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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의 날갯짓, 폭풍전야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날갯짓, 폭풍전야 북아프리카
  • 엘 알라우이 히참 벤 압달라
  • 승인 2011.02.1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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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écial 혁명, 연쇄와 징후]

“아랍의 영혼은 가난과 실업으로 상처 입었다.” 지난 1월 19일 이집트의 샤름 엘셰이크에서 열린 아랍연맹 정상회의에서 사무총장이 한 말이다. 튀니지혁명이 자신들의 체제를 위협하게 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아랍 지도자들의 심경을 이보다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튀니지인들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억압적 전제정치로 지탱되는 도둑정치- 도둑질과 부패에 기초한 정치체제- 가 여지껏 튀니지를 지배해왔다. 한마디로 권력자의 가족이 사회 전체를 약탈하는 체제였다. 과일과 채소 행상을 하던 한 대졸 젊은이의 분신이 아랍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인 체제를 무너뜨리는 저항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러나 튀니지의 독재체제가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다.

튀니지 민중의 영웅적인 항거는 그 자체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특정 정치적 지도자나 계획 없이 폭발한 이 저항은 조직되지 않은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 반대였다면 분명 권력에 의해 곧 진압됐을 것이다. 진 엘아비딘 벤 알리의 독재정치에 신물이 난 튀니지인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을 통한 네트워크 덕분이었다. 정권은 (2009년 이란 녹색혁명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그런 가능성을 간과하고 있었다. 시민들의 항거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채 안 되어 지난 4반세기 동안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 중 하나였던 튀니지의 독재정권이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항거 방식에는 고유한 약점이 있다. 지도자와 정치 프로그램이 없고, 물러난 대통령을 대신해 사회를 관리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로 남아 있다.

튀니지는 아랍 세계에서 국민의 평균 학력이 가장 높고 세속화가 상당히 진행된 덕분에 그동안 이슬람주의자들의 사회 장악을 막을 수 있었다. 현재의 튀니지 사태가 이슬람주의자들에게 폭력으로 권력을 장악할 기회를 제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만약 이슬람주의 세력 일부가 민주주의의 룰을 받아들이겠다고 나선다면(‘알나흐다’(1)의 경우처럼) 그들을 정치체제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급진세력을 고립시킬 수 있을 것이다.

혁명 이후 빈 공간, 누가 채울까

벤 알리 대통령의 하야와 망명 이후 튀니지인들은 권력 승계와 민주주의 체제 전환을 주도할 만한 독립적인 정치 엘리트가 없는 것에 불안해한다. 대신 무너진 정권을 위해 일하던 엘리트들, 초보적 수준의 정당들, 지도자를 잃은 노동조합 세력만이 빈 공간을 점하고 있다. 혼돈에 대한 두려움을 딛고, 사회의 자율적 자기관리 능력과 정치적 현실주의가 힘을 발휘한다면 튀니지는 새로운 정치체제의 골격을 갖춰갈 수 있다. 심각한 유혈사태 없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튀니지 젊은이들은 민주주의 체제의 모색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첫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튀니지의 새로운 지도자들은 서방의 승인 아래 민중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이슬람주의에 대한 공포를 이용할 것인가? 새로운 권력자들은 거리의 동요를 두려워한다. 폭력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든, 무너진 권력의 일부를 보존하기 위해서든 과도정부는 일정 부분 현상유지를 필요로 할 것이다. 현 과도정부가 추진하는 선거 과정에서 정당성을 상실한 구체제 엘리트들이 다시 규합해 새로운 정치세력인 양 행세하면서 세력을 강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별로 새로운 일도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이미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두 나라에서 구체제는 낡은 엘리트 세력과 결합해 새로운 얼굴로 부활했다. 우크라이나는 더 심각했다. 과거와의 단절은 더욱 철저한 반면(새로운 국가가 탄생했으므로) 일단 소요가 진정되자 과거 정치관료들이 정치무대로 복귀했다. 혐오하는 정권에 대항해 봉기를 일으킨 민중은 일단 정권이 무너지면 곧 진정되고 마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구체제가 몰락한 뒤 권력이 성공적으로 이행되지 못하는 이유다.

어쨌든 지난 1월에 발생한 튀니지인들의 항거는 다른 아랍국 민중에게도 희망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튀니지인들의 해방은 알제리, 이집트, 요르단, 모로코, 시리아, 심지어 팔레스타인에까지 파급될 수 있다. 이런 국가들의 권위주의 체제에 신물이 난 새로운 세대들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절망하고 있다. 문제는 튀니지의 혁명이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아랍국에서도 동일한 형태의 혁명이 발생할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

튀니지와 주변국, 닮은 점과 다른 점
 

▲ <강한 긍정>, 2007-아멜 베니

튀니지 군대는 상대적으로 정보기관이나 경찰 같은 억압기구와 분리되어 있었다. 열악한 보수를 감내해야 했던 튀니지군은 지금까지 제한적인 규모의 반란이나 시민 봉기를 성공적으로 진압해왔으나 지도 조직도 없이 광범위한 인구가 참여한 이번 사태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튀니지의 독재체제는 집단지도체제인- 권력이 한 개인에게 모두 장악되지 않은- 알제리보다는 국가원수 개인이 증오와 원망을 한 몸에 받는 이집트 체제와 비슷했다. 권력이 쉽게 민중의 공격 표적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벤 알리 대통령의 가족 대부분이 국가를 수탈해온 것도 상황을 악화시킨 요인 중 하나다. 권력이 분산된 독재체제는 명확한 독재자의 얼굴을 가진 체제보다 무너뜨리기 어렵다. 반면에 연합적으로 구성된 과두체제는 개인화된 독재체제보다 덜 집중화된 대신 더 견고할 수 있다. 민중 혹은 다양한 이익집단에 권력의 일부를 이양한 권위주의 체제는 다른 독재체제보다 상대적으로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가령 튀니지에 비해 알제리와 모로코의 이익집단은 훨씬 복잡하고 광범위하게 존재하며, 권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알제리의 경우, 석유에서 나오는 수입이 체제유지에 직접적 이해관계를 가진 정치세력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다.

튀니지 체제의 또 다른 특징은 선거 결과가 항상 우울한 만장일치로 변질된 것이다(1989년 득표율 99.27%, 1994년 99.91%, 1999년 99.45%, 2004년 94.49%, 2009년 89.62%). 반대파는 입지가 전혀 없었다. 한마디로 정치무대가 존재하지 않는 국가였다. 비록 대규모 부정이 일상화돼 있어도 선거가 부분적으로 반대와 충돌의 장으로 기능하는 이집트와 대조적이다. 이집트는 언론탄압도 튀니지보다 덜한 편이다.

알제리는 석유에서 나오는 수입이 민중의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하며, 다른 한편에는 정치무대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통일된 군사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이들은 권력에 참여하려는 다양한 정치세력을 흡수할 수 있는- 다시 말해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알제리는 10년 넘게 진행된 내전을 통해 급진 이슬람주의 세력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수십만 명이 피를 흘려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에 반대하는 봉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모로코의 경우를 살펴보자. 지금까지는 모로코 민중의 분노가 왕실에 대항해 폭발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전망 없는 삶, 정치 참여 제한, 체제 안전을 위한 억압적 조처, 인기 전술만 펴는 대다수 정치조직에 염증을 느끼고 좌절한 젊은이들이 반란을 일으킬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모로코의 복잡한 민족 구성 때문에 이들이 다른 식으로 급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 국민의 동질화 작업이 별로 진척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로코 내부의 민족 간 갈등은 복잡하고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강했기에 취약했던 벤 알리 체제

이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인기 영합에만 골몰하는 국가기구가 역동성 없이 심각한 불평등에 기초한 발전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또한 억압적인 국민 통제, 다양한 세력의 참여를 봉쇄하는 비개방적 정치체제가 특징이다. 이 모든 요소가 시민사회의 발전을 억제하고 있다. 그러나 몰락의 길을 걷게 될 수 있다.

튀니지의 경우, 민중 항쟁을 격화시킨 건 정당성을 잃고 궁지에 몰린 노후한 체제였다. 익은 열매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벤 알리 정권이 주변 지역에 비해 견고하고 안정적이라고 알려진 이유는 체제 내 균열이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사태가 발생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주변 지역 정권들은 튀니지만큼 허약하지 않다. 현재로서는 이 정권들을 무너뜨릴 만한 세력을 상상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튀니지 독재정부가 쉽게 무릎을 꿇은 것처럼 사후 관점에서 보면 필연적인 몰락을 예비하고 있을 수도 있다. 벤 알리 정권이 젊은이들의 저항에 부딪혀 쉽게 무너져버린 것은 억압적 국가기구가 마른하늘의 날벼락처럼 발생한 소요사태를 진압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튀니지 소요사태를 가속화한 요인 중 하나는 지역 간 불균등한 발전이다. 튀니지 정부는 관광산업 육성을 위해 해안 지역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면서 내륙 지역을 방치해왔다. 튀니지 정권을 무너뜨린 저항운동은 내륙지역에서 촉발됐다. 다른 아랍국에도 지역 간 불평등이 존재하지만 다른 형태를 띤다. 정치체제가 정통성을 결여한 극소수의 개인에게 장악되고, 중국처럼 테크노크라트에게 자율성을 부여하지 않는 사회가 합리적으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아랍 국가에서 테크노크라트들은 부패와 권위주의에 희생되고 있다.

알제리의 거리는 암거래상과 방황하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벽에 기대 시간을 보내는 이들(Hittiste)(2) 중에는 고학력자도 많다. 이들에게 주어진 선택은 겉으로 표출된 분노가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한 채 서서히 가라앉는 경우(이집트와 알제리)이거나, 절망을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여야 하는 경우(요르단과 모로코)뿐이다. 권력자들은 저항조차 불가능해진 무기력한 사회가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사실을 잘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 이 지역에서 분노가 폭발하는 순간이 온다면 심각한 폭력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젊은이들, 연쇄폭발 뇌관 되나

튀니지의 혁명이 인근 아랍 지역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튀니지의 민주주의적 개혁 능력에 달렸다. 만약 튀니지에 민주주의가 정착된다면 분명 주변 지역, 특히 마그레브 지역(아프리카 북서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복수 정당 체제와 정치 참여 개방 등의 요구가 쇄도할 것이다. 반면 튀니지의 민주주의가 실패할 경우 권위주의 체제는 더욱 강고해지고 민중은 절망에 빠질 것이다. 당연히 대부분의 아랍 정권들은 후자의 경우를 원할 것이다. 그로 인해 발생할지도 모르는 혼란을 무릅쓰고 말이다.

가능한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아랍 정권들이 민중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정치적 개방을 단행하는 경우와, 시민의 정치 참여 요구를 묵살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권력 유지에 열을 올리는 경우다.

그들이 첫 번째 시나리오를 선택한다 해도 장애물이 없는 건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체제를 고수해온 아랍 정권들은 점진적인 정치적 개방을 필요로 한다. 갑작스러운 개방에 의한 충격 때문에 순식간에 체제가 붕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민중이 느끼는 절망을 감안한다면 진정성 있는 개혁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속임수로 비칠 수도 있다. 또한 체제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이기를 원치 않는다면 개혁의 성격이 충분히 진보적이어야 한다. 점진적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기술이 요구되며, 안정과 민주주의 개혁 속도를 동시에 담보해줄 수 있는 정치 엘리트들과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아랍 체제들을 보면 그 역할을 수행할 만한 엘리트들이 없을뿐더러, 설사 있다 해도 권력이 그들에게 충분한 권한을 부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서방 세계, 중립만 지켜줘도

만약 아랍 정권들이 두 번째 시나리오, 즉 폐쇄적 정치체제를 고수하는 길로 간다면 어떻게 될까? 튀니지 사태에서 교훈을 얻은 주변 지역 정권들은 기초식료품(빵·설탕·고기·달걀 등) 가격인상 억제를 통해 민중의 기본적 불만을 해소해줌으로써 저항 의지를 꺾을 것이다. 동시에 치안과 정보 통제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튀니지는 기존 소통 체계가 어떻게 교란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반대파들은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소통했다. 튀니지의 억압적 체제가 가진 또 하나의 문제점은 다양한 기관(경찰·정보기관·군대) 사이에 제대로 공조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란이 사회운동 세력을 진압하는 과정을 지켜본 아랍 정권들은 인터넷을 감시하고 필요에 따라 직접 개입하는 방식을 취했다. 외국 기자들을 추방하거나 감금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아랍 정권들은 이란의 바시즈(Basij·민병대)(3) 모델을 본떠 각 도시를 일정 구역으로 분할한 뒤 소요사태 발생시 곧바로 개입할 수 있는 지역 책임자들을 임명했다. 두 번째 시나리오를 택하는 아랍 정권들은 이를테면 억압 기구들의 ‘현대화’와 ‘확장’을 추진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처방만으로는 차세대의 사회운동이 발명해낼 새로운 형식의 집단행동 방식에 대처하지 못할 것이다. 억압적 대응은 기껏해야 단기적 효과만 있기 때문이다.

이란의 녹색혁명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던 서방국가들은 튀니지혁명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근시안적이고 잘못된 평가를 내리는 이들도 있다. 지금까지 벤 알리 독재정권에 호의적이던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미국을 포함한 다른 서방국가들은 마지못해 튀니지 민중을 지지하고 있다. 서방국가들이 겉으로 내세우는 것만큼 실제로는 아랍 세계의 민주화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다. 그러나 이번 튀니지 사태를 계기로 프랑스 정부 역시 태도를 바꿔야 할지 모른다.

아랍인들은 독재체제와 야합하는 서방국가들의 태도를 식민주의의 연장이며 새로운 방식의 제국주의라고 본다. 따라서 아랍 세계의 민주화에 대한 지지는 정통성 없는 정권에 억압당하는 민중에게 존엄성을 되돌려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서방국가들은 이슬람주의에 대한 두려움이나 자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아랍 세계 민주화운동을 지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들이 최소한 호의적인 중립적 입장이라도 견지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글•엘 알라우이 히참 벤 압달라 El Alaoui Hicham Ben Abdallah
모로코 왕 모하메드 6세의 사촌으로 미국 스탠퍼드대학 국제연구소 프리먼 스포글리의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프란츠의 레퀴엠> 등이 있다.

<각주>
(1) 19세기에 등장한 문화·정치적 부흥운동. 이슬람 개혁과 사회 변혁에 대한 의지가 혼합된 운동이다. Anne-Laure Dupont, ‘알나흐다, 아랍 르네상스’, <Maniére de voir>, n°106, 2009년 8~9월호 참조.
(2) Hittiste란 말은 아랍어로 ‘벽’을 뜻하는 ‘Hitt’에서 왔다.
(3) 이슬람혁명수비대(Pasdaran)의 자원 민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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