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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언어와 영상’의 한계를 보여준 <블랙머니>, 그리고 ‘강남좌파 영화’
[영화평] ‘언어와 영상’의 한계를 보여준 <블랙머니>, 그리고 ‘강남좌파 영화’
  • 정재형(영화평론가)
  • 승인 2019.12.31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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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영화는 오락 기능을 주로 한다. 정지영 감독의 신작 <블랙머니>(2019)는 론스타 먹튀 논란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다. 그동안 영화를 통해 역사와 사회의 감춰진 이면을 들춰내온 정 감독은, 이번 작품 <블랙머니>에서도 IMF 이후 국민을 기만하고 국가에 재정적 손실을 떠넘긴 론스타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런 ‘사회 비리와 척결’은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흥미로운 소재다. 할리우드 영화의 기본구조는, 문제를 드러내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다. 

판에 박힌 오락영화임에도, 국내 관객들에게 이런 류의 영화가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한국과 미국의 온도 차에 있다. 한국에선 단순한 오락영화도 종종 진보적인 정치적 예술영화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프랑스나 미국에서 큰 호응을 받지 못했던 <레미제라블>이 국내에서 유난히 ‘혁명영화’로 인식됐던 것이 그런 대표적인 경우다. 이는 대한민국이 해방 이후 군사정부를 거치면서 정치적으로 억압을 받아온 탓에 민주화, 자유의식에 대한 동경이 커졌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민주화의 경험을 뒤늦게 했던 한국인들은 인간의 기본권리인 ‘자유’에 대한 열망이 유난히 강하고, 그 때문에 그와 관련된 소재는 어김없이 감동을 주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사회 비리를 다루는 흔한 오락영화까지도, 대단한 민주주의 투사의 이야기처럼 격하게 공감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필자는 <블랙머니>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고 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랙머니>는 부정할 수 없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 이슈를 다뤘다는 점이다. 론스타 매각(혹은 먹튀)사건은 여전히 마무리되지 않고 있으며, 한국 현대사의 변곡점으로서 반드시 잘 다뤄야 하는 사건임이 분명하다. 이토록 중요한, 현재진행형인 이슈를 영화로 다룬 감독의 문제의식은 일단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무엇’을 다뤘는지가 전부는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다뤘는지에 있다.

 

복수로 끝나버린 <국가부도의 날>의 한계

<블랙머니>는 작년에 개봉한 <국가부도의 날>(2018)의 후속편처럼 보인다. IMF 사태처럼 국가적 경제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영화의 언어와 매무새도 닮아있다. <국가부도의 날>은 비슷한 소재들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현실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채, 국민 대다수가 공감할 만한 정치적 책임에만 비판을 가했다는 것이다. IMF의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강조함으로써, 이전까지 그 책임을 국민에게 돌렸던 시각을 되돌려놓은 것은 이 영화의 큰 소득이다. 어쩌면 이 영화의 최대 공적은 “국민의 과소비가 IMF를 불러왔다”라며, IMF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했던 정부의 몰염치, 그리고 정경유착을 비판함으로써 국민의 입장에서 통쾌한 복수를 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부도의 날>의 사회의식은 그 지점에서 멈춘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화풀이와 복수에서 끝나버리는 것이다. <1987>, <봉오동전투> 역시 마찬가지다. IMF에 대해 국민들이 알아야 할 부분이 단지 모피아의 정경유착밖에는 없을까? IMF를 가져온 실제 원인은 훨씬 복합적이다. 원래 IMF를 들이자고 주장한 것은, 영화에서와는 반대로 재경부가 아니라 한국은행이었다. 영화에서 김혜수가 연기했던, ‘한국은행의 용감하고 정의로운 팀장’은 현실에는 없었다. 

정부가 결국 IMF를 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영화에서 주인공이 주장하듯 일본에서 외자를 유치해 급한 불을 꺼보려 했지만, 당시 경색된 한일관계 국면에서 일본의 비협조로 인해 무산됐기 때문이다. IMF는 그런 상황 속에서의 궁여지책이었던 것이다. 또한, IMF 협상 당시 미국의 개입 정황도 침소봉대해 반미의식을 강화한 측면이 있다. 미국은 최대의 IMF 회원국이었기에, 협상 회의에 참관한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마치 비밀접촉을 벌인 것처럼 과대 포장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영화는 미국이 한국기업들을 인수하거나, 자국에 유리하도록 배후활동을 했다고 주장하는 듯한데, 이런 미국의 목적은 이미 주지의 사실 아닌가. 

<국가부도의 날>은 당시 정부를 매국 정권처럼 묘사했고 국가의 잔학을 고발하고 탄핵하는 주인공의 정의만을 강조했다. 영화가 현실과 왜 다른가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영화의 내용이 현실과 반드시 일치해야 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왜곡으로 인해 정작 핵심인 IMF의 원인분석을 놓치고 있다는 데 있다. IMF의 원인은 한둘이 아니라 복합적이다. 어떤 정부도 그 상황에서 적합한 대안을 내놓기란 어려운 일이다. 정경유착이 큰 원인일 수는 있다. 차관을 도입해 오랫동안 기업을 유지해왔던 기업 관행에서 어음 관행이 발생했다. 정부가 관리감독을 부실하게 한 것과 환율조절에 실패한 것은 지탄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IMF의 원인 전체를 모피아의 권력과 미국의 음모로 돌린다는 것은 무리다. 그런 분석은 지나치게 주관적이다. 현실의 에피소드는 영화적 재미를 위해 변형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제작진의 현실 인식과 문제의식은 정확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국가부도의 날>은 주장만 강한 영화이며, 정치사회의식을 냉정하고 차분하게 정확히 분석한 영화는 아니다. 이것이 정치적 소재를 다룬 국내영화의 한계인 것이다.

 

‘체제 내 진보적 영화’에 그친 <블랙머니>

<블랙머니>의 현실 인식도 매한가지다. 그래서 <국가부도의 날> 후속편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다. 이 영화는 ‘여전히 모피아가 나라를 망치고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용감한 검사와 노조가 필요하다’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런 선악이분법이 냉정한 현실분석일까? 영화가 그리듯 나라가 그토록 절망적이라면 마지막 낙관주의적 희망은 도대체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일까? 현실을 보다 더 냉정하게 관찰하고 분석해야 하지 않을까? 

그저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서 만든 영화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부의 입장이 드러난 부분은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그 내용만큼 반체제적인 의도로 만들어진 영화일까? 필자가 내린 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오히려 반체제적 정서를 이용한 오락영화라는 것이다. 실제로 <블랙머니>는 다수의 극장을 점유해, 다른 영화들을 제치고 흥행 1위를 유지했다. 

프랑스의 영화학자 장 루이 코몰리와 장 나르보니는 영화의 종류를 형식과 내용으로 분류하면서 체제적·반체제적 영화로 분류했다.(1) 여기에는 총 7가지 종류가 존재한다. 첫 번째는 내용과 형식 모두 체제적인 영화로서 할리우드 영화로 대표되는 오락영화가 여기에 속한다. 이 영화들은 체제의 가치를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즉 관객들이 현실을 냉철하게 통찰하고 비판하기보다는, 오락을 통해 탈정치화하도록 돕는다. 

<블랙머니>의 경우, 내용 자체는 정치적이고 반체제적이므로 첫 번째 유형인 오락영화에 속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블랙머니>의 내용이 반체제적이어서 체제에 도전하고 저항하는 의식의 영화일까? 코몰리의 분류를 적용하면 <블랙머니>는 네 번째 유형, 내용은 반체제적이고 형식은 체제적인 유형에 속한다. 이 영화들은 체제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옹호하지 않고 비판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추구한다는 데 일단 의미를 둔다. 하지만 그 한계는 명백하다. 이 네 번째 유형의 영화는 체제를 붕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체제에 포획돼, 그 체제 내에서 하나의 부분으로 기능한다.

<블랙머니>의 제작자와 감독은 과거 스크린쿼터 문화다양성 운동과 현재 대기업의 상영횟수 독과점에 대항해 영화다양성 운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블랙머니>는 그런 운동과 전혀 관련이 없다. 그저 산업적 목적만을 추구하는 체제 내 영화로서 기능할 뿐이다. 이런 논리라면, 할리우드 오락영화가 스크린 독과점을 통해 한국영화를 침해하는 사례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저항할 것인가. 

아르헨티나 영화감독 페르난도 솔라나스와 옥타비오 게티노의 논의에서도 결론은 비슷하다. 그들의 선언서 <제3영화를 위해>(2)에서는, 할리우드 오락영화처럼 지배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고 체제를 지지하며 체제의 영속을 위해 기여하는 소비적 영화를 제1영화, 제1영화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성찰적인 비판영화를 제2영화, 체제전복을 위해 투쟁하는 영화를 제3영화로 규정한다. 솔라나스와 게티노는 프랑스의 누벨바그 영화들처럼 작가의식이 강하고 자의식이 강한 제2영화가 결코 체제를 무너뜨리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La Hora de los Hornos 불타는 시간의 연대기>를 예로 들면서, 민중을 각성시키는 데서 끝나지 않고, 행동하게 만드는 영화가 진정한 체제전복의 혁명영화라는 것이다. 반체제영화는 체제 밖 언어와 영상으로 만들어진다.

<국가부도의 날>과 <블랙머니>가 혁명영화가 될 수 없는 이유, 솔라나스와 게티노의 표현에 따라 ‘체제 내 진보적인 영화(A progressive film within the system)’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형식을 개선하지 못한 한계 때문이다. 꼬몰리와 나르보니에 의하면, ‘구태의연한 할리우드 언어와 영상’을 고수하기 때문인 것이다. ‘어떤 언어로 말하는가’는 영화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영화가 인간의 의식을 정치화시키고 변화시키는 것은, 언어와 영상의 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것이 진정한 영화예술이자 정치의식일 것이다. 이는 <블랙머니>가 가진 내용과 현실의 모순적 위상을 단적으로 설명하는 논리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이런 류의, ‘체제 내 진보적 영화’는 최근 조국 사태에 견줘 대중들에게 온갖 감언이설로 희망 고문을 해대는 ‘강남좌파 영화’에 해당한다고 본다.

 


글·정재형
동국대교수이며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을 역임했다.


(1) Jean-Louis Commolli, Jean Narboni, 「Cinema/Ideology/Criticism」.
(2) Fernando Solanas, Octavio Getino, 「Towards a Third 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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