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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벌새> 1994년, 소녀 성장영화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벌새> 1994년, 소녀 성장영화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19.11.0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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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영화는 세상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찰하고, 이해하려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부딪치고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이다. 그 시기 청소년이 느끼기엔 당장이라도 무너져버릴 것 같은 위태로운 가정, 불안한 시대, 자신을 둘러싼 불안정한 관계들, 이 모든 것들이 청소년기를 흔들리게 하고 불안으로 가득하게 만든다. <벌새>는 이 시기를 지나는 청소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부딪치는 과정을 세심하게 날실로 가지런히 엮은 성장영화이다. 그 날실들 사이로 1994년이라는 시대를 씨실로 비교적 느슨하게 직조한다. 그 느슨한 짜임들 사이로 우리도 그 시대를 지나왔음을 아련하게 떠올리게 한다.

<벌새>는 은희라는 소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1994년 사회의 폭력성, 자본주의의 욕망이라는 시대의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은희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시간이 지난 후에 들여다보면 큰 사건이나 사회적 상황들이 개인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도록 자연스럽고 아주 세밀하게 드러낸다. <벌새>는 은희를 둘러싼 세상이 은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강한 어조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영향들이 은희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침투해 들어오는지 영화를 다 보고나면 씨줄과 날줄로 느슨하게 엮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족, 불안함

오프닝 장면에서 엄마 심부를 갔다 온 은희는 현관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가족들이 문을 열어주지 않자 패닉에 빠진다. ‘모두 나를 버리고 어디 가버린 걸까?’ 잠시 후 다른 층의 초인종을 착각해서 누른 걸 알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지만, 은희는 엄마에게 좀 전에 있었던 해프닝을 가볍게 말하지 못한다. 가족이 날 버리고 떠날지도 모른다는 아련한 불안이 은희의 심연에 존재하고 영화 내내 미묘한 불안의 기운이 맴돌게 한다. 감독은 줌아웃으로 아파트의 많은 집들을 보여준다. 가족에게 온전히 사랑받는다는 느낌, 가족과의 애착관계가 끈끈하지 않아 늘 심연 속에 불안한 감정을 내재한 수많은 은희가 살고 있을지 모를 아파트의 전경이 천천히 드러난다. 영화는 그 집들마다 외롭고 조금은 불안한 은희가 한 명씩 살고 있지 않냐고 물으면 시작한다. 

 

가부장적인 아빠, 꼰대

어느 날 밤 갑자기 찾아온 외삼촌, 아빠는 술에 취해 찾아온 처남 앞에서 깍듯하게 군다. 그러나 아빠는 외삼촌이 나가고, 현관문의 센서등이 꺼지기도 전에 험담을 내뱉는다. 은희는 어른들의 ‘가짜 대화’와 위선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은희가 보기엔 아빠는 춤바람이 났고 외도가 짐작되지만, 부인과 아이들에겐 권위를 행사한다. 떡 가게에 와서 트집 잡는 손님에게 쌍욕으로 응수하고, 집에 와서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식탁에서 “내가 누군데 말야”라고 말하며 씩씩댄다. 은희는 사실 아빠가 누군지 잘 알지 못한다. 그저 함부로 말을 걸면 안 되는 사람, “아빠가 너희들 땐 새벽 4시에 일어나 학교 갈 준비했어”라고 말하는 걸로 봐서 지금 세대와는 다른 형태로 악착같이 살았고, 그걸 다음 세대에게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사람이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기나 하는 걸까”

엄마는 아빠의 권위를 묵인하고 불만을 삭히고 산다. 가족과의 공간이 아닌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엄마는 세상의 누구보다 낯설고 은희를 당혹스럽게 한다. 엄마는 외삼촌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과거가 있고, 그래서 자신의 딸은 꼭 대학에 가야한다고 자기 경험의 편견으로 조언한다. 엄마에게 대학은 육체노동보다는 책을 끼고 캠퍼스를 거니는 이미지이고, 영어 간판 잘 읽어 무시 안 당하는 감정이다. 그러나 정작 엄마는 딸 은희가 어떤 느낌으로 사는지 무얼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 엄마는 사는데 지쳐 은희에게 살가운 애정 표현도 하지 않는다. 그건 성장하는 아이들이게 자신에 대한 관심이나 엄마가 자기를 사랑하기는 하는 걸까하는 의심을 품게 한다. 이 의심은 은희에게 불안과 애정결핍으로 잔존한다.

 

은마아파트

은희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산다. 허름해 보이는 복도형 아파트의 외관과 달리 강남 학구열의 온상이자 대한민국 교육열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이다. 당시 공부 순위는 청소년을 판단하는 거의 유일한 잣대였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고, 성적에 따라 우열을 가른다. 선생님은 반에서 날라리를 색출하기 위해 친구를 밀고하게 하고, “나는 노래방 대신 서울대 간다”라는 구호를 외치게 한다.

은희에게 1994년 강남의 교육열은 언니를 통해 구체적으로 기억된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강남 8학군으로 고등학교를 못가 한강 건너 강북으로 학교를 다니는 언니는 집안의 골칫거리로, 아빠는 딸에게 ‘멍청한 년’이라고 소리 지른다. 이에 반해 남성이자 공부 잘하는 오빠는 집안의 서열 2위이다. 오빠는 은희에게 물리적인 폭력까지 행사한다. 심지어 부모 앞에서 동생을 때렸는데도, 공부 잘하는 아들의 허물을 인정하기 싫은 부모는 애들 싸움이라며 오빠를 두둔하고 나선다. 오빠에게 실컷 얻어맞은 다음날, 은희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에게 자살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유는 자신이 죽으면, 오빠와 부모님이 모두 후회하며 펑펑 우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은희의 가슴에 억울함과 부당한 감정이 쌓이고 있었다.

 

그러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자신의 죽음과 맞바꾸지 않으면 그 억울함이 가족에게조차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 분위기는 소녀의 자기 연민의 기억이 아니라 어린 여성이 감지했던 그 시대 분위기를 대변한다. 시대의 분위기가 개인의 삶으로 어떻게 기억되고 영향을 미치는지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의미를 <벌새>는 전해준다. 그 시절이 애잔하게 느껴지는 건 은희의 가족이 1990년대 한국 가족의 정상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화가 난 아빠나 오빠가 집안 여성을 골프채로 때리는 건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 은밀한 폭력의 시대였다.

상가 떡집 막내딸, 공부도 못하고, 가족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후배와 남자친구에게 알 수 없는 이유로 관계의 끝맺음을 당하기만 하는 은희는 이런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묻는다. “이런 저도 빛날 수 있을까?”

 

어른,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방식을 알려주는 사람

영화 <벌새>는 어른과 꼰대의 차이를 보여준다. ‘꼰대’는 다른 사람의 상황을 자기 삶의 기준에 맞춰 재단하고, 다 알고 있다는 말투로 다른 사람의 삶을 함부로 강요한다. ‘어른’은 청소년들의 어리고 약하고 섬세한 세상에 대한 의구심을 비웃지 않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세심하게 배려해주는 사람이다. 은희가 한문 학원에서 어른, 영지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영지 선생님은 은희에게 관심 있는 것을 물어봐 주고, 만화 그리는 거 좋아한다고 했을 때 놀리지 않고 긍정적으로 평가해주고, 시선을 맞추고 이름을 불러준다. 그것이 은희가 영지 선생님에게 사로잡히는 이유의 시작이다. 영지 선생님은 불안해하는 15살 소녀에게 그래도 “삶은 아름다운거야”라며 우롱차로 작은 친절을 베풀며, 인간의 온기를 나눠주는 사람이었다.

 

은희에게 영지선생님의 존재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비밀을 알려주는 사람이다. 여중생 앞에서 민중가요 ‘잘린 손가락’을 부르는 서울대 다니는 한자 선생님. 그리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손가락을 움직여보라고 자신만의 비밀을 알려주는 사람. 공부에서 일등하지 않더라도 괜찮아질 거야. 그리고 너도 언젠가 온전한 네가 될 거라는 믿음의 말을 해준다.

은희는 가족이, 친구가, 후배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 아니 영원히 지속되는 관계가 없다는 세상의 비밀을 알게 된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관계가 언제든지 변할 수 있고, 상실될 수 있다는 잔인한 진실과 마주하게 한다. 그러나 전등갓이 깨지게 피 흘리며 싸워도 성수대교가 무너져도 마치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간다.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고속 촬영으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은희의 클로즈업 숏을 통해, 영화는 영지 선생님의 말처럼 은희도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을 전한다. 그리고 성장하지 못하고 상처받고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어린 자아를 일으켜 앉혀 놓고 세심하게 다독거려준다. ‘자기를 좋아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린다고, 다 괜찮아질 거라고.’

 

 

 

글‧서성희
영화평론가, 대구경북영화영상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 대구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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