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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시내의 시네마 크리티크] 홍콩의 현재와 미래, 옴니버스 영화 <10년>(2015)이 보여주는 것
[손시내의 시네마 크리티크] 홍콩의 현재와 미래, 옴니버스 영화 <10년>(2015)이 보여주는 것
  • 손시내(영화평론가)
  • 승인 2019.12.16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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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2018)이라는 옴니버스 영화가 국내에서 개봉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10년: 일본>이라는 제목으로 먼저 공개된 바 있는 이 작품은 ‘10년’이라는 글로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태국과 대만에서도 동일한 형식의 영화가 함께 제작됐다. 10년 후를 상상하는 각 단편들은 조금 더 어둡고 절망스러워진 세상을 그린다. 그 세상은 개인들을 옭아매고 사람들의 활동반경을 좁힌다. 10년 후라는 가까운 미래는 그처럼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각종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더욱 심화된 상태의 시공간이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시작은 2015년 홍콩에서 제작된 <10년>(2015)으로 거슬러 간다. (국내에선 다큐멘터리 <우산 혁명 - 소년 vs 제국>(2017)과 함께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하려고 하는 영화도 바로 이 홍콩의 <10년>이다.

매우 적은 제작비로 제작되었고 단관 개봉으로 처음 시작한 <10년>은 점차 홍콩 사회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홍콩 금상장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이 작품과 2014년의 홍콩 시위, 즉 ‘우산 혁명’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연일 시위를 벌였으나 결국 요구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종결되었다. 홍콩 반환 후의 불안정한 정치 체제, 중국으로부터의 개입과 압박이 잔존하는 상황에 대한 불안과 절망이 그로부터 1년 후의 영화인 <10년>에 고스란히 담긴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다시 돌이켜볼 때, <10년>은 2014년과 2019년 홍콩 시위 사이에 놓여있는 영화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개정안 논의를 중심으로 홍콩의 정치적 자유를 내건 시위가 올여름부터 6개월가량 지속되었고, 무리한 진압으로 인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이후에도 대규모 집회가 다시 열렸다.

 

2014년과 2019년 홍콩의 시위는 연속되는 흐름 속에서 살펴볼 수 있는 문제일 텐데, 대체로 이 시위들이 소개되는 맥락은 정치 체제 등 홍콩의 자치와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반환 이후 약속된 50년간 중국으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홍콩의 정치적 자유를 쟁취하고 지켜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민주화 시위라는 것이다. 하지만 함께 고려되어야 할 사항들이 있다. 홍콩 시위는 자치에 관한 문제의식만큼이나 경제적인 문제, 빈부격차에 대한 반발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시위대 속의 ‘우리’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이를테면 이주민 등)도 있다는 점이다. 홍콩 반환을 식민주의 청산으로 보는 시선, 본토(홍콩) 주의의 색을 강하게 띠는 홍콩 내부의 민족주의적 분위기, 중국식 사회주의에 대한 반감과 저항 등 홍콩이 놓인 복잡한 정치, 역사적인 지형을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그러한 점을 상세히 설명하거나 분석할 수는 없겠지만(그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기도 하다), <10년>에서 드러나는 그와 같은 부분들에 대해 짧게 언급할 수는 있겠다.

영화는 총 다섯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고 한 편을 제외하고 모두 2025년(영화가 제작된 2015년의 ‘10년’ 후)이 배경이다. <엑스트라>는 2025년으로 가는 길목에 놓여있다. 때는 2020년, 정부의 관리들은 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테러 소동을 꾸민다. 노동절 축하연에 참석한 정치인들을 권총으로 쏘는 시늉을 해 여론을 움직이려는 것이다. 행동을 맡은 이들은 삼합회의 말단 조직원 둘인데, 이들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건 두 사람이 노동자로서 홍콩에 이주해 왔고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다 삼합회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애초에 소동으로 그쳐야 했던 일은 점차 커지고, 두 사람은 처음의 약속을 보장받지 못한 채 현장에서 사살된다. 그리고 그 사실은 전하는 뉴스 속 목소리는 이를 ‘외세의 침투’로 규정한다. 영화는 그처럼 정치적 쟁점을 두고 벌어지는 다툼과 그 과정에서 ‘엑스트라’가 된 이들은 누구인가를 보여준다.

 

<종말의 계절>은 친구의 집이 재건축이라는 명목으로 허물어진 이후 주변의 온갖 것들을 표본으로 만들기 시작한 연구자 부부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들은 세상이 종말을 향해간다고 믿으며 또한 세상은 그 종말과 괴멸을 받아들인다고 믿지만, 이들 앞의 가까운 미래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해 방황한다. 물질과 생물의 종류를 나누고 표본을 만드는 것은 시간의 흐름, 꿈,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집착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일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이들은 끝내 자기 자신의 신체마저 표본으로 만들기에 이른다.

<방언>은 한 택시기사의 하루를 따라간다. 광둥어밖에 할 줄 모르는 그는 중국의 표준어인 보통화 보급정책에 따라 보통화 시험을 통과해야 택시기사로서 활동을 제한받지 않을 수 있다는 소식에 망연하다. 그리고 그러한 흐름은 당장 오늘 하루의 일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GPS 음성인식 기계는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택시에 탔던 손님도 그의 억양을 듣고는 내려버리기 일쑤다. 고단한 하루 중에 광둥어 사용자 손님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의 한숨은 여전히 짙기만 하다.

<분신자살>은 청 왕조시기 영국에 할양되었다가 반환협정 이후 1997년이 되어 중화인민공화국에 반환된 홍콩의 역사를 개괄하며 시작한다. 50년간의 자치를 보장받는 조건이었으니, 홍콩의 미래는 2047년 이후 재론되어야 하지만 영화가 그리는 2025년의 홍콩은 이미 미래가 없는 무채색의 도시다. 영화는 영국 총영사관 앞에서 일어난 분신자살을 두고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인터뷰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홍콩이 놓인 상황에 대한 여러 의견들이 모인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이어지는 인간으로서의 투쟁이라는 세대 간의 공통점이 드러난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현지) 달걀>이다. 홍콩의 마지막 양계장이 문을 닫고, 슈퍼를 운영하는 남자도 현지의 달걀을 더는 들여올 수 없게 된다. 남은 달걀을 ‘현지 달걀’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지만 소년 군 활동을 하는 아이들이 ‘현지’라는 단어가 규칙에 어긋난다며 딴지를 건다. 이는 슈퍼는 물론이고 서점과 같은 다른 공간에서도 일어나는 일이 되었고, 금서목록과 같은 금지 품목명단이 작성되기에 이른다. 영화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남자와 소년군 활동을 하는 그의 아들, 금지 품목들을 몰래 숨겨두고 지키는 서점주인 등을 등장시키며 검열과 통제의 시기를 통과하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이들은 당장은 체념하지만 계속해서 말한다. 시키는 대로만 하지 말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에 익숙해지지 말자고.

다섯 편의 영화는 실질적인 삶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흔히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은 도덕적인 문제에 천착하기 쉽고, 그 안에서 현실의 첨예한 문제들은 오히려 희석될 여지가 있다. 더구나 거대한 벽과 같은 외부의 적과 싸우고 난 이후라면 그러기가 더욱 쉽지 않을까. <10년>이 그리는 세상은 검열과 감시 같은 문제들이 심화된 곳이기도 하지만, ‘우리’ 안의 타자들이 겪는 문제나 노동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여전히 세상 속의 균열로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 영화는 2014년의 그 현장에서 응축되고 분출되었던 다양한 의제들, 정치적 자유라는 거대한 말속에 묶여있던 그 복잡한 사태들을 드러낸다는 맥락 속에서, 그리고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읽히고 계속해서 이야기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글·손시내

2016년 영평상 신인평론상 수상.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에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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