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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 자본주의의 파생적인 비극
‘파생’ 자본주의의 파생적인 비극
  • 이진기 l 언론인
  • 승인 2020.01.28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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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금융시장은 DLF와 라임사모펀드로 홍역을 앓고 있다. 평소 같으면 모두 은행예금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했을 파생상품들이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에는 갈수록 예측불가의 변수가 늘어나고, 이로 인해 손실을 기록한 투자자들은 판매처인 은행과 금융당국을 상대로 ‘책임지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파생상품을 기획한 기획자는 도주하고 상품을 판매한 은행은 ‘속았다’고 항변하고, 금융당국은 뒷북 제재를 준비 중이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이런 비극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1. DLF·라임으로 2조 원 대 투자자 손실 발생

DLF는 DLS(Derivative Linked Securities; 파생결합증권)를 편입한 펀드로 우리말로 ‘파생결합펀드’로 불린다. DLS가 주가지수, 신용, 실물자산, 통화 등 다양한 실물자산을 기초자산으로 만든 만큼 DLS를 편입한 DLF는 구조적으로 변동성이 더 크다. 지난해 문제가 된 DLF는 우리은행이 독일 국채금리를 기초자산으로, 하나은행이 영국과 미국의 이자율 스와프(CMS)로 만든 상품이다. 독일 국채금리가 시장의 예상치보다 하회하면서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보게 됐다. 금융감독원에 의하면, 지난해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총 3,243명에게 총 7,950억 원에 달하는 DLF를 판매했다. 

중도 환매와 만기도래 물량을 기준으로 원금 손실률은 54.5%, 아직 환매되지 않은 상품도 약 52.3% 추가손실이 예상된다. 손실 투자자 절반가량이 고령층이었다. 금융감독원은 손실 투자자 중 60대 이상이 48.4%, 70대 이상도 21.3%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상품을 판매한 은행들은 ‘독일’이 가지고 있는 건실한 이미지, ‘유럽 선진국’의 이미지를 강조해 고령층을 상대로 상품 마케팅을 했다고 한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보상책을 마련하면서 DLF 후폭풍이 잦아드나 싶더니, 올해 초부터 ‘라임무역금융펀드’의 리스크가 암세포처럼 확산되고 있다. 라임무역금융펀드는 해외 무역금융펀드에 투자하는 재간접 사모펀드다. 수출업체가 해외에서 물건을 떼다 파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무역금융거래 금융상품에 투자한다. 해외 펀드에 재간접 투자하는 만큼 상품구조가 매우 복잡하고 글로벌 경기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지난해 10월 라임자산운용은 유동성 위기를 이유로 일부 펀드에 대한 환매를 중단하겠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 라임이 투자한 해외 무역금융 중 일부가 폰지사기인 것으로 판명돼 투자금 대부분을 회수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것이다. 현재 금융감독원은 라임자산운용이 환매를 중단한 펀드를 약 1조 5,589억 원, 이 중 개인이 9,170억 원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재 DLF와 라임사태 모두, 투자자들이 법적 대응절차에 돌입하면서 장기전 국면에 들어섰다. “고위험 상품은 투자자 책임, 큰 문제 없을 것”이라던 금융당국은 뒤늦게 화재 진압에 나섰다.

 

2. 금융당국은 키코·동양사태를 벌써 잊었나

최근 발생한 DLF와 라임사태는 과거 키코사태와 동양사태의 과오를 결합해놓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키코사태는 전문가들도 상품구조를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함이 있었고, 동양사태는 판매사가 투자자들을 우롱해 고위험의 상품을 판 불완전판매의 대명사다.

키코(KIKO)는 ‘Knock-In Knock-Out’의 약자로 환율이 약정된 상한(knock-in)과 하한(knock-out) 내에서만 움직일 경우 미리 정한 환율에 따라 달러를 팔 수 있게 설계된 파생상품이다. 2008년 당시 은행들은 수출기업들에 환율하락 때는 손실을 방어해주고, 상승기에는 환차익을 일부 보전할 수 있다며, ‘마법 같은 통화옵션 상품이 나왔다’라고 영업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고 환율은 널뛰었다. 키코에 투자한 당시 723개 기업은 약 3조 3,000억 원의 피해를 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상당수의 중소기업은 부도 위기를 맞았고 지금도 구제절차가 진행 중이다. 동양사태는 2013년, 동양그룹이 상환능력이 없으면서도 1조 3,032억 원에 달하는 기업어음과 회사채를 발행하고, 이 중 9,942억 원을 지급불능 처리하면서 4만 1,000여 명의 피해자를 만들어낸 사건이다. 당시 동양증권은 부도 위기의 회사채를 마치 안정적인 고금리 상품인 것처럼 속여 팔았다. 이 때문에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은 사기죄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7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홍역을 앓았던 금융당국은 당시 각종 투자자 보호 장치를 만드는 등 후속대책을 마련했지만 2020년 현재, 악몽은 반복되고 있다. 파생상품들이 금융시장에 리스크를 ‘파생’시키면서, 시민단체들은 ‘금융당국도 공범’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소비자원은 DLF 제재심의위원회를 앞두고 금융감독원에 책임을 묻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최근 상황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감독 부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관련자 징계나 처벌도 전혀 없어 고의로 책임을 면피하고 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DLF 사태의 1차 책임은 감독자인 금융감독원에 있고, 2차 책임은 판매자인 은행에 있다. 심지어 금융감독원은 후속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도 안일한 태도를 보여 투자자들의 원망을 사고 있다. 우리와 하나은행의 기초자산과 판매방법, 내부규정 등이 달라 배상절차를 진행하면서 해결방법을 달리했었어야 했지만 두 개 은행을 한 번에 묶어 처리하면서 신속한 구제절차가 어려워졌다는 지적이다.

 

3. ‘정보비대칭’이 불러오는 파생상품의 리스크

파생상품은 원래 기초자산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기초자산의 시장가, 가치 변동폭으로 가격을 결정하게 해 농·수·축산물 등 비금융 재화로도 금융상품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상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 시장 전체의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다. ‘구조화’라는 파생상품의 특징 때문이다. 개별 기초자산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기초자산을 잘 섞고 이를 금융공학으로 잘 엮어 새롭게 포장하는 과정을 ‘구조화’라고 한다. 이 구조화 과정은 복잡한 수식이 필요하다.

이 복잡한 구조가 만들어낸 정보 비대칭성 때문에 투자자들의 리스크가 발생하는 것이다. 강병진 숭실대학교 교수는 “파생상품이 복잡하게 설계됐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위험에 상응하는 수익을 제대로 보장받고 있는지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심지어 발행자가 잘못된 의도를 갖고 농간을 부려도 투자자가 잡아내기 어렵고 뒤늦게 손실을 보아야 리스크를 감지할 수 있는 구조다.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과 정책기관인 금융위 간의 미흡한 소통으로, 결국 ‘정보 비대칭성’이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금리 기조가 확대되면서 리스크를 간과한 채 수익률만 따지는 투자형태도 문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자산 통계에 의하면, 2009년 21조 3,000억 원에 불과했던 파생결합증권은 2018년 110조 7,000억 원으로 연평균 20.1% 증가했다. 같은 기간 보험·연금은 11.48%, 주식·출자지분은 5.68%, 투자 펀드는 6.03% 증가에 그쳤다. 파생상품 쏠림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특히 금리 외 신용 등 예측하기 어려운 기초자산에 연동된 DLS의 비중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지난 2003년 파생상품을 “금융시장의 대량살상 무기”라고 지칭하면서, 투기적인 거래의 위험성을 강조한 바 있다. 2002년 이후 버크셔 헤서웨이의 자회사인 재보험회사 제너럴 리의 파생상품 계약도 정리한 바 있다. 대한민국 투자자들은 버핏과 상반된 투자방식을 확대해가고 있는 것이다.

 

4. 금융당국, 중장기 투자자 보호 대책 마련해야

금융당국은 최근 일련의 사태를 해결하는 것에만 집중하지 말고, 보다 근본적이며 중장기적인 투자자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널리 알려진 진리가 있지 않은가. 고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들이라면, 리스크를 파악할 능력을 갖춰야 하고,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시장의 구조 자체가 투자자들의 노력과 무관하게 판이 기울어져 있고, 금융당국의 허점을 노리는 판매자들을 제대로 처벌할 수 없다면 금융시장은 도박판이 되고 만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관련 규제를 완화하면서 동시에 처벌을 대폭강화 하는 제도를 정비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2015년 금융당국은 사모펀드시장 활성화를 위해, 사모전문 자산운용사를 기존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꿔 자기자본 20억 등의 요건만 갖추면 인가를 내줬다. 문턱만 낮춰주고, 모럴헤저드에 대비한 처벌규정은 마련하지 않았다.

심지어 금융시장에서 DLF와 라임은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 수차례 지적됐음에도, 손실이 가시화될 때까지 운용사와 판매사에 대한 관리감독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의하면 금융감독원에 DLF에 대한 최초 민원이 접수된 시점은 지난해 4월 10일이다. 이후 금융감독원이 DLF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현장조사를 나간 시점은 8월 말, 중간 검사결과는 10월 1일 발표했다. 꼬리표가 없는 돈은 작정하면 하루 만에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올 수도 있는 요새 같은 상황에 금융감독원의 늑장 대응은 투자자들의 분통을 불러온다.

라임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아직도 사태의 원인과 배경 등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이나 현황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도리어 언론의 특종 보도 등을 통해 숨겨진 사실들이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는 수준이다. 이런 늑장대응을 악용한 사례도 나왔다. 라임 사태의 핵심인물인 이종필 전 부사장은 100억 원대 회사자금을 인출해 국내에서 도피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제도정비 과정에서 투자자들이 복잡한 구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판매자들이 상품의 정보를 정리해 전달하는 방안을 의무화해야 한다. 깨알 같은 투자설명서 내용을 읽어주는 것만으로 투자자들이 위험을 인지할 수 없다. 상품의 가치변화를 좀 더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인포그래픽 등의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이재호 한국거래소 파생상품연구센터 연구위원은 “유럽 등 해외에서는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발행자와 판매자의 의무를 강화하는 추세”라며 수익률 성과 외에도 리스크 요인 등 다른 데이터도 합리적인 방식으로 전달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금융감독원 내 ‘금융소비자보호처’의 위상도 제고돼야 한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금융소비자보호처의 ‘소비자경보’가 1년 넘게 방치됐다고 비판했다. 이를 두고 금융감독원 내부에서는 ‘예견된 문제’라는 자성 어린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소비자보호처의 수장이 부원장으로 격상됐지만, 아직도 유능한 직원들에게 ‘기피부서’라는 것이다. 금융소비자보호처가 컨트롤 타워가 돼야 투자자 보호를 위한 중장기 계획이 수립될 수 있고, 투자자들을 위한 교육도 보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제시가 될 수 있다. 

지난해 금융위원회는 금융교육을 정규 교과과정에 포함시켜 의무교육 대상으로 포함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이 논의는 이미 5년 전 신제윤 금융위원장 때부터 있어왔다. 그동안 여전히 영업점에서는 펀드를 예금으로 속여서 팔고, 투자자들은 직원이 건네준 문서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한 채 서명했다. 

이번 DLF 사태와 관련된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주요 쟁점은 내부통제 부실에 따른 불완전판매의 ‘행위자’와 ‘감독자’가 누구인지를 특정하는 것이었다. 금융감독원은 불완전판매를 판 ‘행위자’를 부행장급 임원으로 간주하고, ‘감독자’인 행장급 CEO의 감독책임도 엄중히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들이 제재심을 진행한다면 어떨까? 불완전판매가 사실이라면 ‘행위자’, 금융기관과 이를 감독해야 할 ‘감독자’, 금융감독당국의 수장도 중징계 대상이다. 금융기관 수장들을 앉혀놓고 중징계를 내려 투자자들에게 탄산수 같은 쾌감을 주는 데서 끝내라는 것이 아니다. 이제,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중장기적인 투자자 보호 대책이 근본적으로 시행돼야 할 때다.  

 

글·이진기
언론인. 금융 및 IT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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