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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이별과 사랑이 하나인 얼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이별과 사랑이 하나인 얼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20.01.12 2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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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페우스 신화에서 비극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얼굴을 마주한 '찰나'가 돌이킬 수 없는 '이별'로 변하는 것이다. 그것은 각각 '후회'와 '기억'을 의미한다. 바로 이런 비극적 이별을 마주하지 않으려는 듯 영화 마지막,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엘로이즈(아델 하에넬)는 끝끝내 마리안느(노에미 메를랑)에게 자신의 얼굴을 내어 주지 않는다. 

 

엘로이즈는 자신의 얼굴을 누군가에게 보이는 순간이 영원한 이별이란 것을 직감했다. 화가인 마리안느가 그려야했던 엘로이즈의 얼굴은 곧 결혼하여 자신의 모든 것과 이별해야한다는 시그널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안느가 엘로이즈의 초상을 위해 보아야만 했던 그녀의 얼굴은 마치 부타데스가 전쟁 참여 직전의 애인 모습을 그려야했던 절박함과 그 궤를 같이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던지는 그 말, “후회하지 말고 기억해”는 결국 이별과 관련이 매우 깊은 말이 된다.

후회, 기억, 이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사랑’이다. 왜 그런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프랑스 영화는 저 네 가지 키워드에 자주 집착한다. 그 중 대표적인 영화는 바로 <이터널 선샤인>이다. 그 영화에서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럿)과 조엘(짐 캐리)은 서로에 대한 증오의 ‘기억’을 제거하게 되는데, ‘이별’의 과정을 염두에 둔 이 행동으로 인해 그들은 뒤늦은 ‘후회’와 운명처럼 채워지는 ‘사랑’을 경험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역시 이러한 세 가지 경험을 ‘사랑’으로 귀결시키고 싶어 한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두 여인은 서로 이별을 이미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이별’은 ‘사랑’과 서로 다른 말이 아닌, 사랑의 한 가운데 가져다 놓아야 할 대상이었다. <이터널 선샤인>이 ‘이별’을 지워야 하는 것이거나 지켜야 하는 것으로 싸우는 동안 <타오로는 여인의 초상>은 ‘이별’ 그 자체가 바로 사랑임을 역설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사랑’이 운명이라면 서둘러 이별마저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두 영화의 결론은 서로 다른 듯 같다. 이별과 사랑은 구별할 수 없다는 것. 서로를 다시 증오하게 될지 모르지만 또 다시 똑같은 사랑에 빠지리라 결정하는 <이터널 선샤인>이나, 이별을 전제로 한 사랑에 무작정 빠지고 마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나, 그 결론은 같을 수밖에 없다. (엘로이즈가 어머니에게 보내는 작별키스는 그래서 상징적이다.)

 

결국 두 여인의 사랑 이야기가 절절해 보이는 이유는 사랑의 새로운 문법을 ‘같음’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것인데 바로 그 속에서 이별과 사랑이 함께 겹쳐진다. 이것을 이해하고 나면 비로소 이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엘로이즈의 얼굴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엘로이즈의 얼굴이 바로 이별과 사랑이 겹쳐있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마리안느가 미처 다 연주하지 못한 음악에 집중한 엘로이즈의 얼굴은 떠나간 마리안느(이별)와 마주한 마리안느(사랑) 모두를 느끼고 있는 얼굴이다. 그 얼굴은, 그 순간은 이별이 사랑의 일부로 들어찬 순간에서만 보일 수 있는 눈물과 환희를 경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우리는 불꽃과도 같았던 찰나의 순간이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만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절망적인 얼굴과 달리, 이별이 영원한 사랑으로 뒤바뀔 때 느낄 수 있는 환희를 그녀의 얼굴을 통해 보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왜 사랑의 문법을 사람으로 재단하면 안 되는지를 알게 되고 사랑과 이별은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이렇게 사랑에 대해, 사람에 대해 가르쳐 준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문학박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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