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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국의 문화톡톡] 현대 여성의, 사회적 진입과 낭만적 사랑의 관계 - 정이현의「낭만적 사랑과 사회」을 중심으로
[이병국의 문화톡톡] 현대 여성의, 사회적 진입과 낭만적 사랑의 관계 - 정이현의「낭만적 사랑과 사회」을 중심으로
  • 이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0.02.1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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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최근 출간된 책 중에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라면 아마도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 말할 수 있겠다. 지금, 이곳의 사람들의 일상을 가장 핍진하게 다루고 있으며 인물들이 절망적 상황에 의해 갈등하고 좌절하면서 성장하는 진부한 서사에서 벗어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고통 받는 여성의 재현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고발하는 정치적 수사가 지닌 기록적 성격과는 결을 달리 하는 부분도 주목을 끈다. 세계의 강제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방법이 혁명적 사유와 그에 대한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세계를 바꿔나가려는 행위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것도 이 소설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소설이 대중적인 소구력을 갖는 이유는 아마도 인물의 평범함일 것이다. 특히 사회생활 속에 적당히 이용당하고 이용하면서 세계와 적절히 타협하는 소시민성에 기반을 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세계가 강제하는 자리에 스스로를 위치시킴으로써 유연하게 대처하는 저 일상적 존재들의 보편적 고유함을 응원하는 소설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진출처-창비홈페이지
사진출처 - 창비홈페이지

재미있는 점은 일상적 존재들, 아니 일상을 살아가는 존재들의 활력이 세계와 갈등 속에서도 그 자신을 절망에 빠뜨리지 않는 점이다. 이를 살아남기 위한 타협이라 할 수 있겠으나 좀 더 명징하게 말하면 한영인 평론가가 어빙 고프먼을 빌려 지적했듯이 세계라는 무대에서 배역을 연기하는 개인의 자아연출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아연출과 대면 상호작용으로 구성되는 사회적 삶에 내재한 위험과 실패의 지점을 포착하여 서사화”1)한 장류진의 소설은 지금, 이곳의 우리에게 요구되는 내면화의 지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수행하기란 얼마나 기만적인 어려움을 포함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장류진의 인물들이 ‘위험과 실패’의 경계에서 무너지진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어쩌면 불행히도 신자유주의 하의 자본주의 경제와 인간관계가 체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떠한 부정적 상황 속에서도 주체는 비참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기꺼이 협상 테이블에 자신을 앉혀 응전하고자 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우리’가 아닐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언제부터 그렇게 할 수 있게 되었을까. 이전에 읽었던 소설에서는 그러한 응전이 실패로 귀결되었는데 언제부터 우리는 세계의 강제로부터 적당한 타협을 하면 삶을 진전시켜 나갔던 것일까. 세계에 대해 낭만화하지 않는 사유의 순간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 세계의 내부에 침잠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런 점에서 세계와 적당한 타협을 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추구했지만 실패했던 기록이 떠올랐다. 21세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욕망을 추구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악녀로 명명하여 사유하고자 했던 때, 그 한가운데를 돌파해 나간 정이현의 소설 「낭만적 사랑과 사회」(『낭만적 사랑과 사회』, 문학과지성사, 2003)를 다시 읽어보고자 한다.

 

낭만적 사랑이라고?*

정이현의 소설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는 낭만이 들어 있지 않다. 인물들은 지극히 냉정하며 계획적이고 치밀하다. 그녀는 자신의 현실을 넘어서려는 욕망이 있다. ‘유리’의 욕망은 명확하다. 다양한 남자를 만나되 조건을 따져야한다는 것. 유리에게 사랑은 ‘낭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조건에 의해서 교환 되어야 할 덕목이기 때문이다.

흔히 낭만적 사랑이라고 하면 찰나적 매혹을 함축하는 것으로 생각되며 특정한 타자를 특별한 사람으로 가려내는 특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2) 그러나 정이현이 차용하는 낭만적 사랑이란 지극히 이성적이고 냉정한 판단에 의해 구획되고 계획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피가 한곳으로 몰려 갑갑한 느낌을 해소하고 싶은 몸의 욕망’과 ‘사랑’을 다른 것으로 분명히 파악하고 있는 유리는 분명 낭만적 사랑을 꿈꾸는 인물과는 다른 위치에 서 있다.

소설의 제목인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작가가 밝혔듯이 재크린 살스비의 책의 제목과 동일하다. 살스비의 책은 과거의 문학 작품과 동시대인들의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서 ‘낭만적 사랑’에 대해 논의를 진행하는데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어떠한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그 자체는 공적이며 동시에 사적인 세계에 속한다는 것이다.3) 또한 낭만적 사랑은 운명적으로 다가온 특별한 타인을 세상에 단 한 사람밖에 없다고 믿는데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한다.4) 기든스 역시 비슷하게 언급하는데 이를 근대에 들어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중세 시대에도 존재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중세 시대에 나온 『트리스탄과 이졸데』같은 작품이나 궁정 기사도 로맨스가 그것이다. 이들은 중매를 통한 계약 결혼을 넘어서 남녀의 열정적인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춘향전』이 그것인데 두 주인공의 사랑은 시대를 초월한 사랑으로, 지극히 낭만적인 형태로 그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모든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낭만적 사랑에 대한 기대가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졸데나 춘향과 달리 유리는 ‘특별한 한 사람’을 운명적으로 만나지 않는다. 이것이 작품 내에서 낭만적 사랑에 반기를 드는 최초의 도발인 동시에 억압적 기제를 폭로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출처-문학과지성사홈페이지
사진출처 - 문학과지성사홈페이지

고진감래(苦盡甘來)

유리는 ‘레이스가 달린 팬티’를 입지 않는다. 유리의 행위는 결정적인 상대를 만나기까지 자신의 성(性)을 지키기 위한 의지의 수행이다. 유리에게 ‘팬티’는 섹스와 결부되어 있다. 자신의 순결은 이상적인 남성을 만나기 전까지 지켜 내야할 보루인데, 그것은 ‘금 가는 순간’ 끝장날 ‘유리, 같은 것’이다. 유리는 이것을 하나의 상품처럼 이용한다.

자신의 성, 섹슈얼리티는 낭만적 사랑의 확실한 대상을 만나는 순간 교환해야 할 것이다. ‘의대생’인 상우와 ‘은색 투스카니’를 몰고 다니는 민석은 유리의 결여를 메워줄 완벽한 대상이 아니기에 그녀의 섹슈얼리티는 ‘참고 기다리며 지켜’져야만 한다. 그런 와중에 ‘스물두 해를 걸고 배팅해볼 만한 남자’인 ‘그’가 나타난다. 사랑에 대한 냉소적 입장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던 유리에게 ‘그’가 나타난 것이다. ‘그’는 유리에게 ‘배팅해볼 만한’ 사람이지 사랑을 할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그가 딴 사람이 아닌 바로 그 사람이라는 이유로 유리의 결여를 메워줄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유리는 ‘그’에게 배팅을 한다. ‘그’를 정복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진다. 기든스의 용어를 빌리자면, ‘추구(quest)’에 해당하는데 이때의 추구는 하나의 오디세이, 그 안에서 자기정체성이 타자가 자기를 발견해 줌으로써 비로소 인정받기를 기다리고 있는5)것으로 능동적인 성격을 지닌다. 자기정체성을 타자가 발견해주길 바라는 것은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주인공이 능동적으로 사랑을 생산하는 행위를 말한다는 데서 발생하는 특성이다. 타자의 무관심을 녹여버리고 적대를 헌신으로 바꾸어놓는 행위, 그것이 바로 ‘추구’이다.

유리는 ‘그’를 추구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상우나 민석 등을 ‘추구’했다. 하지만 이때의 추구는 유리에게 다가올 미래의 시간을 불확실한 것으로 만들 위험으로 작용했다. 가능성 없고 피곤한 결여 자체로 상우와 민석을 파악한 것이다. 그에 비해 ‘그’는 유리 자신의 결여를 메워주는 한편 그 자체로 완벽한 존재이다. 유리는 다가올 미래의 시간을 능동적으로 계획하여 움켜잡으면 된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유리 스스로 냉소적 입장을 보여 왔던 사랑이 낭만화 되고 있는 것이다. 낭만적 사랑이라는 강박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 중의 하나는 여러 가지 면에서 완전하게 결합을 이룰 수 있는 타인이 세상에 단 한 사람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그 사람의 성품은 이상화되어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인 인간성의 결함이나 어리석음 따위는 시야에서 사라지게 된다6). 이는 고스란히 유리에게도 적용된다.

반전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유리의 갑작스러운 성격 변화는 일반적인 성과 사랑에 대한 믿음에서 근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적 만남은 결국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 가게 되는 우회로로 간주되는 낭만적 서사와 연결된다.7) 성이 재생산과 분리된 현대 사회에서도 성에 대한 사회적 관념은 여성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되며 소설은 여성 스스로 이를 체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유리는 그러한 변화를 일으켜야 했을까. 하나의 상품으로 성을 인식하고 있는 그녀로 하여금 무엇이 낭만적 사랑에 대한 희망을 품게 했을까.

 

유리, 같은 것

우선 표면화된 것부터 살펴보자. 소설에서 유리는 부모와 ‘일요일 아침 식사를 함께’한다. 이 아침 식사 장면에서 우리는 유리, 더 나아가 여성 일반을 ‘유리잔’과 동일시하는 부모의 행동을 알 수 있다. ‘금 가는 순간’ ‘끝장나는’ 것으로 여성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유리의 부모도 혼전관계에 의해 ‘깨진 유리를 붙이지 못’하여 결합한 사례로 제시된다. 유리는 ‘엄마처럼 사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고 다짐하지만, 순결에 대한 이데올로기는 재생산된다. 그것이 비록 소비주의적인 상품으로써 순결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유리의 생각을 보다 첨예하게 만드는 존재로 등장하는 인물이 혜미다. 그녀는 아이를 지우려고 하면서도 남자친구와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 이를 보는 유리는 임신 중절의 흔적을 생각하며 연민보다는 자신의 인생에 남자를 선택함에 있어서 쥐게 될 ‘패’에 더 신경을 쓴다. 부잣집 딸인 혜미의 ‘대책 없음’을 무시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사회적 위치의 ‘대책 없음’을 ‘진정으로 강한 여성이 되어’ 제대로 된 남성을 찾는 일로 전이시킨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강함은 유리의 순결에서 오는 것이다. 하지만 순결은 깨지기 쉬운 ‘유리, 같은 것’으로 존재하고 이는 소설의 반전을 위한 총체적 전복으로 예비된다.

단순한 재생산으로써의 성적 관계는 현대 사회에서 조형적 섹슈얼리티 관계에 의해 변화되었다. 성은 재생산과 분리된 조형적 관계에 놓여 있지만 여성의 순결 혹은 처녀성은 재생산을 넘어선 특정한 가치를 담보한다. 깨지기 쉬운 것이기에 가부장제 남근 중심주의 사회에서 순결은 재생산이나 관계 자체를 넘어서는 것이다. 유리는 이를 자신의 욕망을 위해 철저히 이용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은 냉소적이고 육체적인 것이지만 이를 통해 사회 체제 안에 편입하려는 욕망은 그것을 낭만화 시켜 유리로 하여금 내면화하도록 한다. 교환 가치가 무한대인 순결은 그래서 하나뿐인 상품으로써 소구된다. 일회성의 순결은 최대한의 절제가 필요하다. 유리의 순결한 몸은 그녀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라 강박적인 욕망과 상품의 가치를 지닌 사회적 이데올로기의 표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리가 바라보는 것들은 ‘짝퉁’이 아닌 명품이라는 완벽한 소비적 실체들이다. 은색 투스카니와 뉴비틀, 샤넬과 루이뷔통 백처럼 말이다. 명품은 유리 자신이 지닌 ‘패’, 순결의 다른 이름이 된다.

그녀가 얻고자 하는 욕망은 사회로의 안정적인 진입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모든 조건이 갖춰진 능력 있는 남성이고 그 남성과의 결혼이다. 그렇기 때문에 순결이라는 명품은 그와 교환되어야 할 가치이며 사랑은 배제되어야 할 부정적 감정이다. 사랑을 내버려 두면 그녀의 부모나 혜미처럼 된다. ‘대책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유리는 존재하지 않는 순결에 대한 흔적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계획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짝퉁’의 위협이 그녀를 엄습하는 것이다.

 

유리의 성

자유롭게 선택한 결혼은 모든 가능성 중에서 ‘최상의 해결책’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따라서 자기 선택을 정당화해야 하는 것이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각자의 기준들을 자꾸 높여가도록 만드는 것8)이라고 엘리자베트 벡-게른샤임은 말한다. 유리에 빗대 말한다면 자신이 선택한 ‘그’와의 만남이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최상의 해결책’임을 입증해야 한다. 유리가 만났던 상우나 민석과는 다른 ‘그’의 조건들은 ‘최상의 해결책’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현시하며 이를 자명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유리는 자신의 순결을 ‘그’에게 제시한다. ‘십계명’에 입각한 유리의 행위는 순결을 둘러싼 행위가 유리 자신만의 사적 선택의 수행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규정되어 온 관습적 행동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로써 ‘십계명’은 자기 선택을 입증하기 위해 사회가 요구하는 관계망에 기입되겠다는 암묵적 동의가 된다.

 

사진출처 - 하얏트 홈페이지

 

‘유리의 성’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그랜드 하얏트 호텔(Grand Hyatt Seoul)’은 사회의 안정적 진입과 어느 정도 용인된 지위를 암시하고 있으면서 깨지기 쉬운 유리의 속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이곳에서 유리는 순결이라는 ‘패’를 내놓는다. 그러나 ‘유리’의 깨지기 쉬운 순결은 그 흔적을 드러내지 않는다. 완벽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실체가 사실은 부재하고 있는 것이다. 유리는 공황 상태에 빠진다. ‘그’는 유리의 (부재한) 순결을 ‘루이뷔통 백’으로 교환될 ‘뻑뻑한’ 어떤 것으로 간주한다. 자신이 믿어왔던 순결에 대한 가치가 사라진 지금 ‘루이뷔통’이라는 명품은 어쩌면 (있다고 믿는 가치가 부재한) ‘진짜 짝퉁’에 다름 아닐 수 있다는 불안으로 바뀐다.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짝퉁’이 아님을 강조하는 것이자 교환 가치로 여겨진 성을 사용 가치로 전이시켜 그것을 사랑이라 호명하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그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엘리자베트 벡은 사랑에 대한 우리의 관념에 내재한 실망을 우리가 사랑에 걸고 있는 희망에 못지않게 현대적인 현상인, 진정한 자아 찾기에 대한 관심의 산물이라고 말한다9). 유리의 자아는 사랑이 아닌 사회에 안정적으로 진입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으로서의 남성을 추구했다. 하지만 그것이 거부당한 지금 유리는 사랑을 통해 자신의 자아를 정당화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사랑은 낭만적 사랑의 이름으로 존재하기에 이미 유리 스스로 거부한 사랑에 다름없다. 유리가 믿고 싶은 ‘그’에게 유리의 사랑은 실망스러운 일이 된다.

“유리의 성이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큐빅처럼 흩뿌려진 서울의 불빛들이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나를 바라다본다”고 말하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낭만적 사랑에 대한 회의이며 유리 자신의 몰락을 의미한다. ‘큐빅처럼 흩뿌려진’ 서울은 유리를 명품이 아닌 큐빅처럼 빛났던 ‘진짜 짝퉁’으로 내몰면서 유리에게 ‘점점 멀어져가’는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이로써 사회로의 안정적인 진입 역시 ‘점점 멀어져’간다.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유리가 그토록 거부하려 했던 사랑이다. 육체적 관계로서의 성과 관련된 사랑, 그것만이 유리에게 남게 되고 이로 인해 ‘그’의 존재는 특별한 것으로 남는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

여기서 다시 소설의 제목인 ‘낭만적 사랑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낭만적 사랑은 열정적 사랑(amour passion)의 일시적 이상화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보다 영구적인 관여(permanent involvement)와 결합됨으로써 나타난 것으로 어떤 성찰성으로 인해 비롯된다. 열정적 사랑이란 틀에 박힌 일상생활과 구별될 뿐 아니라 실제로 그것과 갈등하기도 하는 어떤 급박함으로 특징 지워진다. 타자와의 감정적인 연루가 너무도 강렬히 스며들어서 그 사람 또는 그 두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통상적 책무를 무시하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개인의 삶에 어떤 서사의 관념을 도입하는데 이것은 숭고한 사랑이 가진 성찰성을 근본적으로 확장한 형식으로 개인화되어, 더 넓은 사회적 과정에 대해서는 어떠한 준거점도 가지지 않는 어떤 개인적 서사 안에 자아와 타자를 삽입하10)는 것이다. 즉 특정한 타자를 ‘특별한 사람’으로 가려내는 특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랑은 섹슈얼리티와 단절하면서도 그것을 끌어안는 것이 되었다. 낭만적 사랑은 순결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리에게 낭만적인 사랑이란 자신의 욕망이 거부당하면서 ‘그’를 특별하게 여기게 되어 타자와의 감정적 연루가 스며들고 순결을 숭고한 무엇으로 간주하게 함으로써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로써 유리는 ‘그’와의 관계에서 열등한 존재로 추락한다. 순결이 그녀가 가진 최상의 ‘패’였을 때, 그녀는 그와 동등한 관계로서 사랑과 유리(遊離)되었지만, 그 ‘패’의 가치가 떨어지자 ‘그’에게 종속되며 사랑과 결부된다. 낭만적 사랑의 관념들은 분명 여성의 가정 내에서의 종속과 외부 세계와의 상대적 분리를 동반한다11)고 기든스는 말한다. 자신의 결여를 메울 수 있는 것이 ‘그’의 능력이라고 여긴 유리는 친밀성의 문제를 사랑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를 이상화함으로써 미래를 기획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진짜 짝퉁’으로 보인 유리를 역시 ‘진짜 짝퉁’으로 생각되는 ‘루이뷔통 백’과 교환하고 유리의 사랑을 거부한다.

이렇게 거부될 사랑임을 유리는 몰랐을까. 유리 스스로 사랑에 대한 관념을 지극히 비판적으로 바라보았으면서 사랑을 갈구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엘리자베트 벡은 낭만적 사랑이 은밀하게 사회적 규칙과 결합되어 있다고 한다. 재크린 살스비 역시 낭만적인 사랑은 날조되는 동시에 금지된다고 한다. 그 사회구성원들의 개인적이고 성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과 재산을 영속화시키고, 집단 간의 동맹을 형성하며, 여러 가지 종류의 개인적 이득을 얻기 위해 사용되어 왔다12)는 것이다. 유리가 그토록 원하는 사회로의 안정적인 진입은 바로 낭만적 사랑에 대한 거부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면서 동시에 이를 내면화하는 순간 사회의 요구로부터 탈각되어 내쳐질 위험을 내포한다. 사랑에 대한 거부처럼 보이는 일련의 행위들이 사실은 능력 있는 특별한 개인을 사랑함으로써 낭만적 사랑을 완성하고자 하는 데 있다. 주체는 사라지고 타자만 남는다. 여기에 ‘명품’과 ‘진짜 짝퉁’의 대립적 상징은 투사적 동일시에 의존하는 낭만적 사랑의 다른 면을 보여준다. 낭만적 사랑은 장래의 파트너들이 서로 매혹되고 연결되는 수단으로서 투사적 동일시에 의존하는데, 투사는 타자와의 일체감을 창조한다. 타자의 특성들은 일종의 직관적 감각을 통해 ‘알아진다’. 그러나 투사적 동일시는 친밀성에 의존해서 지속되는 관계의 발전을 방해하는 것이기도 하다13). 유리에게 투사적 동일시는 사회적으로 인정된 가치에 의해 좇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명품을 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명품을 원하는 것과 스스로 명품이 되는 것은 다르다. 사회적 삶이란 ‘그’와의 안정적인 결합을 통해 성취될 수 있는 것이며 이를 위해 남근 중심주의적 사회에서 가치 있다고 간주되는 ‘순결’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친밀성을 배제한 이러한 동일시는 낭만적 사랑이 갖는 불평등한 종속 관계를 존속, 유지하는 사회적 장치이기 때문에 유리의 행위는 언제나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유리는 성별에 따른 위계 관계에 종속되는 한편, 그것을 사랑이라 믿으면서 낭만적 사랑에 대해 보이지 않는 희망을 품는 전락을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이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예비한 셈이다.

약간의 비약을 해보자. 유리의 실패는 이후 십 수 년이 지나 장류진을 비롯한 최근의 여성 작가 소설 속 인물들로 전유되어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는 곳에 도착한 것은 아닐까. 자아연출이 실패한 지점에서 발생한 문제를 사유한 끝에 도착한 지점은 그것이 성공으로 연착륙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불러올 위험에서 빗겨 서서 적당히 타협함으로써 절망하지 않는 삶의 가능성이 아닐까. 장류진의 인물들이 살아가는 경계는 명품이 아니어도 될, 진짜 짝퉁으로 간주되지 않을 그저 다른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실존의 양태는 아닐까. 그러고 보면 장류진의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의 여성 인물, 송지유처럼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서나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 남자가 필요하진 않지만 여전히 남자와의 대화를 잘 통할 수 있도록 자신을 연기해야만 세계 속에 기입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세계는 여전히 공고한 가부장적 위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성으로 하여금 그곳으로 들어와 안착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관계를 위한 노력을 수행해야 한다며 강요하고 있다. 이를 파쇄하기 위한 일련의 저항들이 높은 파고를 일으키며 수행되지만 여전히 부족하기만 하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경계를 돌파할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테지만 우리는 아직은 그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안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질 실천과 그로 인해 접합 가능한 미래를 꿈꾸며 그 안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개별 존재들의 삶에 응원을 보낼 밖에.

 

* 정이현 작가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 분석은 대학교 학부 시절의 페이퍼였음을 밝힌다.

 

1) 한영인, 「우리 이웃의 문학 - 장류진, 이주란, 윤이형의 소설을 통해 본 한국 소설의 인간학」, 문장웹진, 2020년 2월호.

2) 앤소니 기든스, 『현대 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2판, 배은경 황정미 옮김, 새물결, 2003, p. 79.

3) 재크린 살스비, 『낭만적 사랑과 사회』, 박찬길 역, 민음사, 1985, p. 13.

4) 같은 책, p. 32.

5) 앤소니 기든스, 앞의 책, p. 87.

6) 재크린 살스비, 앞의 책, p. 32.

7) 앤소니 기든스, 앞의 책, pp. 92~94.

8) 울리히 벡, 엘리자베트 벡 게른샤임,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강수영 외 옮김, 새물결, 1999, p. 175.

9) 같은 책, p. 103.

10) 앤소니 기든스, 앞의 책, pp. 76~78.

11) 같은 책, p. 83.

12) 재크린 살스비, 앞의 책, p. 226.

13) 앤소니 기든스, 앞의 책, p. 108.

 

 

글: 이병국

시인, 문학평론가, 그 외 이런저런 알바生. 시집 『이곳의 안녕』이 있음. 내일의 한국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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