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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걸으며 니체를 읽다-스위스 질스마리아에서
길을 걸으며 니체를 읽다-스위스 질스마리아에서
  • 이은선
  • 승인 2020.01.24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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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의 출처는 니체의 우상의 황혼이다. 마지막 인용문만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가져왔다.

 

뮌헨에서 장크트갈렌을 지나 스위스 생모리츠까지 버스로만 6시간이 걸렸다. 생모리츠에서 다시 질스마리아(Sils Maria)까지는 시내버스로 15분이 소요되었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갈 수 없을 것 같아 뜻 모를 사명감에 나선 길, 10월 중순이라 아직 햇살이 따뜻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부자연스런 상태로부터 회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가장 거친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한동안 동네 산책에 매료되어 있어서, 장거리 여행은 거의 다섯 달 만이었다. 연례행사처럼 나섰던 해외 트레킹도 올해는 가지 않았다. 이름난 산들을 찾아다니는 게 결국은 인생경험의 이력을 장식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 하는 회의가 들었다. 경험에 대한 맹신은 소비를 부추긴다. 감정의 과잉과 습관적인 소비는 몰락의 징후라는 생각이 들어 불필요한 만남도 줄이고 쓸데없는 소비도 삼가던 터다.

진정한 체험은 전혀 수다스럽지 않은 것이다. 말하는 자는 말함으로써 자신을 통속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질스마리아 마을 풍경
질스마리아 마을 풍경

 

질스마리아행 시내버스에 앉아 비현실적인 스위스 경치에 몰입하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할아버지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이 작은 마을에는 어쩐 일이냐고 물었다.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Clouds of Sils Maria>를 들먹이며 운이 좋으면 말로야 스네이크’-질스마리아와 말로야 지역을 관통하며 유려하게 흐르는 거대한 구름떼를 영화 속에서는 말로야 스네이크라고 부르고 있었다-를 볼 수도 있지 않겠냐고 잰체했더니, 할아버지는 그건 다 지어낸 말이라며 여기는 크로스컨트리로 유명하니 겨울에 와야 제 격이라고 가볍게 응수했다. 자연 그 자체가 최고의 자랑거리인 시골마을에서 감히 영화 따위를 논하다니, 부끄러웠다.

지렁이는 밟으면 꿈틀거린다. 다시 밟힐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다. 도덕에서 겸손이 바로 그러하다.”

사실 말로야 스네이크를 보려고 이 먼 곳까지 온 건 아니다. 질스마리아에 와야 할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이번 여행의 유일한 행선지는 질바플라나(Silvaplana) 호수 어딘가에 있다는 바위. 운이 좋으면 그 바위 어딘가에서 그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살아야 할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다면 우리는 삶의 어떤 방식도 받아들일 수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행복이 아니다. 오직 영국인만이 그럴 뿐이다.”

질스마리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만 하루다. 날씨가 최대 관건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조식을 챙겨 먹고 질바플라나 호수로 나갔다. 물안개 때문인지 한참을 돌아도 바위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이른 칼바람에 손과 귀가 얼어붙고 핸드폰 배터리마저 순식간에 소진되었다. 호텔에 가서 몸을 좀 녹이고 나니 이미 전의가 반감되었다. 그래 정오에 나가 보자.

가장 먼저 설득해야 하는 것은 신체다. 도야(culture)를 올바른 곳에서 시작하는 것, 그것이 민족과 인류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영혼부터 시작해서는 안 된다. 도야는 신체, 품행, 섭생법, 생리학에서 시작해야 하며 나머지는 그것으로부터 저절로 따라 나온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기온이 영상 15도까지 상승했다. 구글지도로 확인하니, 바위는 정확히 호수 반대편에 있었다. 성격상 호수만 걷다 오지는 않을 게 뻔했다. 근처 스포츠용품점에 가서 거금을 들여 등산화 하나를 장만했다. 그간의 절약이 수포로 돌아갔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비겁하지 말자. 행동을 하고 나서 그 행동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자. 양심의 가책은 고상하지 않은 것이다.”

 

질바플라나 호수
질바플라나 호수

 

1시간을 걸었는데 정작 지도에 표시된 곳에는 바위가 없었다. 50미터 전방에 야트막한 바위가 있긴 한데, 아무런 표식이 없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바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 앞에 난 산길로 무작정 접어들었다. 머리 위로 곤돌라 케이블이 희미하게 보였으므로, 그리로 곧장 올라가면 얼추 곤돌라 승강장이 나올 것도 같았다.

나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면서, 실은 상승하라고 말하고 있다. 드높고 자유로우며 심지어는 두렵기까지 한 자연과 자연성으로 상승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산길은 인적이 없고 험했다. 굽이굽이 가파른 산길을 쉼 없이 오르며 조난당하면 어쩌나 걱정될 무렵, 머리 위로 곤돌라 승강장이 보였다. 곤돌라를 타고 순식간에 코르바취산 3,303미터 정상에 올랐다. 롯지에 들어가 세레모니처럼 팔뤼 비어(스위스 엥가딘 지방의 대표맥주) 한 잔을 마신 뒤, 서둘러 하산길로 들어섰다.

죽치고 앉아 있는 것이야말로 성스러운 정신을 거스르는 죄다. 걸으면서 얻은 생각만이 가치가 있다.”

눈 녹은 알프스는 온통 민둥산이다. 곤돌라를 뒤로하고 걸어서 내려가려는데, 어쩐지 뒤통수에 만류하는 사람들의 눈빛이 꽂혔다. 걸어 내려가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문명에 적응 못하는 낙오자가 된 느낌이었다. 오후 햇살은 뜨거웠고, 땅은 거칠었다. 거센 바람에 저항하듯 멈춰서 날고 있는 도요새가 눈에 들어왔다. 사방이 아득했다.

암울하고 막중한 일을 하는 와중에도 시종일관 명랑한 기분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호기로운 정신에 차서 일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다. 힘이 과잉으로 넘치는 상태만이 존재에 대한 강한 증거이다.”

구글지도만 믿고 올라온 것이 패착이었다. 핸드폰은 3,303미터 정상에서 꺼진지 오래다. 산 아래로 길게 뻗은 질바플라나 호수가 유일한 이정표였다. 사람도 없고 화장실도 없었다. 민둥산을 수직으로 한 시간 정도 뛰다시피 내려오니, 여군 포스의 젊은 여자 하나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걸어오고 있었다. 무척 반가웠다. 산 중턱부터는 산의 형세를 따라 수평으로 난 길을 끝도 없이 걸었다.

섭생법 -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병과 두통이 일어나는 것을 막는 데 사용했던 방법. 엄청난 행군, 지극히 간소한 생활방식, 끊임없는 노천생활, 지속적인 혹사!”

코르바취 정상에서 내려다 본 질바플라나
코르바취 정상에서 내려다 본 질바플라나

 

산자락을 돌 때마다 내려다보이는 세상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인간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건 오만이다. 자연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살아 있는 인간에 의해서는 삶에 대한 가치 판단이 불가능하다. 살아 있는 인간은 바로 논의의 당사자이고 심지어 논의의 대상이지 논의의 심판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고도가 낮아질수록 수풀이 우거지고 새소리가 잦아졌다. 사람보다 동물을 만날까 봐 더 걱정이 되었다. 군데군데 이름 모를 동물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기도가 절로 나왔다. 마을이 나올 듯 말 듯한 채로 한 시간쯤을 더 걸었을까. 황혼녘 노을 속에 비친 실루엣이 늑대인지 개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즈음, 갈림길 하나가 나왔다. 잠시 망설이는데 누군가 슬쩍 지나가는 뒷모습이 보인 듯도 하여, 귀신에 홀린 듯 그 길로 들어섰다. 다행히 마을로 통하는 길이었다. 그때서야 긴장이 풀려 다리가 후들거리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도덕과 종교가 내세우는 원인은 모두 공상적 원인이다. 도덕과 종교는 내가 겪고 있는 불행과 불쾌감의 원인을 신이나 도덕에 대한 불경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 불행과 불쾌를 벌로 해석한다.”

계단을 내려와 가쁜 숨을 몰아쉬는데 뜻밖에도 거기에 가 서 있었다. 정확히는 그의 흉상이었다. 신기하게 산행이 끝나는 지점에 니체박물관이 있었다. 아직 관람시간이 10여분 정도 남아 있었다. 전시된 사진들을 훑어보니, 니체가 영원회귀를 깨달았다는 그 바위(Nietzsche Nachdenkenstein)가 신기하게도 정오에 보았던 바로 그 바위였다. 니체 코스가 따로 있을 리 만무하고 미리 계획한 것도 아닌데, 니체바위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니체박물관에서 마무리한 셈이다. 우연의 필연성이랄까 필연의 우연성이랄까.

최후에 웃는 자가 가장 잘 웃는 자라는 격언은 잘못된 것이다. 오늘 가장 잘 웃는 자가 최후에도 웃을 것이다.”

니체 얼굴이 박힌 엽서 몇 장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하루를 돌아보며 벅찬 감격이 밀려 왔다. 가장 감사한 건 뜻밖에도 등산화였다. 낡은 운동화를 신고 가파른 자갈밭을 뛰어 내려왔더라면 지금쯤 발톱이 무사할 리 없었다. 때로는 충동구매도 유용하다. 탕진은 새로 채울 계기를 마련해 주는 법. 여행은 일탈과 우연이 시너지를 일으킬 때 유의미한 것으로 기억된다.

사람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교량이라는 것이다. 사람에게 사랑받을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의 과정이요 몰락이라는 것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 모르는 사람들을. 그런 자들이야말로 저기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추억하기야말로 참으로 반()니체적이지만 이따금 몰락이 밀려올 때 잠시라도 꺼내 읽기 위해 몸에 새기지 못하고 이렇게 메모장 따위에 새겨 둔다.

 

글 이은선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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