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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권의 문화톡톡] '결혼이야기’, ‘쿨한’ 이별을 꿈꾸지만 너무나 이기적인…
[성일권의 문화톡톡] '결혼이야기’, ‘쿨한’ 이별을 꿈꾸지만 너무나 이기적인…
  • 성일권(문화평론가)
  • 승인 2019.12.09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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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야기’, ‘쿨한이별을 꿈꾸지만 너무나 이기적인

 

인간 사회의 시공간적 유한성 탓에 모든 만남은 이별을 동반할 수밖에 없지만, 남녀의 이별만큼 뒤끝작열하고, ‘처절하고 구질구질한 이별도 없다. 물론 남-, -여의 이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뜨겁게 서로 사랑해서 만나 연인이 되고, 급기야 결혼에까지 이르지만, 많은 이들이 지금의 상대와 불화하며, ‘돌싱을 꿈꾸거나 다른 상대를 찾는다. 제 아무리 위대한 철학자라도, 강력한 권력자라도, 또는 어마어마한 부자라도, 멋진 외모를 지닌 대중스타라 할지라도 결혼의 지속성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결혼 생활의 전문가는 있을 수 없으며(그 역시 언제 이혼할지 모른다!), 오로지 '변호사'라는 이혼 전문가가 존재할 뿐이다.

통계를 보면, 미국에서 결혼하는 커플 중 50%가량이 이혼하며, 한국에서도 결혼 커플 셋 중 하나가 이혼한다. 작년 결혼 건수는 257600, 이혼 건수는 108700건이었다. 이제 이혼은 일상이다. 하지만, 신문과 방송에서 다뤄지는 많은 사람들의 이혼 이야기는 치졸하고, 구질구질하며, 증오스럽고, 역겨우며, 때론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백년가약을 맺기 위해 럭셔리한 식장에서 많은 친지들의 축하와 갈채를 받으며 결혼했던 이들이 남남이 되어 갈라졌을 때의 모습은 극도로 이악스럽다. 조금이라도 내 것을 더 챙기려 상대 것을 빼앗고, 경멸 투의 언사로 상대에게 생채기를 기어이 내고 말아야 지난 시절의 의미 없는 결혼 생활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일까? ‘사랑하는 만큼, 증오도 크다는 애증의 비례법칙만으로 파경과정의 졸렬함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졸렬함은 사회적 관습에서 비롯되는 걸까, 혹은 개인적 성향일 탓일까?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이야기>는 서로에게 ‘2초 만에 반한쿨한 만남으로 결혼에 이른 젊은 부부가 쿨한이별을 준비하는 이혼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적어도 영화 중반까지는 그들이 왜 이혼을 하려는지, 뭐가 문제인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그들이 결코 품위와 품격을 잃지 않은 탓에 관객에게 이혼이 실감되지 않는다.

 

남편 찰리(애덤 드라이버)는 브로드웨이에서 잘나가는 연출가이고, 아내 니콜(스칼릿 조핸슨)은 한때 스타였지만 지금은 남편에게 가려진 연극배우이며, 둘 사이에는 여섯 살 난 아들 헨리(아지 로버트슨)가 있다. 두 명 모두 충실한 남편, 아내이자, 아빠, 엄마이다. 열심히 살고, 주변 사람들과도 원만하고, 특히 남편은 장모와 처제와도 사이가 매우 좋다. 하지만 결정적 문제가 생겨서 이혼하는 노골적인 영화와는 다르게 이 영화는 중반까지 부부생활의 미묘한 측면을 세심하게 부각하며, 정작 직접적 사유에 대해선 에둘러서 피한다.

찰리와 니콜이 이혼하려는 직접적인 이유는 남편이 바람피운 것을 알게 된 것이지만, 니콜의 의식에 흐르는 본질적 배경은 복합적이다. 돌이켜보건대 겉으로는 잘 어울리는 원앙커플이지만, 니콜은 찰리에 대해 오랫동안 불만을 품어왔다. 그녀는 매사에 남편이 자신을 배려하지 않고 혼자 결정하는 것에 지쳤다. 그녀는 자신이 배우로 더 많이 활동할 수 있는 LA에 살고 싶었는데 남편은 뉴욕 브로드웨이를 떠날 수 없다고 고집했다. 니콜은 찰리가 뛰어난 연출가로 성공한 과정에는 자신의 역할도 있는데 남편은 그의 천재성 때문으로 알고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남편 작품에서 과거엔 자신이 뮤즈였지만 이젠 자신에게 출연 제안도 하지 않는다. 이런 불만이 누적된 결과 그녀는 더 이상 남편을 위해 자신의 꿈을 희생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반면 찰리는 니콜의 불만을 이해할 수 없다. 단지 그는 일하느라 바빴을 뿐이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서로에 대한 사랑이 아예 식은 것은 아니다. 니콜은 남편과 헤어진 뒤에도 친구로 지내고 싶어 한다. 찰리는 니콜에게 웬만한 재산을 다 넘김으로써 자립 발판을 마련해주려 한다. 니콜은 감정 상하는 이혼 소송 와중에도 찰리의 머리카락을 다듬어주고, 허리 숙여 풀린 신발 끈을 묶어준다. 찰리는 니콜 친정집의 전기가 갑자기 나가자 밤늦게 찾아가 배전반을 점검해준다. 이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의 품격은 나름 우아해 쿨한이별이 예측되었고, 어쩌면 다시 쿨한재결합도 가능해보였다.

두 사람 간의 상호 신뢰와 배려심에 비추어볼 때 변호사의 개입이 굳이 필요 없는 합의이혼도 가능해보이지만, 아들 헨리의 양육권 문제만큼은 한치의 양보도 없다. 아이는 두 사람 간 사랑의 결실이지만, 동시에 가장 큰 분쟁의 원인이라는 영화적 설정은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동인이다.

이혼 과정에 변호사가 개입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전쟁으로 급변한다. 니콜은 노련한 변호사 노라(로라 던)을 내세워 친정이 있는 LA에서 아이를 키우겠다고 찰리를 압박하고, 뉴욕에서 아이와 함께 살고 싶은 찰리는 법정에서 자신이 더 나은 부모라는 점을 증명하려고 고군분투한다.

전쟁 같은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두 사람의 변호인은 사소한 행동까지 꼬투리 잡아 상대방을 비방한다. 예기치 않은 사태의 급변에 놀란 두 사람은 변호사를 빼고 대화를 시도해보지만 오히려 쌓인 감정이 분출되며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만다. 아직도 미련이 많아서일까?

니콜은 급기야 찰리에게 전화로 “# 새끼라며 육두문자를 퍼붓고, 찰리는 그런 니콜에게 자존심을 팍팍 긁는 비난을 퍼붓는다.

 

폭풍우가 지나간 것일까? 격렬한 논쟁 뒤에 두 사람 사이에 평화로움과 고요함이 깃든다. 때마침, 뉴욕이 아닌 LA에서 일자리를 얻은 찰리는 니콜에게 아이 양육권을 주는 대신에 아이를 자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두 사람은 부부가 아닌 친구의 자리로 가게 된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남자 주인공 찰리에게 같은 남자로서 이중적이며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직 니콜을 사랑하는 걸 눈물로 보여주면서도 왜 그녀를 보다 더 강력하게 붙잡지 않은지, 그리고 자신과 일회성 사랑을 나눈 무대감독이 오늘밤, 같이 잘래요?”라고 물을 때, 왜 단호하게 라고 답하지 않고, “아직 이혼수속 중이라는 어정쩡한 답변을 하는지.., 물론 니콜 역시 이중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찰리와의 안타까운 이별에 눈물지으면서도 낯선 남자와 일회성 일탈을 즐기는 태도가 그렇다. 그래서일까? 그녀가 찰리에 대해 쓴 글을 이제 막 글을 깨친 아들이 읽어줄 때 울먹이는 장면은 묘한 느낌을 준다.

 

"난 그를 만난 지 2초 만에 사랑에 빠졌어요.

난 평생 그를 사랑할거에요.

이젠 말이 안 되긴 하지만요."

 

이 영화에 대한 언론의 대체적인 평가는 이혼과 헤어짐 같은 차가운 이야기를 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는 영화다.”라고 식으로 대단히 호의적이지만, 영화 속 이혼 소송 과정은 한국과 달라 다소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아이에 대한 부모의 헌신적 사랑은 쉽게 공감이 되는 대목이다.

이 영화에서 스칼렛 요한슨과 아담 드라이버는 연기파 배우로 벌써부터 유력한 아카데미상 후보로 거론된다. 요한슨은 어벤저스 일원으로 활약하기 전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매치 포인트> 등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드라이버는 스타워즈 일원으로 활약하기 전후로 <헝그리 하트> <패터슨> <블랙클랜스맨>을 포함 수많은 '아트 영화'에서 발군의 실력을 선보였다. 뉴욕 출신 노아 바움백 감독도 이 영화를 통해 새롭게 조명된다. 데뷔 이후 그는 줄곧 블랙 코미디 계열의 드라마를 선보였으며, 한결같이 가족 이야기에 천착했다. 결혼과 이혼 이야기를 전하는 이번 영화는 그동안의 바움백 작품들을 집대성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성일권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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