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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수연의 문화톡톡] 소설가 구보 박태원과 영화감독 봉준호, 그들의 평행이론
[류수연의 문화톡톡] 소설가 구보 박태원과 영화감독 봉준호, 그들의 평행이론
  • 류수연(문화평론가)
  • 승인 2020.02.17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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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은 단연 봉준호 감독이었다. <기생충>(2019)을 향한 관객과 평단의 열광은 미국 아카데미 최초로 비영어권 영화가 각본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수상하는 쾌거로 이어졌다. 국제영화제라는 말이 무색하도록 비영어권 영화에는 외국어영화상(현 국제장편영화상)만을 수여되던 장벽이 드디어 무너진 것이다. 영화산업의 메카에서, 그러나 가장 높은 진입장벽으로 배타적인 중심이었던 그곳에서 봉준호가 쏘아올린 건 다름 아닌 가능성이었다. 문화에 있어서는 영원한 승자가 없음이 다시금 확인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러한 봉준호에 대한 것은 아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또 모르는 그의 외조부, 바로 구보 박태원(朴泰遠, 1906-1986)에 대한 이야기다. 봉준호의 수상과 함께 그의 외조부인 박태원의 이름도 함께 오르내리지만, 아직까지도 박태원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외조부 후광이 아닌 손자의 후광으로 외조부가 다시 호출되었으니, 일단 ‘금수저’ 논란은 제쳐두자. 박태원은 월북 작가였고 북에서도 명성 높은 작가였다는 점에서 본다면 남한의 가족에게는 영광보다는 고난의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박태원은 누구인가? 사실 국문학계에서 구보 박태원은 너무나 중요한 작가라 별도의 부연이 필요 없다. 만일 그의 이름이 낯선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의 대표작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과 『천변풍경』(1936), 그리고 북에서 쓴 『갑오농민전쟁』(1977) 같은 작품 말이다. 1989년 해금되고 나서 90년대 이후 수능이나 모의고사에서는 단골 출제되던 작품이었으니, 3040세대에겐 꽤나 익숙한 제목들이 아닐까?

박태원은 우리에게 ‘박제된 천재’로 기억되는 시인 이상(李箱, 1910-1937)의 가장 절친한 벗이며, 1930년대를 대표하는 문인단체인 구인회의 주축이자 당대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였다. 대학노트와 단장(지팡이)을 들고 경성 거리를 산책하는 청년 구보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주인공이자, 작가인 박태원 자신의 분신이기도 했다.

나는 이러한 박태원에게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전 세계를 열광시킨 봉준호의 기원(?)을 추적해보고자 한다. 1930년대를 대표하는 모더니스트 구보 박태원과 자신만의 스타일로 세계를 열광시킨 영화감독 봉준호. 한 세대를 건너뛰며 외조부와 손자 사이를 오가는 문화적인 평행이론을 점검해보자.

 

사진1. 봉준호 감독 출처: 다음사진2-1. 구보 박태원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진2-2. 구보 박태원 출처: 네이버
사진1. 봉준호 감독 출처: 다음/ 사진 2-1. 구보 박태원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진 2-2. 구보 박태원 출처: 네이버

그들의 평행이론, 첫 번째는 바로 ‘독보적인 헤어스타일’이다. 아카데미 시상식 소감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봉준호의 자유분방한 헤어스타일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헤어스타일의 기원은 그의 외조부인 구보 박태원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두 거장의 헤어스타일에서 특징적인 것은 전문가의 손길이 도저히 스쳤을 것 같지 않은 자유로움이다.

바가지를 씌워 자른 듯한 몽당한 앞머리가 트레이드마크인 구보의 ‘갑바머리’는 일본화가인 후지타 쓰구하루를 흉내 낸 것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실 구보의 갑바머리는 ‘귀차니즘’의 산물에 가깝다. 구보는 멋있게 ‘슬쩍 뒤로’ 넘어가기를 꿈꾸며 머리를 길렀으나, 머리가 뻣뻣해서 자연스럽게 넘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 멋진 머리를 위해서는 취침 전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빗질을 하고 수건까지 씌워야 하는 아주 귀찮은 과정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래서 앞머리를 일자로 잘라버렸다는 것이다.1)

전문가의 손길에 셀프 헤어스타일링이 더해서 탄생한 두 거장의 헤어스타일에 상당한 공통점이 있지 않은가? 만약 구보의 시대에도 남자들이 펌하는 것이 일상적이었다면 어쩌면 두 사람은 완전히 똑같은 머리모양을 가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귀차니즘’이라는 만국 공용의 감각을 바탕으로 완성된 두 사람의 독보적인 머리모양. 확실히 평행이론이 성립되는 것 같다.

그러나 두 거장을 비교하는 일이 표피적인 것에 그쳐서야 어디 쓰겠는가? 그들의 진짜 평행이론은 이제 시작이다. 그들의 평행이론 두 번째는 바로 ‘문화적 잡식성’이다. 칸과 아카데미를 석권하면서 언론에 대서특필된 봉준호 감독의 학창시절은 말 그대로 문화적 잡식성을 드러낸다. 그는 엄청난 만화광이었고, 실제로 연세대 재학시절에는 학보인 『연세 춘추』에 <연돌이와 세순이>라는 네 컷 만평을 연재하기도 했다고 한다.2) 직접 콘티를 만화로 그리는 것으로도 유명한 그의 만화적 상상력은 그 유명한 ‘봉테일’의 바탕이다. ‘칸의 예술’이라 불리는 만화적인 미장센은 그의 작품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그것은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사진3-1. 봉준호의 연돌이와 세순이 출처: 연세대 공식 블로그/ 사진3-2. 봉준호의 설국열차 콘티 출처: 동아일보
사진3-1. 봉준호의 〈연돌이와 세순이〉 출처: 연세대 공식 블로그/ 사진3-2. 봉준호의 〈설국열차〉 콘티 출처: 동아일보

그런데 이러한 문화적 잡식성은 구보 박태원에게서도 확인된다. 1930년대는 식민지 근대의 발전과 함께 대중문화 역시 급속도로 그 영향력을 확산해가던 시대였다. 그 중심에는 신문이 있었다. 신문연재소설은 상업적인 성격을 강했는데, 시각화는 그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신문사마다 전문 삽화가가 있어서 각 연재소설에 맞는 삽화가 뒤따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박태원이 자신이 직접 자기 작품의 삽화를 그렸다는 점에서 더 주목된다. 「적멸」(1930), 「반년간」(1933) 같은 작품이나 콩트인 「제비」(1939) 등에 직접 삽화를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뿐이랴. 구보의 대표작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는 그의 친우인 시인 이상이 삽화를 그렸으니, 문화적 잡식성은 예술가들의 공통된 특징이라 하겠다.

 

사진4. 박태원의 「적멸」 출처: 한국현대장편소설사전 1917-1950
사진4. 박태원의 「적멸」 출처: 한국현대장편소설사전 1917-1950

여기에 더해 2000년대 영화감독 봉준호에게 만화가 있었다면, 1930년대 소설가 구보에게는 세책(貰冊)이 있었다. 세책이란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존재했던 일종의 도서대여점인 세책방에서 빌릴 수 있는 책들을 지칭한다. 그 중에서도 구보가 탐독했던 것은 만고불변의 고전 『춘향전』이었다고 한다.3) 그뿐인가? 그는 일제의 대동아전쟁으로 자유로운 창작이 어려웠던 1940년대에는 『수호지』와 『삼국지』 등 중국 고전소설의 번역에 주력하기도 하였다. 지독한 모더니스트였던 구보가, 노년에 북에서 『갑오농민전쟁』과 같은 뛰어난 역사소설을 창작할 수 있었던 힘은 이러한 탐독에서 기인할 것이다.

이쯤 되면 어떠한가? 어머니 몰래 <춘향전>을 탐독하던 외조부 구보와 만화책을 탐독하던 손자 봉준호의 모습은 정말이지 ‘데칼코마니’ 같지 않은가? 하지만 이 위대한 조손(祖孫)간에 닮은 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엄청난 ‘영화광’이었다는 것이다. 영화감독인 봉준호가 영화에 매료된 사람이라는 것은 별도의 설명이 불필요하다. 그런데 그의 외조부인 구보 박태원 역시 당대의 영화광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태원의 영화에 대한 편력은 무엇보다 그의 소설에서부터 드러난다. 그의 대표작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천변풍경』은 Camera-eye와 over-lap과 같은 영화적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때문에 필자를 비롯한 많은 박태원 연구자들이 박태원 소설의 영화적 기법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기도 했다. 또한 박태원은 르네 클레르의 <마지막 백만장자(Le Dernier Milliardaire)>를 패러디해서 「최후의 억만장자」(1937)라는 흥미로운 콩트를 남기기도 했다. 이 작품은 파리의 습격을 받게 된 가상의 나라 트레모로국에서 영국의 셜록 홈즈와 조선의 구보가 대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파리를 유입한 범인을 잡아낸 구보가 상금과 사랑을 모두 거머쥐는 결말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구보 박태원과 봉준호, 봉준호와 박태원의 평행이론을 완성시키는 화룡점정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실험정신’이다. 봉준호는 실험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다.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2000)부터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 <옥자>(2017), <기생충>(2019)까지 봉준호의 영화는 매번 지난 영화를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주제와 시도를 통해 관객과 평단을 모두 사로잡았다. 코미디, 범죄, 스릴러, SF와 같이 다양한 장르에 대한 실험 역시 봉준호의 특징적인 면이다.

이것은 그의 외조부인 박태원에게서도 발견된다. 구보 박태원은 다양한 창작기법을 통해 소설을 쓴 것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앞서 언급한 영화적 기법뿐만 아니라, 건축학자 곤 와지로의 민가연구방법론인 ‘고현학(考現學, Modernology)’을 차용하여 작가가 서 있는 지금 현재를 기록한다는 자신만의 창작방법론으로 발전시켰다. 그의 대표작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바로 이러한 고현학 그 자체의 기록이라 평가된다. 또한 이상을 모델로 하여 소설 전체를 한 문장으로 완성한 「방란장 주인」(1936)은 그의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구보는 탐정소설이나 범죄소설에도 비상한 관심을 가졌다. 우연히 만난 살인자로부터 그 범죄의 과정을 듣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적멸」과 식민지 조선을 뒤흔든 사이비 종교 백백교 사건을 소설화한 「금은탑(원제:우맹)」(1938), 청소년 잡지 『소년』에 연재되어 당대 소년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소년탐정단』(1938)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코난 도일이나 에드가 앨런 포우, 일본 변격탐정소설의 대표자로 평가받는 에도가와 란포의 영향 속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내성적 탐정소설을 완성하였다.

 

사진5-1. 박일영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생』 출처: 교보문고/ 사진5-2. 박태원의 외손자, 감독 봉준호가 말하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생』 중에서 출처: 네이버 포스트
사진5-1. 박일영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생』 출처: 교보문고/ 사진5-2. 박태원의 외손자, 감독 봉준호가 말하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생』 중에서 출처: 네이버 포스트

지금까지 봉준호를 통해 그의 외조부인 구보 박태원을 다시 한 번 호출해 보았다. 박태원 연구자로서는 상당한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가 개봉되었을 때, 필자는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었다. 극장이 아닌 DVD로 이 영화를 뒤늦게 보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때에야 봉준호가 박태원의 손자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영화에 매료된 이후에는 오직 그 이름 석 자로 그의 영화를 선택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두 거장 사이의 평행이론이라고는 했지만, 글을 마치면서 되돌아보니 그것은 적절한 표현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들이 가진 공통점의 대부분은 사실 위대한 예술가 모두에게서 찾을 수 있는 아주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본다면 이 평행이론에서 가장 무용한 법칙은 그들이 조손간이라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아니어도 그들은 이미 예술가로서 가장 뜨거운 열정의 DNA를 공유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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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요시카와 야나기, 「오까빠머리의 이방인」, 플랫폼,

2) 이소라, 「사회 비판했던 ‘만화광’, 봉준호 대학 학보에 그린 만화 보니」, 『한국일보』, 2020.2.12.

3) 박태원, 「순정을 짓밟은 춘자」, 『조광』, 193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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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류수연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문학/문화평론가. 인천문화재단 이사. 계간 <창작과비평>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였고, 현재는 문학연구를 토대로 문화연구와 비평으로 관심을 확대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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