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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양가 없는 뻘짓의 가치-영화 <엑시트>의 응원가
[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양가 없는 뻘짓의 가치-영화 <엑시트>의 응원가
  • 송아름(영화평론가)
  • 승인 2019.10.2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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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남(조정석)의 철봉 운동은 마치 수련해 온 이의 경지에 도달한 듯하다. 흰 가루를 손에 풀풀 날리며 날 듯 뛰 듯 철봉을 옮겨 다니는 그의 몸은 단련된 자의 것이고, 맺힌 땀방울 역시 그가 이 일에 매우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능숙함은 용남이 그만큼 철봉운동에 시간을 들였다는, 또 그만큼 철봉과의 시간을 즐긴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마도 자신이 정한 운동 루틴에 도달하고 그 마무리로 착지했을 때 용남은 굉장한 희열과 뿌듯함, 그리고 성취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용남은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던 동네 할머니가 조용히 엄지를 치켜드는 것에 머쓱해하고, 고추를 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누군가의 뒷모습에 부끄러울지 모른다. 급기야 용남의 철봉 사랑은 ‘동네 바보’라는 별칭과 함께 조카조차 무시하는 것으로 용남의 지위를 새겨버린다. 그리고 그때 용남은 자신이 지원했던 기업의 불합격 통보 문자를 받는다.

용남이 시간과 정성을 쏟는 철봉 운동이 그를 동네 바보로 만들었던 것은 바로 이 문자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멀쩡한 젊은 청년은 노인과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는 놀이터에, 그것도 대낮에 나타나선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남들이 일을 해 돈을 벌어야 한다고 믿는 바로 그 시기에 적절히 발맞추었다면 그곳에 있을 수 없었다는 전제가 용남을 향한 측은해 하는 혹은 무시하는 눈빛의 의미인 것이다. 게다가 그가 좋아하는 철봉운동은 그가 취업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오히려 취업을 하기 위해서 밟아야 하는 스펙 쌓기를 비껴가기까지 하는 ‘쓸데없는 일’이다. 용남이 철봉에 매달려 즐기는 시간들은 그를 할 일없는 바보로 만들고, 내세울 것 없는 아들로 만들며, 무시당해도 싼 천덕꾸러기로 내려 앉힌다. 영화 <엑시트>(2019)는 이런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청년들에 집중한다. 그들이 보냈던 모든 시간에 대한 헌사, <엑시트>가 청년에게 보내는 응원이자 위로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한국영화에서 청년이라는 소재는 지속적으로 다루어졌지만 메인 스트림에서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대체로 독립영화를 통해 그려졌던 청년들은 경제적 무력감 앞에 좌절하거나(<마이 제너레이션>(2004), 찌질해 보이는 이들과 나는 다르다며 발버둥 치지만 결국 자신조차 그 안에 들어서 있었음을 인정해야만 했고(<잉투기>(2013)), 낭창한 청춘의 낭만은 결국 그것을 지나서야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거나(<족구왕>(2014)), 편의점이라는 공간에 갇혀 버린(<이것이 우리의 끝이다>(2014)) 이들의 이야기였다. 선임의 말들로 자신의 미래가 끊임없이 흔들리고(<10분>(2014)), 서울로 상경하고 싶어 발버둥치지만 여의치 않으며(<수성못>(2018)), 나의 행복을 위해 집을 포기하겠다는 결심에 손가락질 받아야 하는 (<소공녀>(2018) 것 역시 청년들의 몫이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사회가 정해놓은 청년이라는 규정 속에서 괴로워하거나 알게 뭐냐며 무시한 채 제 길을 걸었지만 대체로 유쾌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이들이 유쾌할 수 없었던 것은 주인공들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립영화 속 주인공들은 어떻게든 살아가려 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들과 맞닥뜨리고 좌절하며 이를 나름의 방식으로 해소한다. 그들의 웃음이 그저 웃음으로만 보이지 않았던 것, 황당함을 쉽게 황당함으로만 해석해버릴 수 없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그들의 시간은 나름 최선을 다한 시간들로 채워져 있었고 그 결과의 황당함은 그저 씁쓸함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엑시트>가 청년들의 이야기를 유쾌한 것으로 뒤집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중심에 ‘뻘짓’을 해온 용남이 놓여 있으며, 바로 그 ‘뻘짓’이 재난 속에서 모두를 구할 수 있는 힘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엑시트>는 누나가 동아리도 ‘영양가’ 있는 걸 했어야지 심마니가 될 거냐며 무시했던 바로 그 대학시절의 산악부 경험을 용남은 물론 영화 전체를 떠받치는 에너지로 배치한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 있다. <엑시트>는 불안에 종종 대며 차라리 ●● 할 시간에 스펙에 도움이 되는 ◆◆을 할 걸이라며 후회하는 많은 이들의 지나간 시간을, 당시 즐거웠을 그리고 지금도 떠올리기만 해도 즐거운 ●● 할 시간을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 ‘재난영화’라는 <엑시트>에 그 흔한 전문가 하나 등장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타의 재난영화에서 재난을 발견하거나 혹은 그것을 헤쳐 가던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거나 재난 상황을 제어하는 전문 직업을 가진 이들은 <엑시트>에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진중하게 자신을 희생하여 모두를 살리겠다는 비장함도 이 영화에는 없다. 아래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어 올라 오는 유독가스를 피할 수 있도록 주도하는 것은 심마니가 안 될 거면서도 선택했던 산악부의 경험과 자신도 살고 싶다며 눈물 콧물 쏟고, 구조헬기를 다른 이들에게 보내며 아쉬움에 울먹이는 너무도 솔직한 이들이다.

이들을 넓게 포용한 <엑시트>는 그만큼 투명하며 그만큼 착하다. <엑시트>는 재난영화들이 자연재해 혹은 거대한 사고 속에서 인간의 이기심이나 인재를 질책하는 것과 다르게 차라리 그 재난에 맞설 수 있는 탈출에 유용한 방법을 알려주고, 굳이 용남이나 의주를 돋보이게 누군가를 쉽게 위기로 몰아넣지도 않는다. 안 그래도 힘들, 지진과 같은 재난이 아닌 현재가 재난이라 인식하는 모두를 혼내거나 곤경의 상황으로까지 몰아넣지 않는 것이다. 다들 잘 될거라 그랬는데 이게 뭐냐며 주저앉아 울고, 의연한 듯 구조헬기를 보냈지만 또 언제 오겠냐며 애처럼 우는 이들이 <엑시트> 속 영웅이라면 영웅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이자 감정의 위기이다. 이러한 <엑시트>의 착함, 그리고 공감할 수 있는 감정들은 이 영화의 마지막 순간의 외침에 머무르게 한다.

 

건설현장의 크레인 꼭대기에 매달린 용남과 의주(윤아). 그들은 굳이 말을 고르지도 거르지도 않고 다급하고 절박하게 외친다. ‘이제 우리를 좀 봐라’, ‘우리 여기 있어’, ‘우리 좀 데려가’. 어떠한 수식도, 점잖음도 필요 없다. 여기까지 온 우리를, 그래도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는 우리를, 그리고 이 재난 속에 있는 우리를 좀 데려가라는, 여기 사람 있으니 한 번쯤 신경 쓰고 쳐다보라는 그 말은 용남과 의주의 외침을 넘어선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들 앞에서 오늘 보낸 시간들을 질책하고, 후회하고, 결국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할 인간이라는 것으로까지 몰아가던 우리를, 특별히 빚을 진 것도 아닌데 마치 빚쟁이처럼 종종거리며 하루들이 켜켜이 쌓아놓은 불안 속에서 나에 대한 평가에 점점 더 야박해지는 청년들을 다시 한 번 보고 재난이 없는 곳으로 데려가 달라는 의미의 확장, <엑시트>의 외침은 바로 여기에까지 다다르는 것이다.

청년에게 요구되는 조건들의 상당수를 만족시키지 못한 젊은이들이 거대한 재난을 헤쳐 간 이야기가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며 엄청난 흥행을 달성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물론 이 영화 한편으로 무엇이 바뀌거나 갑작스레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겠냐만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강제된 ‘젊음’이 그저 버겁기만 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모든 시간에, 소비에, 휴식에 조차 의미를 부여하며 무의미라는 것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야하는 시기에 던져진 것이 현 청년들이라는 점에 대해 한 번쯤 떠올려볼 수는 있지 않을까. 혹은 청년들의 시간을 가리켜 다 미래를 위해 흔들리는 때라고 더욱 생산적인 일을 한다면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포장하는 이들에게, 청년들의 삶 전체가 흔들고 있다면 분명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가 주어진 것이 아니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 않을까.

 

<엑시트>(2019)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아름

영화평론가. 한국 현대문학의 극(Drama)을 전공하며, 연극·영화·TV드라마에 대한 논문과 관련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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