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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국의 문화톡톡] 2월 - 어린왕자 그리고 파란장미
[최양국의 문화톡톡] 2월 - 어린왕자 그리고 파란장미
  • 최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0.02.03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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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 푸른 점의 / 비움인 / 2월에는

채워지지 않아도 되는 우주의 한 점을 어느 순간 차지하며 우주 공간에 외로이 떠 있는 한 점.

42년 전 발사된 미국의 무인 우주 탐사선 보이저(Voyager) 1호가 태양계를 벗어 나며 보내 온 사진들 속에, 우주 공간 한 줄기 광선에 몸을 의지하며 조그마한 점으로 외롭게 빛나고 있는 ‘창백한 푸른 점(The Pale Blue Dot)’, 지구이다.

 

* 창백한 푸른 점(The Pale Blue Dot : 1990년, Voyager 1호), Google
* 창백한 푸른 점(The Pale Blue Dot : 1990년, Voyager 1호), Google

미국의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은 ‘창백한 푸른 점(The Pale Blue Dot)’을 이렇게 적는다.

“우주공간에 외로이 떠있는 한 점을 보라. 우리는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사랑하는 남녀, 어머니와 아버지, 성자와 죄인 등 모든 인류가 여기에, 이 햇빛 속에 떠도는 티끌과 같은 작은 천체에 살았던 것이다. 바로 이 한 점, 지구 위에 아름다운 시와 음악과 사랑이 있는가 하면, 전쟁과 기근, 증오와 잔인한 행위가 그치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 속에 환경을 파괴하고, 하늘을 찌를 듯 한 콘크리트 건물로 아성을 쌓고 우중충한 시멘트벽에 갇혀 불안한 삶을 살아간다.”

‘창백한 푸른 점(The Pale Blue Dot)’에서의 2월(February)은 고대 로마에서 2월 15일(보름달)에 개최된 속죄와 정화의 의식인 Februa에서 유래하여, ‘정화, 깨끗함’을 의미하는 라틴어 Februum의 이름을 따 온 것이다. 겨울의 종점인 2월은 과거와 미래의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Janus) 신을 나타내는 1월과 함께, 고대 로마인에게는 달력에 없는 기간(Monthless Period)으로서 침잠하는 시간 이었듯이,현대의 우리에게는 새로운 햇살과 바람을 맞이 하기 위해 비움을 실행해야 하는 짧으면서도 굵은 충전을 위한, 여백의 시간인 것이다.

 

통렬한 / 어린왕자 / 병속 시간 / 이야기로

2월의 어느 날, 미지의 행성에 사는 어린공주의 초대를 받은 어린왕자는 자기의 고향인 B-162를 떠나 7번째 방문지인 ‘창백한 푸른 점’을 방문하여, 우리의 병속에 담겨 있는 시간들을 얘기한다.

 

* 어린왕자(Le Petit Prince : 1943년, Antoine de Saint-Exupéry), Google
* 어린왕자(Le Petit Prince : 1943년, Antoine de Saint-Exupéry), Google

첫 번째 이야기는 “나만의 자화상에 대한 엄격함” 이다.

“Men, said the little prince, set out on their way in express trains, but they do not know what they are looking for. Then they rush about, and get excited, and turn round and round...“(사람들은 태어나서 특급열차를 타고 길을 떠나지,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찾고 있는 지를 알지 못해. 그래서 그들은 급히 서두르고 흥분하면서, 같은 곳을 빙빙 맴돌지...)

우리의 마음은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기뻐한다. 실행자,액션 및 목표가 없는 생활은 의미 전달이 어렵다. 자신만의 주관 없이 덩달아 하는 것도, 내 것만 좋다고 우기는 것도 좋지 않으니 흉내를 내지 않고 나만의 터무니를 찾는 정신의 주체를 굳건히 하여야 한다. 이건 뭐다! 보단 이건 뭐지?를 통해 시공간과 감성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야 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달을 보며 비는 지극함” 이다.

“I am very fond of sunsets. Come, let us go look at a sunset now. But we must wait, I said. Wait? For what? For the sunset. We must wait until it is time.“(나는 일몰이 정말 좋아. 이리와, 지금 일몰 보러 가자. 그렇지만 기다려야 해. 때가 될 때 까지.)

우리가 무엇이 되고자 하는 꿈은 평생을 소중히 가꾸어 가야 하는 것이고, 성공은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순간적으로 즐기는 콘서트일 뿐이다. 우리의 얼굴을 진실된 거울에 들여다 보면 수많은 햇살과 바람이 스쳐 지나간 흔적을 볼 수 있듯이 ‘나’다움을 위한 일정한 목표를 세우고 계획에 따라 치열하게 실천해 나가는 우직함과 기다림의 조화가 필요하다.

세 번째 이야기는 “자연과 정면으로 마주섬” 이다.

“But the eyes are blind. ~ It is only with the heart that one can see rightly; what is essential is invisible to the eye.“(겉으로는 보이지 않지.~ 마음으로만 봐야 잘 보여 ; 중요한 건 눈으로는 보이지 않아.)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 가듯이 바라보라. 그리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라는 얘기처럼,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과 소리들이 매 순간 마음속 샘물들로 넘쳐 나야 한다.

네 번째 이야기는 “언제나 봄날처럼 설렘” 이다.

“What is a rite ?” asked the little prince.“Those also are actions too often neglected,” said the fox.“They are what make one day different from other days, one hour from other hours.(의식 이라는 게 뭔데? 너무 빈번하게 무시 받고 있는 행동이야. 어떤 하루를 다른 수많은 날들과 다르게 만들고 어떤 시간을 다른 모든 시간들과 다르게 만드는 거야)

눈에 보이는 걸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익숙한 것 속에 멈추어 서서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 하지 않는 것은 물고기를 잡으려고 쳐둔 그물에 기러기가 걸리면 외면하고 마는 우리들의 단면이다. 똑 같은 일상의 반복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과 같고, 끊임없이 다르게 쏟아지며 얘기하는 햇살에 대한 배신이다.

 

빛나는 / 파란장미와 / ‘꾼’ 잔치를 / 남긴다

눈(雪)마저 올 수 없는 겨울 광장에 불쑥 먼저 피어난 파란장미는, 인지 능력이 고갈된 백치 (白痴)들을 위한 언어 유희의 대상으로 함께 하더라도, 2월이 여백의 시간으로 지나가 버리 고 나면 우리들의 시공간에 함께 할 꽃들은 자신들만의 언어를 가지고 찾아와, 어린왕자의 병속 시간 이야기들을 전한다.

 

* 파란장미(The Blue Rose), Google
* 파란장미(The Blue Rose), Google

‘불가능・절망’은 파란 장미의 원래 꽃말(Language of Flowers 또는 Floriography)이다. 식물의 꽃에 푸른색을 내게 하는 색소는 델피니딘(Delphinidin)인데, 장미에는 델피니딘을 생산하는 유전자가 없기 때문에 파란 장미는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며, 일찍부터 '신비로움'이나 '불가능'의 상징으로서, 파란 장미를 얻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또 다른 네잎 클로버의 신화를 얘기하고 있다.

'기적・희망'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파란 장미가 병속 세상에 피어나면서 바뀌어진 꽃말이다. 파란 장미의 꽃말은 "불가능하다고 여긴 것을 각고의 노력 끝에 가능한 것으로 이끌어내다"인 것으로 진화한 것이다.

그 모든 ‘가 보지 않은 길’을 향해 걸어가야 하는 우리들은, 우리들만의 “아름다운 파란장미” 얘기를 써 갈 수 있을까?

나와 남을 긍정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는, 도전을 두려워 하지 않고 신념을 실천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우리 모두가 자신만의 정체성을 밑바탕으로 하여 색을 칠하며, 새로운 꽃말을 소리하며 ‘판’을 만들어 가는 얘기꾼이 되어야 한다. 시간과 함께 굳어져 가는 관념에서 벗어나, 자신과 타인을 그리고 자연에 대해서 매 순간 존중하는 시각으로 바라 보아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기본 소양이며, 자연과 세상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기 때문이다. ‘판’에서 ‘소리’내는 꽃말꾼이 되어야 한다.

미지의 세계에서 온 “영원한 별”인 어린왕자와 “새로운 꽃말”인 파란장미에게 우리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일몰에 낚시를 드리운 외로운 낚시꾼에서, 일출에 해를 낚아 올리며 둘이 하나 되는 그물꾼이 되어야 한다. 동력을 상실하며 태양외계의 미아가 되는 보이저 1호가 아닌, 자신만의 금(琴)을 타기 위한 시간적 지속성과 공간적 확장성의 지극한 마중물이 되어, 2020년의 2월에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 ‘굿’으로 ‘조응’하는 그물꾼이 되어야 한다.

좀비처럼 다가오는 시공간과 감성의 색깔에 이끌려 물들어 가고 있다면, 세대와 이념내 중독 사회를 세대와 이념간 승화 사회로 이끌어 내려고 한다면, 어린왕자의 나지막한 진양조와 파란장미의 빛나는 휘모리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굿판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장미가 5월의 햇살로 흐드러진 그 어느 날에 수제천(壽齊天)을 들으며, 어린공주는 어린왕자에게 ‘창백한 푸른 점(The Pale Blue Dot)’에서 피어난 ‘파란 장미(The Blue Rose)’를 선물하고 싶다.

 

글: 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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