피에르 라르데는 1909년 중앙아메리카 지역을 여행했고, 작은 인디언 마을에서 밀가루, 바나나, 시리얼, 코코아 및 설탕으로 만든 맛있는 음료를 발견했다. 프랑스로 돌아와 파우더 초콜릿 회사 를 설립하고, 음료에 바나니아라는 이국적인 이름을 붙였다.

 

1915년 프랑스의 '바나니아Banania' 광고
1915년 프랑스의 '바나니아Banania' 광고

최초의 포스터에서는 카리브해 지역의 사람이 등장했지만, 1915년에는 모델을 유쾌한 세네갈 용병으로 바꾸고, 슬로건으로 "y’a bon ('맛있어요'라는 표현의 비문)이라는 식민지식 프랑스어 표현을 사용했다. 1857년에 설립된 세네갈 저격병 용병 부대에는 1914년 약31,000명의 군인이 있었으며 모두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에서 모집되었다.

광고에는 사나운 야만인이지만 충성스러운 용병이라는 양가적 이미지를 동원하였다. 바나니아 한 그릇을 즐기면서 발아래에 총을 놓고 나무 밑에 앉아있는 세네갈 용병과 함께 배경에 있는 광대한 평야는 노란 바나나가 익고 있는 아프리카 사바나를 연상시킨다. 이 광고는 1890년대부터 광고에 사용된 인종적 고정 관념을 이용했다. 검은색과 하얀색의 과장된 대조가 웃음과 사이가 넓은 두 눈에서 드러난다. 문법에 맞지 않는 짧은 프랑스어는 식민지의 열등한 시민을 상기시키며, 마침내 음료를 마시는 병사는 전쟁을 잊게 된다. 흑인의 웃음과 "y'a bon"1970년대 말까지 바나니아 브랜드의 상징이었다.

이 광고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세네갈 용병이 등장해서라기보다는, 반대로 흑인의 고전적 이미지를 기회주의적인 방식으로 이용하여 세계 대전의 참가를 최소화하려는 프랑스의 정치적 의도를 암시했기 때문이다. 전쟁 기간에 이들 용병이 아이들과 동일시되었던 점이 이러한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아이들처럼 그들은 최선을 다하는 시민이며, 불투명한 미래에서 그들의 미래는 거부당한다. 동일한 비유가 국적에도 적용된다. 식민지 수입품(코코아, 바나나, 설탕)에서 독점적으로 만들어진 프랑스음식인 바나니아와 마찬가지로, 세네갈 용병은 분명히 프랑스인이 되었지만 흑인의 특성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프랑스에서 배척당한다바로 이런 의미에서, 1948년 세네갈의 시인 상고르Senghor는 프랑스의 모든 벽에 붙어있는 바나니아의 웃음을 찢어 내야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1970년대 후반까지 활발하게 사용되었던 이 광고는 2011년에야 인종주의적 광고로 최종 사용금지 판결을 받았다.  

 

글: 심지영

방송통신대학교 불어불문학과/아프리카 불어권언어문화학과 대학원 교수. 시각 예술의 기호학을 전공했으며, 현재는 주로 포스트식민주의의 관점으로 현대 프랑스와 프랑스어권 아프리카의 문화를 연구하고 있음

 

참고문헌

Le modèle noir de Géricault à Matisse, Catalogues d'exposition, Cécile Debray, Stéphane Guégan, Denise Murrell, Isolde Pludermacher, Coédition Musées d'Orsay et de l’Orangerie / Flammarion, 2019.

Doumerc, Vincent, « La France coloniale et les zoos humains », Histoire par l'image [en ligne], consulté le 22 septembre 2019.

URL :http://www.histoire-image.org/fr/etudes/france-coloniale-zoos-humains

Lhôte, Jean-Marie, Le XXe siècle s'affiche. 100 affiches témoins de notre temps, Larousse, 2000.

Sibeud, Emmanuelle, « « Y’a bon » Banania », Histoire par l'image [en ligne], consulté le 22 septembre 2019.

URL : http://www.histoire-image.org/fr/etudes/y-bon-banania

Winock, Michel, La Belle époque. La France de 1900 à 1914, Editions Perrin, Paris, 2002. 2003.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정기구독자님이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바랍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시 종이신문 과월호를 발송 드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