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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놓친 리키들에 관한 보고서
우리가 놓친 리키들에 관한 보고서
  • 이은선 l 연구원
  • 승인 2020.01.30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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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

일요일 밤, 자려고 누웠는데 문자 수신음이 들렸다. 미배달 안내 메시지였다. 

“ㅇㅇ홈 가맹점의 갑작스런 자녀喪으로 12/2~4(월·화·수) 3일간 배달이 어렵게 돼 양해의 말씀을 구합니다.”(1)

고등학교 1학년생 딸의 아침밥을 챙기느라 새벽 정기배송을 이용하던 중이었다. 이른 새벽 스쿨버스를 타기 위해 식사도 거르는 게 안쓰러워, 아침 도시락을 싸서 보낸 지 어느덧 꼬박 두 학기. 새벽 배송기사의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그 덕분에 단 하루도 아이의 아침 도시락을 빠뜨린 적이 없었다.

 

자녀상이라니…. 그러고 보니 배송기사의 연령대도 성별도, 심지어 배송기사가 곧 가맹점인 사정도 모르고 있었다. 3일 뒤에 정상배송이라면, 자녀상을 당한 그 기사가 3일 만에 배송을 재개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3일 뒤 다른 기사에게 가맹점이 넘어간다는 뜻일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한참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정확히 3일 뒤에 정상적으로 배송이 재개됐다. 며칠만 더 미뤄달라고 했으면 오히려 더 인간적이었을까?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며 서비스로 2일 치 반찬이 무상으로 제공됐다. 어쩐지 죄스러워 가족 누구에게도 그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그때 그 일이 다시 생각난 것은, 며칠 뒤 개봉한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원제: Sorry we missed you) 때문이었다. 

리키는 택배업체 PDF(Parcels Delivered Fast)의 가맹점주, 말하자면 택배기사다. 건축회사에서 일하다 실직해 10년째 이 일 저 일을 전전하다, 최근 택배사업을 시작했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아내가 출퇴근용으로 사용하는 소형차를 팔아 택배용 화물차를 장만했다. 계약금 1,000파운드에 월 할부금이 400파운드. 회사에서 빌려주는 화물차는 보험이 들어있어 안전하지만, 차임이 월 2,000파운드가 넘는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빚으로 시작한 사업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고객은 물품의 배송시간과 배송장소를 설정해 놓고 시시때때로 배송추적을 한다. 하루 14시간을 일해도 약속한 물량을 채우기가 어렵다. 리키를 감시하는 것은, 고성능 단말기다. 정해진 이동 경로에서 벗어나면 이탈한 지 2분 만에 단말기에서 경고음이 울린다. 마치 단말기 뒤에 숨어서 리키를 감시하는 존재가 있는 듯하다.

가맹계약을 할 때, 물류창고 관리자 멀로니는 리키에게 ‘자유로운’ 영업을 약속했다. 언제라도 급한 사정이 생기면 스스로 대체인력을 구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급한 사정이란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부모의 부재를 틈타 말썽을 피우던 아들 세브가 절도죄로 경찰조사를 받던 날, 리키는 급하게 경찰서에 가느라 대체인력을 구하지 못해 결국 멀로니로부터 벌금과 벌점을 받았다. 모든 불화가 아빠의 택배 사업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 어린 딸 라이자가 아빠의 화물차 열쇠를 숨기는 바람에 출근을 할 수 없게 된 날에도, 리키는 대체인력을 구하지 못해 멀로니로부터 벌금과 벌점을 받았다. 백주대로에서 고가의 택배 물품을 노린 강도를 만나 흠씬 두들겨 맞고 병원 신세를 진 날에도, 리키는 대체인력을 구하지 못하고 멀로니로부터 벌금과 벌점을 받았다. 게다가, 잃어버린 물품값 500파운드에 부서진 단말기 값 1,000파운드까지 물어내야 했다.

더 가혹한 것은, 고작 ‘그깟’ 개인적인 사정으로 물류창고의 원활한 흐름을 방해하느냐며 리키에게 온갖 모욕을 퍼붓는 멀로니의 독설이다. 멀로니의 독설은 물류창고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다. 멀로니는 분별없이 물건을 사들이는 고객들과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택배기사들의 울분과 좌절, 슬픔과 우울을 연료 삼아 물류창고를 가동시킨다. 멀로니는 플랫폼이라는 가공의 시스템 뒤에 숨은 괴물이다.      

 

플랫폼, 지옥의 시스템 

리키 때문인지, 뒤늦게 떠오른 그 문자 때문인지 정체 모를 우울감에 휩싸여 영화관을 나섰다. 늦은 시각이었고 아이들이 빨리 보고 싶어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타다’를 불렀다. 언제 올지 모르는 택시보다 도착 시간을 예측할 수 있는 타다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타다 기사들은 실내온도와 라디오 음량을 조절하기 위한 대화 이외에는 고객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나도 택시 기사와 대화를 잘 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날은 어쩐지 그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타다와 가맹계약을 한 기사가 몇 명 정도인지 물으니 대략 1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했다. 휴식이나 휴업은 자유로운지 물으니, 잦은 이탈이나 휴업은 모두 일감과 연동된다고 했다. 그나마 배달노동자들은 라이더유니온이라도 만들었지만, 타다 기사와 같은 여객운송노동자들에게는 아직 아무런 완충장치가 없다고 했다. 고객들에게는 완벽한 시스템이지만, 그들에게는 지옥의 시스템이라고도 했다. 단말기 뒤에 숨은 자본주의의 첨병들이 타다 기사들의 좌절과 불행을 연료 삼아 거대 운송 플랫폼을 가동시키고 있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워킹맘이다. 아이들이 제법 커서 집안일은 남편과 당번제로 번갈아 가면서 한다. 내가 당번이 아닌 날은 회사에 남아 야근도 하고, 동료들과 술도 한잔하고 개봉일에 맞춰 영화도 챙겨 본다. 그 모든 것을 어떻게 다 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밥하는 시간, 이동하는 시간, 물건 사는 시간, 관공서에 서류를 찾으러 가는 시간…. ‘길에다 뿌리는 그 모든 자투리 시간’을 모으면 제법 쓸모 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집으로 돌아오며, 그동안 나에게 ‘자투리 시간’을 선사한 수많은 리키들을 떠올려 봤다. 결국, 나는 그들의 시간을 헐값에 사들여 그들의 건강과 가정을 축내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남편이 야식거리를 시켜놓고 모처럼 아이들과 대화하는 중이었다. 큰 애가 나를 보며 엄마 표정이 왜 이리 우울해 보이냐고 물었다. 나는 미배송 문자에서부터 영화 이야기, 타다 기사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큰아이는 “사실 어제저녁 혼자 집에 있으면서 무서운 웹툰을 보고 있었는데, 하필 그때 허름한 차림의 할머니 한 분이 초인종을 눌러서 문을 열지 않았다”라고 털어놓았다. 알고 보니 그 할머니는, 아이가 주문한 공연 티켓의 배송기사였던 것이다. 큰아이는 “오늘 다시 방문한 그 할머니가 차가운 손을 내밀며 서명을 부탁하는데, 너무 미안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라고 덧붙였다.

우리 이야기를 듣던 남편이 한마디 거들었다. 조금 전 야식을 가져다준 라이더가 포장된 음식을 건네주며, 항간에 자신의 경쟁업체가 훨씬 더 배송이 빠르다는 평가가 있던데, 누가 더 빠른지 솔직하게 말해 달라고 해서 무척 난감했었다는 것이다.

슬프다. 속도 따위 괜찮으니, 부디 이 세상 모든 리키들이 안전하기를….

 

● 플랫폼 노동자들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해당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25조 제1항과 제2항에 의하면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근로자와 유사하게 노무를 제공함에도 근로기준법 등이 적용되지 아니하여 업무상의 재해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는 자로서 주로 하나의 사업에 그 운영에 필요한 노무를 상시적으로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하며, 노무를 제공함에 있어서 타인을 사용하지 아니하는 자’로 정의된다. 

● 우리나라에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1997년 외환위기 때다. 노동유연화에 대한 국내외의 압력은 대량실업과 함께 막대한 수의 자영업자들을 양산해냈다. 대표적인 예로 건설회사들은 콘크리트믹서트럭 운전사들을 대량해고하는 대신, 그들에게 트럭을 직접 구매하게 해 회사와 일대일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일거리를 줬다. 이런 고용형태는 보험설계사, 우체국 보험모집인, 학습지교사, 캐디, 택배원, 퀵서비스배송인, 대출모집인, 신용카드회원모집인, 대리운전기사 등으로 확대됐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제126조 참조). 국민권익위원회는 위 직업 외에도 간병인, 방송사 구성작가, 수도검침원, 텔레마케터, 학원 강사, 헤어디자이너, 문화예술인, 야쿠르트 판매원 등 약 39개 직업을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파악하고 있다(헌재 2016. 11. 24. 선고 2015헌바413 등 결정문 참조). 

●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은 법적으로는 자영업자 신분을 가지면서 거래당사자들과 위·수탁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영업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감을 주는 회사나 가맹업체가 일방적으로 정한 계약 내용을 따르고 일정 시간, 일정 장소에 출근해 직·간접적인 업무지시와 감독을 받는 등 노동자와 유사한 형태로 일을 한다. 이를테면 자영업자로 위장한 노동자들이다. 사용자와 고용 관계에 있지 않고 계약관계에 있기 때문에, 기업에 의한 사회보험의 지원은 물론, 최저임금, 노동시간, 법정 휴일, 직장 내 차별금지 등 노동 보호로부터도 배제된다.(2)

● 특수형태근로자들을 자영업자가 아닌 노동자로서 보호하기 위한 각계의 노력이 있었다. 2019년 11월 15일 서울행정법원은 택배기사들이 노동조합법상 노동자에 해당하고, 택배기사들의 노동조합이 노동조합법에서 정한 노동조합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인 택배기사의 노동자성을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이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대리기사에 대해서도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고무적이다. 더 이상 그들을 놓치는 일이 없기를 희망한다.  

 

 

글·이은선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8년 가을,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읽고 ‘읽기’와 ‘글쓰기’를 평생의 과업으로 삼기로 했다.


(1) 직접 인용한 것으로, 정서법에 어긋날 수 있다.
(2)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정홍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규모 추정에 대한 새로운 접근, KLI 고용노동브리프 제88호(2019-0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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