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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시간’을 갈망하는 좀비 증후군
‘죽음의 시간’을 갈망하는 좀비 증후군
  • 성일권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19.11.2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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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은 이제 수명을 다했습니다.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입니다. ‘생명력을 잃은 좀비’ 같은 존재라고 손가락질받습니다. 비호감도가 변함없이 역대급 1위입니다.”

자유한국당의 김세연 의원이 내년도 총선 불출마선언을 하면서 자신이 속한 정당을 향해 ‘좀비’라는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김 의원의 돌발성 발언에 한국당 지도부는 배신감을 토로할 뿐, 달라지는 것은 없다. 종종 좌파세력에 ‘좌좀’이라는 낙인을 찍어온 한국당 인사들이 이젠 서로 농담조로 “안녕하십니까? 좀비입니다”라는 인사말을 건넨다. “좀비 같은 한국당은 문을 닫아야 한다”는 김 의원의 격한 발언에도 아무런 자극을 느끼지 않는 이들이 있다면, 어쩌면 그들은 김 의원의 말대로 좀비증후군을 앓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임기 반환점을 돈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를 가진 날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축하 화환을 보내기는커녕, 청와대 분수대 옆에서 지소미아 파기 완전철회와 국회 선거법·공수처법 저지를 주장하는 단식 ‘투쟁’에 들어가, 길게 누웠다. 황 대표가 단식에 들어가자, 당직자들과 지지자들은 그 옆에 줄줄이 텐트를 치고서 그를 응원하고, 경찰과 의료진도 바짝 긴장했다. TV 뉴스 화면에 비친 그의 모습은 흐트러짐이 없다. 단식 전에 충분한 영양제를 맞고, 전기난로 2개와 두터운 방한복, 침구를 준비한 탓인지 며칠 굶주림(?)에 지친 사람답지 않다. 황 대표가 SNS에 올린 그의 글에는 곧 순교자 반열에 오를 듯한 ‘심정’이 담겨있다.

“단식 5일째 되는 날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고통마저도 소중합니다. 추위도 허기짐도 여러분께서 모두 덮어줍니다. 두렵지 않습니다.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황 대표의 단식을 놓고, 최근 잇단 헛발질과 자충수를 거듭해온 그가 분출하는 당 쇄신 요구와 그에 따른 리더십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단식이라는 수단을 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단식을 결행한 그의 의지는 비상(非常)해 보였다. 하지만 그의 단식에는 크누트 함순이 자전적 소설 『굶주림』에서 느꼈을 죽음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 같은 비장(悲壯)함은 없었다.

어쩌면 그가 단식하는 동안, 인근 청와대 앞 도로에서 노숙 농성을 하며 문재인 대통령 퇴진을 요구 중인 전광훈 목사 등 이른바 기독교 극우 세력의 ‘기도발’이나 ‘신(神)발’을 은혜롭게 받고 있다고 믿었던 것인지, 실로 ‘상서로운’ 표정이었다. 실제로 황 대표는 단식 선포식에서 “국민 속으로 들어가겠다”라고 밝힌 직후, 청와대 인근의 전 목사 세력 집회장을 찾았고 단상에 올라 전 목사와 함께 만세를 불렀다.

하지만 단식 이틀 만인 22일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 유예를 발표함에 따라, 황 대표는 예상치 않은 변수를 만났다. 그러나 그는 “아직 패스트트랙 저지 과제가 남아 있다”며 단식 농성을 계속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국회 선거법·공수처법은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고, 특히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법안이라는 점에서 황 대표의 강경한 ‘투쟁’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그런 것을 따질 그가 아니다. 일시적이나마 그를 ‘배부른 돼지가 아닌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이끈 힘은, 일국의 총리를 지낸 체면이 아니다. 그것은 극우의 신념과 극우 신앙에 의한 메시아적 ‘정신승리’에 가깝다.

시민단체들로부터 자녀의 입시 비리, 채용 의혹, 직권남용죄 및 횡령 등으로 고발된 나경원 원내대표는 미국 출장을 다녀오자마자 부리나케 그에게 달려가 ‘구국의 단식’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리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사랑제일교회)는 그의 손을 든 채 문 대통령 퇴진을 선언하며, 대변인을 통해 간첩과 공산주의자를 척결하기 위한 특별위원회의 설치 사실을 밝혔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태극기와 십자가, 보수 우파 정당이 뭉쳐서 지소미아를 연장했다고 평가하며, “내년 4월 15일 자유한국당, 우리공화당, 전광훈 목사님을 중심으로, 박근혜 대통령, 황교안 대표, 이명박 대통령 등 모든 정당, 사회단체 지도자들이 뭉쳐야 한다. 위대한 승리를 위해 힘차게 달려가자”고 말했다.

대다수 국민들의 냉소와 외면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당 지도부는 기독교 극우세력과 손에 이끌려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되뇌고 있다. 마치 주술사의 마법에 걸린 좀비처럼 말이다.

<좀비>, 환상동물사전

구사노 다쿠미가 쓴 『환상동물사전』을 보면, 좀비는 아메리카 서인도 제국의 부두교 주술사가 마술적인 방법으로 소생시킨 시체들을 일컫는 말이다. 주술사가 가사(假死) 상태에 빠지는 약을 사람들에게 먹였다가 마약을 써서 살려냈고, 이 환각 상태에 빠진 채 ‘살아난’ 이들을 농장주가 노예로 부렸다는 것이다. 즉, 좀비는 삶과 죽음의 권리 자체를 박탈당한 채 영원한 노예가 된 자들이라 할 수 있다. 흔히 좀비를 다룬 영화와 소설에서는 좀비에게 물린 사람도 좀비가 된다. 좀비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공포는 좀비 그 자체보다는, 좀비에 물려 좀비가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좀비는 대개 하층민들의 모습으로 비친다. 강준만 교수에 의하면, 현대 자본주의에서 ‘자유롭게’ 노동력을 팔면서도 사물로 변해버린 노동자의 형상은 좀비와 흡사하다.(1) 즉,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는 동시에 소비자이기도 하다. 소비하기 위해 노동하고, 노동하기 위해 소비하는 끝없는 순환 속에서 좀비는 쇼핑몰을 배회하는 소비자로 그려진다. 쇼핑몰은 해방감을 선사하며 자본주의 체제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또 다른 억압의 공간이다. 그 속에서 사는 노동자는 노예 상태의 좀비와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대중문화에 비친 좀비상은 기본적으로 떼를 짓고, 무뇌(無腦)이고 무한 증식하며, 탈(脫)주체적이며 탈(脫)노동적이다. 특히 현실 속 좀비의 개념과 그 범주는 날로 확장, 변주된다. 김봉석과 임지희는 공저 『좀비사전』에서 “좀비는 죽음의 공포, 세뇌된 인간, 소외된 존재를 넘어 새로운 종의 가능성은 물론 인간의 진화까지 의미하는 존재가 됐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극단적인 좌·우의 이데올로기에 갇힌 나머지, 사회에 무익하거나 해악한 존재로 비판받는 ‘좌좀(좌익좀비)’과 ‘우좀(우익좀비)’을 비롯, 온라인의 익명성을 이용해 사실 확인도 없이 악성 댓글을 남발하는 키보드 좀비,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려 좀비처럼 걷는 스몸비, 골인보다는 뻥 축구를 일삼는 좀비 축구, 그리고 제자들의 연구를 가로채는 좀비 교수, 범인을 잡기는커녕 스스로 범인이 되는 좀비 검찰, 일은 안 하고 노동자들의 노동에 기대어 월급과 배당만 챙기는 좀비 CEO, 역시 일은 안 하고 세비만 꼬박꼬박 챙겨대는 좀비 정치인 등….

김세연 의원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이미 한국 정치는 오래전에 좀비화됐다. 우리 사회는 광신적인 기독교의 ‘신(神)발’에 힘입어 이미 ‘사망 선고’를 받은 정치인들이 속속 좀비로 재등장할 기세다. 이미 수명을 다한 구시대 정치인들이 세월이라는 ‘관’속에서 슬금슬금 기지개를 켜고, 지지자들이 그 뒤를 따르는 것은 마치 주술사의 비방(秘方)에 취한 좀비 떼들의 행각을 연상케 한다. 좀비들은 죽어도 죽은 것 같지 않고, 살아도 산 것 같지 않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존재하지도 않으며, 시간이 유한하지도 않다.

시간은 동일한 시각인데도 사람과 좀비들이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차이가 난다. 시각과 시각 사이의 간격, 또는 그 단위를 일컫는 ‘시간’은 길이, 질량과 같이 다른 물리량을 정하는 기본단위다. 그리고 물리적 시간을 지정하기 위해 현재는 세슘 원자시계나 스트로보스코프 등을 이용해 국제표준시인 협정 세계시(UTC)를 정한다. 빅뱅 우주론에 의하면, 관찰 가능한 우주에서 흐른 시간은 약 138억 년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하자면, 시간은 상대적인 물리량이다. 시간의 흐름은 사람마다 상대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나무위키(Namuwiki)의 시간 편에 의하면, “시속 300km로 달리는 KTX에 타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10-10초, 즉 0.0000000001초 (이하) 정도의 시간을 더 얻는 것”이고, 롯데월드타워 117층에 살면, 영화 <기생충> 속 기태네 가족이 사는 반지하에 비해 미량의 시간을 더 가지는 셈이 된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인류를 구하기 위해 지구 밖 우주를 탐험하고 무사귀환한 주인공 쿠퍼(매튜 맥거너히)가, 이제 할머니가 돼버린 딸 머피(제시카 차스테인)보다 훨씬 젊은 것은, 시간을 뛰어넘은 덕택이다.

그럼에도 시간 흐름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부동 즉 정지라는 건 있을 수 없다. 시간은 만물의 파괴자이자 만인의 살해자다. 그리스 신화에서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가 거대한 낫으로 하늘의 신이자 아버지인 우라노스의 남근을 잘라 거세시킨 후, 우주의 지배자 즉 최고 신의 위치에 오른 것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의 섭리를 강조한다. 물론 시간의 흐름을 잡아보려는 시도들도 있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이다. 유력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시간이 튕겨 나갈 정도로 팽팽한 젊음을 얻기 위해 피부관리에 엄청난 돈을 들이지만 시간의 습격을 피하기 힘들다.

좀비들의 시간은 어떠할까? ‘죽었는데도 죽지 않는 존재’인 좀비들의 시간은 결코 흐르지 않고, 측정될 수 없다. 주술사의 마술에 의해 또는 좀비에게 물려 좀비가 된 이들은 늘 죽어 있다. 그러다가 새로운 생물의 움직임이 감지되면, 왕성한 식욕을 가진 설치동물처럼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다. <워킹데드>, <킹덤>, <부산행> 등 좀비 영화들을 보면, 좀비는 먹잇감을 발견하면 막무가내로 돌진한다. 사람들은 좀비들에 맞서 싸우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늘어나는 좀비들(좀비에 물린 나의 절친이 좀비가 돼 나를 공격하다니!)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다. 좀비를 제압하는 확실한 방법은 단 하나다. 머리를 공격해서 뇌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현대 뇌과학의 관점에서 티모시 버스타이넨과 브레들리 보이텍은 좀비의 뇌에 대한 내용의 공저에서 “소뇌 및 좌반구 대뇌피질의 기능이 상실됐을 때 환자의 행동이 좀비와 유사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2)    

우리 사회에 부유하는 좀비 증후군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그 수가 많아지는 이유는 버스타이넨과 보이텍이 주장하는 것처럼 소뇌와 좌반구 대뇌피질의 기능을 상실한 이들이 많기 때문일까? 스마트폰의 과다사용에 따른 뇌 기능 이상 현상의 경우 스마트 사용을 억제하면 되겠지만, 극우 세력의 좀비 증상은 엄연한 사실을 부정하고 트집을 잡아 비틀며, 자신만이 옳다고 정당화하는 즉 ‘정신승리(情神勝利)’적인 병리 현상이어서 치유가 어려워 보인다.

개인적으로, 필자가 우리 사회를 좀비 증후군으로 몰고 가는 이들을 만나면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한 토막이다. 물론 그들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당신이) 고집을 끝까지 부려서 이겼다고 생각할 때, (당신의) 인간적 가치는 떨어집니다. 그러나 당신은 죽을 때까지 스스로 면목을 세웠다고 생각하므로, 남이 경멸하고 상대해주지 않으리라고는 꿈에도 깨닫지 못하죠. 그저 행복하게 여길 겁니다.”

 


글·성일권
본지 발행인



(1) 강준만, 『인문학은 언어에서 태어났다』(인물과사상사, 2014).
(2) Timothy Verstynen, Bradley Voytek, 『Do Zombies Dream of Undead Sheep?: A Neuroscientific View of the Zombie B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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