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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죽음, 또는 부활을 위하여
보수의 죽음, 또는 부활을 위하여
  • 성일권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18.06.28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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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보수를 살리려면 전면적인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

선거 사상 유례없는 패배를 당한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지도부는 총사퇴하며 갖가지 자구책을 내놓고 있으나, 현재로선 백약이 무효로 보인다. 지자체 선거와 국회의원 재보선 선거에서 거의 전 지역에서 참패한 두 야당은 2년 후에 치러질 국회의원 선거에서 흔적 없이 궤멸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진보와 보수, 또는 좌와 우의 성격과 강도는 지극히 가변적이어서 시대에 따라, 또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 야당들이 퇴출 위기에 놓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고 상황에 맞는 정책을 내놓고, 더욱 겸허한 자세로 유권자들에게 다가선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황토를 날리며 파죽지세의 기세로 권토중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들의 재집권에는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이 따른다. 값비싼 호피로 치장한 보수의 가면을 벗고 진솔한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 정치의 비극은 오랫동안 집권세력으로 군림해온 특정세력이 ‘애국 보수’를 자칭하고, 나머지 정치세력을 ‘친북 좌파’라고 낙인찍은 것에 기인한다. 한국의 기이한 정치 상황, 즉 박정희·산업화·TK(대구경북)·반공이 만들어낸 ‘보수’는 해방 이후 친일·독재부역 및 부패세력이 카멜레온처럼 자신들의 치부를 숨기는 변색키워드로 작용해왔다. 

한국의 ‘보수세력’은 ‘보수-진보’ 양당 정치의 오랜 전통을 지닌 영국의 보수당이나 미국의 공화당을 제법 연상시키지만, 이들에게서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유산과 전통, 가치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일부에선 박정희·산업화·반공이 우리 사회가 지켜야할 보수의 유산이자 전통이라고 강변하지만, 민주화와 함께 남북화해협력의 장이 활짝 열리는 작금의 시대에 그것은 오히려 청산의 대상일 뿐이다. 지금까지의 한국 ‘보수세력’이 가학적이고 시대착오적이었다면, 새로 쇄신의 책무를 진 정치세력은 더 이상 지킬 것도 없는 ‘가짜’ 보수 간판을 내던지고, 자신의 분명한 세계관을 정립하지 않으면 안 될 국면에 와 있다. 

이른바 ‘쇄신’ 보수의 교본 텍스트에는 어떤 세계관을 담아야 하는가?
우선, 정당한 세계질서를 담아야 한다. 우리보다 앞선 서구의 모든 보수이념에는 근저에 어떤 세계의 질서, 즉 현실을 조화롭게 구축하고 안정시키는 사회구조에 대해 시간을 초월한, 확고부동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세계의 질서는 만물의 질서와 부합하는 까닭에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즉, 이 질서는 당연히 존재해야 할 질서라는 것이다. 

세계의 바른 질서를 위해, 우선적으로 ‘쇄신’ 보수는 중도보수이건, 극우보수이건 간에 공히 ‘전통의 무게’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세계의 질서가 정당하게 보이는 것은 그것이 “하나의 긴 과정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빈약한 전통을 메꾸고자, 반(反)역사적인 인물들을 내세워 영웅을 급조하거나, 조잡한 상징물을 세우는 일들이 자주 생기는 것은 참다운 보수의 가치가 앞선 세대들의 긴 세월을 거친 희생의 결과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데서 오는 무지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세계의 질서는 그 자체에 전통의 무게를 지니고 있으며, 그 전통이 우리의 존중을 받아 마땅한 것은 그것이 시간이라는 시련을 이겨내 왔고, 결과적으로 어떤 의미로든 그 가치를 입증해왔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세계의 질서와 신의 질서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처럼 현실 종교와 결탁하는 것은 정교분리의 통념상으로 볼 때 대단히 온당치 못한 일이다. 지금까지 ‘사이비’ 보수세력들은 신성(神聖)에 의존해 비행을 저지른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해왔다. 소망교회 장로인 이명박은 서울시장 재임 때는 서울시를 하느님께 바친다고 하고, 대통령 재임 시에는 소망교회 출신들과 어울리며 얼마나 많은 부덕을 행했던가?   
  
이와 함께,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경제지상주의를 벗어나야 한다. ‘사이비’ 보수 정권 9년 동안, ‘개발’ ‘성장’ ‘뉴타운’의 황금빛 판타지 속에 우리 사회에선 ‘돈 많이 버세요’가 최고의 인사말이고 되고, ‘대박’이 가장 흔한 감탄사가 되었지만, ‘대박’을 터트린 이들은 권력과 자본에 끈을 댄 극소수의 사람들이지 않았던가? 황금만능주의가 남긴 비인간적 공허함과 소외감은 결국 ‘보수세력’에 대한 경멸감으로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약육강식의 차가운 논리를 버려야 한다. 과거 ‘가짜’ 보수정권에서는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의 사상을 단순하게 해석, 가혹한 경쟁논리를 도입하여 자유경쟁만이 가장 공정하고, 가장 정당하다고 강변했지만, 애초에 게임의 룰이 불공정한 상황에서 힘없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연줄 없는 취업준비생들만이 불이익당하고 속았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우리 정치권에 ‘쇄신’ 보수세력이 과연 언제쯤 출현하고, 또 언제쯤 수권세력으로 부상할지 현재로선 가늠하기 힘들다. 지금까지 탈선과 무능력의 극치를 보인 ‘사이비’ 보수세력이 물러나기는커녕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끝까지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부르짖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70~80%로 고공행진 한다고 하지만, 제대로 된 보수세력이라면 지금 같은 ‘진보 패권적’ 정치상황에서 챙겨야 할 현안이 적지 않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위축, 대기업의 갑질, 남북교역 및 한미관계, 노인 및 아동복지 확대, 동물권 제정, 부동산정책 및 세제개혁, 대학등록금, 그리고 난민 문제… ‘쇄신’ 보수세력이 국가적 현안에서 진정한 톨레랑스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발현해주길 기대해보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관용’이라는 의미의 톨레랑스와 ‘신사의 의무’라는 뜻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원래 진보의 언어(어쩌면 ‘연대’라는 의미의 솔리다리테가 진보의 언어일 것이다)가 아니라, 보수의 언어다. 동서의 여성리더로 나란히 비교됐던 박근혜가 ‘통일 대박’이라는 경박스러운 말로 남북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며 ‘가짜’ 보수의 민낯을 드러냈다면, 독일 보수당인 기민당 출신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유럽통합의 완성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20년 가까이 ‘따스한’ 보수의 리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처음부터 진짜 보수주의자였건, 또는 무늬만 보수주의자였건 간에 진정으로 보수정치를 살리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더 넓고 깊은 세계관을 가져보길 권하고 싶다. ‘쇄신’ 보수의 화려한 전향을 기대해본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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