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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전쟁에서 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사마에게>
[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전쟁에서 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사마에게>
  • 이승민(영화평론가)
  • 승인 2020.01.12 2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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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태어났다. 엄마는 카메라를 든 기록자이고, 아빠는 다친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이다. 부모는 아이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한다. <사마에게> (2019, 와드 알 카-팁, 에드워드 와츠)는 엄마 와드가 아이 사마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이다. 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그러나 영화는 민주주의 혁명과 내전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다치고 죽어나가는 시리아 알레포에서 5년간을 담고 있다.

영화는 시리아의 참사 현장을 다룬 기록인 동시에 가족 홈비디오 라는 이색적인 조합을 가지고, 대문자 H와 소문자 h의 역사를 뫼비우스 띠처럼 엮어낸다. 영화는 거시사와 미시사의 공존에서 생겨나는 혹은 틈새에서 발생하는 실존에 초점을 맞춘다. 전쟁에는 아군과 적군, 공격자와 피해자와 같은 이분법적 구도가 아니라 ‘인간의 삶’이 있다는 묵직한 사실 말이다. 

 

현장 기록의 힘 

2019년 칸느 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 영화를 수상하는 것을 시발로 전 세계 60개 이상의 영화제를 휩쓴 <사마에게>는 시리아 알레포 도시의 민주주의 혁명과 내전을 5년 동안 기록한 영화이다. 사실 시리아의 참상에 대한 보도나 정보는 적지 않다. 그러나 <사마에게>가 특별한 점은 알레포의 참상을 내부자의 시선 그것도 좀체 마주할 수 없는 혁명 주체로서 여성의 시선을 담고 있다는 점이자 그 어떤 카메라보다 삶의 현장과 맞닿은 기록이라는 점이다. 감독 자신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고, 고립된 알레포 시민들의 희노애락이 담겨있다. 딸에게 보내는 가장 사적인 목소리를 통해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를 건네는 영화는 기록이 가진 힘을 알기에 한 순간도 카메라를 놓지 않지만 동시에 기록의 힘을 감히 난발하지도 않는다. 

카메라는 어디든 무엇이든 기록한다. 사적인 공간에서부터 공적인 공간까지 카메라는 경계없이 종횡무진한다. 침실 장면, 휴식 장면, 결혼식 장면은 물론이고 공습으로 다치거나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까지도 고통스럽게 담고 있다. 찍는 감독도 힘들고, 찍히는 사람도 힘든 이 기록 작업을 감독은 계속 하고 있다. 기록은 증거가 될 터이고, 기록이 모여 진실과 정의를 향하기 때문일 터다.

그러나 감독은 기록의 이유를 대의로만 풀어가지 않는다. 공권력의 투입으로 함께한 동료들의 죽음을 목도한 후 떠날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증거 없는 기억은 증명될 수 없고, 기록 없는 기억은 망각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개인을 기억하기 위해서든, 사건을 증언하기 위해서든 힘없는 자들에게 기록은 절실했다. 감독은 권력자를 위한 공적 기록에 대항해 (다수의 공적 기록이 권력자를 향해 편향되어 있고, 실제 시리아 어떤 언론도 알레포 상황을 다루지 않았다) 나와 우리를 기록한다. 개인의 기록이 모여 아카이브가 될 터이고, 이 아카이브는 훗날 미래 세대들에 의해 권력자의 행동에 책임을 묻게 하는 혹은 시민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대안적 기록이 되지 않을까? 

 

개인 기록의 힘 

<사마에게>는 강요된 공적 기록 혹은 국가권력의 기록에 대항해 보철로서 개인의 기록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는 감독 자신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고집 센 딸로서 저널리스트 꿈을 꾸며 알레포 대학에 진학하고 독재정권 타도를 위해 동료들과 투쟁을 시작하며 카메라를 든다. (이즈음에서 벌써 영화는 낯설지 않다. 시리아라는 지역명을 제외하면 한국의 80년대 광주 민주항쟁과 학생 운동과 거의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의과대 인턴인 함자를 만나고 그와 결혼하고 사마를 낳는다. 알레포의 민주화 투쟁이 진행되는 5년간, 영화는 이 기간 동안의 개인의 경험과 기억을 놓치지 않는다. 영화는 공적 사건과 사적 기억을 교차하면서 전쟁 속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행복을 느낀다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국가폭력에 맞서고 있고, 떠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떠나지 않는다는 것, 알레포에서 살아가는 그 자체가 저항인 것이다.   

 

‘나’가 ‘너’에게 보내는 편지 

<사마에게>는 감독 개인의 경험을 일인칭으로 풀어낸다. 감독이자 엄마인 '나’가 딸 사라 ‘너’에게 보내는 영화는 일인칭이 가지는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함의를 동시에 갖는다. 나의 시선과 목소리로 진행되지만 들어주는 상대가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 일인칭이다. ‘나’와 ‘너’의 존재가 필연적인 것이다. 특히, 일인칭의 (고백에 가까운) 편지는 네가 거기 있어야 가능하다. <사마에게>는 감독 와드가 일인칭 ‘나’의 앞에 ‘너’ 사라를 두고 나의 삶을 되짚게 하는 너의 영향력을 전제한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네가 없으면 나는 없는, 그런 너는 나이자 동시에 우리이고 미래인 것이다. 와드의 일인칭 말걸기는 일차적으로는 사라를 향하고 있지만 사라를 경유해 다가올 미래이자 관객인 우리를 향한다. 나의 과거와 현재를 미래의 관객에게 건네는 편지로, 과거와 현재를 미래와 공유하고자 하는 몸짓이기도 하다.  

 

감독 와드는 혁명 내전 중에 출산한 딸 사라에게 엄마로서, 혁명가로서, 기록자로서, 인생 선배로서 말을 시작한다. 말을 시작하자마자 곧 폭격으로 이어진다. 폭격을 기록하는 동시에 딸 사라를 찾아 헤매는 첫 장면은 압도적인 동시에 압축적 장면이다. 이어 공습으로 지하에 모인 사람들 틈 속에서 우유를 먹고 있는 사라를 보며 함자(사라의 아버지이자 의사)는 까꿍놀이를 한다. 카메라를 든 기록자가 전시상황을 맞아 기록과 동시에 딸을 챙겨야 하는 모습, 영화는 희노애락 심지어 공포까지 겹쳐져 복합적 층위의 상황과 감정이 갈라지다 공존한다.

다음 두 장면 또한 잊을 수 없다. 부모님의 병환으로 잠시 알레포를 떠났던 와드와 함자는 사마를 데리고 다시 알레포로 복귀를 시도한다. 그들은 사마라도 두고 가라는 부모님의 제안을 거절하고 갓난 아이 사마를 안고 알레포로 다시 돌아간다. 삼엄한 경계로 인해 들고나는 것이 금지된 길에 탈출이 아니라 재잠입을 시도하는 부부 앞에는 칠흑 같은 어둠과 폭격 소리와 총소리가 들린다. 들키면 생사가 갈리는 순간에 사마가 울기 시작한 거다. 그 순간에 함자는 사마를 달래기 위해 동요를 부른다.

또 한 장면이 있다. 폭격으로 의식을 잃은 임산부가 실려 온다. 수술로 아이를 꺼냈지만 호흡이 느껴지지 않고, 의료팀은 숨을 쉬지 않는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꽤 긴 시간 심장을 주무르다 마침내 아이가 울음을 터트린다. 영화 안 뿐 아니라 밖의 관객도 함께 안타까움과 안도가 교차한다. 전쟁에서 태어난 아이, 그 아이의 생존이 감사하면서 걱정이다. 비극 속에 비극만 있는 것이 아니고 전쟁 속에 죽음만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이 모든 상황이 실제하는 현실이라는 점, 극영화와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의 힘이다.  

현장의 힘, 개인 기록의 힘, 실제의 힘을 아는 영화는 그럼에도, 정치적 올바름과 당위를 위해 기록을 과장하거나 착취하지 않는다. 사건을 설명하거나 대의를 주장하거나 혹은 참사 현장을 거리두고 관찰하거나 영웅과 피해자를 오가는 어떤 몸짓도 하지 않는다. 보여주기 중심의 참상의 비극적 이미지를 전시하는 방식과도 거리가 멀다. 그저 나날의 일상을 기록하듯, 내가 경험한 사회적 사건을 기록하고 (나와 사회를 분리시키거나 종속시키지 않으면서) 과거 기록을 현재와 미래의 사건으로 감각하게 한다. 

 

현장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의 또 다른 힘은 현장 외부에서 영화를 상영할 때이다. 은폐된 현장의 현실을 외부에 알리는 작업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운명이기도 하다. 감독 와드는 오늘도 <사마에게>를 보여주면서 진행 중인 내전과 참상에 대해 알리고 또 알린다. “역사라고 말하지 말라. 여전히 진행 중이며 행동해야 할 일이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사진 출처 : 네이버 

 

글: 이승민

영화평론가. 현장 비평가이자 기획자로 활동, 다큐멘터리 영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영화와 공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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